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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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단편 소설에 대한 찬사는 익히 들어왔지만, 실재 읽어보니 더한 찬사의 언어를 찾아서 붙이고 싶다.  아홉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초반부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대감과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고, 한편이 마무리될 때마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고 할까.  전개 위기 절정의 묘미를 살린 단편 소설의 진수가 느껴졌다.  몇편은 재독했는데, 감동을 받는 부분에선 여지없이 감동을 받고 눈물이 핑도는 장면은 또 눈물이 났다.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서 감동이 덜한 것은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마찬가지로 극찬을 받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보다는 좀더 촘촘하게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인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은 알콜 중독자 등 세상에 주류로 나서지 못하는 하류층들의 이야기라면, 줌파 라히리의 소설들은 인도인이 미국에 이민하여 살아가는 중류층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대비된다.  그렇다고해서 저자는 이민자 소설로 보이길 원치 않았으며, 이 소설을 이민자 소설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토박이 소설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저자는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줄곧 살았지만,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는 못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부모님과 함께 한 생활관습은 인도식이라 그랬을까..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인도인들이고, 인도 문화나 인도인의 관습과 역사가 소설의 주를 이룬다.  아홉편의 단편 중 두편 <진짜 경비원>과 <비비 할다르의 치료>는 해학적인 재미와 교훈을 주는 얘기이고, 나머지 일곱 편은 인도인 이민자 가정의 삶이나 부부간의 소통의 문제, 등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러기에 같은 동양계인 우리가 읽기에 더욱 정서에 맞는다. 

 

단편소설은 장편소설 보다는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하지는 않는 편이다.  짧은 내용에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이기 까지 한  내용을 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단편이 읽기가 힘들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단순 명료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로 우리 주변의 인간 관계에서 흔히 보이는 사랑, 고독, 오해 등, 인간의 소통에 대해 말하고 있어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독자에 따라 소설의 문맥이나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자신이 바라보는 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찾을 수 있다.   

 

<일시적인 문제>

아이가 사산되면서 일시적으로 관계가 틀어져 버린 부부가 있다.

이 부부에겐 일시적으로 단전이 되면서 그동안 서로 말 못했던 비밀들을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

제목에서 말하는 "일시적인 문제"란 일시적인 단전일수도 있지만, 부부 간의 일시적인 불화일 수도 있어 이중적으로 보인다.

단전 마지막날, 사실 이날은 단전이 끝나고 전등이 켜졌지만 이제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도 대화는 가능해졌다.  결정적인 비밀들을 서로 털어놓게 되는데...

 

아이의 사산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부부 관계는 이렇듯 결정적인 사건으로 틀어져버릴 수 있고, 또, 이런 일시적인 문제는 우연찮은 기회에 풀어질 수도 있는, 그것이 부부 사이가 아닐까?

아니면 결정적인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난 회복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싶다.

 

<피르자다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하나의 나라였던 인도, 1947년 분리독립시 종교적인 문제로 힌두교인 인도, 이슬람교인 파키스탄으로 나뉘었다.  파키스탄은 지리적으로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동파키스탄은 인도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졌다. (현재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됨)  동파키스탄 사람인 피르자디씨는 미국에 연구차 1년 방문 중이었다.   피르자디씨는 고국에 두고 온 부인과 여섯 딸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이 아저씨를 10살짜리 주인공 소녀의 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주인공 소녀는 파키스탄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학교에서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숙제와는 상관없는 책이라며 선생님으로부터 핀잔을 받는다.  수업에 필요한 책만을 강요하는 수업방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지구 반대쪽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사만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강대국의 만용이라고 봐야 할까.

 

<질병 통역사>

이 단편을 원문의 책 제목으로 할 만큼 대표적인 소설..  한국에서는 제목에 질병이 들어가서 그랬는지 축복받은 집을 책의 제목으로 내세웠다.

인간의 소통의 문제는 이 소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엇갈린 두 남녀의 사정..

두 남녀는 각자 당신의 사정에 따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이어가려고 한다.   철저한 오해가 부른 두 남녀의 헛된 꿈이라고 해야 할까.   

 

<진짜 경비원>

해학적인 웃픈 이야기.  허풍쟁이 63살 계단 청소 부리마.. 

공동 주택 주민들, 가진 게 없을 때는 부리마의 허풍도 존재도 모두 용납하지만,

가진 게 많아 질 때는 그걸 지켜야 하기 때문에 진짜 경비원이 필요해지고 부리마의 허풍은 거짓말로 변해버린다.   자본주의 물질 시대의 한 단편을 보여준다.

 

<섹시>

미혼인 미랜더는 유부남 데브와 불륜에 빠지는데..

미랜더는 이와 동시에 친구 락스미에게서 락스미의 사촌 언니가 남편의 불륜으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자신의 불륜과 연관지어 생각이나 했을까..  자신이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었겠지..

데브로부터 들었던 섹시하다는 말에 큰 의미를 두었던 미랜더..

하지만 섹시라는 말의 의미가 어느 순간 다르게 다가온다.  

 

<센 아주머니의 집>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온 센 아주머니.. 

미국의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고향에서는 미국 생활을 부러워만 하지만, 어디 타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하기만 할까.

향수병은 역시 음식으로 찾아온다.  고향에서 먹던 음식 물고기를 구입하러 다니는데....

 

 

<축복받은 집>

갓 결혼한 부부의 생각 차이, 취향 차이..

처음엔 그러면서 맞춰 가는거 아닌가.   이 부부는 대체로 남편이 아내에게 맞춰주는 분위기이다.  아내에겐 축복이지만 남편은 죽을 맛.  그 이후의 얘기가 제일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비바 할다르의 치료>

 발작증을 가진 비바..

그 증세는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치료된다.   친척보다는 동네 주민들의 보살핌이 한몫 했다.

 

<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이민자 부부의 미국 정착기,  어쩌면 줌파 하리리의 부모님 얘기일수도 있지 않을까..  주인공은 아시아대륙 인도에서 태어나 유럽 대륙 영국에서 자리를 잡으려다가, 마지막에는 아메리카 대륙 미국에 결혼하면서 정착하는 게 된다.  세번째 대륙은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꿈의 대륙..   다른 단편들이 정착하는 와중에 힘든 단상들이라면, 이 단편은 마침내 정착해 내는 이야기.. 대미를 장식할 만한 소설이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년을 지내왔다."(30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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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인문학 - 21명의 예술가와 함께 떠나는 유럽 여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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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말하는 명작의 고장을 찾는 기행문이다.   저자는 조선일보 기자로 1여년 동안 그 많은 고장을 직접 자동차로 누비벼 답사했고, 그 결과가 이 책이다.  기행문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예술가들의 삶과 역사와 문학이 담겨 있다.  크게 영국의 문학과, 프랑스의 예술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리가 많이 접하고 읽는 고전 문학의 저자들이 영국 문학가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새삼 놀랐다.  영국은 그런 나라구나..  그 문학가들이 모두 영국인이었지.. 하는 생각.   현재는 영미문학을 통틀어 말하고 있지만, 18세기, 19세기 초 문학에서는 영국이 독보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그 음산한 분위기, 비극적 운명은 브론테 가문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브론테 일가가 '하워스'로 이사온지 1년만에 어머니가 사망한 데 이어, 여섯 남매가 하나 둘 사망했다.  아버지만은 84세까지 장수하였다니 참 뭐라고 해야하나.   폐결핵 같은 질환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 묘지가 바로 옆에 있는 집터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하워스에서 <폭풍의 언덕>의 배경 위더링 하이츠는 현재 '톱 위덴스'로 불린다.

 

저자는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 <초원의 빛>의 '워즈워스', <피터 래빗> 시리즈의 '베아트릭스 포터', <셜록 홈즈> 시리즈의 '코난 도일', <크라스마스 캐럴>의 '찰스 디킨스'. <햄릿>의 '셰익스피어', <행복한 왕자>의 '오스카 와일드'의 주무대를 여행하고 기록했다.   특히 <피터 래빗>의 '베아트릭스 포터'가 새로웠는데, 조엔 롤링의 <해리 포터>에서 "포터"라는 이름이 "베아트릭스 포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영국의 유서 깊은 옥스퍼드 대학이 배출한 세계 3대 작가가 있다.  <반지의 제왕>을 쓴 J.R.R.톨킨,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루이스 캐럴(필명)이 그들이다. 

톨킨은 옥스퍼드 교수로 재직시 생활이 안정되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호빗>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런 허구적인 이야기가 출판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루이스 캐럴도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의 뛰어난 수학자로서 명성이 높았고, 리델 학장의 집에서 하숙하다가 아이들과 뱃놀이 중에 들려주기 위해 얘기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나중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출판되었다.  앨리스는 아이들 중 한명의 이름..  

나도 아이들에게 얘기 좀 지어서 들려줘봐야 겠다. ^^

 

이제 프랑스 지역으로 이동해 본다.  프랑스는 역시 예술가의 나라 답다.  '아를의 고흐', '지베르니의 모네', '액상프로방스의 세잔" '루르마랭의 카뮈', '생폴드방스의 샤갈', '앙티브의 피카소'와 같이, 예술가들은 프랑스 지역을 상징하여 함께 불린다. 

 

김춘수 선생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그 샤갈의 마을이 바로 프로방스지역의 '생폴드방스'이다.  생폴드방스는 샤갈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한 곳이기에, 마을 전체가 샤갈 박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나와 마을>에는 상징이 가득하다.   염소젖 짜는 여인은 자기 아내가 될 사람을, 가족을 위해 젖은 짜는 장면을, 아래 생명나무는 프러포즈를, 선악과는 생명나무를, 교회는 결혼식을 올릴 거라는 것을.. 거꾸로 달린 여인은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낫을 든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감의 표현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 해안을 코트다쥐르라고 하며, 그 바닷가 작은 도시로 '앙티브'가 있다.  생폴드방스에서도 지척이라고 한다.  앙티브 바닷가는 피카소가 나체로 산책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옴므 파탈 다운 행동이랄까. ^^  앙티브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모네의 <앙티브의 아침>과 피카소의 <앙티브의 밤낚시>가 있다.

 

코트다쥐르 해변에는 '루르마랭'이라는 작은 도시도 있는데, 이곳은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의 추천으로 새로운 집필 활동을 위해 살던 곳이다.   이곳에서 카뮈는 가족은 기차로, 자신은 친구의 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다 차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카뮈는 루르마랭으로 돌아와 묻혔고, 묘석에는 '알베르 카뮈' 외에는 아무 글자로 새겨져 있지 않다고 한다. 

 

지중해 연안의 남부 코트다쥐르 해변과 맞먹는 절경으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가 있다.  노르망디의 출발점 '에트르타'에는 '기 드  모파상'의 거리가 있다.   에트르타 하면 코끼리 바위가 유명하고 이를 즐겨 그린 모네가 떠오른다.  

 

에트르타에서 태어난 문학가가 또 있으니,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의 저자 '모리스 르블랑'이다.   르블랑은 플로베르의 이야기를 들으며 컸고, 플로베르의 제자 모파상과도 인연이 있었다.   순수 문학을 제일로 치는 프랑스 문학계는 그를 인정하지 않아 르블랑의 집은 폐허처럼 방치되었다고 하니,  영국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박물관이 연일 인파로 북적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봐리 부인>의 플로베르가 태어나고 잠들어 있는 곳은 루앙이다.  루앙은 또한 잔다르크의 출신지로 유명하며, 또한 모네의 연작으로 유명한 루앙 대성당이 있는 곳이다.  

프랑스 지역마다 상징되는 예술가들이 있고 그 지역을 그린 화가들의 그림까지 연관되어 소개하고 있어 반갑다.  프랑스 지도도 확인해 보고 화가들의 그림도 다시 찾아 보면서 읽었다.  모네는 특히 프랑스 센강을 따라 옮겨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니 프랑스 여러 지역의 이름에서 자연스레 모네의 그림이 떠올랐다.   프랑스 예술가편은 그림과 사진을 검색해 보게 해서 그동안 잠잠했던 여행의 욕구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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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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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3페이지)

 

우리는 이 책의 저자 아니 에르노와 그녀의 아버지를 말한다.   왜 그들이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는지, 왜 그들에게 거리감이 찾아왔는지에 대해서 알려면 아버지의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삶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배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수료반에 있던 그를 빼내어 농가에 집어넣었다.    어린 나이부터 농가에서 먹고 자며 일하다가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입대한 후 드뎌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제대 후에는 공장에 취업한 후 결혼하게 되고, 노동자로 일하다가 가게를 운영해 보기로 했다.   가게는 외상으로 사가는 사람들이 많아 운영은 어려웠고, 그 와중에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피난을 떠나게 된다.  그 때 어머니는 아니 에르노를 임신중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카페겸 식료품점을 운영하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  카페는 어머니가 주도해서 운영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 단골도 늘어났다.  아버지는 주변을 고치고 손보는 일을 주로 하며, 가게가 잘 안될 때에는 공장에 취업해서 일하기도 했다.   아니 에르노는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기숙 학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예절 바르게 보이려고 소심해지거나 뻣뻣해지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겐 점잖게 얘기하다가도 가족들에겐 사투리와 욕설이 튀어나오고, 딸을 품위있게 혼내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가족간에 다정한 대화는 잘 오가지 않았다.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와는 같은 여자로서 통했지만,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하고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니 에르노에게 해 줄 게 아무것도 없었고, 아니 에르노도 아버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껴면서도, 딸과 점점 멀어지는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두려워했다.

 

아버지는 딸의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엔 최선을 다했고 딸을 창피하게 만든 적이 없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다.   딸이 교양있고 예의 바른 사위감을 데리고 왔을 땐 더없이 좋아했다.   결혼 이후에 딸을 잘 만나지 못했고, 딸이 한번씩 친정을 방문할 때 사위는 함께 오지 않았다.  

 

"식구 대부분이 고학력자이며 대화 중에 끊임없이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가 어떻게 이 순박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즐거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치 있는 대화의 부재>라는 이 본질적인 결함을 보상할 수는 없었다."(108페이지)

 

아니 에르노가 두살 반 된 아들을 데리고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가슴 어딘가 통증을 하소연하며 며칠 앓다가 숨을 거뒀다.    서민의 소음과 나부대는 아이들을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에 브루주아 여자 다 되었다며 경악스러워했고,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보고 싶었다.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계층 간의 거리감,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지만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그것이 바로 아니 에로노기 아버지를 중심인물로 한 이 글을 쓴 이유였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

 

마지막에 아니 에르노는 옛 제자를 만난 에피소드를 덧붙혔다.  그녀가 매장 계산대에서 옛 제자를 만나게 되었고, 제자에게 별 뜻 없이 <잘 지내요? 여기 일은 재미있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제자는 <네. 네..  기술학교 들어가서 잘 풀리지 못했어요>라고 답했다.   제자는 자신의 진로를 그녀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왜 덧붙혔을까.  제자가 자신의 진로를 구차하게 변명하고 있듯이,  그녀도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태생적인 실체를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밝히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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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 막노동꾼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 그리고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이은대 지음 / 슬로래빗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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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에서는 글쓰기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독서라고들 말한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왕도는 많이 써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이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의 저자는 다독 보다도 다작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쓰는 것만이 최고의 정답이라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에겐 백날 책을 읽어라, 글을 써봐라 하는 소리가 인생에 그렇게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매일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면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자신과의 대화로 마음속 고통이나 슬픔이 치유될 수 있다고,  인생의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글쓰기 덕분이라고 ..    글쓰기 전도사라도 되어 자신의 경험을 알리고, 모두에게 글쓰기를 권유하고 싶어했다.  그 결과가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지금은 블로그라는 장에서 블로거들과 소통하면서 글쓰기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보다 힘든 세파를 견뎌낸 아이들이 일찍 철들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저자는 사업 실패로 빚에 시달리다가 알콜 중독에 피부병에, 수감 생활까지, 현재는 막노동꾼으로 온갖 인생의 고락을 겪었다.   이런 고락들은 저자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고 내면 깊숙한 자아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의 전환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대신 저자와 같이 글쓰기로 자아의 발견과 나와의 대화를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의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게 된다.  저자는 왜 글쓰기가 필요한지를 계속 강조하며, 글쓰기 비법은 없으며 글쓰기를 방해하는 핑계도 없으니 무조건 쓰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독자들도 나도 글을 좀 써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동할 것이다.  

 

저자는 글쓰기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지인은 운동을 시작하면서 몸매가 처녀적 보다 더 탄탄해지니 자신감도 생기고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난 그 지인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그 때 느끼는 인생의 변화는 다르다고 말해 주었다.   저자도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글을 쓰면서 느끼는 인생의 변화는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고..   

 

글쓰기는 근 1년새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고, 재미를 붙히기는 했다.  주로 나의 글쓰기는 책을 읽은 후 서평, 간혹 전시회나 영화 관람 후기도 있지만, 대체로 내 얘기가 아닌 평이라고 하겠다.    나의 일상과 내면의 소리를 그대로 옮겨적는 글쓰기는 아직 잘 안된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가 바로 이런 것인데 말이다.      

 

나의 내면의 글쓰기라..  이런 저런 이유로 주저하게 된다.  우선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만 하는데, 타인이 이 글을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솔직해지기가 쉽지 않다.   독자를 의식하다 보면 내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고, 포장되고 거짓된 글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세상 사람들은 나의 삶에 그리 크게 관여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며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비판에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운전도 해보기 전에는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져도 막상 주행해 보면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저자는 글쓰기도 이와 같다면서 무조건 써보라고 한다.   처음엔 힘들 것 같아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다보면 쉬운일로 바뀌게 된다고...   나도 서평쓰기가 처음엔 무지 힘들었는데 이젠 좀씩 적응해가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서평을 쓰기 시작했듯이, 또 자연스레 내 마음속 격정을 글로 쓰고 싶을 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우선 독서로 탄탄하게 무장해야 겠다.  이 책이 그 때를 조금은 앞당겨줄 것 같다.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의 첫장을 펼치는데, 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과 같은 맥락의 글인 것 같아 옮겨 본다.  다음 서평은 이 책이 될 수도..  ^^ 

 

"이렇게 한번 설명해 보련다.

글쓰기란 우리가 배신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이다.  - 장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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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0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도 나 자신의 모습을 글에서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런 글이 독자에게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있지만, 좋은 글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면 내 모습을 과장되게 표현하려고 해요. 여기에 생각이 많아지면 문장 하나 제대로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도 책에 대한 글을 쓰면 비평하는 형식으로 쓰는 편입니다. 이렇게 쓰는 것이 편하거든요.

림스네 2016-04-12 16:1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래서 내면의 글쓰기가 힘든가봐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가 힘들어서요. 그게 힘드니 저도 서평같은 것에 내 자신을 끼워 넣는 형태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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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3인층 복수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타자로서의 그들..  이 소설 속 "그들"은 디트로이트 시의 빈민가 백인들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그들"은 인종주의 차별로 인해 분리되어 있는 가난한 흑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하지만,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며 디트로이트 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도시로 흑인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1937년 8월에 시작하여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이 일어나기 까지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소설 <그들>을 빨간 책방에서 소개받고 이 책 보다는 작가, 조이스 캐롤오츠가 궁금했다.   이 작가는 다작으로 유명하다는데, 많은 이야기들이 머리속에서 어떻게 샘솟듯 나오는 걸까.    저번엔 도서관에 방문했을 땐 이 소설의 신간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는데, 빨간 책방의 효과인가.  이번에 가니 신간 코너에 이 책이 꽂혀 있었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데서 한번 주춤거렸으나 두 권이 아닌 것만도 어디냐 싶어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소설은 로레타와 로레타의 아들 줄리와 딸 몰리, 세명의 인물의 이야기이다.   세 인물의 삶은 긴박하고 척박했으며, 감정들의 세밀한 묘사는 시시각각 변덕스럽기만 해서, 이들의 감정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고 그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차기만 했다.      

 

로레타는 첫밤을 보낸 남자가 자기 침대에서 오빠에 의해 총을 맞아 살해되고, 이를 해결하러 들른 경찰 하워드와 결혼하게 된다.   너무나 충격적인 소설의 도입부..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기대되게 만들었다.  하류층일수록 가정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다고 했던가.    로레타는 폭력적이 되가며 가족을 지배해 가고, 남편 하워드는 점점 말수가 줄고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로레타는 하워드와의 사이에 세 아이를 두는데, 첫째 아들이 줄스, 둘째 딸이 모린, 세째가 베티이다.   남편이 공장에서 사고로 죽자 새남편 펄롱을 집으로 들이지만, 이 남자도 역시 하류층 인생..  로레타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새남편의 상대를 딸 모린에게 미루는 등 현실 도피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자의 인생 참.. 재혼해도 그 팔자가 그 팔자라는 게 맞는건가..      

 

줄스와 모린 남매는 태어나면서부터 가난에 둘러싼 환경에서 자라며, 자신의 부모와 겹쳐지는 처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유년 시절 내내 나이들면 독립하겠다고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만 싶었다.  사랑과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남매에게 자신만의 인생은 가능할까.  거기에 사랑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큰 바램이었을까.    

 

줄스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기에 아버지가 거슬렸다.   줄스는 으례 그런 환경에서 비행을 일삼는 청소년으로 자라났고, 남자라서 독립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독립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가끔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고 돈을 보내가면서 가족과의 끈끈한 정을 믿었다.  줄스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출생의 부유한 네이딘에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네이딘은 부유해도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이 어릴 땐 함께 가출하지만, 가출도 부질없는 나이가 되었을 땐 두사람의 사랑은 광기로 치달아 간다.  정말 나에겐 낯설기만 했다.     

 

모린은 오빠 줄스와 동생 베티가 밖에서 나쁜 짓을 일삼고 다녀도 자신은 다른 가족과 다르다며 스스로 위안하곤 했다.  엄마는 이런 모린을 지지해주지 못하고 자신의 수준에서 모린을 판단하기만 했다.  모린은 자립을 위해서 돈이 절실하기만 하고, 공부도 계속하고 싶었다.   자기 삶이 비현실적이고 소설 속 세계가 진짜인 듯 느껴지기도 했다.    모린은 새아빠의 폭력 앞에 자아는 분리되고..   아버지, 새아버지, 그리고 외삼촌 까지 남자들은 싫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서 결혼을 꿈꾼다.  집과 남자를 꿈꾸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만 싶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부박함이 느껴져서 힘들었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우리가 가난하므로 사악해질까?"에 대한 긴 답변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한가닥 희망에 목말라 하며 절망과 변덕 속에서 대가를 치르며 살아가는 과정은 사악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검은 바다에서 출렁이는 대로 몸이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는 삶을 이어나가겠다는 몸부림 말이다. 

 

줄스와 모린의 몸부림은 다르게 나타났다.  줄스는 자유롭게 집을 떠나 있을 때에도 가족과의 단절을 원하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모린은 완전히 '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길 원했다.   어렵사리 꾸린 가정에 찾아온 오빠를 급하게 내쳤을 정도로.  오빠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친다.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모린은 '그들'과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줄스도 그간의 절망을 뒤로한 채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며 그들은 더 이상 사악해지지 않고 삶을 이어나가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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