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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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치는 함참 동안 젖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나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없는 걸까?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는 건 어찌되었든 간에 자신이 이 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뿐이었다. 그 일본계 경찰관이 조용한 목소리로 암시한 것처럼,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자격 같은 것이 있든 없든, 있는 그대로.
사치는 다음 날 아침, 건강한 한 중년 여성으로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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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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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요즘 왠일인지 한권의 책을 끝까지 읽을 수가 없어졌다.
이 책을 샀을 때 함께 주문했던 책이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와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인데 두 권다 모두 읽다가 놓고 있는 상태다.
여하튼 <영원한 이방인>을 모두 읽는 데 성공했다.나는 스스로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창래인데 도대체 왜 역자가 있느냐하면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가리가 <가면의 생>이란 책에서
˝시작이란 없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사람은 각자의 차례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소속된다.
나는 그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없었다.
인간이란 모두 어딘가에 더해진 존재다.˝
라고 말하였다.
적절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세계 자체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쓴 글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
세계란 인간이 속해 있지만 인간이 만들어냈다기 보다는 세계가 저절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인간이 어째서 세상에 오게 되고 어째서 사라지게 되는지, 혹은 모든 것은 왜 생겨나고 죽게 되는 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어딘가에 소속된 채로 살아가고 자신의 소속이 아닌 다른 공동체를 배척한다.
나는 특히 주인공과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좋았고 존 강이 지하실의 임시 사무실에서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며 민요를 부르는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바꿔 쓰며 그때 그때 주어진 역할을 한다. 우리는 모두 훌륭한 배우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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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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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인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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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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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오스터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작년에 브룩클린 풍자극을 읽고 환상의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본 후 이제 더이상 오스터에 감동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브룩클린 풍자극은 물론 좋았지만)
신탁의 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야기들의 뒤섞임이다.
`나`는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그 소설의 주인공 `닉`은 또다시 `신탁의 밤`이란 소설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들이 마구 뒤섞여 읽고 있는 내가 `나`인것처럼 느껴지다가 `나`가 소설 속의 주인공 `닉`인것처럼 느껴지다가 소설 속의 소설인`신탁의 밤`이 실제 존재하는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읽으면서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스터가 좋은 작가라는 것에 의심이 들지 않는다는 점은 바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고 책을 읽는 독자 역시 그가 의도한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느껴지는 책이다.
폴 오스터가 좋은 작가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잠시 홀든 콜필드의 말을 빌리자면
˝상당히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나, 오스터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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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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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고요하고 어두운 오후다. 이런 오후는 언제나 낯설다. 
어디라도 될 수 있지만 어디도 될 수 없는 곳이다. 
세탁기에는 빨래가 돌아가고 고양이는 이불빨래를 걸쳐 놓은 식탁의자 위에 올라가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을 끓여와 거실 탁자에 앉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보고 있는 중이다.
일본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서점대상이란 게 있다. 
이 상은 기존의 문학상이 독자를 책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진단에서 생겨난 상으로,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서점 직원들이 주는 상이라고 한다. 
나는 제 2회 서점대상을 수상한 <밤의 피크닉>이란 책의 광고를 보고 온다 리쿠를 알게 되었다.
아침 8시에 학교를 출발해 다음 날 아침 8시에 학교로 돌아오는 행사, 고교시절 마지막 보행제,
자신의 고민을 성숙하게 이겨내는 소년 소녀들, 학창시절의 추억만들기. 라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광고 문구들로 인해 나는 이 소설이 언제 어디에나 있는 성장소설, 청춘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온다 리쿠는 요시다 슈이치와 늘 헷갈렸다. 
그래서인지 나는 전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주제에 온다 리쿠를 남자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 내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게 된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바로 이 이야기가 어떤 책을 찾고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몹시도 좋아한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이 그랬고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의 에피소드8<담배 자국>이 그랬다.
어쨌거나 책을 읽은 후 나는 온다리쿠에 대한 나의 많은 선입견들을 수정해야만 했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미스터리적인 요소 때문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판타지 적인 요소라고 해야 하나, 온다 리쿠는 자신의 작품세계 안에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 
나는 판타지따윈 질색인 사람인데 해리포터니 반지의 제왕이니 같은 영화도 하나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느껴지는 판타지라는 것은 미묘하게 겹쳐진 세계이다. 
 완전히 딱 들어맞지 않고 약간 벌어진 상태로 겹쳐져 있는 두 개의 도형을 떠올려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는 또 하나의 겹쳐지는 원이 있다. 나는 종종 그런 것을 느끼곤 하는데 낯설음이라고 말하면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중이지만 낯설음이라는 말로 온전히 그 느낌을 전달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여기 이곳에 있지만 어쩔때 나는 이곳에 있지 않다.
온다 리쿠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의 세계가 그렇다. 나는 그런 점에서 온다 리쿠의 이야기들을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아, 온다 리쿠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은 미스터리한 경험을 했다.
<흑과 다의 환상>을 읽고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었다.
˝세쓰코가 화장하는 데에 의외로 시간이 걸려서 놀랐다. 화장은 여자마다 각기 미묘한 주의가 드러나기 때문에 재미있다. 
화장법이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그것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다 다르다.˝
그런데 때마침 거실에서 티비를 켰는데 홈쇼핑에서 화장품을 팔고 있었고 쇼호스트가 외쳤다.
˝요즘 화장법은 이렇게 투명 메이크업이죠˝
쓰고 보니 그다지 미스터리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하루키의 우연한 여행자가 떠올라서 피식 웃어버렸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이야기중에 단 하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회전목마>이다. 
그것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좀 뜬금없는 美를 추구하는 일본만화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런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모의 여고생, 학원제국, 남자로 길러진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를 남자인 상태로 좋아하게 된 소년.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휴.
<회전목마>는 사실 스티븐 킹의 <캐리>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흑과 다의 환상>을 읽고 있는데 <회전목마>의 이야기가 또 사용되고 있기에 실망했다.
그렇지만 그런 점이 바로 온다 리쿠의 세계를 진짜 존재하고 있는 세계로 만들어버리는 힘이다.
미묘하게 맞지 않는 도형의 안쪽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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