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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나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그 소설 속의 이야기를
이어 나아가며, 소설로서의 재미를 떠난 교훈, 즉 '독단' '욕심' 그리고 자만이 불러온 규제와,
검열이 결국 세상의 지식의 소통과, 자유인으로서의 영혼을 파괴시킨다는 저자 특유의 믿음
을 (그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저자의 주장은 소설의 배경이
된 '중세' 와 '수도원' 이라는 우울하고 비밀스러운 이미지에 너무나도 잘 녹아들어가, 더욱 더
강한 설득력을 지니는데, 나는 이처럼 저자 움베르크 에코의 많은 작품을 읽으며, 점점 그의 철
학과 주장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 그 영향은 내가 결국 작가이자, 철학자, 사상가인
그를 인정하고 또 존경하게 되는 근거가 되어 주고 있다.
이처럼 존경하는 저자가 쓴 글이기에, 나는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적을 만들다' 라는 이 책에
대해서도, 상당히 호감적 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적' 이라는 주제를 통해
서 생각하고, 발언한 수 많은 강연과 자료를 정리한 서적으로서, 특히 그의 학문적 깊이
를 측정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면에서, 상당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여러분은 '적' 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흔히 단순하게 생각하면,
적은 선과 악이라는 이원적 가치와 자주 비교되는 가치관이며, 특히 좋지않은 이미지와 성격
을 지닌다는 만국공통의 이미지를 지닌 존재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그러한 원초적 이
미지에는 그 의견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적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적이란 어떠한 형식으로 존재하며, 또 역사적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 하였는가? 하는 역사적 사실과 그 역활에 대한 사실발견에 이야기의 중점을 맞추고 있다.
그중 특이하게도 움베르토 에코가 정리한 '적'은 세계사, 과학, 문학, 예술에 대한 지대한 공적
을 세운 필수악의 존재로 정리된다. 예를 들어 사회속의 대중들은 '적'이 존재하지 않는 세
상을 원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적'이 사라지면 사회는 그 나름대로 새로운 곤란을 찾아
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정부는 '정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대의명분과 통치권력을 잃어
버릴 것이고, 정치가와 사회운동가들은 갱생시키고 분노에 찬 민중들을 대변한다는 역활에서
자유로워져 그 존재의의를 상실 할 것이다. 게다가 전쟁과 폭력을 양식삼아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이익을 누려온 많은 기업과 단체들 또한 사라지고,약해져 최종적으론 악에 맞서는 제일
선의 존재, 즉 치안을 담당하는 군인, 경찰, 경비원들을 졸지에 실업자로 만들게 된다. 그
뿐인가? 모두가 적이 아닌 친구가 된 세상은 문명, 개인 모두를 나태하고 게으르게 하며, 특히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의지와 목적이라는 것을 상실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세상에서
그 누구가 종교를 믿겠는가? (아담과 이브가 괜히 신에게 복종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니...
해야한다는 목적의식 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적과 악이 없으면, 문명도 없고, 사회도 없고, 나를 채찍질 하는 개인적 동기도 사라
진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엔 인류를 문명사회를 떠난 존재, 즉 과거 성경속에 그려지는 에단
동산과 같은 초 원시적이고, 행복한? 세상 속에서, 따스한 햇빛과 자연이 제공하는 달콤한 과실
만으로도 만족하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연약한 '동물'의 존재로 격하시킬 것이다.
유토피아, 만족스러운 세상, 누구나 행복한 세상... 아쉽게도 그것은 이루지 못할 꿈에 불과
하다. 이처럼 움베르토 에코는 위의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 열혈
히 설명하고 또 정리해 나아간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필요에 따라) 적
을 만들고, 또 그 적을 섬멸하는 과정 속에서 양산된 희생을 양분삼아 크고 발전하
여 왔다.
어려운가? 그렇다면 굳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로 한번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그리고 자신
을 둘러싼 적을 살펴보고, 또 스스로 적이라 판단내린 많은 '적'들의 본모습을 마주해 보라,
뱃살, 직장, 게으름, 만나기 괴로운 상사나 친구... 이처럼 인간 하나의 존재에도 수 많은 적이
존재한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 자신이 '적'이라 정의내린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