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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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극적인 소재이면서 문학에서 가장 많이 차용하는 주제인 불륜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륜은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인 구약에 나올 만큼 고대시대부터 금기된 내용이자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이다. 엄격하게 금하는 내용으로 구약은 10 계명으로 절대 하지 말 것을 명하고, 문학에서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결과는 파멸로 이어지도록 전개된다.

하지만 오가와 이토는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불륜을 아기자기하게 표현한다. 자극적인 내용도 없으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위험한 내용도 전혀 없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불륜을 미화한다는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을 한 셈이다. 자극적으로 쓴다면 진부한 소재에 진부한 내용으로 글을 썼다고 비난을 받을 것이고 둘의 사랑을 극적으로 쓴다면 미화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야 양측의 비난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그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잘 건너가도록 글을 썼다.

섬세한 감성으로 글을 썼지만, 특유의 디테일로 불륜에 이르는 스토리에 몰입되지 않도록 조절하였다. 초기작이 아닌 후기작을 먼저 봤지만, 작가는 책 속에 자세하게 풍경을 서술한다던가 아니면 굉장히 묘사를 잘한다.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에서는 문구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한다. 만년필을 볼펜을 그리고 종이의 질감이 생생하도록 자세히 묘사한다. 읽고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 지게 만드는 묘사를 했다. 이 책에서는 일본 요리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를 한다. 질감이나 맛까지 느껴지도록 상세하게 작성을 했다.

또한 기모노에 대해 설명하면서 원단에 대해서 쓴 내용을 보면, 잠깐 스토리에 대한 내용을 까먹게 된다. 그러면 그들의 불륜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된다. 메인 스토리가 아닌 묘사에 대한 이야기에서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럼 이야기가 어둡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어두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밝게 만들어 준다. 어떻게 표현해도 불륜은 어두운 이야기이다. 책에 대한 소개에 보면 플라토닉 러브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는 식으로 평한 글이 있는데, 어떻게 되었든 결과가 보이는 어두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영리하게 그들의 끝을 보여주진 않는다. 오히려 한차례 이별과 만남을 통해서 애잔한 사랑을 만들어 버렸다. 더욱 둘이 헤어질 수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 버리고는 냉큼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영악하다 볼 수 있다. 이다음의 이야기는 어떻게 해도 반드시 비극이 동반이 되어야 한다. 이들의 비극이든 아니면 불륜으로 피해를 입은 가족의 비극이든 꼭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딱 그전에 책을 마무리 함으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글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끝까지 마음의 잔잔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 본문 P285 중 -

"별이 왜 아름다운지 아니?"
유키미치가 한 손으로 자전거를 끌면서 불쑥 물었다.
"공기가 맑으니까?"
내가 대답했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어둠이 있기 때문이겠지."
"어둠?"
"그래, 새카만 어둠,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안 그래? 실은 낮에도 별은 반짝이니까."
"어둠 때문이라……." 내가 중얼거렸다.
그 무렵 나는 부모님 이혼 문제가 아직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티 없이 밝은 고교시절을 보냈던 건 아니었다.
"난 안 좋은 일이나 힘든 일은 인생의 어둠이라고 생각해."
"그렇긴 한데, 그런 어둠이 없으면 좋은 일이나 기쁜 일이나 운 일이나 행복한 일도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겠지. 최근을 보다가 문득 인생이 줄곧 대낮처럼 밝으면 별의 존재도알아챌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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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대한민국 트렌드 - 1인 체제가 불러온 소비 축소
최인수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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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대한 책을 챙겨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관심이 없었다. 사실 작년 말부터 현제까지 읽어본 것이 트렌드 책의 거의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트렌드에 관련된 책이 많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트렌드 책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읽게 된 트렌드 코리아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권의 트렌드 관련 서적을 읽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책에도 트렌드의 정의부터 내리고 시작하는 책은 없다는 것이다. 트렌드라는 것의 사전적 정의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그 책이 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트렌드를 구분하는 방식은 마이크로 트렌드, 트렌드, 메가 트렌드 그리고 문화로 이어진다. 마이크로 트렌드는 1년의 단기간의 유행, 메가 트렌드는 3~5년 정도 지속적인 유행, 메가 트렌드는 10년 정도 이어지는 유행 그리고 그 이상 지속된다면 유행이라 부를 수 없고 문화로 불리어야 한다. 이렇게 정의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이게 명확한 정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로 트렌드나 메가 트렌드는 정확하지 않더라도 트렌드가 뭔지는 표명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트렌드라는 것이 3년 정도 지속되고 있는 유행이고, 유행되고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책마다 뽑는 트렌드가 각각 다르다. 맞고 틀리다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봤을 때 전부 유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책에나 항상 트렌드로 뽑히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소확행 그리고 나 홀로 문화를 꼽고 있다. 저렇게 모든 책에서 트렌드라고 뽑히고 있는 것은 메가 트렌드로 나아갈 확률이 높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 그리고 나 홀로 문화인 혼술, 혼밥, 혼행 등 각종 혼의 문화가 거대한 트렌드로 잡힐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 두 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큰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감정이 하나로 모여 큰 감동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한다면 작은 감정으로 인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큰 감정, 큰 감동이 대세였다. 가정 그리고 나라와 나를 일체화시켰기 때문에 나라가 흥하면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라가 잘되도 행복하지 않고 안되고 괴롭지 않다. 철저하게 혼자인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뽑은 2019년 트렌드는 거의 저 두 가지를 관통한다. 한동안 유행하던 욜로, 여행 등도 다소 유행이 약해질 것으로 이 책은 판단한다. 딱 저 두 가지 때문이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에 금전의 부담이 크다. 그리고 굳이 멀리 떠나가지 않아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수단은 많다는 것이다. 점점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한동안 작은집을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큰집으로 다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단, 내가 생활할 방이 큰집으로 바뀐다고 한다. 이것 또한 개인의 프라이버시 스페이스를 늘리고 싶다는 욕망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주의적인 사고에서 시작한 저러한 트렌드가 어떻게 뻗어나가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고 계속 꾸준히 살펴보고 싶다.

- 본문 P187 중 -

직장을 옮겨 다니는이 오거 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잡노마드족(Job Nomad) 사회적 시선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에는 이들을 ‘사회 부적응자‘ 로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강했다면, 지금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바꾸려는 사람들‘ 이란 긍정적 평가가 좀 더 많은 편이다. 실제 조사에서도 이들을 불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같다거나 발전 가능성이없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시각은 매우 드물었다. 다만 스스로를 잡노마드족‘ 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은 전체 응답자의 12.2%에 그쳐, 아직까지는 자신을 잡노마드족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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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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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신병주 교수의 책이다. 미디어에 자주 얼굴을 보인다고 하는데, 거의 티비를 보지 않기 때문에 책을 보기 전까지 누군지 잘 몰랐다. 저술한 책을 보자니 거의 대부분이 조선인 것으로 보아 조선이 전공인 것으로 보인다. 책의 내용은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서 출간한 것으로 그래서 한편 한편이 짧아 보기에 편하다.

그래서 책이 너무 간결하고 쉽다. 오히려 너무 가볍게 느낄 정도까지 이다. 역사에 대해 깊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면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역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만들어진 책이라 보는 것이 옳겠다. 물론 신문에 기고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조선사에 대해서 산보하듯 사뿐사뿐 읽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산책이라 제목으로 작성할 만큼 깊이 없이 가볍고 이것이 이 책의 목적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산책하다 아름다운 광경이 보이면 주의 깊게 살펴보거나 걸음을 멈추고 사색하곤 한다. 아주 짧은 여행? 산책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마냥 걷기만 한다면 그건 산책이 아니라 이동을 위한 수단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는 갖지 않을 것이고 목적지에 발을 딛기 위한 목적만을 갖게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깊게 생각할만한 내용을 전달하지 않는다. 슬쩍 지나가듯 보여주고 끝나곤 한다. 그렇게 짧은 글을 보완하기 위해 삽화를 많이 넣은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삽화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내용을 더 보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신문에 기고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는 게 느껴지것이 지금이 몇 년도이고 현재의 이슈를 보니 조선시대 이런 내용이 떠오른다고 작성하면서 시작한다. 최근의 일이어서 금방금방 기억하고 읽었는데 몇 년만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할 것 같다. 그것이 많이 아쉬웠다.

아쉬운 것이 많음에도 평타 이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역사라는 어려운 내용을 그나마 읽기 쉽게 작성했다는 것에 있다.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면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이 전무하거나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길잡이는 될 것 같다. 산책을 하기 전 걷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한 정도로 적당하다고 할까?

가볍게 한두 시간 정도 읽기에 적절한 책인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쓴 책들을 살펴보니 주로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읽어 보기 편한 책을 낸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 책으로 걷는 것의 즐거움을 알고 역사에 대해서 산책하고 사색하길 바라고 책을 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본문 P182 중 -

길하다는 날을 골라서 만든 경복궁, 군자 만년 큰 복을 누리리라는 칭송으로 가득했던 경복궁은 태조가 들어가 산 지 채 3년도못 가서 골육상쟁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1398년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비극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폐허가 된 후 조선후기의 왕들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건하는 대신에 경복궁은 중건하지 않았다.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공간 경복궁은 폐허가 된 지 270여 년 만에 다시 그 위용을 드러내게 된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경복궁 중건 사업을 지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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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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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가 예능으로 큰 인기를 끌고 난 이후 나온 첫 책이다. 유시민 작가가 예능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라 함은 [썰전], [알쓸신잡]으로 주가를 한참 올리던 때를 말한다. 그러면서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라 작가 유시민으로 불러 달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개에 전 복지부 장관 혹은 전 국회의원이 아닌 작가라는 호칭으로 많이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인문학자로 예능에 나와서 도서시장의 물을 흐리고 있다는 공격받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 불씨를 확 댕긴 책이 이 역사의 역사였다. 이 책 출간 이후로 비난의 수위가 높아졌고, 노골적으로 헐뜯는 칼럼이 게시되기도 하였다. 책을 읽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저렇게까지 비난할 이유가 있을까? 인문학 도서가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화살이 왜 저 작가에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늘 갖고 있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 책이 모두가 인정할만한 뛰어난 수작이었다면 저런 비난은 듣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애매했다. 애매했다는 말도 칭찬으로 들릴만큼 뛰어난 저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책에 대한 서평 모음집이라고 불려도 뭐라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우선 읽기가 불편했다. 본인이 글쓰기 책에서 서술했다시피 책은 리듬감 있게 읽혀야 한다. 하지만 책의 대부분이 인용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체로 리듬감 있게 읽기가 어려웠다. 문체는 본인의 목소리인데 목소리가 자꾸 바뀌니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글이 너무 산만해졌다. 인용문이 나름 줄인다고 줄인 것 같은데 너무 길었다. 그러다 보니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끝까지 글이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도입부와 에필로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제목도 너무 거창했다. 무명작가가 어필하기 위해 강한 제목을 쓰는 경우는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등 제목이라도 눈에 띄게 지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보자는 의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유시민은 다르다. 굳이 제목을 자극적이거나 거창하게 지을 필요가 없다. 유시민 책이라고 타이틀을 다는 순간 겉표지에 사진 한 장 들어가는 순간 어떤 선전보다 큰 선전이 된다. 굳이 저런 거창한 제목을 달아야 할 이유가 없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어떤 책이 소개가 되지 않음을 이유로 비판한 것을 보았다. 꼭 들어가야 하는 책인데 들어가지 않았다고 비난을 했는데, 그건 저자의 고유 영역이 아닌가 생각한다. 난 오히려 책의 포맷을 바꿨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비판한다. 책에 대한 서평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역사책에 대한 서평 방식의 책이구나 하고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역사라 이름을 붙이고 나니 역사 서술의 방식에 대한 역사적 탐구인지 역사책에 관한 탐구인지 뭔지 애매한 상황을 지속하게 된 것 같다.

유시민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다. 이 책으로 3권이 된다. 유시민 작가가 서술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 것은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잘한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한 지식의 깊이가 깊지 않으면 잘하기 어렵다. 유시민 작가는 어려운 내용을 잘 풀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유시민 작가가 썼다고 하기엔 많이 아쉬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본문 에필로그 중 -

끝으로, 이 책의 한계를 지적해 둔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미 느꼈겠지만, 이 책은 이름난 왕궁과 유적과 절경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잠시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인증 사진을 찍는패키지여행과 비슷하다. 패키지여행은안전하고 편리하지만 자유여행과 달리소소한 즐거움이나 깊은 의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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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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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안에 반듯하게 개켜 돌돌 만 깨끗한 팬츠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하나(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이한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혼자 사는 독신자를 제외하고 자기 팬츠를 제 손으로 직접 사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 본문 P243 중 -

2018년을 관통한 핵심 키워드인 소확행이 탄생한 순간의 글이다. 20년이 훌쩍 지난 아주 옛날 에세이에 들어있는 키워드인데 이제야 그 빛을 발하니 저 책을 쓴 하루키도 어리둥절할 일이다. 이제 70이 넘은 하루키는 우리나라에서 그의 책의 한 구절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까? 아니 저런 글을 썼다는 걸 기억이나 할까? 궁금할 따름이다. 살짝 뒤져보니 20년이 아니라 30년 전의 글이다. 86년에 발표한 책에 실려있던 글이니 30년도 훌쩍 지났다.

책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 같다. 30년 전의 글이 이제 파급을 줄 수 있다. 물론, 30년 전의 음악이 인기를 끌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역주행을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몇 년 전 영화인 [맘마미아]나 18년도 최고의 영화로 꼽혔던 [보헤미안 랩소디] 등 영화로 인하여 음악이 다시 조명받는 경우다. 하지만 이건 영화라는 매체 덕분에 조명을 받은 거지 순수하게 음악으로만 인기가 되살아난 경우가 아니다.

[랑겔한스섬의 오후]는 몰라도 소확행은 모두들 안다. 지금의 현상을 생각해서 쓴 글은 아니고 순수하게 자신의 취향을 밝힌 글이긴 했지만, 모두의 뇌리에 깊게 박히는 글을 만들어 냈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70대의 하루키는 40대의 하루키가 쓴 글을 어떻게 생각할까? 저런 게 행복이라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나의 행복은 이런 거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 책을 접했던 것은 소확행이 트렌드가 되고 난 후 궁금해서 검색한 후 독특한 에세이의 이름을 접하고 찾아서 읽어 보았다. 그땐 소확행이 뭔지 궁금했기 때문에 그 구절만 인상에 남고 나머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루키란 사람이 독특하니, 이 사람이 쓴 다른 책을 읽어 봐야겠다 하고 한동안 뇌리에서 없어져 있었는데 어느 날 눈에 들어오는 다른 책이 있어 무심코 집어 들고 읽게 되었다.

사람이란 재미있는 게 읽으면서 그 당시에는 무심코 읽었던 내용이 새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처음 읽을 때 알던 지식과 지금의 지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독서와 독서 사이 다른 책을 통해 접한 지식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키가 한참 설명하는 데 그냥 흘려 보았던 내용이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다시금 책의 대단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할까?

책의 두께도 얇은데, 절반 정도가 삽화로 이루어져 있어 정말 순식간에 독서가 끝났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책 읽기가 끝났는지 깜짝 놀랐을 정도다. 물론 책을 재미있게 쓰는 하루키의 독특한 글쓰기도 한몫을 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유명한 소설가의 책을 소설 외 에세이로만 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권을 읽었는데 동일 내용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드], [랑겔한스섬의 오후] 2권을 합본해서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예전엔 [해뜨는 나라의 공장]과 [랑겔한스섬의 오후]를 합본에서 발행했는데 재출간 하면서 엮는 책을 바꿔버렸다. 그래서 [랑겔한스섬의 오후]를 두번 보게 되었다. 책을 재독 하는 경우는 적지 않은데 알지도 못하는 사이 재독 하게 된 경우는 상당히 드문 경험이었다. 재출간을 이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읽은 책을 또 읽게 되었는데 역시 앎의 무게가 달라짐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달라짐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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