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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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루키는 독특한 매력의 저자다. 이제 슬슬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고 있다. 뭐 하지만 여전히 에세이만 읽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이 출간된지는 22년이 넘었다. 하루키의 소설들이 인기를 끌게 되자 서둘러 에세이에 대한 판권을 사들여서 책을 낸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재출간된 책을 먼저 본 입장에서는 그러한 의혹을 쉽게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출간된 책은 삽화도 들어가고 에피소드들도 좀 더 다양하다. 장으로 이루어진 목차를 보면 그 목차의 이름으로 책 한 권씩 나오게 되니 여러 에피소드들 중 괜찮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대한 실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뽑아서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용을 알고 있으니 본 에피소드들은 휙휙 지나갔기 때문에 온전히 그 느낌을 다 음미할 순 없었다.

역자가 다른데 크게 내용이 차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번역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충실하게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책의 활자에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약간은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라고 할까? 활자를 빽빽하게 집어넣어 만든 책같이 보인다. 옛날엔 저런 책이 많았지. 요즘은 책 자체가 이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책이 단순히 읽는 것에 끝나지 않고 나를 드러내는 액세서리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책들이 이쁘게 나오는 것이 트렌드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싶어 책을 찾아본다면 굳이 이 책은 읽지 않아도 되겠다. 몇 년 전 나온 에세이 모음집 총 5권에 거의 다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5권 중 한 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추측성으로 말을 하지만 아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책들에는 삽화도 많이 실렸다. 삽화들은 책에 연재할 때 실제로 들어가 있던 삽화라고 한다. 섬세하게 그리지 않은 투박한 그림에 툭툭 던진듯한 하루키의 문장이 어울려 매력적이다.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 때 어떻게 책을 냈었는지 추측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로서 재미가 있다. 이젠 큰 인기를 끄는 작가가 생겨나더라도 이렇게 책을 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당시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날로그적 추억으로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8월 12일 (일)
오늘은 한꺼번에 편지를 다섯 통이나 썼다. 나는 정말로 편지를 쓰기 싫어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편지가 아직 열다섯 통정도나 남아 있다. 죄송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일이 일인지라 담배 한 대 피우고 편지라도 써볼까 하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것이다. 편지 쓰는 것보다는 게임 센터에 가는 쪽이 더 즐겁고, 기분 전환도 된다. 그런 까닭으로 써야만 하는 편지가 자꾸만 쌓이게 된다.

- 본문 P228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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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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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깨나 쓴다고 하는 작가들은 다들 글쓰기 책을 낸다. 소설가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는 사람 중 문체가 확실히 잡혀있던지, 글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굳혔다고 평가받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글쓰기 책을 낸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 유시민, 정유정, 강원국 등이 있고, 외국 저자 중에는 가장 대표적으로 스티븐 킹이 있다. 예를 든 사람 중 2명은 소설가이고 나머지 2명은 비소설 분야의 글쓰기 전문가 들이다. 여기서 강원국은 약간 예외일 수 있겠다. 연설문 전문 작가로 저술은 글쓰기 책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 쓰는 전문 집단인 연설 비서관으로 오랜 기간 재직했고, 연설문 전문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글쓰기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했기 때문에 글 쓰기 책을 낼 만한 충분한 자격은 된다고 생각한다. 뭐 어쨌든 글 깨나 쓴다는 작가들은 다들 글쓰기 책을 낸다.

흥미로운 것은 글쓰기 책이 글 쓰는 교과서 같은 책이 아니다. 대부분 글 쓰기를 빙자한 자서전적인 모습을 띤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글 쓰기를 업으로 삼게 된 이야기를 나열하다 보면 자서전이 된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건 대부분 독서광 들일 텐데 분명 다른 글쓰기 책들을 봤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공통적인 형태를 취한다. 그렇다는 것은 다들 자서전적인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책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발행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이 책도 직업으로의 소설가를 표현한 듯했지만 글 쓰는 방법을 적어 놓았고, 그러면서 어린 시절부터 성장 기록을 같이 적음으로 자서전적인 모양을 띠는 책이 되었다. 물론 상당히 잘 썼다. 40년 동안의 기록이기 때문에 내용도 풍부할 수밖에 없고, 고수의 관록이 느껴지는 글의 내용이다. 내가 읽어본 숱한 글쓰기 책에 견줘 봤을 때 가장 훌륭한 글쓰기 책으로 생각한다. 자서전적인 내용과 적당히 소설가로서의 모습 그리고 자기변명까지 적절한 벨런스를 갖췄다.

하지만 글 쓰기의 본질적인 부분은 크게 정리하진 않았다. 제목을 봐도 글 쓰기 책은 아니다 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 양을 차지했다. 작가도 계속 서술했지만 가르치는 책은 아니다. 본인은 이렇게 글을 썼다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따라 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소설가는 어려운 직업이니 포기하라는 말도 하진 않는다. 새로운 도전자는 언제든 덤벼라 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버티는 작가는 드물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40년의 세월이 물씬 풍기는 책이었다. 이상한 고집으로 소설은 읽어보지 않은 채 에세이만 골라 보고 있는데, 소설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 정도로 글을 잘 썼다. 이런 소설 쓸 때 이런 일이 있었고, 저 소설을 쓸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소설이 이렇게 나왔다는 등 세월의 흐름에 따른 소설의 변화가 충실히 쓰여 있었다.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의 책은 소설가와 소설가의 대담이기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을 꼼꼼히 읽어본 팬이 아니라면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과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담담한 서술로 삶에 대한 깊은 울림을 맛볼 수 있다. 잡지에 가볍게 기고된 에세이와는 색다른 느낌으로 하루키의 울림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쓴다는 것은 특히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실제로 상당히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짐입니다.
나는 그런 쪽의 작업에 관해서는 상당히 인내심 강한 성격이 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 본문 P179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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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스토리콜렉터 19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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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 역시 동화를 모티브로 차용했다. 첫 이야기가 신데렐라였다면, 두 번째는 빨간 모자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가 등장인물 외 스토리까지 어느 정도 차용했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등장인물 외 아무것도 빌려 쓴 것이 없다. 뭐 하나 빌려 썼다면, 할머니를 찾아가는 빨간 모자 정도? 원작은 순진한 빨간 모자는 아무것 모르고 잡아 먹힐 때까지 저항도 못하다가 사냥꾼에게 무사히 구해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온 빨간 모자는 원작과는 다르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다.

능동적이다 못해 저돌적이기까지 한 인물로 너무 무모한 모습에 진취적이라기 보다는 짜증이 스믈 거리는 인물이다. 갱단에 맞서 혈혈단신으로 할머니를 구하러 가겠다라는 모습에서 도전정신이 투철하다기보다는 약간 억지스럽다는 인상마저 줄 정도다. 물론 저런 인물이 없진 않겠으나, 좀 무모한 인물이어도 저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저런 단점이 큰 흠이 아니게 보일 정도로 스칼렛은 강렬한 매력을 갖춘 인물이다. 첫 번째 주인공이자 시리즈의 주인공인 신더 이야기와 스칼렛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두 인물이 이어지기 전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그 이야기를 혼자 이끌어 나가며 말도 안 되는 상황 전개도 넘어갈 만큼 스칼렛은 매력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매력은 신더와 스칼렛이 동료가 될 때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게 된다.

알피지 게임에서 주인공이 동료를 얻게 되는 그런 장면이 연상될 만큼 인상적이고,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화학작용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작가 마리사 마이어의 책에서는 여성은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는 전부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남성들은 보조역할에 머문다. 옛날 동화로 빗대면 성 안에서 공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카이토 황제로 억지로 여왕과 혼인하게 되는 비련의 주인공 역을 맡고 있다.

이것조차도 즐겁다. 정의의 사도는 항상 남성이고 악당 마황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다라는 전제를 살짝 비튼다. 그렇게 함으로 뻔한 스토리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었다. 사이보그 여성이 지구 세계를 구하고 강력한 여황제의 손에서 남성 황제를 구한다는 내용으로 만들었다. 진부한 스토리로 흥미로운 소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동료 2명을 구했다. 이제 파티원은 총 4 명+1 안드로이드다. 아직 3권, 4권이 남아 있기 때문에 동료를 어디까지 모을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연애에서도 적극적이다. 빨간 모자는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남성이 오히려 소극적인 모습을 띈다. 그러면서도 살짝 남성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진취적인 여성과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을 동시에 그렸다. 고전의 로맨스와 현대의 로맨스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충족하는 모양으로 균형을 맞춰 주인공을 더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의도했던 것이든 의도치 않은 것이든 상관없다.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3 권에서는 라푼첼이 모티브라고 한다. 어떻게 라푼첼을 그릴지 지금부터 기대가 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지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울프, 너 지금 나한테…… 알파 암컷이 되어달라고 하는 거니?"

울프가 머뭇거렸다. 그 순간 스칼렛은참지 못하고 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 미안! 내가 너무 심했어. 이런 걸 로 놀리면 안 되는데."
스칼렛은 계속 빙글빙글 웃으면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런데 울프가 그녀의손을 덥석 붙잡았다. 더 이상은 떨어지고싶지 않다는 듯이.

"울프, 내가 금방이라도 어디 가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여기는우주선이야. 나 아무 데도 못 가."

- 본문 P 1080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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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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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작가로 인터뷰한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책으로 낸 케이스다. 작가 그것도 연배가 오래되신 분이 인터뷰어가 되니 상당히 깊은 내용까지 주고받을 것이 있어서 서로가 재미있었던 듯싶다. 그것도 인터뷰어는 하루키의 팬으로 책을 거의 다 읽고 가서 인터뷰를 하니 둘이 재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것 같다. 그런 것 같다고 적은 이유는 사실 나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책을 꽤 읽었는데 여태껏 소설은 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나누는 주제에 대해서 겉돌듯 반응할 수밖에 없다. 팬과 소설가의 만남 딱 그런 정도의 내용이었다. 팬은 책의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날카롭게 질문을 해도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이렇게 밖에 대답을 못합니다. 뭐 이런 수준의 문답을 나눈다.

그렇지만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책을 쓴 직후에 인터뷰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책에 대해서는 소상하게 말을 한다. 집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책이니 당연하다고 생각이 든다. 혹자는 책 팔아먹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보일 텐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을 만큼 팔 수 있는 작가이니 그건 아닌 듯하다. 진짜로 기억이 안 나서 그런 것 같고 70 먹은 여전히 쿨하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대담을 나눌 땐 아무것도 모르니 정말 휙휙 넘겼다. 그러다 글을 쓰는 방법이라던지 소설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 글을 쓸 때는 찬찬히 읽으면서 지나갔다. 대부분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칭해지는 몇몇이 글 쓰는 법에 대해서 써 놓은 것을 보면 다 비슷하게 말을 한다. 요약하면 첫째, 글 쓰는 건 타고났다. 글 쓰는 실력은 개선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둘째, 쉽게 써라. 셋째, 첫 번째 글이 완성은 아니다. 계속 고쳐서 완성해라 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루키 또한 딱 저 틀에서 벗어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책은 하루키의 소설책을 다 읽은 마니아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어가 딱 저런 타입으로 각종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서 물어보고 답을 듣고 그런다. 물론 오래된 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당황해 하지만, 최근의 책은 담담하게 답변을 한다. 결론은 대부분 쿨하다. 본인 책은 출간 이후 안 본다 던 지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중에 좋아하더라 그리고 유명세가 싫어서 외국에서 몇 년간 살았다 라는 대단히 쿨한 답변을 한다.

앞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다시 이 책이 궁금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전이라면 이 책은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우선 공감이 되지 않고, 본인의 잘난 척 이하로 보이긴 어렵다. 40년 동안 소설을 썼고, 매 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거장이라면 충분히 잘난 것이 맞지만 머릿속 납득과 마음속 납득은 다르다. 그러기에 소설 또는 적어도 에세이 정도는 읽고 이 책을 읽어야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 그럼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무척 좋아하는 문장을 읽는다, 이런 식으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흉내내지 못한다, 는 것일까요? 어느 정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면요.

무라카미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오슨 웰스의 영화 <시민 케인〉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음악 선생이 가수 지망생인 케인의 부인을 가르치다 말고 이런 말을 해요. "세상에는 노래를 할 줄 아는인간과 못하는 인간이 있습니다(Some people can sing, somecan‘t)." 유명한 대사인데, 어쩌면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거의 글다운 글을 쓰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노력하며 조금씩 이런저런 것들을 쓸 수 있게 됐죠. 단계적으로 발 전해온 거죠.

- 본문 P230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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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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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책의 서문에 적은 글이다. 본업은 소설가이다 보니 주 업은 아니다 라는 뜻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글을 썼다고 적었다. 물론, 하루키의 성격상 평론가들을 의식한 것 같지는 않고 독자들을 의식해서 저리 말을 했을 것이다. 전문 에세이 작가는 아니니 잘 봐달라 이런 뉘앙스로 받아 드리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역시 매거진에 연재되어 있던 내용을 수록한 것이라 가볍고 밝다. 그리고 논란이 일어날만한 글은 사전에 이런 내용을 쓰면 논란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스스로 자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인 것 같다. 당연하게 문화가 다르고 나라가 다르다 보니 그쪽에서는 불편한 주제가 여기서는 편한 주제일 수 있고 거기선 편한 주제가 우리 쪽에서는 불편한 주제가 될 수 있다.

주제가 어떻든 간에 신변잡기의 편안한 이야기다 보니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았다. 내용도 편지 쓰는 건 너무 어렵다던지 에세이 쓰는 건 어렵다는 투정도 간간이 보인다. 이런 글을 이렇게, 저렇게 봐도 투정이다. 거창한 담론이 아닌 편지 쓰기 싫어서 써야 하는 글도 안 쓰고 버티고 있고, 에세이 쓰기 싫어서 쓰기 싫다는 내용으로 칼럼 한편을 휙 날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도 유명 소설가이니 할 수 있는 일이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소설가였으면 저런 행복을 할 수 있었을까?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글을 싣는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어렵지만 독자가 읽을까? 유명 소설가의 에세이니 출간되고 독자가 있는 것이다. 30년 전의 에세이는 나름 주제가 있었다. 이 에세이는 아무런 주제가 없다. 오죽하면 이 글을 쓰는 방법을 기술해 놓은 내용을 보면, 소설을 쓰기 위해 소재들을 모으다가 소설에 넣지 않은 글을 정리해 놓은 것 중 고른다고 한다.

더 얄미운 건 그렇게 쓴 글이지만 부정할 수 없도록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는 아니지만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을 때까지 책을 붙잡게 된다. 어쩔 땐 능글능글 때론 뻔뻔하게 페이지를 술술 넘어가게 한다. 물론 중간에 있는 삽화도 그런 분위기에 한 몫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잘 만든 책이다. 라디오 시리즈의 마지막인 1권이 남아 있는데 2, 3권이 이런 분위기면 1권은 나쁠 것이 없을 것 같다.

편지를쓸 수 없다.

‘이 편지 답장 써야 되는데’, 생각만 하고 질질 끌다가 결국 의리가 없거나 인정이 없는 사람 혹은 몸이 안 좋은 것이 돼버린다. 당신은 그런 경험이 없는지? 나는 비교적 자주 그런다.
물론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니 편지를 쓰는 일이 절대적으로 힘든 건 아니다. 일단 마음을 먹으면 별 어려움 없이 쓱쓱 쓸 수는 있다. 그런데 ‘자, 편지를 쓰자‘ 하는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는것이다. ‘내일 쓰지, 뭐 하다가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버린다. 그렇게 되면 답장 같은 건 이제 영원히 쓰지못한다.

- 본문 P72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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