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트리 - 상큼한 성장의 기록
오가와 이토, 권영주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묘했다. 무슨 뜻일까? [패밀리 트리]라니 특이한 제목이다 싶었다. 어떤 내용일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연애 소설이라고 되어 있으니, 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오가와 이토라면 음식이 주된 내용일 텐데 가족 그리고 나무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살짝 생각해 봤는데 연관성을 유추해 낼 수 없었다.

첫 장을 펼쳤을 때 순수하게 깜짝 놀랐다. 우선 화자가 남자였고, 음식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쓰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려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전이나 이후나 풍부한 묘사에 치중했다면 선이 굵고 짧게 쓰려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보였다. 항상 일인칭으로 글을 쓰다 보니, 여성적으로 보였던 문장을 남성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묘를 부린 것으로 보였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 시도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나오는 책들이 다시 주인공이 여성이고 풍부한 표현을 주로 했던 방식으로 되돌아간 것을 보니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글 쓰는 게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사실 나도 그다지 독특한 매력을 발견할 수 없었다. 평범한 연애소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인칭 소설은 화자에 몰입하여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주인공에게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항상 여성을 화자로 사용하다 남자를 화자로 사용해서 그런지 무리하게 남자는 이럴 것이다 라고 특정 지어버린 것 같은 주인공 캐릭터의 모습이 첫 째요. 두 번 째는 주인공의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해피앤딩을 만들기 위해 구겨 넣은 듯한 종반부가 쉽사리 설명하기 어렵다.

[패밀리 트리]는 증조할머니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가계도를 뜻하는 것으로 크리스마스트리 같다고 하여 붙였다고 마지막 즈음 이야기한다. 그럼 증조할머니의 존재가 두 커플의 관계에 강한 힘을 넣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증조할머니는 커플의 최고 위기 때 화해의 매개체 딱 그 정도로 쓰였다. 그렇게 할 거면 굳이 증조할머니를 그렇게 오랫동안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할머니라는 존재로 인해 가족 간의 관계가 유지가 되었고, 할머니가 사라짐으로 인해 트리가 해체되었다든지 뭐 이런 종류의 이야기였다면 제목과 이야기가 납득이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제목과 내용과 분위기는 각자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아쉬운 건 작가만의 그 독특한 문체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나름 종장까지 끌고 가면서 본인의 향기를 묻히고 싶었던지 증조할머니의 음식이라고 음식 표현을 써두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글이 힘을 잃었던 때라 감동으로 남지는 못했다.

이제까지 읽었던 오가와 이토의 책 중 가장 재미없는 책이 아닐까 한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테니 이 책에서 큰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기존 작품과 동일한 향기를 느끼고 싶었다면 아차 싶을 듯하다. 그나마 아쉬운 소설이지만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완급조절을 잘했기 때문에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이 나서 다행이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 못 하고 또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만, 그래도 말이다. 류세이."
기쿠 할머니는 또렷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 뺨은 그때 이미눈물로 빛나고 있었을 터였다.
"살아 있으면 꼭 좋은 일도 있는 법이야. 신께선 그렇게 심술궂은일은 하지 않으신단다. 선하게 살기만 하면 언젠가 자기한테 돌아오는 법이야."
나는 땅속에 파묻힌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음에 꽉 닫혀있던 뚜껑이 딸깍 하고 벗겨지면서 천장이 환히 열린 기분이었다.
할머니도 바다를 잊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것이 기뻤다.
"할머니."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그 이상 말을잇지 못했다.

- 본문 P180 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가와 이토의 책을 여러 권 읽게 되었다. [반짝반짝 공화국]으로 시작하여 거의 우리나라 발간 역순으로 읽게 되었는데, 데뷔작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서너 권 읽다가 훅 맨 처음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오가와 이토의 책 하면 음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면서 항상 데뷔작인 [달팽이 식당]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몹시 궁금했다. 요리책인가 어떻길래 항상 거론되는 것일까 궁금증을 못 참고 책을 들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오가와 이토의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왜 이 책을 인용해서 이야기했는지를 말이다. 이 책은 이야기 구조나 서사 그리고 재미로 봤을 때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 물론 저자의 모든 책 중 최고라고 말할 순 없다. 저자가 쓴 책을 전부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읽는 이에 따라 감동의 포인트가 다르니 각자의 관점에서 최고의 책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이 수작이라는 것에는 부동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로서 첫 책이라 하기에는 완성도가 높았다. 그리고 다수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주인공의 불행, 어머니와의 갈등, 뛰어난 실력, 그 실력으로 인해 성공, 어머니와의 갈등 해결, 주인공의 불행의 해결로 이어지는 구조는 영화 한 편으로 나와도 족할 정도다. 추후 들어보니 영화로도 이미 나왔다고 한다. 흥행으로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의 영화 제작 능력으로 봤을 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해 본다.

자세한 묘사로 정평이 나 있는 오가와 이토의 표현력은 첫 책인 [달팽이 식당]부터 세세하고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게 쓴 글 역시 그렇다. 휴대폰, 인터넷, 컴퓨터라는 말을 뺀다면 1900년대로 이야기해도 수긍할만하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10년 정도 되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디지털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이 책이 성공하게 된 주 요인 중 하나가 될 법하다. 요즘 디지털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아날로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 책은 아날로그적으로 쓰여 있다. 아니 작가의 모든 책이 다 아날로그적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편의점 음식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다. 그러는 요즘 코코아 한잔을 타 마시기 위해 초콜릿을 녹이고 우유에 넣고 크림을 올려서 먹는 조리법이 나와 있는 이 책은 아날로그의 정점을 찍을만하다. 지금은 포트에 물을 넣고 버튼 누른다. 컵에 코코아를 넣는다. 물을 붓는다. 먹는다. 이게 코코아를 마시는 방법이다. 하지만 코코아 한잔을 위해 거의 반 페이지를 할애한다. 심지어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기 위해 3일 전부터 빵을 발효하고 과일을 따러 다닌다.

정말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 느림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나조차도 그 느림에 대한 호감을 갖고 말았다. 조그마한 MP3 기기에 얼마나 많은 곡을 넣을 수 있는지를 경쟁적으로 다루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1,000곡 하면 저기서 2,000곡 그러면 다른 편에서는 무제한 이런 식의 다툼을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다 감성적으로 기기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의 인기는 그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다.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식당 하루에 1개의 예약만 받고, 예약할 때 면담을 통해 메뉴를 정하지만 예약자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그런.

서사도 재미있지만 서서히 흘러가는 느림의 미학에 묘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아날로그에 대한 인기는 식지 않을 것 같다. 버튼만 누르면 바로 나오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이런 것은 느려도 괜찮아 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시대 흐름이 점차 편해지다 보니 급하지 않아도 되게 바뀌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계속하렴.
내게는 없는 귀한 재능이니까, 일분 일초를 아까워하며 경험을쌓도록 해.
네가 비굴해질 일은 조금도 없단다. 너는 귀엽고, 영리하고, 요리도 잘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할 존재야.
손님 장사를 몇 십 년이나 해서 나름대로 사람 보는 안목이 있는 내가 하는 말이니 믿어. 내 말을 너는 조금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분명 맞을 거야.
더욱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살아라.
당당하게 땅에 발을 딛고 크게 호흡해.
너처럼 삐딱한 아이는 더 실컷 놀고, 연애를 하면서 세계를 넓혀야 해.
네가 상상한 이상으로 이 세계는 크고,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어디라도 갈 수 있어.
- 본문 P226 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오가와 이토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가와 이토의 책은 요리로 시작해서 요리로 끝난다.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주변 묘사 및 음식 묘사로 화자의 마음을 대신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슬픔, 기쁨, 고통 등 감정들을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격렬한 감정의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글이 술술 읽힌다. 하지만 이 책은 그녀의 일반적인 저술 패턴을 벗어났다. 요리에 대한 묘사도 없고, 주변에 대한 묘사도 매우 적다. 그래서 온전히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슬픔 그리고 치유다. 어떤 슬픔인지 어떻게 슬픔이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슬픔을 치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채웠다. 단순히 슬픔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강조하려 첫 번째 이야기 클라이막스에 이런 말을 던진다. [여긴 누가 더 슬픈지 재 보는 곳이 아니야.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와서 치유하고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고.] 책 속의 화자를 통해 단순히 슬픔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한다.

각 단편 주인공 3명은 언제나 슬픔을 치유하고 끝이 난다. 제목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는다. 슬픔을 치유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깨달음, 용서, 여행 등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치유한다. 깨달음은 본인이 겪은 슬픔이 누구의 잘못이 아니고 언제나 그 슬픔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준다. 용서는 슬픔을 준 사람을 용서하면서 슬픔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생겼던 본인의 공포를 떨쳐낸다. 마지막으로 여행은 여행을 통해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통해 생겼었던 슬픔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오가와 이토의 책이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주인공은 여자다. 그리고 거의 1인칭 화법으로 이야기를 한다. 단편이건 장편이건 간에 늘 그렇게 그려왔다. 이제까지의 책들은 대부분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음식 묘사, 거리 묘사 등을 통해 이런 감정이겠구나. 1인칭 소설이지만 멀리서 관찰하는 듯한 느낌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의 감성으로 그려왔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 큰 감흥이 없다.

감정이입을 해야 할 텐데, 예민한 여성 화자의 감성으로 이야기를 하니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덤덤하게 책을 읽었다. 다른 여성 독자의 경우 펑펑 울면서 글을 읽었다는 서평을 접했는데, 나의 경우는 그렇게 울만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담담한 책이었다. 오히려 앞으로 돌아와 첫 번째 에피소드는 충분히 슬프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그렇게 마음이 무너질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치유의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책 자체가 나쁘거나 못 짓거나 한건 아니다. 다만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이 책을 읽더라도 큰 감정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사쿠라, 여긴 누가 더 슬픈지 재 보는 곳이 아니야.
이곳은 말이야,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와서 치유하고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고.
대단한 남편 아냐? 자기가 버리면 내가 주워서 쓸 거야."
그리고 나의 어깨를 말없이 꼭 껴안아 주었다.
- 본문 P50 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를 검색하면 교보문고 집계로 10년간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작가라고 한다. 대충 계산해도 400만 권 이상의 책이 팔려 나갔을 거라고 하고 있는데, 물론 현 기준이 아닌 4년 전 기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 작가인 셈이다. 하지만 사실 난 하루키의 소설책은 단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 그에 대한 반감에서 읽지 않은 건 아니고, 썩 좋아하지 않는 장르이기 때문에 읽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순수문학에 해당하는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즉, 문학상을 수상하고 등단한 시인, 소설가들의 책을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 가며 책을 읽는 습관에서 스토리로 보면 페이지 하나로 끝날 것을 심리묘사, 풍경 묘사 등으로 책 한 권으로 만드는 그런 고전문학을 접한 이후 순수문학에 대해 질렸었다. 이게 좀 오래가서 한동안 문학 소설은 읽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세계 고전 문학을 보다가 비문학 책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소설류는 장르소설을 주로 보았고, 그 외 문학 소설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순수문학으로 보이는 소설가의 책들은 잘 읽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 책을 읽지 못하다 다시 손에 책을 잡게 되니 그다지 이것저것 가리지 않게 되었고, 소확행의 인기로 인한 궁금함에서 찾게 된 하루키의 책 탐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표작인 소설에 손이 가지 않고 계속 에세이만 관심을 갖고 있다.

무라카미 수필 모음집으로 출간된 도서를 재구성해서 내놓은 것으로 예전에 총 3권으로 냈던 것을 분리하고 추가하고 하여 총 4권으로 다시 엮었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은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와 완전히 동일한 내용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책도 읽은 적도 관심도 없었으니 잘 모른 상태에서 읽은 것인데 하루키 수필집의 초기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저 수필집의 글의 풍은 시종일관 동일하다. 쿨하다.

지금 나의 나이 즈음에 쓴 글이라 같은 나이 때의 다른 시공간에 있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웃으며 보게 된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사뭇 진지한 생각까지 다양한 생각을 쏟아내고 있다.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에세이보다 더욱 시대를 알 수 없게 쓰였다. 전작에서 처럼 시대를 유추할 수 있는 소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타국이다 보니 유명인들을 열거하면 추리해 낼 수 없다. 그래서 시대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고방식도 쿨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터인데,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다. 지금 봐도 고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신변잡기의 내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대의 사고방식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소설처럼 주인공 뒤에 숨어 표현할 수 없다.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같이 보고 있는데, 단박에 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문체였다. 이 책은 고전문학이다. 그런 생각을 감출 수 없는 반면에 사진 몇 장 갖다 놓고 블로그에 올리면 신변잡기 이야기구나 할 정도로 생각이 쿨하다.

하루키의 소설을 접하지 않은 입장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 이 책은 읽는 게 좋습니다. 라던지 비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에세이 작가로서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운 책을 쓰는 사람이다. 다음 책을 기다리는 것이 즐겁다.라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독서란 것이 유일한 신화적 미디어였던 시대가 급속하게 종식되고 만 것이다. 지금의 독서는 다양한 각종미디어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경향이 좋은지 나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회현상이 그렇듯 이 역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것이 다. 개인적으로는 교양주의적, 권위주의적 풍조가 사그라진다는건 사그라지고 있는 게 맞겠지- 기쁘게 생각하나, 한편 한 사 람의 글쟁이로서 책이 안 읽히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출판에 관계된 여러 사람을말합니다)가 의식과 체질을 바꾸어, 새로운 지평에서 새로운 종 류의 좋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일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언제까지고 한탄만 한다고 묘책이 생기진 않으니까.

- 본문 P155 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작가 오가와 이토는 먹는 것의 묘사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 먹는 것 외 사물의 묘사와 거리의 묘사를 아기자기하게 잘한다. 언제나 그녀의 책에는 먹는 것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그려낸다. 일본 요리이기 때문에 대부분 먹어본 적이 없지만, 당장이라도 있으면 입에 넣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썼다.

제목에서부터 먹는다는 표현이 있어 이 책은 작가가 한껏 능력을 발휘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먹는 것만 표현한 것일까? 어떤 책일까 궁금했는데 목차를 보고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인 것을 알았다. 총 7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것으로 각각의 소설이 각자의 사연으로 식사를 하면서 이루어진다.

치매 걸린 노인 이야기라던지, 죽음 이야기 등을 잔잔하게 풀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자극적이거나 극적이지 않다. 식사를 하면서 따뜻한 이야기 환경을 만들거나 혹은 요리를 준비하면서 훈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나간다. 슬프면서도 오열하지 않게 웃기지만 입 밖으로 웃음이 나오지 않도록 절제된 느낌을 준다. 그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지 않고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그리고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 보면 슬픔을 잊게 만드는 것 같다.

일곱 가지의 단편이 갖가지 상황을 펼쳐가면서 다양한 먹거리를 보여준다. 이야기에 빠져가면서도 음식 묘사에 빠지게 된다. 일본 음식이 이토록 다양했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일본 음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나 일본 음식의 경우는 상세하게 묘사가 가득하지만 타국의 음식은 표현보다 이야기에 많이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난이 아니라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하루 세끼 일 년이면 약 2,000 끼니 정도를 먹게 된다. 100세 시대로 먹는다고 치면 20만 끼를 먹는 셈이다. 모든 식사에 추억이 깃들진 않겠지만 그만큼 추억을 담을 수 있는 확률도 높다는 이야기다. 먹는다는 것은 식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고 쾌락을 동반하는 생리적인 활동임으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갖게 되는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 점을 잘 파고든 책이라 생각한다. 200 페이지가 안 되는 얇은 책에 삽화도 많이 있기 때문에 금방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금방 읽히고 되세김질 하듯 오래 곱씹게 되는 책인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된장국이었나 몰라."
나도 젓가락과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갖고 있던 소박한 의문이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아빠와 엄마의 사적인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 같아 물어보지 못해다. 엄마는 된장국에 몹시 연연했다. 다른 건 몰라도 된장국만은 매일 아침 꼭 끓여드려야 한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한 뒤에도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아마 그것 때문일 거야."
아빠는 부드러우면서도 달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에대한 추억을 얘기할 때, 아빠는 곧잘 그런 표정을 짓는다.
"아빠가 매일 된장국을 끓여달라고 엄마한테 프러포즈를 해서가 아닐까?"
아빠는 얼굴을 붉혔다. 엄마에 대한 얘기는 뭐든 해주던 아빠지만, 그 얘기만큼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뭐라고 대답했어?"
아빠를 심문하듯이 물었다.
"그야 ‘예‘ 그랬지. 매일 된장국을 끓여줄 테니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와우, 엄마가 정말 그런 말을 했어?"

- 본문 P82 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