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조훈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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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디에 있든 스스로 돌을 던지지 않는 한, 혹은 판을 모두 채우지 않는 한, 인생이라는 바둑은 끝나지 않는다.  현재 어떤 위기에 있더라도 아직 살아날 희망이 있다.  바둑이 내게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집중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심지어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 조차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의외의 답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조훈현 국수는 이 책에서 바둑 기사들은 평범한 인생과는 격리된 채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둑과 인생은 전혀 다르다고.  바둑을 흔히 인생과 비유하는 것은, 바둑의 룰에서 인생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판을 읽는 능력, 결단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수를 읽는 능력, 시간 제한을 지키는 초를 읽는 능력까지..  이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조훈현 국수는 어려서 바둑 신동으로 불리며 10대에 세고에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러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세고에 선생님은 생전 3명의 제자, 한, 중, 일 한명씩을 두었는데, 모두 일류로 키워내었다.  조훈현 기사는 스승에게 9년간 바둑에 대한 모든걸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스며들 듯이 받아들였다.   조훈현 기사가 군대 문제로 귀국하자, 스승은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제자의 군대 면제를 받기 위해 애썼지만 뜻대로 안되고 일본을 떠나자 내린 결정이었다니, 인생 말년에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제자와 바둑을 모두 잃은 듯 한 공허함을 떨쳐내지 못했나 보다.  

 

조훈현 국수의 한국에서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활약상은 놀랍다.   일본 기사들이 주로 맹위를 떨치던 바둑판에 조훈현 기사가 나타나 전타이틀을 거머쥐는 등, 한국 바둑의 위상을 높였다.   그 당시엔 바둑 대국도 티브에서 방송해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신예는 있는 법.  타이틀을 자신의 제자 이창호 기사에게 뺏긴다.    조훈현 기사는 1984년 31살의 나이에 9살이었던 이창호를 집으로 들여 제자로 삼는다.    보통 제자는 나이가 들어 받는 것이 보통인데, 조훈현 국수는 한창 현역일 때 제자를 받았으니..  스승과 제자의 대국이라는 명장면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조훈현 국수는 제자에게 뺏긴 것도 모잘라 1995년에는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게 된다.   움켜쥐고 있을 땐 지키기 위해 불안했지만 내려놓으니 오히려 자유로웠다고, 다시 타이틀을 하나씩 찾아올 때의 쾌감은 컸으리라..   이창호 선수도 이세돌 선수에게 타이틀을 뺏기고 한 인터뷰에서 내려놓으니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하니, 정상의 자리란 그런 것인가 보다.   

 

서봉수 기사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대국과 승부에 얽힌 얘기에선 코끝이 찡해진다.   서봉수 기사는 15살에 동네 기원을 통해 바둑에 입문하여 철저히 독학으로 바둑을 배운 근성과 투지가 불타는 천재였다.   조훈현과 서봉수은 승부에 대한 집착과 근성 등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끝내 가까울 수 없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 속 라이벌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멀리서 응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  동갑내기인 우리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역이다.  지금도 우리는 서로에게만큼은 죽어도 지기 싫다"

 

일본 중심 대회에서는 한 선수당 제한 시간이 8시간도 흔했지만, 최근엔 장고 경기로는 각 선수당 제한시간이 2~3시간이고, 1시간인 속기 바둑 대회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속기 대회는 재미있고 짜릿하긴 하지만, 장고 바둑에서와 같은 신중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 한국 기사들은 너무 빠른 것만을 추구하다가 장고 대회에서 중국 기사들에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대세에서 한국이 전성기을 맞이하다가 2013년 이후로 중국에게 많이 넘어간 분위기이다.  중국에 서 바둑을 활성화시킨 사람이 드라마 올인의 주인공 차민수라고 한다.  스포츠는 경쟁 상대가 있어야 더 강해지는 법.  이제 시장을 넓히기 위해 중국에 잠시 맛보게 해준 정상의 위치를 다시 한국의 기사들이 찾아와야 할 것이다. 

 

스승 세고야 선생님이 제자 조훈현을 가르친 방법을 보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비추어서 참교육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제자가 보고 배우게 하는 것이다.  제자가 내 기준에 어긋나는 듯해도 야단칠 필요가 없다.  스승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제자가 알아서 잘못한 걸 깨닫고 고친다.  또 고치지 않더라고 괜찮다.  그건 시대가 달라서 그런 것이지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승의 시대에 지켜야 했던 원칙이 제자의 시대에는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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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7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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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삶을 지배한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예외적이고 채울 길 없는 욕구"였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면 우리 본연에 내재된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욕구는 내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 안의 열정을 자극하여 끊임없는 행위로 표출된다.   행위가 없는 말은 공허하다.

 

단순한 행위로도 채워지지 않는게 있다.

충분히 굶주리고 절박한 자에게만 채워지는 진정한 쾌락.

이렇게 채워진 쾌락은 욕망의 만족감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지드는, 

지상에서의 양식은 욕망의 만족이라고 말한다.

욕망의 만족감이 지상에서의 내 삶을, 내 영혼을 살찌운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걸까.

 

 

"양식들이여!

나는 너희를 고대하고 있다.  양식들이여!

나의 굶주림은 도중에서 멎지 않으리라.

나의 굶주림은 충족되지 않고서는 잠잠해지지 않으리라.

 

....

양식들이여!

나는 너희를 기대하고 있다.  양식들이여!

온 공간을 헤매어 나는 너희를 찾고 있다.  내 모든 욕망의 만족을."

 

지드의 글을 읽고보니 소유라는 게 별게 아니다.

소유하지 못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 뿐.

지상에서의 '소유'라는 것은 내 주위에 안주하는 것, 내 주위와 닮아가는 것이니, 

모두 버리고 떠나라고, 머무르지 말고 떠나라고 말한다.

 

 

"선택이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걸 의미했다. 

수많은 그 '다른 것들'이 어떠한 하나보다도 여전히 더 좋아 보였다.

사실 지상에서의 '소유'가 어느 것이든 내게 반감만 자아내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밖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지드는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전 읽었던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서 보았던 말씀과도 닮아 있다.

신영복 선생님은 톨레랑스(관용)가 아니라 노마드주의(행동)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비가 올때 우산을 씌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어야 한다고..

"판단'하지 말고 행동하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로 사랑이라고 말이다.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서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에너지가 사후까지 살아남아서 나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

공감이 아니라, 나타나엘이여, 사랑이어야 한다."

 

지드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지속해야

순간순간 행복의 개별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의 가장 작은 순간에 가치를 부여하고,

매순간 현존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말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사고의 습관이 우리 존재의 가장 귀한 부분을 가두는 것은 아닌지,

지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내 안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강렬한 생명력과 열정을 발산하라고..

직접 느껴보지 못한 지식은 무용한 것이니,

외부 세계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받아들이라고..

 

모든 글이 잠언이나 운문을 읽는 듯,

짧게 끊어진 글들은 한 구절마다 감동과 사유를 이끌어 낸다.

알베르 카뮈 전집 번역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화영님이 번역으로 재탄생한

한글번역문은 운율에 맞게 잘 읽힌다.

 

지드의 철학적 사상은 특히 젊은이에게 잘 향해져 있다.

지드가 살아온 여러 경험을 되돌아보며 그것을 판단하고 교훈을 이끌어낸다.

미래가 불투명하여 미래 속에서 과거를 붙잡으려 할 때,

습관에 갇혀 있을 때,  나의 현존에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알지 못할 때,

지드는 젊은이가 새로 태어나길, 영혼이 어떤 사상에도 얽매이지 않길, 열정이 가득하길 바랬다.

 

젊은 날 읽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뭔가 자극되어 사고의 범주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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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다가 말았는데 내용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림스네 2016-03-08 22:43   좋아요 0 | URL
저두 다 읽지는 않았구요. 천천히 조금씩 읽으려구요.
초반부 읽으면서 글이 너무 좋아서 먼저 남기고 싶더라구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도 이런 느낌이군요. 저두 소장한지 꽤 되었는데 아직 펼치지 못하고 있는 책이에요.
 
철학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 1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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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브런치>에 이어 <철학 브런치>를 읽었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소문난 간서치였다는데..  책을 읽다보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철학편, 세계사편에 이어, 문학편으로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사.철 중에 이제 <문학 브런치>만 남은 셈이다.   문학 쪽에서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떻게 사유에 반영되었는지 다음 출간될 책도 기대된다. 

 

일반적인 철학사를 다룬 책 보다는 확실히 재미있다.  원전을 곁들여서 철학서를 직접 읽어 볼 기회도 있는데다가 재밌는 일화나 적절한 비유와 유머 까지 곁들여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도 어쨋든 철학.. 고대 철학 부터 근대 철학까지는 그럭저럭 따라갈만 하다가 독일 관념론이 나오면서 이성이 어쩌구 존재, 현존재가 저쩌구 하면서는 따라가기가 힘들다.    저자는 같은 독자 입장에서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따라오기 쉽게 도와준다.   마지막 챕터 실존주의 철학 챕터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과 문학을 넘다드는 철학자들이 나와 위기를 넘기고 일독했다. ㅎㅎ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상대방이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뿐 실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깨닫도록 하여 사유하게 한다.  근데 내가 보기엔 말꼬리잡기식인 것으로 보인다는.   상대가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개념들에 대해 역발상식으로 질문을 하여 말문이 막힐 때 까지 집요하게 캐물으니 상대는 멘붕이 올수 밖에 없다.   이 대화법으로 수많은 적을 만들고, 사형까지 받게 되는 것은 우얄꼬.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사후에 저술한 것들이다.  대화편 중에 <향연>은 소크라테스를 포함해 6명이 에로스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고, 소크라테스의 기소와 죽음에 관한 3부작으로는 <변명>, <파이돈>, <크리톤>이 있다.  <변명>편은 재판 당시 자신을 변호하는 연설문을, <크리톤>은 왜 아테네 법률에 따라 기꺼이 죽으려 하는지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대화를,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직전 나눈 대화를 싣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한마디로 예술철학 이론서라 할 수 있다.   현대 철학가가 썼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시학>은 "카타르시스"란 용어가 등장한 것으로 유명하며, 모방으로서의 예술, 그중에서도 시작(詩作)과 희극과 비극의 공연 행위에 대해 주로 다루었다.    

 

"희극은 사람을 실제보다 열등하게 묘사하는 것을, 비극은 실제보다 뛰어나게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로 치자면 엄친아, "키케로"와 "아우렐리우스"편도 재미있게 읽었다.   "키케로"는 철학자, 웅변가, 저술가로 팔방미인이었지만, 자신의 이런 멋을 뽐내려면 원로원의 연단이 필요했었나보다.  그는 열렬한 공화정주의자였고, 당시는 공화정의 부패로 인해 제정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던 시대였다.  키케로는 자객의 칼에 맞아 죽게 된다는.. 신은 공평한건가.  완벽한 줄만 알았던 키케로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타지 못하는 어리숙함을 보였으니..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은 학창 시절 소중히 다뤘던 책이었다.  제대로 읽지는 않아도 소장한 것 만으로도 있어 보이던 책..   로마 제정시대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철인 군주로 불리지만, 자식 문제에서만은 왜 현명하지 못했을까.   다른 황제처럼 능력있는 귀족 자제를 후계자로 삼아 왕의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자식에게 대권을 물려준 것이다.  그 자식이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이다.  영화는 각색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여튼 로마는 오현제로 끝나고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다.

 

근대 철학자 베이컨, 데카르트, 파스칼편도 어렵지 않게 읽어나갔다.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베이컨과 데카르트는 경험론과 합리론, 귀납법과 연역법, 영국 철학과 대륙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라이벌로 대비되어 왔다.  또 그들은 둘 다 폐렴으로 사망한 것이 동일한데, 베이컨은 추운 날 황당한 과학실험을 하다가, 데카르트는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을 추운데 새벽부터 가르친다고 궁전을 드나들다가 병을 얻었다고 하니, 죽는 날까지 학자로서의 소임을 다한 면에서 '라이벌'이 맞다. ㅎㅎ

 

몽테뉴의 <수상록>만 유명한 줄 알았다.  베이컨의 <수상록>은 몽테뉴 책인줄 알고 소장했다가 읽지 않고 꽂아만 둔 책이었다.   저자는 베이컨의 <수상록>을 꼭 읽어보라고 권장한다.   명품 철학 에세이의 맛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독일 관념론 철학자 칸트와 헤겔은 슬쩍 피하고 싶다.  다만 쇼펜하우어의 주요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주해를 위해 저술한 <여록과 보유>만은 언급하자.   우리가 알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 그 책이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의 전조마저 느껴지는 글들..  짧은 글 속에 인생의 참맛이 들어있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으로 유명해지고, 현재에도 칸트와 헤겔 보다는 일반 독자에게 더 친숙한 철학자가 되었다.  쇼펜하우어도 책의 내용과는 언행불일치였는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니 재밌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존주의철학, 샤르트르, 카뮈, 하이데거로 마무리된다.   샤르트르의 <구토>와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는 소장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었으니 진입장벽을 한 계단 올라간 것 같다.  곧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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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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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  - 증명서

 

이 책의 제문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앞장의 제문을 보니, 저자 주제 사라마구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All the Names>로, 등기소에 출생 신고가 된 모든 이름들과 공동 묘지에 묻히는 모든 이름들을 말하고 있다.  한국 번역판 제목은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인데, 저자의 다른 책들 <눈먼자들의 도시>, <눈뜬자들의 도시>와 연작 시리즈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오히려 한국번역판 제목이 소설에서 말하는 역설적인 의미를 잘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40대 되어서야 문단의 주목을 받고, 전성기 작품들은 60대에 발표되었으며, 1998년 76세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뒤늦은 나이에 문학의 꽃을 피운 대표적인 케이스일 것이다.

 

소설의 원제는 <모든 이름들>이지만, 이 책에는 주인공 한명의 이름만 언급된다.  그 이름은 저자와 동일한 "주제",  그나마 성은 나오지도 않는다.   주제 씨는 중앙호적등기소의 사무보조원으로, 나이 50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등기소에 딸린 작은 숙소에 사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다.   등기소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도시의 모든 출생 신고를 받아 서류를 작성해서 산 자들의 서류보관소에 보관하고, 사망 신고를 받으면 산 자들의 서류보관소에서 죽은 자들의 서류보관소로 옮기는 것이다.   

 

주제 씨의 유일한 취미는 유명 인사의 기사나 사진을 모으는 일이다.  급기야 주제 씨는 유명 인사의 호적 기록부 까지 몰래 빼와 사본을 만들어놓는 방식으로 100명의 서류를 모으기 시작한다.   주제 씨에게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유명인들 사이에 알지 못하는 한 여인의 호적 기록부가 끼여있으면서이다.   100명의 유명인사 보다 더 무게감이 있게 느껴지는 모르는 여인 한명..

 

수많은 호적 기록부의 사람들은 단지 이름 뿐으로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인 자들이다.  100명의 유명 인사는 누구나 아는 자들이다.  하지만 모르는 여인 한명은 주제 씨가 관심을 가지게 되자 어떤 존재가 되어 다가왔다.  이 대목에서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비유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주제 씨에게 그녀는 이제 하나의 꽃, 존재가 되었다.  주제 씨는 그녀를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옛 주소를 가지고 도시를 헤매고 다니는 일들은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안쓰럽고 웃기기까지 하다.   주제 씨도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자책하기도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등기소 소장에게 업무에 소홀하다고 지적을 당하지만 다음날이면 또 찾아나선다.  

 

며칠이 지나 산 자의 서류보관소에 있던 그녀의 서류가 없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서류상 죽었지만, 주제 씨는 삶과 죽음이 단지 종이가 바뀐 것이라고, 죽음이란 단지 기록일 뿐이라고 인식한다.   이제 주제 씨는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찾기로 한다. 

 

그녀의 죽음은 주제 씨가 찾아다닌 이후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지 추리소설을 읽는 듯 긴장감은 이어졌다.  거기에 등기소 소장까지 뭔가를 아는 것처럼 주제 씨를 관찰하는 듯 하여 긴장감은 더해간다.  마지막에 내가 예상한 대로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

 

주제 씨가 미지의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찾아다녔다면 주제 씨에게 그녀는 계속 존재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 이름도 아닌 수많은 이름보다는 주제 씨에게는 존재감이 있으니 말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에서부터, 존재와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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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제목이 서로 비슷하게 보이는 한 작가의 작품을 대개 연작 형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사라마구의 소설 중에 <눈먼 자들의 도시>만 읽었어요. 그렇다 보니 <눈뜬 자들의 도시>와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함께 묶은 연작인 줄 알았어요. ^^;;

림스네 2016-02-27 18:00   좋아요 0 | URL
그죠. 저두 이번에 읽으면서 알았어요. 눈먼자들과 눈뜬자들은 약간의 연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눈뜬자들의 도시>가 <눈먼자들의 도시> 이후 4년 후 정치 상황이라고 책 소개가 되어 있어요. 싸이러스님 먼저 댓글 남겨주셔서 무지 반갑습니다. 안그래도 친구설정해 놓고 있었는데..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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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교 화학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프리모 레비는 화학자로서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시대는 파시즘의 기운이 휘감고 있었고, 인종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고, 전쟁은 코앞으로 다가온 듯 했다.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못본듯 곧 잊혀질 것들로 치부했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었다. 

 

저자는 인종법에 따라 직업의 자유가 없는 유대인이지만 지식인 화학자였기에 광산에서 "니켈"을 분류하는 일을 하고, "인"을 추출해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연구를 하면서 위태위태한 시간을 보냈다. 

  

파시즘은 20년간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들더니 이탈리아를 전쟁의 불길에 끌어들이려고 했다.   이제 사람들은 파시즘에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도 없는 헛된 몸짓..   나치의 점령 기회를 제공하고, 저자는 동료들과 함께 빨치산으로 항전하다 잡혀 아우슈비츠에 수용된다.  

 

수용소에서의 일은 다른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며 이 책에서 많은 양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일터 화학공장 실험실에서 물건을 몰래 빼와 먹을 수 있는 것은 먹고 팔 것은 팔아 배를 채운 얘기는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짐작케해 준다.   심지어 파라핀을 산화시켜 얻은 지방산을 먹기도 했고, "세륨"(발화성물질) 막대를 며칠 밤 몰래 갈아서 성냥공장에 팔아 빵을 사먹기도 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이 도착해 수용소를 떠나 며칠밤을 걸었던 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학살당한 이야기도 다른 책에서 서술했다며 간략하게 언급만 했다.   저자는 <이것이 인간인가>, <귀환>으로 그의 수용소 생활과 기적적인 생환에 대한 얘기를 증언한 바 있다.  이 두 권의 책으로 프리모 레비라는 작가는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는 여전히 화학자이길 바랬다.  이 책은 그가 화학자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    주기율표에 나오는 21개의 원소 하나 하나와 연관하여 그의 인생의 한 단면을 꺼내 얘기해 주고 있다.

 

첫번째 원소가 "아르곤"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유대인 이웃 선조를 아르곤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르곤은 비활성 기체로, 실상 이산화탄소보다도 스무배 또는 서른 배가 더 많은 양인데도, 희유가스라고도 불린다.   유대인 선조들은 존재하지만 활동이 억제되어 드물었던 것 처럼 느끼면서 자라온 화학자가 이를 두고 아르곤으로 비유한 것은 어떤 씁슬함과 허탈감이 보이는 듯 하다.  

 

다음은 위에서 말한 대학 시절, 연구소 생활과 간략하게 언급한 수용소 생활이 이어지고, 책의 후반부에는 수용소 생활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우라늄"과 "바나듐"에 얽힌 얘기가 나온다.   특히 "바나듐"편에서 저자는 수용소에서 만났던 독일인 뮐러 박사와 일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적을 용서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에 직면한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띄었지만 소설이 아니다.  저자의 생생한 증언이고 작은 역사이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귀환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글은 치유의 힘이 정녕 없었던 것일까.  여러권의 책을 썼음에도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책이 아주 잘 읽히는 것은 아니다.  서사적 구조와 어떤 전개 위기가 있는 소설이 아니라, 덤덤한 회상 이야기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은 것은 원소 하나하나에 어떤 이야기가 연상되어 펼쳐질지 궁금하고 저자가 어떻게 극한 인생을 극복하고 살아내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인생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책은 만족스럽다.    뒷부분에는 필립 로스와 프리모 레비의 대담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나는 이 시점에서, 해방을 맞은 독일인이 보낸 겸손하고 따스하고 기독교적인 편지와 고집스러운 인종주의자가 보낸 야비하고 거만하고 차가운 편지, 이런 두 종류만을 소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꾸며낸 게 아니다.  현실은 허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덜 정돈되어 있으며, 더 거칠고 덜 원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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