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 - 다시 읽어내는 겸재의 진경산수화
이성현 지음 / 들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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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교육 사조에 따라 배운 학창 시절을 지낸 독자에게 조선 후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일은 마땅하지 않다. 서양화가의 이름은 몇몇과 르네상스니, 인상파니 하는 미술 사조에 대해 파편화된 단어만 남아있다. 우리의 미술에 대해서는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신사임당, 정선의 이름과 몇 개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미술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일반 독자가 조선의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나온 후의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서를 통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화인 열전 1, 2를 만나면서 그림을 읽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감상 자세를 알게 됐으니 학교의 미술교육이 얼마나 허접했던가를 생각한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한국의 미 특강이 준 충격은 신선한 일이었기에 오래도록 기억한다.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이 내 손에 들어온 후 왜 노론의 화가가 붙어있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지 않고 화가의 삶에 드리운 배경과 그림을 그린 맥락까지 보고 알아야 한다는 저자 이성현의 의도였다. 미술사가의 안목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기존의 정선에 대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해석하고 있다. 화두로 던진 진경(眞境)은 진경(眞景)과 어떻게 다른가가 책을 쓴 동기이리라.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저자의 전작 추사코드, 추사난화의 개요에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직에 있었던 독자의 경험에 비추어

오주석의 그림에 관한 책은 학생의 학습 동기를 활성화하고 유지하는 쓰임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 그렇구나’, ‘이거 재미있다라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고 이후에라도 조선의 그림을 읽거나 미술관에 가보더라도 예전과 다른 태도로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이성현의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은 본 수업 학습과제에 해당한다. 교사의 안내가 필요하고, 팀원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는, 조금은 딱딱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수업이다.

여러 계단을 더 올라가야 멋진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듯이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을 읽으면, 독자가 가진 정서적 관점에서 겸재의 그림을 이해하려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진경의 의미가 단어가 가진 뜻 너머에 있는 숨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사회학적 용어라고 본다. 미술사가가 그림을 읽기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기울이는가를 배우는 것은 덤이다. 누군가의 그림 읽기가 와닿지 않으면, 화가의 삶과 기록, 친구 관계, 정치적인 백그라운드, 개성 등 그림에 관련된 전체를 다시 보고 재해석하려 노력한다. 한문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이성현님의 공부 결과로 풀어 놓은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은 얇고 넓게 보았다면 이제는 좁고 깊게 보는 첫걸음을 내딛으라 한다.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은 출판사 들녘에서 20204월말에 본문 440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고급 교양서이자 미술학도 입문서라 할까. 저자의 땀이 흠뻑 스며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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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 사람과 동물의 윤리적 공존을 위하여
셸리 케이건 지음, 김후 옮김 / 안타레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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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최대 환경파괴자를 인간이라 한다. 현재 교육은 인간과 동물을 다르다고 가르치고 배운다. 불을 사용하고 사고하며 언어와 문자의 사용은 직립보행보다 가중치를 두는 동물과의 차별적 특성이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학습 기간이 길다는 점과 인간이 가진 정신 능력 중 지구력이 인간이 가진 장점이라고도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지만, 동물과 다른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간을 자연보다 우위에 두려는 사고는 창세기로부터 베이컨의 신기관을 거처 산업사회와 자본주의를 추동해 온 힘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50여 년 전부터 변화하고 있다. 동물을 신약의 효과와 안정성을 실험하는 대상으로 다루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물은 자연에서 살아야 하는데 인간은 사파리를 즐기거나 우리에 동물을 가둔다. 특히 반려 동물로부터 인간의 관계성 부족에서 오는 허함을 채운다. 이런 문제에 쉽게 의견을 내놓을 수 없다. 누구는 반려동물이 꼭 필요하다고 할 테고, 자연에 반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는 질문한다. 답을 정해 놓지 않는다.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셀리 케이건은 도덕철학에 기반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한다. 모든 존재는 동일한 도덕적 지위(moral status)를 갖기에 우리가 사람을 상대하든 동물을 상대하든 상관없이 그 윤리적 잣대는 같아야 한다는 평등주의와 동물을 헤아리고 배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계층주의를 말한다.

 

독자의 몫이다. 어느 독자는 생각을 바꿀 테고, 기존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살다가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는 일은 할 수 있다. 그것이 나를 가치 있게 만들 것이다.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윤리 철학이다. 막연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500여 쪽의 글에서 케이건의 말을 들어 보자. 분량이 많고 지루할 테니 다음 네 개장이라도 훑어보자.

 

3: 동물에게 복지를 나누어 주는 방법

4: 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5: 무엇이 도덕적 지위를 결정하는가

10: 동물에게 자기 방어권이 있는가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는 안타레스에서 사람과 동물의 윤리적 공존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아 6월에 내놓은 신간이다. 셀리 케이건의 인터뷰가 2014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DEATH>에서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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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특별한 딸 - 『한중록』으로 본 혜경궁 홍씨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3
박정애 지음, 손은경 그림 / 메멘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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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은 여러 출판사에서 초판 한중록, 뉴에디트 완역판, 오래된 책방 시리즈 등의 이름을 지어 요즘의 말로 풀어 내놓고 있다. 메멘토에서 내놓은 아버지의 특별한 딸도 혜경궁홍씨의 이야기다. 출판사에서 청소년 도서로 분류했지만, 어머니가 먼저 읽고 자녀에게 권하면 좋을 책이다. 삶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어른이나 혜경궁홍씨를 모르는 어른이라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정독한다 해도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 부담은 없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생모이다. 81세로 생을 마감하기 까지 약 70여 년을 궁중에서 살았다. 그녀의 삶을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한중록을 남겨 후세에 기억되는 혜경궁 홍씨. 그녀는 한 많고 억울한 감정을 호소하기 위해 그녀의 궁중 인생이 녹여진 한중록을 남겼다. 의대병과 같은 정신병자인 사도세자는 죽임을 당했고, 그런 남편을 견디어야 했다는 까닭에 동정을 받아야 하는 인물이었고, 모진 세월을 뚫고 아들인 정조를 왕위에 올린 훌륭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여기까지가 보통 알고 있는 바다. 어떤 연구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측면에서 권력 지향적인 냉혹한 여성으로 묘사하기도 한단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그녀가 방조했다고 보는 시각 때문이다. 과장된 해석일까?

 

소설가 박정애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특별한 딸은 물음에 답한다. 혜경궁홍씨는 홍봉한의 특별한 딸이었다고. 작가가 특별하다함은 아버지가 특히 사랑했다는 의미, 가문의 부흥을 위해 왕실로 보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열 살 남짓한 혜경궁은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이해했고 70여 년의 긴 세월을 버텨냈다는 의미로도 읽는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 중 고종실록 39, 고종 36822일 양력 2번째기사 1899년 대한 광무(光武) 3년 의정과 예조 당상을 인견하다에 나오는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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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이르기를,

"혜경궁(惠慶宮)한중만록(閒中漫錄)은 언문(諺文)으로 사실을 직접 기록한 것이어서 실로 오늘날의 확증이 된다."

 

하니, 윤용선이 아뢰기를,

"삼가 한중만록을 보니 정조가 혜경궁에게 묻고 고한 것을 확증할 수 있는 문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중하가 아뢰기를,

 

"신들이 일찍이 대내(大內)읍혈록(泣血錄)이라는 전해오는 책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요즈음 한중만록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읍혈록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외간에서 전하는 바에 혜경궁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썼기 때문에 읍혈록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정조가 일찍이 이 글을 보고서 피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혜경궁이 이 글의 이름을 읍혈록이라고 하였다는 것이 옳다. 이때는 이것이 궁중의 평상시의 이야기였지만 외간에 전해진 바는 이와 같았던 것이다. 이 책을 혜경궁이 효의 왕후(孝懿王后)에게 전했고 효의 왕후는 순원 왕후(純元王后)에게 전했으며, 순원 왕후는 신정 왕후(神貞王后)에게 전했는데 신정 왕후가 살아계셨을 때 나도 이 말씀을 직접 들었다. 신정 왕후는 젊었을 때 아무 해의 늙은 궁인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때의 일을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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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특별한 딸은 메멘토에서 20204월에 역사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시리즈 3’으로 나왔다. 황현과 최치원을 불러낸 마지막 문장과 남편 이황에게 전하는 권씨 부인의마음을 다룬 당신에게로에 이은 세 번 째 책이다.

 

#아버지의특별한딸 #한중록 #혜경궁홍씨 #메멘토 #박정애 #노충덕 #독서로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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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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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에게 좋은 표지를 선택해 보라는 글이 있었다. 예술이나 미술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다. 쉽게 좋아요를 누를 수 없었다.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니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았고, 예술성을 찾기도 어렵다. 분명 뜻이 있으리라 여기며 읽는다. 독자 생각에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란 제목은 원제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이 평이하단 까닭에 바뀐 것이리라.

 

목차를 보니 아는 화가가 없다.

여성 화가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큐레이터의 아내가 던진 질문에서부터 의학,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소외됐던 시대적 흐름을 탄다. 미술 분야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은 오늘날까지 여성 화가는 저평가되고 있으며, 다행히 재평가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르네상스 기부터 20세기 초 현대 미술이 시작되던 때까지 여성 화가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겠노라는 기승전개요로 작가의 말을 실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를 읽어 볼 당위성을 쉽게 풀어 놓았다.

 

여러 가지 무지를 깨닫는다.

15~16세기 이탈리아에서 미술에 하위 영역이 있었단다. 영역의 다양성이나 개인별 좋거나 싫은 영역이 있음은 이해하지만, 위계가 있었다니 의외다.

세 명의 여성 화가는 볼로냐를 무대로 한다. 볼로냐는 중세 최초 대학이 세워진 개방적이고 진보적이 소도시였다. 도시의 분위기가 걸출한 여성 화가를 품을 수 있었을 듯. 처음 소개하는 여성 화가는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다.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라는 대리석 조각보다 <그라시 가문의 문장>이란 씨앗 조각을 보고 싶다. 고군분투하다가 40에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에타 : 아버지의 미술 작업을 도우며 배웠고 아마도 아버지 작품의 큰 부분을 맡아 그렸다. 궁정화가가 될 수 있었으나 아버지의 종용으로 예술혼을 꽃피우지 못하고 서른 살에 출산 중 사망한다. 당시 작품은 화가와 조수의 합작품이었다는. 조영남이 언론에 나오고 재판을 받는 상황을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역사 속에 그러했던 사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타 시라니 : 볼로냐 출신으로 27에 사상을 떠난 여성화가

유디트 레이스테르 :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다. “엑스레이로 관찰한 결과라는 문구를 접하며 미술사 연구의 한 측면을 배운다. “오른손에 든 붓의 그림 속 캔버스에서 바이올린의 활과 거의 평형을 이루는데이를 작가는 회화와 음악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따라 해 보니 붓이 방향은 자연스러움까지만 공감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미술에 대한 인식인 개방, 부유, 탈종교는 볼로냐와는 다르다. 역사에서 배운 거다. 결혼과 출산이 여성 화가에게 공통된 족쇄였다. 남편의 이름으로 작품을 팔아야 했다. 프린스 할스의 즐거운 술꾼이 유디트의 유쾌한 술고래보다 친숙하다. 유디트의 그림에서 웃옷, 얼굴, 모자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앙겔리카 카우프만 : 아버지의 지원과 헬리콥터 맘의 합작품이 탄생시킨 여성 화가다. 부모의 지원과 그녀의 재능이 결합해 유럽에서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단다. 그녀가 로마에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 그랜드 투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와도 중첩된다. 앙겔리카의 자화상을 보면, ! 여기부터 예쁜 자화상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역사화와 종교화가 회화의 범주에서 가장 우월하고 지적인 분야이고 초상화,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라는 하이어라키가 있다고. 오늘날에도 이런 위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베르토 모리조 :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메리 카사트의 <푸른 암체어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를 보며 웃는다. 그림을 감상하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다.

스포니스바 앙귀솔라 : 이탈리아 출신 여성 화가로 <이젤 앞의 자화상>이 화가로서 자신을 그린 최초의 자화상이다. 스페인 궁정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장수했으니 책에서 소개한 화가 중 세속적 의미에서 행복한 삶은 살았다.

라비니아 폰타나 : 대작(250cm×189cm)을 책에 담아 작가의 안내를 따라가기 어렵다 (펜던트 속의 그림) 아버지가 물색한 사위 덕에 딸은 화가로 성장하고 사위는 11명의 아이를 헌신적으로 양육한다. 덕분에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라 불린다. 초상화가 결혼을 제안하는 방편이었다니, 사진결혼의 시작인 셈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선언 :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강한 여성으로 거듭난 젠틸레스키는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를 이끈 린다 노클린이 소개한 페미니스트 화가다.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세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다른 화가의 그림보다 훌륭하다.

클라라 페테르스 : 2016년 수장고에서 350년 만에 드러난 정물화 속에 식기에 비친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식탁 위의 맛있는 것들에서 풍성한 식탁(욕망)을 그렸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1705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를 보며 신사임당의 그림을 떠올린다. 동판화 작품집인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는 과학자의 눈과 예술적 감성의 합작품이라. 종속과목강문계를 만든 린네도 칭찬했고, 작품집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후 다윈이나 윌리스의 생물과 생태 관찰보다 먼저 행했음에 그녀의 삶이 가치가 있다.

로자 보뇌르 : 레즈비언으로 남장한 여성화가 였다니. ‘니베르네의 경작은 오르세 미술관에 다시 가거든 꼭 보리라. ’말 시장은 살아잇는 듯하다.

수잔 발라동 : 표지에 실린 화가가 수잔 발라동이다. 그녀의 그림에서 에로티시즘을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여성성 묘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한나 희흐의 다다이즘은 이해 불가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요아나 쿠르턴 :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종이 오리기가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공예로 자리 잡는다. 공예를 예술로. 일본의 우키요에가 프랑스 인상파에 영향을 준 것처럼.

카린 라르손 : 집을 예쁘게 꾸민다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의 개척자로 가장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여성 화가다.

거트투르 지킬 : 화가에서 녹색정원 디자이너가 되는 과정까지 총 21명의 여성 화가를 다룬다.

 

표지에 무섭게 느낄 사진(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을 넣은 뜻은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책 제목에 가장 합당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역사를 먼저 배우고 미술을 전공한 까닭이리라. 흩어진 역사적 사실이 많지 않아 여성 화가의 삶을 재구성하기가 어려웠을 터. 유연함으로 메꾼다. 유연함에는 시대정신, 시대의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무리하지 않더라. 미술을 전공한 탓에 이미 평가된 자료를 소개하는 것은 기본이고 작가의 평가도 버무려져 있다. 미술 영역에 위계가 있음을 배웠고 작가에게 오늘날도 그러한가 물어보고 싶다. 작가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는 느낌이라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좋은 책이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20206월 은행나무에서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작을 책으로 엮어낸 거다. 적당한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편집은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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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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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2020.7.3.금 
 
코로나 19가 심각하다고 느낀 건 2월 21이었다. 정년을 맞으신 은사님과 모임이 있었던 날, 메모가 있어서 기억한다. 거의 반년이 지났지만, 끝은 보이지 않는다. 뉴스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지내며 나 나름의 이 시기를 정리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집에 틀어 박혀 강의 듣고 만 보 걷기가 일상이다.  2월부터 3월까지 젊은 이탈리아인 파올로 조르다노(물리학을 전공한 소설가) 겪은 코로나 19 상황을 4월 초에 번역해 낸 민첩함이 놀랍다. 조르다노의 안목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세상은 복잡한 데다 사회, 정치, 경제 논리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신적으로도 얽혀있다. 직면한 위기는 정체성과 문화를 초월하고, 확산은 우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세계화를 보여 주는 지표라고 표현한다. 
 
때때로 글쓰기는 균형을 잡기 어려울 때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게 하는 바닥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이탈리아 코로나의 알제로 값이 약 2.5란다. RO값이 1 미만으로 줄어들어 모든 감염자가 한 사람을 채 감염시키지 않아야 상황이 나아진다고 한다. RO값을 낮춘다는 것은 우리가 코로나19에 저항한다는 수학적 의미다. 자연은 선형적이지 않다. 본래 비선형적이다. 감염은 이탈리아가 알고 있는 문명의 구조가 엉성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백신은 신중함이다. 조르다노는 “특정 상황에서는 그저 단념하는 게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다고. 전염병은 우리가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미 가택 연금 수준에서 사는 나에게는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많으면 다르다. More is different. 집단에서 우리 행동이 모여 만들어 내는 누적 효과는 행동 하나가 만들어내는 효과의 합과 다르다. 교육학에서 언급하는 ‘인지적 유연성 이론’과 맥락이 같다. 꽃가루를 벌과 바람이 나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예쁜 꽃을 보고 좋아한다. 무증상 감염도 이와 같다. 좋아하지 못할 뿐이다. 운송수단 특히 항공교통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운명을 바꾸었다. 인간이 능력이 부른 화 중 하나가 아닐까. 지구 온난화로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고 메탄의 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백 마리 가축을 집단 사육하는 것(양계장을 생각한다)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다.  
 
조르다노는 생각을 바꾸어 보자 한다. 바이러스는 환경 파괴로 생겨난 수많은 피난민 중 하나라고. 이 새로운 미생물이 우리를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쫓아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고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유발 하라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환경파괴의 주범은 인간이라는. 우리가 먹는 식량 작물은 거의 모두가 돌연변이다.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괴롭혀 더 크게, 더 달게, 더 많이 생산하도록 조작한 돌연변이다. 그걸 우리는 과학의 힘이라고 한다. 자연의 처지에서 보면 과학은 침략일지 모른다.  
 
누구나 코로나19를 겪어가며 생각할 거다. 무엇이든 크든 작던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니까. 파올로 조르다노의 생각에 내 생각을 견준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는 은행나무에서 2020년 4월 10일에 내놓은 신간이다. 
 
#전염의시대를생각한다 #파올로조르다노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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