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축복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35:1)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야곱은 가족들에게 말했다(35:2-3).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모든 이방 신상과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를 모두 야곱에게 가져 왔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 느티나무 아래 묻은 후 사람들을 이끌고 벧엘로 향했다.
하나님이 신비한 두려움으로 주변의 도시들을 휘어잡았기 때문에 아무도 야곱의 일행을 추격할 수 없었다.


야곱 일행은 가나안 땅 루스(Luz)에 이르렀는데 루스가 곧 벧엘(Beth-El)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야곱은 벧엘에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El-Bethel)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갈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곳이다.
또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Deborah)가 죽었을 때 시신을 벧엘의 느티나무 아래 장사하고 그 느티나무를 알론바긋(Allon-bachuth)이라고 불렀었다.


야곱이 밧단아람(Paddan-aram)에서 돌아올 때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나타나서 축복하셨다. (35:10-12)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나님은 말씀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 가셨다. 과거에도 축복하신 하나님이 다시금 축복하신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돌기둥 위에 술과 기름을 부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야곱에 관해 전래되는 이야기의 출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라헬의 죽음

야곱 일행이 벧엘을 떠나 에브랏(Ephrath)에 당도하기 전에 라헬이 출산을 하게 되었다.
걸음을 멈추고 산파가 해산준비를 하여 라헬을 도왔는데 난산이었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라헬에게 산파가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도 아들입니다” 하고 위로했다.
겨우 출산을 끝낸 라헬은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며 아기의 이름을 베오니(Benoni)라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
베오니는 “나의 불운의 아들 Son of My Misfortune”이란 뜻이다.


야곱은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Benjamin)이라 불렀는데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Son of the Right Hand”이란 뜻이다.
야곱은 몹시 슬퍼하며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에브랏으로 가는 길가에 장사지냈다.
에브랏은 베들레헴(Bethlehem)을 가리킨다.
야곱이 라헬의 무덤에 비석을 세웠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그것이 라헬의 묘비인 줄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의 소실을 추행한 르우벤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야곱은 다시 길을 재촉하여 막달에델(Migdal-eder) 망대 건너 편에 이르러 천막을 쳤다.
그곳에서 쉬었다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불상사가 발생했다.
레아에게서 얻은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Reuben)이 아버지의 소실 빌하(Bilhah)를 범한 것이다.
야곱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야곱은 죽기 직전 자식들을 마지막 축복하는 순간에 이때의 일을 놓고 르우벤에게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놈이라고 책망했다.



이삭의 죽음
야곱은 아버지를 찾아 기럇아르바라고도 불리우는 마므레에 이르렀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던 헤브론을 말한다.


이삭은 180세에 명을 다하고 죽어 조상들 곁으로 갔다.
에서와 야곱은 함께 아버지를 안장했다.
야곱을 편애했던, 그래서 야곱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 리브가는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아마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 같다.
야곱은 그나마 다행히도 아버지의 임종은 지켜 볼 수 있었다.


에서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아내, 아들과 딸, 자기에게 딸린 모든 식구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물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가지고 야곱과 헤어져 세일 땅으로 거처를 옮겼다.
에서와 야곱의 재산이 너무 불어나 함께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가축이 너무 많아 그곳 땅으로는 부족하였으므로 에서가 이주하기로 했다.


에서는 세일 산악지대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에돔으로 알려졌으며 에돔 족의 조상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집트로 팔려 간 요셉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이 있었고, 이삭에게는 순종이 있었으며, 야곱은 활동적이면서 인내가 있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은 조상들의 이러한 장점들을 골고루 이어 받았다.


요셉은 이상주의를 추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꿈을 잘 꾸었으며 자기가 꾼 꿈이 하나님의 예언이며 묵시라고 믿었다.
또한 사람들의 꿈도 해몽해 주고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려고 했다.


요셉은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그를 알지 못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역사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이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원형(Prototype)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창세기 마지막에 등장하는 요셉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나타나심을 예언하는 이야기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야곱은 선친이 유랑민으로 살았던 가나안에 터전을 마련했다.
그곳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한 땅이기도 했고 또한 야곱에게 직접 약속한 땅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야곱이 정처로 인정한 아내는 라헬이었다.
요셉은 열한 번째 아들이지만 야곱은 자신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이 낳았다는 이유로 그를 적자로 여겼다.


야곱은 요셉을 특히 사랑하여 화려하게 수놓은 아름다운 색동옷을 입히고 늘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이러한 편애는 다른 아들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형들은 요셉에게 정다운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요셉은 열일곱 살 때 아버지의 두 소실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치는 일을 하다가 그들의 잘못을 보고는 아버지에게 그 일을 고자질하기도 했다.


하루는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꿈을 말했다. (37:6-8)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꿈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은 형들에게 또 꿈 이야기를 했다. (37:9)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요셉이 아버지에게도 이 꿈 이야기를 하자 야곱은 그를 나무랬다. (37:10)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형들은 요셉의 꿈을 질투했지만 아버지는 그 일을 두고 은근히 걱정했다.
형들이 양떼를 먹이러 세겜에 갔을 때 야곱이 요셉에게 말했다. (37:13-14)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내가 그리 하겠나이다”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야곱은 별 생각 없이 헤브론 골짜기에서 요셉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헤브론은 남쪽 브엘세바로부터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이며 세겜은 그 북쪽에 있는데 헤브론에서는 걸어서 약 5일 걸리는 곳이다.
요셉이 세겜에 이르러 형들을 찾아 들판을 헤매고 있을 때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37:15-17)


“네가 무엇을 찾느냐”

“내가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도단(Dothan)은 세겜에서 북쪽으로 하루 길이다.
도단으로 가서 형들을 발견하고 반갑다고 소리치는 요셉을 보자 평소 그를 미워하던 형들은 즉석에서 그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요셉이 꿈 이야기를 하면서 감히 형들 위에 군림하려는 데다 아버지가 요셉만을 적자로 여기고 재산을 그에게 물려 줄 것이 뻔하니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었다.


그들은 음모를 꾸미면서 말했다. (37:19-20)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이 말을 들은 맏형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내야겠다 생각하고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고 제의했다. (37:21-22)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내어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이 사실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요셉은 형들이 어디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찾아왔다며 반가워했다.
형들은 요셉의 반색을 아랑곳 않고 그에게 달려들어 색동옷을 벗겼다.
요셉은 몸부림쳤지만 힘으로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엉엉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형들은 그를 묶어서 물이 없는 구덩이에 처넣어 버렸다.


요셉의 형들이 둘러 앉아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마침 길르앗(Gilead)으로부터 낙타를 몰고 오는 이스마엘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낙타에 싣고 이집트로 팔러 가는 길이었다.
당시 카라반 상인들은 동방 중국과 인도에서 생산되는 물품과 서방 유럽의 물품들을 이집트로 운반해다 팔았으며 오는 길에는 이집트 물품들을 사다가 동방과 서방 유럽으로 운반해서 팔았는데 물건뿐만 아니라 노예도 매매했다.


이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했다. (37:26-27)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돈이 생기는 일이라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들이 이렇게 의논하는 동안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이 구덩이에서 요셉을 발견하고는 그를 끌어내어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이십 냥에 팔아 넘겼다.
이스마엘 상인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구덩이에서 요셉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르우벤은 아우들에게 “그 애가 없어졌다.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며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다.
그러자 아우들은 숫염소 한 마리를 죽여 그 염소피를 요셉의 옷에 묻힌 후 그 옷을 아버지에게 보내면서 전했다. (37:32-33)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야곱은 요셉의 옷을 보자 경악했다.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야곱은 자신의 옷을 찢어 버리고 베옷을 몸에 걸쳤다.
요셉을 생각하며 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도 울기만 했다.
나머지 자식들이 위로했지만 야곱은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37:35)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며느리에게서 아들을 낳은 유다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 무렵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는 형제들로부터 나와서 히라(Hirah)라고 부르는 아둘람(Adullamite) 사람에게 붙어살았다.
거기서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Shuah)의 딸을 만나 아내로 맞이했다.
그 여자가 아들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이름을 엘(Er)이라하고 둘째 아들의 이름을 오난(Onan)이라고 했고, 셋째 아들은 셀라(Shelah)라고 했다.
셀라가 태어날 무렵 유다는 거십(Chezib)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유다는 장자 엘에게 아내를 얻어 주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Tamar)이었다.
그러나 엘은 하나님의 눈 밖에 나서 하나님이 그를 죽게 하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 다말과 결혼해서 시동생으로서 할 본분을 다하고 형의 후손을 남기라 했다.
당시에는 형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 것이 관습이었다.
물론 형에게 아들이 있으면 형수와 살지 않아도 된다.
이런 관습은 훗날 이스라엘 사람에게 율례가 되었다(신명기 25:5-6).


그러나 오난은 자기의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형수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정액을 바닥에 흘려 형수에게 후손을 남겨 주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난의 행위를 악하다고 보고 그를 죽게 하셨다.
둘째 아들까지 죽어버리자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말했다. (38:11)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마저 큰 아들과 작은 아들처럼 죽을까 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말은 친정으로 가서 살았다.


세월이 흘러 유다의 아내가 죽었다. 아내의 상을 끝낸 유다는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으러 딤나(Timnath)로 향했다.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온다는 말을 전해들은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얼굴을 베일로 가리운채 딤나로 가는 길가인 에나임 성문에 나가 앉아 있었다.
셀라가 이미 장성해서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기를 아내로 데려 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가린 다말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를 창녀로 여긴 유다는 그 여자에게 발길을 돌려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38:16-18)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담보물)을 주겠느냐”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는 그녀가 달라는 대로 주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관계를 가졌는데 다말은 그날 유다의 아이를 임신했다.
다말은 돌아가서 베일을 벗고 다시 과부 옷으로 바꿔 입었다.


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친구 아둘람 사람을 시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주고 그 여인에게 맡긴 자기의 담보물을 찾아오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여인이 이미 떠난 후라 아둘람 사람은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에나임 성문 길가에 있던 신전 창녀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지만 그곳에는 신전 창녀가 없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아둘람 사람으로부터 창녀를 찾지 못했으며 그곳에는 원래 창녀가 없다는 말을 전해들은 유다는 “그 담보물을 가질 테면 가져 보라지. 우리가 공연히 웃음거리가 될 것은 없지 않는가? 새끼 염소를 보냈는데도 자넨 그 여인을 찾지 못했으니 말일세”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로부터 석 달 가량 지난 후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창녀 짓을 했으며 아이까지 가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분노한 유다는 다말을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끌려나온 다말은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38:25)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유다가 물건들을 보니 틀림없이 자기의 것이었다.
그제서야 유다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그 애가 나보다 낫구나! 내가 내 아들 셀라에게 그 애를 아내로 맞게 하지 않았으니”라고 말했다.
유다는 다시는 다말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다말이 몸을 풀 때가 되자 그녀는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산할 때 한 아이가 손 하나를 먼저 내밀었다.
산파는 “이 아이가 먼저 나온 놈이다” 하며 아이의 손에 진홍색 실을 매두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손이 안으로 끌려 들어가며 다른 아이가 나왔다.
이를 본 산파가 “이 밀치고 나온 놈!” 하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베레스(Pharez)라고 불렀으며 손에 진홍색 실을 매고 뒤따라 나온 형은 세라(Zarah)라고 불렀다.


이렇듯 유대인은 도덕적으로 추악한 조상의 역사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예수의 계보로 야곱이 유다를 낳고 유다가 다말(며느리)에게서 베레스를 낳았다는 것은 마태복음서 1장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도 죄를 진 인간들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정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성경다운 진리가 그 안에 있다는 점을 널리 가르치려 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혹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미디안 상인에게서 요셉을 산 이스마엘 상인들은 이집트로 가서 바로(Pharaoh) 왕 신하인 경호대장 보디발(Potiphar)에게 요셉을 팔았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여 요셉의 앞날은 늘 열려 있었으며 보디발 집안 식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었다.
보디발은 하나님이 요셉을 돌봐 주시기 때문에 요셉에게는 범사가 형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요셉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잘 되게 했다.
보디발은 또한 요셉의 사람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를 자신의 심복으로 삼아 집안의 모든 일을 관리하게 했다.
그는 온갖 업무와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맡기고 그를 믿었기에 자신이 먹을 음식만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요셉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준수하고 아담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보디발의 집에서 지낸 지 얼마쯤 되자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유혹을 뿌리치며 요셉은 말했다. (39:8-9)


“나의 주인이 가중 재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러나 그녀의 유혹은 집요했다. 날이면 날마다 수작의 농도도 짙어졌다.
요셉은 그녀와 가까이 하기를 꺼리며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하루는 요셉이 사무를 보려고 집 안에 들어갔는데 집 안에 인기척이 없었다.
여인은 이때를 기회로 삼아 요셉의 옷을 붙잡고 강제로 침실로 데리고 가려 했다.
요셉은 옷을 벗어 던지고 몸만 겨우 빠져 나와 밖으로 뛰쳐나갔다.
요셉이 옷을 자기 손에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을 보자 화가 난 여인은 복수할 심사로 집안사람들을 부르며 고함을 질렀다. (39:14-15)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여인은 요셉의 옷을 챙겨 놓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집 안에 들어서자 거짓을 고했다. (39:17-18)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 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 왔기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아내의 말을 들은 보디발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토록 배려했는데 감히 아내를 강간하려 했다니 배신감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요셉의 변명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당장 감금시켰다.


요셉은 비록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더욱 사랑하여 은총을 베푸셨다.
그리하여 요셉은 간수장의 눈에 들게 되었다. 간수장은 감옥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요셉의 손에 맡겨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했으며 일체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