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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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단편 소설에 대한 찬사는 익히 들어왔지만, 실재 읽어보니 더한 찬사의 언어를 찾아서 붙이고 싶다.  아홉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초반부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대감과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고, 한편이 마무리될 때마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고 할까.  전개 위기 절정의 묘미를 살린 단편 소설의 진수가 느껴졌다.  몇편은 재독했는데, 감동을 받는 부분에선 여지없이 감동을 받고 눈물이 핑도는 장면은 또 눈물이 났다.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서 감동이 덜한 것은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마찬가지로 극찬을 받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보다는 좀더 촘촘하게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인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은 알콜 중독자 등 세상에 주류로 나서지 못하는 하류층들의 이야기라면, 줌파 라히리의 소설들은 인도인이 미국에 이민하여 살아가는 중류층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대비된다.  그렇다고해서 저자는 이민자 소설로 보이길 원치 않았으며, 이 소설을 이민자 소설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토박이 소설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저자는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줄곧 살았지만,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는 못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부모님과 함께 한 생활관습은 인도식이라 그랬을까..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인도인들이고, 인도 문화나 인도인의 관습과 역사가 소설의 주를 이룬다.  아홉편의 단편 중 두편 <진짜 경비원>과 <비비 할다르의 치료>는 해학적인 재미와 교훈을 주는 얘기이고, 나머지 일곱 편은 인도인 이민자 가정의 삶이나 부부간의 소통의 문제, 등 인간 본연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러기에 같은 동양계인 우리가 읽기에 더욱 정서에 맞는다. 

 

단편소설은 장편소설 보다는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하지는 않는 편이다.  짧은 내용에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이기 까지 한  내용을 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단편이 읽기가 힘들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단순 명료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로 우리 주변의 인간 관계에서 흔히 보이는 사랑, 고독, 오해 등, 인간의 소통에 대해 말하고 있어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독자에 따라 소설의 문맥이나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자신이 바라보는 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찾을 수 있다.   

 

<일시적인 문제>

아이가 사산되면서 일시적으로 관계가 틀어져 버린 부부가 있다.

이 부부에겐 일시적으로 단전이 되면서 그동안 서로 말 못했던 비밀들을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

제목에서 말하는 "일시적인 문제"란 일시적인 단전일수도 있지만, 부부 간의 일시적인 불화일 수도 있어 이중적으로 보인다.

단전 마지막날, 사실 이날은 단전이 끝나고 전등이 켜졌지만 이제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도 대화는 가능해졌다.  결정적인 비밀들을 서로 털어놓게 되는데...

 

아이의 사산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부부 관계는 이렇듯 결정적인 사건으로 틀어져버릴 수 있고, 또, 이런 일시적인 문제는 우연찮은 기회에 풀어질 수도 있는, 그것이 부부 사이가 아닐까?

아니면 결정적인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난 회복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싶다.

 

<피르자다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하나의 나라였던 인도, 1947년 분리독립시 종교적인 문제로 힌두교인 인도, 이슬람교인 파키스탄으로 나뉘었다.  파키스탄은 지리적으로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동파키스탄은 인도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벌어졌다. (현재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됨)  동파키스탄 사람인 피르자디씨는 미국에 연구차 1년 방문 중이었다.   피르자디씨는 고국에 두고 온 부인과 여섯 딸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이 아저씨를 10살짜리 주인공 소녀의 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주인공 소녀는 파키스탄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학교에서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숙제와는 상관없는 책이라며 선생님으로부터 핀잔을 받는다.  수업에 필요한 책만을 강요하는 수업방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지구 반대쪽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사만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강대국의 만용이라고 봐야 할까.

 

<질병 통역사>

이 단편을 원문의 책 제목으로 할 만큼 대표적인 소설..  한국에서는 제목에 질병이 들어가서 그랬는지 축복받은 집을 책의 제목으로 내세웠다.

인간의 소통의 문제는 이 소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엇갈린 두 남녀의 사정..

두 남녀는 각자 당신의 사정에 따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이어가려고 한다.   철저한 오해가 부른 두 남녀의 헛된 꿈이라고 해야 할까.   

 

<진짜 경비원>

해학적인 웃픈 이야기.  허풍쟁이 63살 계단 청소 부리마.. 

공동 주택 주민들, 가진 게 없을 때는 부리마의 허풍도 존재도 모두 용납하지만,

가진 게 많아 질 때는 그걸 지켜야 하기 때문에 진짜 경비원이 필요해지고 부리마의 허풍은 거짓말로 변해버린다.   자본주의 물질 시대의 한 단편을 보여준다.

 

<섹시>

미혼인 미랜더는 유부남 데브와 불륜에 빠지는데..

미랜더는 이와 동시에 친구 락스미에게서 락스미의 사촌 언니가 남편의 불륜으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자신의 불륜과 연관지어 생각이나 했을까..  자신이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었겠지..

데브로부터 들었던 섹시하다는 말에 큰 의미를 두었던 미랜더..

하지만 섹시라는 말의 의미가 어느 순간 다르게 다가온다.  

 

<센 아주머니의 집>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온 센 아주머니.. 

미국의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고향에서는 미국 생활을 부러워만 하지만, 어디 타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하기만 할까.

향수병은 역시 음식으로 찾아온다.  고향에서 먹던 음식 물고기를 구입하러 다니는데....

 

 

<축복받은 집>

갓 결혼한 부부의 생각 차이, 취향 차이..

처음엔 그러면서 맞춰 가는거 아닌가.   이 부부는 대체로 남편이 아내에게 맞춰주는 분위기이다.  아내에겐 축복이지만 남편은 죽을 맛.  그 이후의 얘기가 제일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비바 할다르의 치료>

 발작증을 가진 비바..

그 증세는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치료된다.   친척보다는 동네 주민들의 보살핌이 한몫 했다.

 

<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이민자 부부의 미국 정착기,  어쩌면 줌파 하리리의 부모님 얘기일수도 있지 않을까..  주인공은 아시아대륙 인도에서 태어나 유럽 대륙 영국에서 자리를 잡으려다가, 마지막에는 아메리카 대륙 미국에 결혼하면서 정착하는 게 된다.  세번째 대륙은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꿈의 대륙..   다른 단편들이 정착하는 와중에 힘든 단상들이라면, 이 단편은 마침내 정착해 내는 이야기.. 대미를 장식할 만한 소설이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년을 지내왔다."(30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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