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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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에게 좋은 표지를 선택해 보라는 글이 있었다. 예술이나 미술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다. 쉽게 좋아요를 누를 수 없었다.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니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았고, 예술성을 찾기도 어렵다. 분명 뜻이 있으리라 여기며 읽는다. 독자 생각에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란 제목은 원제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이 평이하단 까닭에 바뀐 것이리라.

 

목차를 보니 아는 화가가 없다.

여성 화가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큐레이터의 아내가 던진 질문에서부터 의학,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소외됐던 시대적 흐름을 탄다. 미술 분야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은 오늘날까지 여성 화가는 저평가되고 있으며, 다행히 재평가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르네상스 기부터 20세기 초 현대 미술이 시작되던 때까지 여성 화가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겠노라는 기승전개요로 작가의 말을 실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를 읽어 볼 당위성을 쉽게 풀어 놓았다.

 

여러 가지 무지를 깨닫는다.

15~16세기 이탈리아에서 미술에 하위 영역이 있었단다. 영역의 다양성이나 개인별 좋거나 싫은 영역이 있음은 이해하지만, 위계가 있었다니 의외다.

세 명의 여성 화가는 볼로냐를 무대로 한다. 볼로냐는 중세 최초 대학이 세워진 개방적이고 진보적이 소도시였다. 도시의 분위기가 걸출한 여성 화가를 품을 수 있었을 듯. 처음 소개하는 여성 화가는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다.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라는 대리석 조각보다 <그라시 가문의 문장>이란 씨앗 조각을 보고 싶다. 고군분투하다가 40에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에타 : 아버지의 미술 작업을 도우며 배웠고 아마도 아버지 작품의 큰 부분을 맡아 그렸다. 궁정화가가 될 수 있었으나 아버지의 종용으로 예술혼을 꽃피우지 못하고 서른 살에 출산 중 사망한다. 당시 작품은 화가와 조수의 합작품이었다는. 조영남이 언론에 나오고 재판을 받는 상황을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역사 속에 그러했던 사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타 시라니 : 볼로냐 출신으로 27에 사상을 떠난 여성화가

유디트 레이스테르 :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다. “엑스레이로 관찰한 결과라는 문구를 접하며 미술사 연구의 한 측면을 배운다. “오른손에 든 붓의 그림 속 캔버스에서 바이올린의 활과 거의 평형을 이루는데이를 작가는 회화와 음악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따라 해 보니 붓이 방향은 자연스러움까지만 공감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미술에 대한 인식인 개방, 부유, 탈종교는 볼로냐와는 다르다. 역사에서 배운 거다. 결혼과 출산이 여성 화가에게 공통된 족쇄였다. 남편의 이름으로 작품을 팔아야 했다. 프린스 할스의 즐거운 술꾼이 유디트의 유쾌한 술고래보다 친숙하다. 유디트의 그림에서 웃옷, 얼굴, 모자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앙겔리카 카우프만 : 아버지의 지원과 헬리콥터 맘의 합작품이 탄생시킨 여성 화가다. 부모의 지원과 그녀의 재능이 결합해 유럽에서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단다. 그녀가 로마에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 그랜드 투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와도 중첩된다. 앙겔리카의 자화상을 보면, ! 여기부터 예쁜 자화상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역사화와 종교화가 회화의 범주에서 가장 우월하고 지적인 분야이고 초상화,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라는 하이어라키가 있다고. 오늘날에도 이런 위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베르토 모리조 :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메리 카사트의 <푸른 암체어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를 보며 웃는다. 그림을 감상하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다.

스포니스바 앙귀솔라 : 이탈리아 출신 여성 화가로 <이젤 앞의 자화상>이 화가로서 자신을 그린 최초의 자화상이다. 스페인 궁정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장수했으니 책에서 소개한 화가 중 세속적 의미에서 행복한 삶은 살았다.

라비니아 폰타나 : 대작(250cm×189cm)을 책에 담아 작가의 안내를 따라가기 어렵다 (펜던트 속의 그림) 아버지가 물색한 사위 덕에 딸은 화가로 성장하고 사위는 11명의 아이를 헌신적으로 양육한다. 덕분에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라 불린다. 초상화가 결혼을 제안하는 방편이었다니, 사진결혼의 시작인 셈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선언 :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강한 여성으로 거듭난 젠틸레스키는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를 이끈 린다 노클린이 소개한 페미니스트 화가다.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세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다른 화가의 그림보다 훌륭하다.

클라라 페테르스 : 2016년 수장고에서 350년 만에 드러난 정물화 속에 식기에 비친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식탁 위의 맛있는 것들에서 풍성한 식탁(욕망)을 그렸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1705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를 보며 신사임당의 그림을 떠올린다. 동판화 작품집인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는 과학자의 눈과 예술적 감성의 합작품이라. 종속과목강문계를 만든 린네도 칭찬했고, 작품집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후 다윈이나 윌리스의 생물과 생태 관찰보다 먼저 행했음에 그녀의 삶이 가치가 있다.

로자 보뇌르 : 레즈비언으로 남장한 여성화가 였다니. ‘니베르네의 경작은 오르세 미술관에 다시 가거든 꼭 보리라. ’말 시장은 살아잇는 듯하다.

수잔 발라동 : 표지에 실린 화가가 수잔 발라동이다. 그녀의 그림에서 에로티시즘을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여성성 묘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한나 희흐의 다다이즘은 이해 불가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요아나 쿠르턴 :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종이 오리기가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공예로 자리 잡는다. 공예를 예술로. 일본의 우키요에가 프랑스 인상파에 영향을 준 것처럼.

카린 라르손 : 집을 예쁘게 꾸민다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의 개척자로 가장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여성 화가다.

거트투르 지킬 : 화가에서 녹색정원 디자이너가 되는 과정까지 총 21명의 여성 화가를 다룬다.

 

표지에 무섭게 느낄 사진(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을 넣은 뜻은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책 제목에 가장 합당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역사를 먼저 배우고 미술을 전공한 까닭이리라. 흩어진 역사적 사실이 많지 않아 여성 화가의 삶을 재구성하기가 어려웠을 터. 유연함으로 메꾼다. 유연함에는 시대정신, 시대의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무리하지 않더라. 미술을 전공한 탓에 이미 평가된 자료를 소개하는 것은 기본이고 작가의 평가도 버무려져 있다. 미술 영역에 위계가 있음을 배웠고 작가에게 오늘날도 그러한가 물어보고 싶다. 작가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는 느낌이라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좋은 책이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20206월 은행나무에서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작을 책으로 엮어낸 거다. 적당한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편집은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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