은유는 필수적으로 대담한 심상들을 요구한다


롱기누스Longinu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 중에서

롱기누스는 은유의 사용을 위한 적절한 기회는 감정이 급류처럼 분출하여 수많은 은유들을 저항할 수 없이 휩쓸어갈 때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예를 데모스테네스의 <연설>18, 296절로 인용한다.




비열한 아첨꾼들, 저마다 제 조국의 손발을 절단한 자들,

자유를 내주며 처음에는 필립포스를 위하여 지금은 알렉산드로스를 위하여 건배한 자들,

배腹와 가장 저열한 욕망의 잣대로 행복을 재는 자들,

이전의 헬라스인들에게는 선의 규범이자 표준이었던 전제專制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엎은 자들.




필립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 왕이고,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56-323년)는 필립포스 2세의 아들이다. 이 구절에는 수많은 은유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신자들에 대한 연설가의 분노가 가려주고 있다. 변명은 표현의 대담성을 완화해준다. 롱기누스는 강력하고 시의에 맞는 감정과 진정한 숭고야말로 중첩된 혹은 대담한 은유에 대한 특효약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급한 물살로 모든 것을 휩쓸어가거나 앞으로 내모는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필수적으로 대담한 심상들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청중에게 은유의 수를 세어볼 여유를 주지 않는데, 청중도 연설가의 열광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투적 문구나 기술에 있어서 잇단 은유만큼 표현력이 풍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롱기누스는 바로 이런 수단에 의해 인체의 해부가 크세노폰에 의해 탁월하게 그리고 플라톤에 의해 그야말로 신적으로 기술된다고 말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머리는 신체의 성채이고, 목은 머리와 가슴 사이에 만들어진 이스트모스isthmos(목, 지협地峽이란 듯으로 지명으로는 특히 코린토스Korinthos 지협을 말한다)이며, 척추는 선회축처럼 아래에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쾌락은 인간에게 악의 미기이며, 혀는 맛의 시금석이다. 그리고 심장은 혈관의 매듭이자 힘차게 도는 피의 원천으로 위병소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플라톤은 신체의 통로들을 골목길이라고 부른다.

롱기누스는 비유적 표현이 그 본성상 장대하고, 은유는 숭고에 기여하며, 감정과 묘사가 내포되어 있는 구절들이 그것들을 가장 반긴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은유의 사용은 문학에 있어서의 온갖 다른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과도해지기 쉽다. 그는 플라톤조차도 가끔 일종의 문학적 광기에 의해 거칠고, 절도 없는 은유와 과장된 알레고리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는 그런 예를 플라톤의 『법률』에서 인용했다.




왜냐하면 도시가 포도주 희석용 동이처럼 섞여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 미친 듯한 포도주를 부으면 그것이 끓어오르지만 그것이 맑은 정신의 다른 신에게 제압되어 그와 사이좋게 어우러지면 탁월하고 순한 음료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물을 “맑은 정신의 신”이라 하고 섞는 것을 “제압한다”고 하는 것은 맑은 정신과는 거리가 먼 시인의 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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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표현이 장식적 조사보다 훨씬 더 표현력이 풍부하다



롱기누스Longinu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 중에서

사상과 표현법은 대체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절하고 장대한 말들의 선택은 놀랄 만큼 청중을 유인하고 매료하며, 연설가와 산문작가들 모두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까닭은 그 자체로서 우리의 말들에 가장 아름다운 조각에게처럼 대번에 장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매력과 무게 그리고 기운과 힘을 주기 때문이다. 즉 사물들에 생명과 목소리를 불어넣는 것이다. 롱기누스는 아름다운 말이야말로 진실로 사상을 비춰주는 빛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위엄 있는 말이 어디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시시한 사물들에 장대하고 엄숙한 말을 입히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커다란 비극 가면을 씌우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롱기누스는 아나크레온Anakreon(기원전 6세기에 활동한 그리스의 서정 시인이자 비가 시인)의 시행 “나는 더 이상 트라케Thraike의 말괄량이에게 관심이 없다”를 예로 들어 어떤 이유에서인지 헐뜯고 있기는 하지만 유추의 적절성 때문에 매우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그는 평범한 표현이 장식적 조사보다 훨씬 더 표현력이 풍부한 예를 테오폼포스Theopompos(기원전 4세기 중엽의 그리스 역사가로 이소크라테스의 제자)가 “사물들을 꾹 삼키는 데는 뛰어난 재능이 있다”라고 한 말로 소개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유래한 만큼 당장 이해될 수 있으며, 익숙한 것은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롱기누스는 탐욕과 야망 때문에 수치스럽고 더러운 것을 끈기 있게 기꺼이 참고 견디는 자에게 쓰일 경우 “사물들을 꾹 삼킨다”는 표현은 매우 생동감이 넘친다고 말한다. 그는 헤로도토스의 말을 인용했다.




클레오메네스는 미쳐서 단검으로 제 살을 작은 조각들로 잘랐다.

자신을 저미다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클레오메네스Kleomenes(기원전 520-490년경)는 스파르테 왕으로 미쳐서 제 살을 칼로 저미다가 죽었다. 롱기누스는 헤로도토스의 표현이 상스러우나 그 표현력 때문에 실제로는 상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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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적 표현이 숭고에 기여한다


롱기누스Longinu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 중에서

우회적 표현이 숭고에 기여한다. 음악에서 반주의 의해 主旋律주선율이 더 감미로워지듯 우회적 표현은 가끔 직접적 표현과 조화를 이루며 그것이 더 아름답게 들리게 해주며, 우회적 표현이 과장되거나 몰취미하지 않고 쾌적하게 섞일 때 특히 그렇다. 롱기누스는 『메네크세노스』에 있는 플라톤의 추도사 첫머리를 예로 들었다.




우리는 행동으로 그들에게 응분의 보답을 했고 그들은 그것을 받은 다음 운명에 의해 정해진 길을 가고 있소.

자신들의 나라에 의해 공적으로 호송 받으며, 또 각자 자신의 친족에 의해 사적으로 호송 받으며.




여기서 플라톤은 죽음을 “운명에 의해 정해진 길”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전통적인 의식이 베풀어지는 것을 “조국의 공적인 호송”이라고 부른다. 이는 분명 그의 생각에 큰 위엄을 부여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산문적 표현에 말하자면 우회적 표현이라는 아름다운 화음의 옷을 입힘으로써 그것을 시화詩化했다.

크세노폰도 『퀴로스의 교육』(1권 5장 12절)에 우회적 표현을 사용했다.




그대들은 노고가 즐거운 인생에 길라잡이라고 믿고 있고, 그래서 자신들의 마음속에 모든 재산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가장 영웅적인 것을 축적했던 것이오.

그대들에게는 칭찬받는 것만큼 노고를 참고 견디기를 원하오.




크세노폰은 “그대들은 참고 견디기를 원하오”라고 말하는 대신 “그대들은 노고를 즐거운 인생에 이르는 길라잡이로 삼고 있소”라고 말했으며, 문장의 나머지 부분도 같은 방법으로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찬사에 어떤 장대한 사상을 부여했다.

롱기누스는 우회적 표현을 절도 있게 사용하지 않을 경우 어떤 다른 문채보다도 위험한 까닭은 금세 무미건조해지고 공허하고 어리석은 허풍으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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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를 현재에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소개하면 생동감이 느껴진다



롱기누스Longinu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 중에서

롱기누스는 과거사를 현재에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소개할 경우 단순하 보고가 아니라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는 크세노폰의 『퀴로스의 교육 Kyrou oaideia』 7권 1장 37절을 예로 든다. 퀴로스Kyros(기원전 559-529년 재위)는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이다.




누군가가 퀴로스의 말 아래 쓰러져 말발굽에 짓밟히자 칼로 말의 배를 찌른다. 말이 뒷발로 서며 퀴로스를 내동댕이치자 그가 땅에 떨어진다.




롱기누스는 인칭 바꾸기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청중은 이따금 자신이 위험 한가운데 있다고 믿게 된다. 그는 『일리아스』 15권 697-698행을 예로 든다.




아마도 그대는 그들이 피로한 줄도 모르고 지칠 줄도 모르고 서로 맞서 싸웠다고 믿으리라.

그만큼 그들은 맹렬히 싸웠던 것이다.




그는 헤로도토스의 말도 예로 들었다.




그대는 엘레판티네 시에서 강을 거슬러 항해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 평지에 이르게 될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그곳을 통과한 뒤 다른 배를 타고 이틀 동안 항해하게 될 것이며, 그러고 나면 메로에라는 이름의 큰 도시에 도착하게 될 것이오.




엘레판티네Elephantine는 이집트 북쪽 엘레판티네 섬에 있는 도시이고, 메로에Meroe는 아이티오피아Aithiopia에 있는 메로에 섬의 수도였다. 헤로도토스는 마음속으로 청중을 데리고 그곳을 통과하며 청중이 들은 것을 눈으로 보게 해준다. 그의 구절은 실제 인물에게 직접 말을 건넴으로써 듣는 이를 사건의 현장으로 데려다준다. 그리고 청중 전체가 아니라 한 개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작가는 어떤 인물에 관해 서술하다가 돌변하여 스스로 그 인물로 바뀐다. 이런 종류의 문채를 일종의 감정 분출이하고 하는데 롱기누스는 『일리아스』 15권 346-349행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헥토르가 큰 소리로 트로이아인들에게 외쳤다.

함선들을 공격하고 피묻은 전리품들은 내버려두라고.

누구든지 함선들을 떠나 다른 곳에 가 있다가 내 눈에 띄는 자는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게 해줄 것이오.




롱기누스는 호메로스가 “헥토르는 이러저러한 말을 했다”고 삽입했더라면 차가운 느낌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상황이 긴박하여 작가가 지체할 시간이 없고, 즉시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을 때는 이런 문체가 유익하다고 말한다.

롱기누스는 데모스테네스가 『아리스토게이톤 탄핵 연설 Kat' Aristogeitonos』에서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암시하기 위해 인칭 바꾸기를 약간 다른 방법으로 사용했음을 지적했다.




여러분 중 과연 이 뻔뻔스런 인간의 폭행에 분노와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겠소?

그 자는 -오오 그대 가장 비열한 악당이여- 그대의 발언의 자유는 열릴 수도 있는 크고 작은 문들에 의해 닫힌 것이 아니라 ...




롱기누스는 데모스테네스가 격분한 나머지 의미가 완결되기도 전에 갑자기 바꾸어 하나의 구절을 두 인물에게 배분했다고 말한다. “그 자는 -오오 그대 가장 비열한 악당이여” 이렇게 데모스테네스는 아리스토게이톤에게 말을 건네고 배심원들 곁을 떠난 척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그들에게 훨씬 더 강하게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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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뤼프토톤polyptoton은 바꾸기와 점층법과 함께 숭고와 감정에 기여한다


롱기누스Longinu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 중에서

같은 단어를 여러 가지 격格으로 사용하는 폴뤼프토톤polyptoton으로 불리는 중첩과 바꾸기 그리고 점층법도 매우 효과적이며 장식과 온갖 종류의 숭고와 감정에 기여한다. 격, 시제, 인칭, 수의 바꾸기는 우리의 진술을 다채롭고 생기 넘치게 한다. 수의 경우 ‘무수한 백성’이란 말처럼 형식은 단수지만 복수의 의미를 갖는 단어도 문체의 장식에 기여한다. 복수는 종종 더 장대한 인상을 주고 문법적 수에 내포되어 있는 다수의 의미에 의해 호감을 사는데, 소포클레스에 나오는 오이디푸스의 말을 예로 들 수 있다.




... 오오 결혼들이여, 결혼들이여,

너희들은 나를 낳고는 또다시 너희들의 자식에

자식들을 낳아줌으로써 아버지들과 형제들과 아들들,

신부들과 아내들과 어머니들 사이에

근친상간의 혈연을 맺어주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인간들 사이에 가장 더러운 치욕이로다!




여기서 수가 복수로 늘어남으로써 불행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복수를 단수로 축소하는 것도 때로는 숭고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롱기누스는 이런 예를 데모스테네스가 한 말 “전全 펠로폰네소스가 반목했다”, “프뤼니코스Phrynichos(아이스퀼로스보다 조금 앞서 활동한 아테나이의 비극작가)가 『밀레토스의 함락』을 공연했을 때 극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를 예로 들었다. 그는 따로 떨어져 있는 개체들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 압축하는 것이 더 견고한 인상을 준다고 말한다. 명사들이 단수인 경우 그것들을 복수화하는 것은 예상 외의 감정의 발로를 의미하며, 명사들이 복수인 경우 다수를 고운 소리가 나는 단수로 결합하는 것은 그 반대쪽으로 바꿈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한다고 롱기누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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