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
민선정 지음 / 마음연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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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나를 가리킨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받고도 이틀이나 펼치지 않았다. 나에게 어떤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젊은 날의 나와 견주어 읽다 보니 우려는 기우였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는 15년간 S 생명에서 직장 생활에 전력투구하던 여성이 삶의 방향을 틀어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전적 에세이다.      


   책 분량의 1/3 이상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의 논리에 따라 조직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기업의 업무량과 분위기를 가시적,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조직은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한다. 손해사정 업무에서 언더라이팅, 사내 미디어 제적 송출, 경영전략팀 등 서로 다른 업무에 배치하더라도 적응하고 능력을 발휘해 낼 때 기업은 이윤을 얻는다. 유능한 직장인으로 인정받고 승진하려면 멀티태스킹하는 능력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공공기관 어느 직장이든 마찬가지다. 저자 민선정은 유능한 직장인으로 평가받기 위해 대학원 공부, 독서 등 포텐셜을 키워가는 것은 물론 야근을 일상처럼 해왔다. 글은 회사에서 승진하는 직장인의 전형을 보여 준다. 여기 까지라면, 열심히 사는 직장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자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함에 눈 뜨고 육아휴직을 통해 신이 보낸 어머니의 역할을 하려고 제주 한 달 살이를 선택한다. 제주 한 달 살이를 경험하며 삶의 방향을 틀 용기를 얻는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는 서울에서 제주라는 공간 이동을 통해 삶의 형상을 비교한다. 15년간 서울 회사 생활은 소외된 삶이다. 아파트에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이웃이라 말하기 어렵다. 나만의 공간에 울타리를 세우고 침범자를 경계하는 삶이 만들 결과다. To-do 리스트에 따라 완벽한 업무 처리를 하려다 보니 가정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손에 든 다이어리는 자신을 평가하는 기초이고 경제적 이득과 완벽한 일 처리, 인정받는 직장 생활의 근거인 삶이 서울살이를 표현한다. 퇴직하고 정착한 제주에서의 삶은 회사 대신 자녀의 삶이 중심이고 자신의 삶이 중심을 둘러싸고 있다.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때를 가리지 않는 이웃의 방문, 기쁜 일을 함께 축하하고 아픔을 다독여주는 이웃과 살며 가족과 이웃을 함께 신경 쓰는 삶이기에 To-do 리스트는 최소한이거나 비어 있기도 하다. 대신 제주에서 살아가는 데는 여유가 있고 때로는 넘치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다니던 서울살이는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시작했으나 종국에는 자동차로 바뀌지만, 일상의 탄소발자국은 줄어들었다. 가족과의 대화가 두괄식, 용건만 확실하기로부터 기다려주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대화로 바뀐다. 제주 올레길 걷기는 제주 살이를 의미를 확장하는 계기이자 산책 마니아로 변신하게 한 마중물이었다.      


   완벽한 업무 처리를 위해 노력하고, 결과로 승진하고 연봉이 높아지는 직장 생활 중심의 삶에서 육아휴직으로 경험한 제주 한 달 살이를 통해 퇴직한 이후 제주에서 살아가는 40대 초반 여성의 삶을 그렸다. 비록 경제적인 여유는 줄었을지라도 자녀와 함께하는 행복과 여유라는 무형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저자의 퇴직 결정이라는 용기는 일에 지친 직장 생활인에게 걱정일 수도 부러움일 수도 있다. 저자의 결정을 옹호하거나 드러내고 자랑하는 문장은 없다. 독자의 몫이다. 

   여유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거슬린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까지 아이의 유치원 등 하원을 맡아하고, 일과 후에도 자녀 양육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했던 남편에게 고마움,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조직 구성원의 1%가 되려 노력하고 얻었지만, 과정에서 육아를 아내에게 100% 맡겼던 독자의 회한 때문이다.      

P.S. 출판사 <마음 연결>에서 보내 준 책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를 읽고 쓴다.

   <신간출판평>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 작가인지 출판사인지 결정 주체를 알 수 없으나 제목을 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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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으로 가다 - 사소한 일상의 세밀한 기록
전지영 지음 / 소다캣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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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승무원, 책 디자이너, 만화가, 동물보호 활동가, 작가, 1인 출판사 대표.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연결이 쉽지 않다. 27년간 한 직종에 근무한 경험으로 볼 때 작가의 변신과 경력은 놀랍다. 먹고 사는 문제야말로 삶에서 기본이기 때문이다. 잠재능력(potential)과 결단력이 있어야 변신할 수 있다. 책방으로 가다는 작가의 일상을 책과 연결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책방으로 가다를 읽다가 독특한 책의 구조, 구성력을 본다. 에세이라서 읽다 보면 내 마음에 가까이 와닿는 문장이 있다.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여둔다. 이 문장은 다음 장의 문 앞에 걸렸다. 책 열 권에 관한 글에서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 프롤로그에서 한 문장은 다음 장의 디딤돌이 되고, 첫 장의 어느 한 문장은 다음 장의 디딤돌이 되도록 책을 엮었다. 작가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나 같은 독자에겐 놀랄만한 일이다. 작가가 선택한 문장 중 80%를 골랐으니 하는 말이다. 여성 작가의 섬세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거로 생각한다. 장간 연결은 색깔이 다른 천을 모아 만든 화려한 패치워크가 아니라. 비슷한 색깔인 진주 목걸이처럼 이야기가 책과 연결돼 있다. 어쩌면, 따스한 봄 햇살과 가볍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백색 셔츠 10장이 걸린 빨랫줄을 보는 듯하다.

 

10개 문장은 나열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고, 10개 문장을 이어보면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공자의 말, 철학으로서의 불교, 포스트 모더니즘, 스토아 철학, 실존주의 철학, 본질과 실존의 문제, 에포케 등을 쉬운 문장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삶의 어떤 부분은 말할 수 없다.

햇빛이 비추는 곳에 그림자가 생기듯 우리는 각자 자신의 그늘을 짊어지면서 산다.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삶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삶의 과정에서 일어난 그 사람의 태도뿐이다.

모든 것이 이처럼 선명한 날, 나는 오히려 희뿌연 먼지처럼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정말이지 삶이란 억지로 해야 할 일과 참아야 할 일이 차례대로 늘어서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무의미했지만,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빛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지금이라는 순간뿐이다.

관계의 이면에는 보이는 것과 다른 진실이 있다.

내가 원한다고 여기는 삶이 정말로 원하는 삶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프롤로그에서 찾은 첫 문장의 그것은소설이다.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기획 출판했지만, 많이 팔리지 않았다는 고백은 몰라서 읽지 않았다.”라는 문장을 보내니 위안 삼기를 바란다. 에필로그의 한 문단(책방으로 가다는 잠깐이나마 손에 쥐었던 어떤 인상에 대한 기록이다. 타인을 위해서 그다지 기억될 필요 없는, 그래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두어도 상관없었을 그런 것들을 썼다)은 겸손한 작가의 마음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로 본 사람이라면,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야 할 동기를 준다. 에세이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거다.

 

몇 년 전 앨리스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읽어 대단한 서사나 괴기한 사건, 영웅적인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글이 편안함과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음을 안다. 책방으로 가다도 경쟁 사회에 어울리는 확실한 목표와 성취적인 행종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잠깐 쉬어 가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힘들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자고, 그래서 번 아웃이나 자신을 해치는 결정을 할 순 없다고 이야기한다. 작가의 속내와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이 다른 에세이와 차이를 만들었다. 표지와 본문을 채워 준 그림이 남자가 보기에 모두 이쁘다. 책의 크기와 부피가 주는 부담은 요즘 표현으로 0에 수렴한다. 여성 독자가 책방으로 가다를 놓친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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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다산초당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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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1세기 포스트 모던 시대를 살아간다. 계몽사상으로 세상을 본 덕분에 이성의 힘으로 낡고 불합리한 관습과 제도를 버렸다. 피와 땀을 흘려가며 만든 합리적인 세계는 질서정연함, 효율적인 기능, 규격을 기준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 덕분에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던 20세기를 지나며 감성과 차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비합리성, 개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포스트 모던 시대를 열고 있다. 포스트 모던 철학은 절대적 진리보다는 다원주의적 가치를 추구한다. 플라톤의 사상은 서구 모더니즘 사회에서 빛이 났으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도 가볍게 볼 것은 아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플라톤의 생각을 따라가 본다.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제우스나 포세이돈과 같은 초자연적 신에서 찾지 않고 자연 자체에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구하려 한 사람이 만물의 근원은 이라 본 탈레스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통해 알 수 있다. ‘관찰을 문제의 해답을 찾는 출발점으로 인식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전에 소피스트들은 옳고 그름, 선과 악에서 개인주의와 상대주의를 취해 그리스의 예술과 민주적 사상에 이바지했다. 인간의 삶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상대주의가 극단으로 흐르면, 각자의 가치가 옳다고 주장할 경우 어느 것도 옳다고 말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보편적 윤리에 상대주의는 타당하지 않다. 저자는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되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기준은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플라톤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고 영혼을 육체보다 우위에 두고(이원론) 영혼을 돌보는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으로 본다. 이 세상을 보이는 세계보이지 않는 세계, 즉 이상(이데아)’으로 나누고 이상만이 참된 세계로 본다. 널리 알려진 동굴의 비유로 이데아를 설명한다. 이데아는 존재하는 모든 개체의 본성이라 보는데 이는 서양철학을 2000여 년 지배하며 논쟁의 장을 열었다. ‘동굴의 비유로 이데아를 설명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의 세계를 부정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만 인정한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이성, 기개, 욕망으로 이루어졌으며 욕망은 자연스러운 본능이기에 부정할 것은 아니며,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추동력으로 본다. 가치 있는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지혜(이성), 용기(기개), 절제(욕망)이 가장 조화를 이룬 상태를 정의, 즉 올바름이라고 말한다.

나의 자질과 역량, 미덕(지식)을 탁월한 수준으로 키우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본다. 삶의 고통은 회피할수록 무기력해진다. 우리의 지성을 드높이려면,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쾌락과 고통이라는 감정의 조화와 대립 탐구하는 법을 배우며, 삶이 주는 고통에 도전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으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음으로 죽음을 인식할 수 없다.”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이 문제다. 두려워할 것은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행복한 것처럼 꾸며진 행복은 진짜가 아니다. 참된 행복은 운명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상태에 있다. 진정한 행복은 영혼의 안정과 만족에 있다.

 

삶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의 해답은 자신에게 두어야 한다. 영혼, , 부라는 세 가지 소유물에 관한 플라톤의 생각이다. 플라톤은 자기 영혼을 존중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자기 과실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쾌락을 탐닉하지 마라. 노고와 두려움과 어려움과 고통을 굳건하게 견뎌라. 삶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지 마라. 미덕보다 아름다움을 더 존중하지 마라.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마라. 악행을 저지르지 마라.] 아름다움을 위해 가꾼 몸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체력적으로 건강한 몸이어야 한다. 인간의 소유물 중 돈과 재물은 필요한 것들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이 가장 알맞고 가장 훌륭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에 생명력과 활력을 부여해 주는 것은 에로스다. 가난, 실패, 좌절, 절망 등으로 고통스러울 때가 삶의 최악은 아니다. 최악은 삶에 지루함을 느낄 때다. 삶에 무언가가 빠져 있어 불안하지만 그러한 결핍 때문에 무언가를 욕망하며 나아간다. 흔들린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다. (P. 233) 저자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분별하고, 불확실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자고 말한다.

 

플라톤의 인생 수업에는 플라톤만 등장하지 않는다. 피타고라스, 제논, 쇼펜하우어, 파스칼, 아리스토파네스, 프로타고라스, 에픽테토스, 톨스토이, 알랭 드 보통의 생각도 꺼내놓고 이야기한다. 서양 철학사에서 17세기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로크의 경험론이란 방향을 가지는데 플라톤의 사상은 합리론에 깊게 연관된다. 예술이란 이데아로 모방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관념들을 자극해 냉철한 이성을 잃게 하므로 이상 국가에서 예술가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실수라 이름 지을 만하다.

 

거칠게 보아 플라톤 사상의 핵심인 이성(이데아)은 크리스트교와 결합해 서양 중세 암흑의 시대를 지배하기도 했으나, 17세기 계몽사상, 근대사회 성립과 서구의 산업화에도 이바지했다. 세상은 옳고 그름만으로 판단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다. 이성을 잃지 않고 감성과 직관, 주관,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며 플라톤의 사상을 점검해보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 2024. 4. 6() 다산북스(다산초당)로부터 받은 책을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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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아이
다케미야 유유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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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臓の天国

#竹宮ゆゆこ

#日本の長編小説

외부에서 볼 때 일본은 갇힌 섬이다. 21세기를 사는 일본인 중 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아마도 이젠 없을 듯하다. 갇힌 섬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일본인에게 섬이란 어떤 상황으로 받아들여질까?

『심장의 아이』는 일본 장편 소설이다. 고타로와 이스트랄 카무이가 자살하려는 자와 구하려는 자로 대면했다가, 같은 고등학교 교실에서 재학생과 전학생으로 만나 청춘을 경험한다. 지바 도모에는 이기적 공붓벌레로 이야기의 중반을 이끌어가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남녀공학 고등학교 2학년, 17살에 고타로와 카무이가 물과 기름으로 만났으나, 고타로의 여동생으로 심장이 허약한 우이코를 살갑게 대하는 카무이의 태도에는 소스라치게 놀랄 만한 복선을 깔고 있다. 학교축제는 이야기를 전개에 없어서는 안 될 과정으로 설정되었다. 조그만 시골마을(고교가 있고, 공동주택, 편의점, 택시, 직장이 등장하니 외딴곳은 아니다)이 배경으로 장기이식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고타로와 카무이의 갈등의 시작이다. 갈등의 끝은 카무이의 잠적으로 해결될 듯하였으나 10년이란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혼네(本音)는 어떤 일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에 공유되는 의식에 내재한 감정이나 욕구를 포함하는 가치관에 비추어 마음에 품은 것으로 진심이라 이해한다. 비판을 받거나, 소문나면 곤란한 거나, 충돌을 피하려 혼네, 진심을 감추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를 다테마에(建前)라 한다. 작가는 다테마에를 벗기고 혼네를 드러내는 것이 옳다는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기미시 고타로, 아스트랄 카무이, 지바 도모에가 주인공으로 사건을 이끌어가고 고타로의 여동생 우이코가 조연이며, 고타로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주인공들이 만들어가는 사건에 윤활유의 역할을 해낸다. 고타로의 고등학교 담임 고마다, 그와 여러 친구, 카무이의 보호자인 여성 오마다는 소설을 꾸며가는 단역이다. 고타로와 카무이가 다리에서 마주치고, 토박이 고타로와 유학생 카무이가 짝궁으로 벌이는 학교 생활, 공부벌레인 도모에가 혼네를 드러냄으로써 소설 중반의 중심인물이 된다. 고타로와 도모에가 공유하는 비밀인 가족의 질병은 이야기를 연애 소설인 듯한 방향으로 잠시 끌어간다. ‘필요 없는 아이’란 글귀(句)를 두고 고타로와 카무이 사이에 벌어진 해석은 갈등을 낳아 친구 관계를 끊기도 한다. 고타로가 카무이를 살리기 위해 삶의 흔적을 지우고 잠적하도록 돕는 과정은 소설의 클라이막스다. 친구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기 위해 벌이는, 친구의 잠적 기획은 장기이식으로 돈을 버는 신흥 종교단체와 카무이의 가족이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무이의 독특한 행동 특성과 사회 인식, 성격은 폐쇄적인 종교집단의 공동생활에서 익힌 생활 습관이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10년이란 시간을, 죽은 카무이가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를 찾으려고 애쓰는 고타로의 분투는 TV 화면에서 결말을 본다.

소설에서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의 사고와 혼네, 다테마에는 여러 곳에서 보인다.

다음은 정상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의 단면이다. “이런 닭살 돋는 말을 용케도 하는 커플을 찾아내서 파괴한다거나, 팀을 짜서 불꽃을 붕붕 돌리면서, 봐주는 거 없이 비정하게 기습한다거나, 남들이 아무리 비참해 보이더라도 그런 대업을 마친 뒤 마시는 탄산음료는 끝내주겠지.”(p. 15) “왜 하필이면 이 반에서 저런 영문 모를 이상한 녀석을 받아야 하죠? 전 공부에 방해받는 건 죽어도 싫은데요! 쓸데없는 소음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건 절대 용납 못 하거든요! 만에 하나 제 성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지는데요? 보장해 줄 수 있나요? (p. 45) 이 문장은 교실이 붕괴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을까?

도모에는 원래 이 학교가 아니라 지역에서 제일가는 명문고, 통칭 1고를 지망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도모에는 자신처럼 1고를 지망하던 성적 좋은 친구 두 명을 쇼핑센터로 데려가서 그들의 가방에 계산하지 않은 물건을 몰래 넣은 뒤에 “누구 없어요? 이 애들이 물건을 훔쳤어요!”하고 크게 외쳤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책략이었다. (p. 60) 소름 끼치는 소문의 내용이 소설의 초반에는 사실인지 알 수 없다.

다음은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분한 문장이다. “고타로는 그 녀석을 소중히 여겼다. 중요하게 여겼다. 늘 필사적으로 지키려 한다. 절대로 망가지게 두지 않으려 했다.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깨끗한 채로 두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일 때는 이렇게 벗어서, 정성껏 개어서, 마음 깊숙이 넣어둔다. 학교용 기시마 고타로를 현실과는 엄격히 구분해 둔다. (중략)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기시마 고타로다.”(p.74)

“슬픔도 공포도 학교에 있는 동안만큼은 잊고 싶다는 것, 그러니 학교 친구들에게는 가족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 막상 결심을 굳히고 이야기해 보니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p.87)라는 문장은 혼네를 드러내니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지바 도모에가 교실에서 말하는 엄마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고백은 다테마에를 깨뜨리고 혼네를 드러내는 일이다. 혼네를 드러냄으로써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축제를 성공적으로 만든다. ‘필요 없는 아이’라는 글귀를 두고 고타로와 카무이는 혼네를 드러낸다. 카무이가 종교 집단으로 다시 들어가 벌이는 사건도 인간 본성이라는 혼네를 드러내는 일이다.

『심장의 아이』는 다테마에를 내던지고 혼네를 드러내는 소설이자 갇힌 섬에서 사는 일본인에게 다테마에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기 시도하므로, 일본인이 기대하게 하는 소설이라 본다. 같은 맥락에서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의 『만 엔원년의 풋볼』에서 느끼는 폐쇄적인 느낌과 미쓰사부로가 ‘자기처벌’ 욕구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결말이 갇힌 섬에 사는 사람의 탈출 욕구를 표현한 것일 수 있다.

P.S. 다산북스에서 펴낸 『심장의 아이』를 받아 읽고 쓴다. 2024.3.2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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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臓の子供(心臓の天国)

外部から見ると、日本は閉じ込められた島だ。 21世紀を生きる日本人のうち、これを知らずに生きる人はおそらくもういないだろう。 閉じ込められた島で生まれ、生きていて死ぬ日本人にとって、島とはどのような状況で受け入れられるのだろうか?

『心臓の子』は日本の長編小説だ。 コウタロウとイストラルカムイが自殺しようとする者と助けようとする者として対面し、同じ高校の教室で在学生と転校生として出会い青春を経験する。 千葉智恵は、利己的な勉強の虫として物語の中盤をリードするきっかけを作り出す。 男女共学高校2年生、17歳でコタロウとカムイが水と油で会ったが、コタロウの妹で心臓が虚弱なウイコを優しく接するカムイの態度には、ゾッとするような伏線を敷いている。 学園祭は物語を展開に欠かせない過程に設定された。 小さな田舎町(高校があり、共同住宅、コンビニ、タクシー、職場が登場するので、人里離れたところではない)が背景に臓器移植をどう見るかは、康太郎とカムイの葛藤の始まりだ。 葛藤の終わりはカムイの潜伏で解決されるようだったが、10年という歳月をさらに待たなければならない。

本音は、あることに対する個人や集団に共有される意識に内在する感情や欲求を含む価値観に照らして、心に秘めたものであると理解する。 批判を受けたり、うわさになったら困ることや、衝突を避けようと叱り、本心を隠す態度を見せるが、これを伊達前という。 作家は、伊達前を剥がして本音を現すのが正しいという方向性を示していると思う。

君志光太郎、アストラルカムイ、千葉智恵が主人公で事件を導き、光太郎の妹のウイコが助演であり、光太郎の母親と父親は主人公たちが作っていく事件に潤滑油の役割を果たす。 孝太郎の高校の担任である駒田、彼と多くの友人、カムイの保護者である女性の駒田は小説を作っていく端役だ。 孝太郎とカムイが橋で出会い、地元の孝太郎と留学生カムイが相棒として繰り広げる学校生活、勉学者の友恵が本音を現すことで小説中盤の中心人物になる。 孝太郎と友江が共有する秘密である家族の病気は、話を恋愛小説のような方向にしばらく引きずっていく。 「必要のない子」という文句(句)をめぐって、康太郎とカムイの間で起きた解釈は葛藤を生み、友人関係を断ち切ったりもする。 孝太郎がカムイを生かすために人生の痕跡を消して潜伏するように助ける過程は小説のクライマックスだ。 友人関係を最後まで続けるために繰り広げる、友人の潜伏企画は臓器移植でお金を稼ぐ新興宗教団体とカムイの家族が深くつながっているためだ。 カムイの独特な行動特性と社会認識、性格は閉鎖的な宗教集団の共同生活で身につけた生活習慣が背景にあるためだ。

10年という時間を、死んだカムイが生きていると信じて探そうと努力するゴータローの奮闘は、テレビ画面で結末を見る。

小説で読者が理解できない日本人の思考や本音、立前はいろいろなところで見られる。

以下は、正常でないと見られる日本人の考え方の断面である。 「こんな鳥肌の立つ言葉をよく言うカップルを見つけて破壊したり、チームを組んで花火をブンブン回しながら、容赦なく奇襲したりするあるいは、どんなに惨めに見えても、そのような大業を終えた後に飲む炭酸飲料は最高だろう。」(p. 15)「どうしてよりによってこのクラスであんなわけの分からない変なやつをもらわなければならないんですか? 私は勉強の邪魔をされるのは死んでも嫌です! 無駄な騒音に集中が乱れるのは絶対に許せないんですよ! 万が一私の成績が落ちたりしたら誰が責任を負うんですか? 保障してもらえますか?(p.45)この文章は教室が崩壊したとしてもどうしてこんな主張ができるのか?

トモエさんはもともとこの学校ではなく、地域で一番の名門高校、通称1高校を志望した。 中学3年生のある日、トモエは自分のように1高を志望していた成績の良い友達2人をショッピングセンターに連れて行き、彼らのかばんに計算していない物をこっそり入れた後、「誰かいませんか? この子たちが物を盗みました!」と大声で叫んだ。 ライバルを排除するための策略だった。 (p。 60) ぞっとするようなうわさの内容が小説の序盤には事実かどうかは分からない。

以下は本音と建前を区分した文章である。 「孝太郎はあいつを大事にした。 重要だと思った。 いつも必死に守ろうとする。 絶対に壊さないようにした。 汚したくなかった。 きれいなままにしたかった。 だから一人のときはこう脱いで、心を込めてたたんで、心の奥深くにしまっておく。 学校用の木島康太郎を現実とは厳格に区分しておく。 (中略)学校の友達に見せるのは意図的に作り出した、偽の木島康太郎だ。」(p.74)

「悲しみも恐怖も学校にいる間だけは忘れたいということ、だから学校の友達には家族が病気だという事実を知らせたくないということ。 いざ決心を固めて話してみると、二人は驚くほど同じことを考えていた」(p.87)という文章は本音をさらけ出して分かったということだ。

千葉智恵が教室で語る母親と自分の関係に対する告白は、伊達前を破って本音を表わすことだ。 本音をさらけ出すことで、友達の積極的な助けで祭りを成功させる。 「いらない子」という文句について、幸太郎とカムイは本音を現す。 カムイが宗教集団に再び入って繰り広げる事件も、人間本性という本音を表わすことだ。

『心臓の子』は、伊達前を投げ捨てて本音を現す小説であり、閉じ込められた島で暮らす日本人に伊達前という絆を脱ぎ捨てようとするので、日本人が期待させる小説だと思う。 同じ脈絡で1994年ノーベル文学賞を受賞した大江健三郎の「一万円元年のフットボール」で感じる閉鎖的な感じと光三郎が「自己処罰」欲求から自らを救う結末が閉じ込められた島に住む人の脱出欲求を表現したものかもしれない。

P.S.茶山ブックスが出版した『心臓の子供』をもらって読み書きする。 2024年3月23日(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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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본사 -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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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 대번영을 이끈 이슬람 문명의 역사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는 서구중심 세계사와 비교한다.

이슬람의 황금기 : 압바스(750~1258)

압바스 제국은 500년 이상 이슬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중동-서아시아 역사의 주도권이 페르시아인에서 아랍인으로 넘어갔다. 압바스 제국은 아랍인 중심에서 벗어나 피정복지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고 차별과 배제를 최소화하면서 글로벌 국가로 거듭났다. 이슬람이 세계종교로 확산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 과학, 예술의 절정기를 이룬 무대가 압바스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였다. 1258년 바그다드는 몽골의 침략으로 초토화되면서 500년 압바스 제국의 수명을 다했다. 반세기가 지나서 오스만제국에 의해 재통일되어 아랍인에서 튀르크인으로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가 바뀐다.

 

이슬람은 예수의 신격을 부정하고, 철저한 일원론적 유일신으로 알라를 믿는 종교다. 이슬람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구약에 기록된 많은 선지자를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 신이 보낸 마지막 인간 예언자로 여긴다.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중재자를 두지 않기에 예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기독교 사상과 근본정신이 다르다. 현세에서 행한 선악의 경중에 따라 신의 심판을 받고 천국의 구원과 지옥의 응징으로 운명이 나뉜다는 내세관과 모든 것은 신이 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예속된다는 정명 사상을 갖고 있다. (p. 325)

 

이슬람 공동체가 무함마드의 동료였던 아부바르크(재위 632~634) 칼리프 이후 30년 만에 이집트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제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를 서구에서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란 표현을 사용해 빗대곤 하지만, 당시 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의 수탈과 착취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이슬람의 진출을 오히려 환영했고, 정복 과정에서 이슬람으로의 강제 개종은 실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p. 327)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인 전파를 설명하려는 의도이다. 이슬람은 일단 무력을 사용해 정복한 후에는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하거나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기존 토호 세력을 인정하며 그 지역에서 인두세(무슬림은 내지 않는다)를 거두어들이는 지방분권통치를 채택했고, 정복지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개종하면 세금 부담이 줄어드니 시간이 지날수록 개종하는 인구가 늘었다. 5대 칼리프 때에는 세금 감면을 노린 개종을 막기 위해 개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꾸란에는 강제 개종을 금하는 구절이 있다. “너희 주님이 원하시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될 터인데, 너희는 어찌하여 사람들을 강요해서 믿음을 갖게 하려는가”(꾸란10:99)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p.333) 이슬람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퍼진 것은 관용과 포용정책을 편 덕분이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적의에 가득 찬 수사는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 전역을 휩쓸던 이슬람 열풍을 막고 기독교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당대 최고의 신학자이자 이슬람 연구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정립해 놓은 극도의 이슬람 혐오 사상의 영향이다. (p. 334) 7세기 이슬람이 태동하면서 취한 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명백히 관용과 포용이다.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중동의 이슬람 사회는 다양한 민족의 각기 다른 종교와 풍습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공존에 익숙했다. 중세 이슬람 사회에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허용된 이교도를 딤미(Dhimmi)’, 혹은 아홀 알딤마(ahl al-dhimma, 계약의 백성)라 불렀다. 딤미는 무슬림 국가에 의해 허용되고 보호받는 비무슬림 시민을 일컫는 법률 용어였다.

 

셀주크튀르크(1040~1157)

분열되었던 이슬람 세계는 11세기 셀주크튀르크 왕조에 의해 재통일 되었고, 압바스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의 칭호를 받고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수호자를 자처했다. 1071년 셀주크조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황제를 포로로 잡고 비잔티움군을 격퇴하였다. 아나톨리아 지역이 이슬람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차 십자군 원정의 빌미가 되었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기사 집단들 간에 통제 불능의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타개하고 1054년 동서 교회 분리 이후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간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 교회를 통합하여 로마 가톨릭의 관할 아래 둠으로써 교황권을 확대하는 데 있었다. (p.361) 예루살렘은 638년 무슬림에 의해 장악된 이후 종교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한 번도 순례를 방해받지 않았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상황을 왜곡, 과장하면서 성지 탈환을 호소하며 유럽인들을 부추겼다. 일상적인 폭력과 성적 타락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기사들에게 이교로들 향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기도 했다. (p.362) 예루살렘을 정복(1099)한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학살했고, 2차 전쟁 때부터는 주변국을 약탈하거나 콘스탄티노플을 초토화했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왕국 : 호라즘샤(1077~1231)

호라즘샤는 칭기즈칸이 등장하기 전까지 중앙아시아(아랄해 남쪽부터 오늘날 이란 영토까지)를 제패한 순니 이슬람 왕조다. 호라즘샤-몽골 전쟁에서 패하여 중앙아시아의 튀르크화와 이슬람 전파가 저지되고 이슬람 문화도시들(사마르칸드, 호라산, 헤라트 등)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유럽인들은 몽골에 호라즘샤가 무너지자 안도했다. 그래서인지 몽골의 문화 말살과 살육보다는 칭기즈칸의 통치정책, 몽골군의 군사 전략, 문화 교류를 통한 이류 문명에 대한 기여 등을 연구하여 칭기즈칸을 우상화하고 영웅담을 확대재생산 해왔다. (p.384)

 

인류 최대의 대제국 : 오스만(1299~1923)

오스만제국은 20세기까지 존속한 인류역사상 최대의 제국이다.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과 함께 세계 3대 제국이라고 한다. (p.523) 13년 만에 분할된 알렉산더 제국, 반세기 만에 와해한 몽골 제국에 견줄 때 인구, 지배영역, 문화 수준, 세계관 등에서 명실상부한 대제국이다. 소수집단에 자치권 부여, 밀레트 제도(인재 등용 정책), 예니체리 등을 통해 남동부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세 대륙을 석권했다. 흑해, 에게해, 지중해, 페르시아만 바다를 독점했으며, 카스피해와 대서양은 물론 인도양까지 영향을 미쳤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공격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무너졌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군대에 함락되기 직전 교황청과 유럽 국가들로부터 군대를 파병하겠다는 제의가 왔다. 하지만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던 비잔티움 시민들은 콘스탄티누스 11세와는 달리 이교도의 터번에 무릎을 꿇을지언정 로마 가톨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면 유럽의 파병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스스로 패망의 길을 택했다. (p.365) - 인류 본사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진출로 인해 오리엔트 지역을 통한 종래의 동서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유럽인들이 동방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P. 541) 신항로 탐험은 오스만이 유럽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포르투갈인들이 시작한 일이다. 게다가 튀르크인들이 유럽에 진출한 후 동서 교역로는 오히려 활성화되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신항로 탐험에 나선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지중해-홍해-인도양 루트를 이용하는 유럽과 동방 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베리아반도의 상인들이 지중해와 홍해를 거치지 않고 대서양으로 나가는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둘째,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보탠다.

이슬람의 황금기 : 압바스(750~1258)

신라와 고려에 관한 기록이 담긴 수십 권의 필사본이 작성되고 보존된 것도 압바스 제국 때였다.

살라딘의 지도자로서의 덕성은 후일 유럽 기사도의 전형이 되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사자왕리처드가 맨땅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백마 2필을 보내주며 왕의 권위와 체통을 지킬 수 있게 해줄 정도였다. 사후에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말하고 세상을 떠났다.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 : 티무르(1361~1526)

티무르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몽골 제국의 후예임을, 종족적으로는 튀르크 민족성을,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 문화를,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을 표방한 독특한 통치체제를 갖춘 나라였다. 티무르는 3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정복지에서 공예기술자, 장인을 데려다 사마르칸트를 세계적인 도시로 꾸몄고, 학자와 문인을 우대하여 학문의 발달을 밑받침했다. 천문학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동서 교통로를 통해 유럽과 동아시아로 전달해 주었다. 티무르 왕조 패망 시기에 권력 투쟁에서 밀린 자히르우드딘 바부르는 1526년 인도를 정복하여 무굴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티무르 제국의 문화와 종교, 제도 등은 고스란히 인도의 무굴제국에 계승되었다. 티무르 제국의 과학을 비롯한 학문상의 혁신 중 일부가 원과 명 시대 중국을 거쳐 15세기 조선, 특히 세종대 조선의 르네상스로 연결되었다. 저자는 당시 세계를 주도하던 이슬람 문명의 영향과 도입 없이 유럽의 르네상스나 조선의 과학 발달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p. 408)으로 본다.

 

이베리아반도에 꽃 핀 이슬람 문화 : 후우마이야와 나스르(756~1492)

후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왕조가 압바스 왕조에 패망하고 6년 후인 756년부터 1031년까지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번성하며 중세 유럽에 이슬람 문화를 전하는 창구로 기능했다. 나스르 왕조는 이베리아반도에서 꽃 핀 800년 이슬람 문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왕조였다. 알함브라 궁전은 나스르 왕조의 유산이다. 후우마이야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전체 인구의 10%에 달했던 유대인들은 아랍 인구를 능가하는 비율이었다. 무슬림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비즈니스와 학문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들은 세파르딤으로 디아스포라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오늘날 아슈케나짐(동유럽 거주 유대인), 미즈라힘(중동 및 남아시아 거주 유대인)과 함께 유대인 혈통의 주류를 이룬다. 나스르 왕조는 르네상스 이전에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놀라운 학문과 건축기술,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었다. 1492년 나스르 왕조는 멸망하고 이베리아반도는 781년 만에 기독교 왕국의 손에 넘어갔다.

 

 

이란 시아파의 자존심 : 사파비(1500~1736)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받아들여 오늘날 이란이 시아파의 종주국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칼리프술탄’, ‘아미르대신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황제 칭호였던 를 사용하며 이란 정체성의 뿌리를 분명히 했다. 이스파한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유적은 대부분 사파비 때의 것이다. 테헤란을 이란의 두뇌라 부르는데, ‘이스파한이란의 심장으로 여긴다. 이란 역사에서는 사파비 왕조의 개창을 근대화의 시작으로 본다.

사파비의 영적 중심은 수피즘이다. 꾸란을 읽고 해석할 줄 몰라도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면 알라께서 찾아오실 것이며, 자기 수양으로 알라를 영접할 수 있다고 하여 신앙의 길을 넓혔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북아프리카에서는 아랍계 무슬림의 정복 활동을 통해 이슬람이 확산하였고, 동아프리카에서는 교역활동을 통해 이슬람이 확산하였다. 인류역사상 가장 짧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전쟁 기간은 총 38분밖에 안 되는 1896년 영국과 잔지바르 간 전쟁의 당사자인 잔지바르(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는 아라비아 반도국인 오만 술탄령이었다. 무슬림인 아랍인들이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교역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최대의 대제국 :오스만(1299~1923)

1차대전에서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맹국에 가담하여 패전함으로써 제국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무너졌다. 하나의 아랍공동체가 22개 개별 국가로 나뉘어 독립하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칸반도를 뺏김으로써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 코소보 내전, 체첸 사태와 같은 복잡한 갈등과 분열의 상처가 생겨난다.

소수민족 보호제도인 밀레트(milet)’는 오스만제국 다문화 포용정책의 핵심이다. 밀레트는 아랍어 밀라(mila)’에서 유래한 용어로, 터키어로 종교, 종교 공동체, 민족이라는 세 가지 뜻이나 민족보다는 종교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제국의 신민을 종교에 따라 구분하여 각 종교 공동체에 귀속하고, 자신들의 율법과 관습에 따른 자치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다만 오스만 술탄에게 복종해야 했다. 무슬림, 그리스 정교도, 아르메니아 기독교인, 유대교도로 구성된 4개 공동체가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밀레트였다. 각 밀레트는 무슬림과 관련된 송사 외에는 오스만 중앙정부의 간섭없이 결혼, 이혼, 출생, 사망, 교육, 언어, 전통 등에서 완전한 자치를 누렸다. 모든 밀레트 구성원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출세를 할 수도 있었고, 개종하여 다른 밀레트로 이주할 수도 있었으나 밀레트 이주를 권장하지 않았다. 밀레트는 오스만 제국 500년 역사를 통틀어 이질적이고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용하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이름아래 통합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민족 간의 갈등이나 분쟁 없이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는 초석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는 후사인-맥마흔 서한(1915~1916)’을 통해 전후 오스만의 영토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지지한다고 전하고, 유대인에게는 밸푸어 선언(1917)’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 국가를 세우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 정작 프랑스와는 비밀리에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을 맺어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를 약속받았다. (p.599) 실제로는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 건국을 도왔다. 모순된 영국의 행보는 중동 지역에 끊이지 않는 분쟁의 불씨다. 저자는 오늘날 중동의 갈등과 분열,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오스만 제국의 와해로 인한 역사적 후유증인 셈으로 본다.

타지마할을 낳은 제국 : 무굴(1206~1857)

무굴제국은 이슬람 문화에 페르시아와 힌두 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문화를 창출했다. 돋보이는 예술 장르는 라지푸티나 회화궁정 세밀화이다.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은 더 깊게 배울 방향을 찾는 소재로 삼는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기존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최근 일부 소개하기 시작했으나 서양과 이슬람이 남긴 기록에 의지한다. 아프리카 역사 재구성의 한계다.

이집트 문명, 누비아 문명, 쿠시 왕국, 악숨 왕국이 기원전에 번성했다. 유럽 중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아프리카 서부네 가나왕국(700~1240), 르네상스 시기에 말리 왕 (1235~1670), 송가이 왕국(1464~1591)이 수준 높은 문명을 주도했다. 아프리카 동남부에서는 짐바브웨 왕국(11세기~1450), 남부에는 무타파 왕욱(1430~1760), 동부에서는 에티오피아 왕국(1137~1987), 중부와 서부에 각각 콩고 왕국(1390~1914)과 베넹 왕국(1180~1987)이 번성했다.

가나왕국은 사하라 횡단 무역으로 금, , 상아, 소금을 낙타를 통해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유럽의 물품과 교환해 수익을 올렸다. 팀북투와 모로코의 시질마사를 잇는 서쪽 교역로가 가장 활발했다.

말리 왕국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당시 아랍-이슬람 세계와 폭넓게 교류했다. 이때 축조된 이슬람 대사원이 흙벽돌로 지은 젠네 대모스크이다. 말리 왕국의 무슬림 만사 무사1324년 메카로 순례를 떠났는데, 동원된 사람이 6만 명, 그 중 12,000명는 그를 수행하는 노예였다. (p.501) 아랍인 역사학자 알마크리지와 이븐 할둔이 기록한 사실이다. 이슬람의 아프리카 수용은 종족성의 초월, 스와힐리어로 나타났다.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다시 읽을 기회다.

 

인류 최대의 대제국 : 오스만(1299~1923)

크림 전쟁 참전을 계기로 유럽 열강이 오스만제국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 1876년에 등극한 술탄 압둘하미드 2세는 탄지마트 정책이 추구하던 서구 지향적인 정치개혁을 중단하고, 무슬림의 지주성과 이슬람 이념의 통일을 바탕으로 하는 보수 정치로 회귀했다. 제국 와해의 위기 속에서도 다방면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했고, 1909년에는 대한제국에 비밀리에 사절을 보내 한반도 사정을 정탐하기도 했다. (p.596)

1차 세계대전 중 동맹국 편에 섰던 오스만제국은, “협상국의 한 축인 러시아가 제국의 동부를 침략해 옴에 따라 대안 없이 동맹국에 가담하여 국권을 지키려 했다.”(p.597) - 영국 편에 서려 했으나 받아 주지 않아 독일 편에 서게 됐다고 알고 있었다. 더 공부해야 할 역사적 배경이다 -

 

타지마할을 낳은 제국 : 무굴(1206~1857)

무굴제국은 330년 넘게 인도 아대륙에 번성했던 이슬람 왕조다. 무굴제국은 인도 아대륙에 국한된 지역 국가로 평가절하되면서 제국의 실체와 문명의 깊이를 제대로 고찰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무굴제국은 티무르 제국의 후예다. 무굴제국은 토착 문화와 융합하고 종교 간 화해와 다른 가치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창의적인 문화를 이룩했고, 주변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목문화를 토착 힌두적 토양에 새롭게 이식함으로써 다원성이 발현되는 최고의 문화 용광로를 가동할 수 있었다. 수학, 천문학, 의학 분야는 물론 건축 분야에서도 타지마할로 대표되는 불멸의 문화를 꽃피웠다. 1857년 영국의 식민 통치받다가 1947년 간디 주도로 독립했으나, 800년 이상 인도 아대륙의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았던 북부의 이슬람 공동체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독립하였다. 무굴제국에 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

인도 남동부의 퐁디셰리는 힌두가 아닌 타밀족의 문화와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그중 랑골리는 쌀가루, 석회가루, 색모래, 꽃잎 등의 안료를 사용하여 마당이나 거실의 바닥을 장식하는 그림이다. 집을 나서거나 집에 들어올 때 밟는다. 세계적인 영적 공동체 오로빌(Aurovile) 도 있다. 40개 나라에서 온 1,800여 명이 공동체 생활을 한단다.

 

끝으로, 인류 본사가 가진 의미를 나름대로 적어본다.

낱권으로 중동 사람들의 종교, 역사, 문화를 다룬 책들이 있다. 40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책들이다. 머리가 커지면서 가졌던 지적 호기심은 이슬람 세계에 관한 관점을 갖고자 노력했다. 제국주의 국가와 서구 자본주의가 포장(왜곡, 축소 등)해 놓은 사실과 역사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막연했던 지적 호기심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물결을 따라 나온 책들을 보면서 일부 풀어간다. 하지만 완벽에 이를 수는 없다. 학교 교육으로 배운 것은 유럽 중심주의 관점에서 쓴 세계사 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글을 읽을 줄 알고, 지적 호기심이 있어 스스로 배우려는, 이른바 교양 쌓기를 하고 있어서 이희수의 일류본사를 만났다. 아마도 일류본사는 앞으로 읽게 될 오리엔트-중동에 관한 책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기준으로 삼아야 할 듯하다. 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과 무굴제국의 정치 경제와 문화, 1차 세계대전 직전 오스만제국의 국제 정세 판단에 대해서는 한 걸음 더 디뎌봐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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