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촉·오나라 역대 황제 평전 - 正史 『삼국지』에 근거한 세 나라의 치열한 흥망사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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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시절부터 삼국지를 많이 읽었다. 아니... 주변에서 소설 삼국지연의를 추천받았고, 또 권장받았으며, 더욱이 (당시에 있어서) 필독서로서 자리잡은 해당 작품을 읽은다는 것은 어쩌면 당시 삼국지 열풍에 오롯이 편승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여느 삼국지에 대한 대강의 역사나 인물 등의 평가에 있어서는 대중적인 인식에서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이 책은 그러한 자부심과는 달리 보다 새로운 인식(또는 지식)을 전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삼국지'의 주목해야 할 이야기는 해당 삼국이 형성되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 녹아있는 영웅들의 행동과 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이 지나 국가가 형성되고 이른바 세력이 확립되어진 이후 나라를 이끈 영웅 이후의 지도자들... 즉 황제에 대한 역사가의 평가에 해당한다.

실제로 위오촉 각 국가는 스스로를 황제국의 지위에 올렸다. 그리고 결국 촉오위 순서로 국가가 멸망하며 삼국시대의 종연을 구하고 서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왕조가 통일왕조로서 이어지게 된다.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비교척 찰나의 시대를 거친 지도자를 바라보고 이에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 크게 중요한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나라를 이어받아 그때까지 완성되지 않았던 천하의 통일과 안정을 목표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유선과 같이 대의를 잊고 일신의 안위를 쫒아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도 있다. 이처럼 당시의 황제의 지위는 여느 통일왕조와는 다른 역사의 역활과 어려움이 있다. 이에 그러한 기준에서 나라를 지탱한 황제의 자질과 그 한계에 대한 평가를 통해 보다 당시 역사에 대한 진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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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인물, 이순신의 43전 43승
금병찬 지음 / HP호프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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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호프북스

오늘날에도 이순신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역사 속 조선을 구한 영웅이자, 가장 존경해야 할 위인으로 생각한다. 43전43승의 불패의 신화...! 무엇보다 자신의 직책에 대한 무거움을 알고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지킨 그의 품성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이순신은 현대의 사람들도 존경해 마지않는 미덕을 지닌 인물이였다.

그렇다면 역사 속의 이순신의 발자취는 어떠했는가? 과거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을 넘어, 스스로의 전력을 보존하고, 더 나아가 전쟁 이후에는 전라좌수영의 방호라는 무거운 짐을 떠맡았으며, 심지어 일본의 침공에 임금까지 한성을 버리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군을 이끌고 최대한 일본군의 수군을 공격해 최대의 피해를입혔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이순신은 그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지키려고하고, 전화에 백성이 당하는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위인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것이다.

물론 위의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전쟁의 와중 그에게 있어 최대의 피해를 당한 일본에 있어서도 이순신은 단순한 장애이자 적이 아니라, 그의 전술적 능력과 인품 등 두루살피고 연구해야 하는 존재로 다가온 모양이다. 그렇기의 '바다의 싸움'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책의 내용의 대부분은 한국과 일본이 두루 연구하고 정리한 많은 내용을 다시끔 정리해 펴낸 흔적이 역력하다.

이처럼 이순신의 영향력은 과거 존재한 역사적 사실에 더불어 단순히 정의하고 넘어가기에는 모다 구체적이고 또 교훈적인 면면이 많다. 이에 여느 독자 또한 단순히 존경하기때문에 이 책을 접한다는 것이 아닌, 보다 현실적으로 그가 지닌 자질과 목표의식에 더한 남다른 가치관을 발견하고 이를 교훈삼는데 더 주목한다면 이 책을 읽는 보람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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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후들 - 제국의 역사를 다시 쓰다
조셉 맥케이브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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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퀸

본래 책은 저자가 정한 주제와 가치관에 의하여 저마다의 특색을 드러낸다.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 또한 겉보기에는 과거 고대 로마제국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 밖에 황제와는 다른 지위가 주어진 여성 '황후'들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서 과거의 여성의 지위 뿐 만이 아니라, 이를 기록하고 보전한 역사의(기록 속의) 지위 등에서 여성은 지금껏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에 대한 나름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

'물레와 실'

위의 문장은 과거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이 대부분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이후 더욱 거대하고 화려한 역사를 가지게 된 고대 로마제국의 여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이에 이 책의 황후들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생각하는 보다 자주적이고 선택적인 삶을 누리지 못했다. 물론 최고 지도자의 아래로서 누리는 화려함은 보장받았지만 그것이 여성주의의 가치관 속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도리어 그들은 로마제국의 황실의 역사 속에서 5현제로 불리우는 성군과 네로와 칼리쿨라로 대표되는 폭군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들의 삶과 함께 속박되어 이후 역사에 있어서도 그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오늘날 고대 로마제국의 역사를 정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진 것 중 하나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인 만큼 그 기먼이 기록한 역사와 평가... 특히 권력자의 여자였던 이들을 가리켜 주장한 역사의 평가 등은 오늘날에도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평가의 일부 가운데서 유독 로마의 여성들 특히 황후의 역사적 재조명이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가치관이)되물림되는 것에 비판적이다. 때문에 그는 이 책을 통해 비록 역사의 전면에 서지 못하고, 역사의 영향 또한 미미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존재하고 또 저마다의 활동이 역사에 기록된 만큼 그 만큼의 사실은 드러나고 또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우리는 그들을 제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본 목격자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도 제국이 북쪽 부족들의 발아래에서 폐허가 되기 전까지,제국이 해체하거나 몰락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처럼 저자가 이 역사를 비추어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의 지위 향상과 역사 속 여성의 가치를 보다 크게 수정하고 재조명하자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오늘날 여성주의를 주제로 한 역사서는 지금껏 이루어진 역사의 연구와 그 인식 등이 여느 시대와 상황에 있어서 이들 현상을 이끈 주체에 주목하고 그 밖의 여성과 어린이 등을 그저 상황에 따른 부속쯤으로 취급해 온 것을 비판한다.

비록 그 영향이 약하다하더라도 그들 또한 저마다의 문명과 역사의 흐름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나름의 인식 등을 함께 공유한 인간이자 공동체의 일원이였을 여성들이다. 과거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도 (조선 중 말기) 현모양처가 강제되는 와중에서 희생되는 사람, 이에 순종하는 사람... 심지어 장희빈처럼 그 나름의 제한 속에서도 스스로의 야심에 솔직한 사람 모두에게 '앞으로의 역사'는 보다 편견없는 시선으로 마주하고, 과거의 사실 등을 보다 깊이 연구하며, 이에 보다 나은 역사의 가치관을 위한 자료로서 후대에 전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지어진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하는 감상을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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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계시록
이요나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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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움

글을 쓰기에 앞서 고백하지만 나는 기독교도가 아니다. 더욱이 여느 종교를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닌 모두의 종교의 형성 과정과 특징(또는 역사성) 등을 들여보다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 책 역시 나름의 내용에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깃든 감상은 "잘 모르겠다" 라는 막막함 뿐이다.

그럴것이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의 옛 기록과 그 가치관의 재조명이다.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늘날의 성경과 종교의 가르침의 주된 내용을 알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어디까지나 막연한 지식에 머물러 있어, 애초에 다수와 소수의 집단의 가르침 등을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이 있다면 이 책은 본래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을 접할 수 있는 고대 문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위 기록은 오늘날의 기독교에서는 인용되지 못했는가? 이는 어쩌면 이후 기독교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는 준비(구원)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중심으로 죄를 씻어내고 다시끔 속죄와 구원을 구하는 방향성으로 점차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든다. 실제로 따지자면 오늘날 위의 문헌에 가까운 종교적 믿음은 유대교의 '마지막 날'과 가깝다.

죄인들이 그 땅을 차지했으므로 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 (...)

이에 주된 내용 또한 이집트와 예루살렘, 아시리아에 분포되어있는 '영광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탄압하는 세력들을 두고 대적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였다. 마치 '모세의 이야기'에서 마주한 유명한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들은 스스로의 원한을 이 책의 여러 구절을 통해서 오롯이 드러내고, 이후 이들의 고행은 참된 존재에 의하여 재정립되고 구원받으며, 보상받는 것이 내가 이해한 위의 문헌의 핵심이라는 감상을 받았다.

결국 이 내용은 보기에 따라, 저주와 복수의 문장들이다. 물론 그 원류에 가까운 내용이였기에, 이에 따른 나름의 역사성이 엿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이후 이것들의 가치가 희석되고 또 외면받는 이유 또한 이해되기에 이른다. 오늘날의 교회의 가치는 다른 것에 대한 포용과 사랑이다. 이에 대립과 적의 소멸을 바라는 가치관은 자연스럽게 그 사명의 완수를 떠나 사람들의 마음에서 떠났을 것이다.

이집트의 통치자들아. 그날들에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의 날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

각설하고 요즘 중동의 상황을 살펴보면 위 증오와 복수의 가치관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서로의 다름이 다툼이 되고, 상대방을 증오하거나 죽이는 이유가 되면서 일어나는 혼란과 파괴... 이에 당당히 '신의 영광' 을 주장하는 여느 세력과 그의 지도자의 믿음 가운데, 어쩌면 이 오랜 가치관이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이어져 온 이유에도 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핍박과 고난, 또는 증오에 대한 대가로 '복수'를 꼽은 이 문헌의 본질이 때때로 인간의 내면 가운데 자리잡은 어느 감정과 크게 공명하는 이유가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든다. 실제로 여느 종교들은 그러한 마음을 내려놓거나 극복하라고 하지만...반대로 그보다 더 오랜 가치관 중에는 오늘날에도 불멸의 정의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존재한다. '눈에는 눈' 이에 세상의 정의란? 어쩌면 그 오랜 세상의 인식 등에 비교해 그리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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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마상창시합의 세계
크리스토퍼 그레이벳 지음, 문성호 옮김, 앵거스 맥브라이드 채색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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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서양의 중세시대를 주제로 만든 게임이라거나 영화 등을 보았을때, 당시 사람들이 가장 열광한 오락거리가 있었다면 그것 중 하나는 바로 '마상창시합'이였을 것이다. 그럴것이 오롯이 경기를 위한 전용 무대가 설치되었고, 왕과 귀족 뿐만이 아니라 평민들 또한 경기를 관람 할 기회가 주어지며, 특히 개성넘치는 문장을 드러내는 귀족 참가자들의 면면과 갑옷 등의 화려함은 분명 당시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미미하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도 위의 이미지를 모방하여 중세의 마상창시합이 재현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과거 시합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간다거나, 과거 중세 문화의 역사성을 되짚어보는 것은 어렵다.



이에 이 책은 마상창시합이 당시 중세사회에 어떠한 역활을 위해 만들어지고, 또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중세사회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또는 마상창시합의 경기 문화의 형성과 변화 등으로 인하여, 이에 따로 발전하거나 나타나는 중세 문화의 특징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이에 보다 세밀한 정보를 마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오늘날 생각하는 마상창시합의 경우에는 중장갑을 한 기사들이 서로 창을 마주하는 일대일 결투를 떠올릴 것이며, 더 나아가 기사가 승리를 귀부인에게 바치는 당시 낭만(로망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래의 마상창시합은 기사의 전투훈련에 가까운 것이였기에, 집단으로 상대를 격파하거나 이후 승리한 이들끼리의 토너먼트를 거쳐 최고의 승자를 가리는 형식이 대부분이였다. 때문에 본래 경기의 규칙이란 시합의 격렬함에서 최소한 기사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이였지만, 이후 보다 규칙이 치밀해지면서 '스포츠화'된 시합은 결국 시합 전용 갑옷과 마상창... 또는 기사가 시합에 임하는 문화(또는 형식)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마상창시합이라는 경기 자체의 유래도 여전히 수수께기이다. 모든 기사 계급이 전쟁에 대비해 훈련했던 군사 경기에서 파생된 것은 분명하지만, (...) 게르만 부족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군사 경기, 즉 전사들이 편을 나누어 벌이던 모의전투(...) 


그렇기에 중세의 마상창시합은 그 본래의 경기와 형식 뿐만이 아니라, 중세의 기사의 문화와 문학 또는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전투의 전술과 금속의 야금술... 심지어 문장학과 같은 여느 다른 분야의 발전사에 큰 영향을 끼친 문화로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집단전과 승마술을 갈고 닦는 전투훈련에 가까운 것이였지만, 이후 중세인들은 위의 여느 실용성을 내려놓고, 보다 이벤트와 오락거리로서 변화시키면서 이후 우리들이 아는 중세인의 낭만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가난한 기사의 성공기, 귀부인과의 사랑... 이에 숨막히는 신분제의 사회 속에서 이들이 위의 경기를 위해 마주한 것은 단순한 싸움구경 이상의 가치관도 존재했을 것 같다.


무예 대회는 천천히 전쟁과 연관성을 잃어갔지만(...) 이제는 도를 넘은 출장 경비 때문에 젊은이들의 참가가 줄어들었으며, 기사의 삶을 증명하려는 것은 점점 더 무거운 부담이 되어갔다. 쇼는 더더욱 의식과 형식으로 점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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