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눈빛
박솔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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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그만 읽을까’하는 생각을 몇 번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지 않을만큼 여러번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이거, 뭐, 어떻게, 그래서라고 계속 생각해야만 한 문장을 절반쯤 해독할 수 있었다. 명징한 의미는 나중에 찾고 일단 문자 해독을 해야했다. 문장이 통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계속 질문했다. 뭐라고? 무슨? 어? 그래도 잘 안보여서 반만 보고 반은 지나칠 수 밖에 없었고 줄거리도 인물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단편을 읽은 게 분명한데 기억나는 것은 부산, 해운대, 광주, 연극, 상수, 모자 이런 몇 개의 단어들 뿐이다. 단어가 들러붙어 있는 어정쩡해서 겨우 굴러가게 생긴 미요한 색과 질감을 가진 구체 비슷한 것이 굴러가는 것을 애써 집중해서 바라본 기분이다. 느낌이 좋은 지 나쁜 지도 알 수 없어서 나에게도 계속 질문했다. 꽃잎을 떼진 않았지만 좋아? 싫어? 좋아? 싫어? 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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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폐서회, 슬쩍 페소아처럼 발음하며 화씨 451 속 인물들을 상상하다보면 어떻게 책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 아니 책이라고 예외일리 없지 않은가 그래도 도저히 안되겠어서 고개를 내두르고 만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좋아하는 책이든 그렇지 않은 책이든 심지어 쓸모없고 종이 낭비라는 생각에 스러져간 나무와 바쁘게 돌아가는 인쇄기를 떠올린데도 가능할 리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 끌어안고 이고지고 읽고 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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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졸업 - 소설가 8인의 학교 연대기
장강명 외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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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학교, 청소년기를 다룬 단편들이다. 학교와 학창시절이라는 것에 대해 애증을 갖고 있기도 하거니와 도무지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직접 경험은 멀고도 이상했고 간접 경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련히 추억삼아 떠올리면 지금의 학교와 학창시절이라는 것은 너무 이상하고 무서운데 또 거듭 생각하며 파헤치다보면 그 때는 그 때대로 이상하고 무서운 세계였던 것이다. 교련을 배우던 시기부터 교권과 학생 인권의 양립을 생각하기에 이른 지금까지. 어쩌면 이상의 학교와는 너무도 멀게 거칠게 말하면 우수한 노동력의 생산 좀 포장하자면 인재양성에 너무 매몰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재는 과연 어떤 인재인가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현재의 지도층 인사들을 보면 자명하지 않은가. 비교와 평가로 점철된 교육으로 만들어진 인재는 인성도 인격도 때로는 인간성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비약이라고? 글쎄- 통탄하는 마음이 불러온 과장일 수는 있겠지만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다보면 교육이 대체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본질로 회귀한다. 악은 그만 쓰고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더 더 더 궁리해야겠다. 근데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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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설들 속엔 한 주제만 담긴 것이 아니라서 교육실태와 현실을 위한 비판만 요구하지는 않는다. 웃기고 어이없고 재미나고 슬프고 안타깝고 무서운 많은 성장기의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 내가 종종 말하지만 너무 잘난 부모보다는 좀 못난 부모가 낫지 않나 싶다. 게다가 사실 중2병은 중2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평생 치유 불가능하므로 이제는 중2병이 아니라 ‘사람병’ 정도로 이름을 바꿔야한다. 그런식으로 치면 16세인 아이나 41세인 나나 똑같이 ‘사람병’을 앓는 중이다. 동지의식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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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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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삶과 글이 반한 것은 무려 22-3년전이다. 한동안은 그녀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다들 안어울린다고 울프라고 부르며 놀렸지만. 내겐 좀 각별한 작가다. 말하자면 한참이 걸린다. 솔 출판사에서 버지니아 울프 전집이 완간되었다. 그간 미루고 있었는데 하나씩 사모으는 중이다. 버지니아 북클럽이라는 책도 있던데 그것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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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삶을 익히 알고 있는 내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램지씨와 램지부인이 그러했고, 여러 죽음들이 그러했고, 릴리 브리스코우의 마음이 그러했다. 다들 읽기 어려운 작가라는데, 나는 시간이 걸렸을 뿐 즐거웠다. 아니 즐거웠다기 보다는 감탄했다. 지금의 나와 90년 전 소설 사이의 간극이 거의 없어서 놀랐고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세계에 놀랐다. 작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22-3년 전부터 주욱 상상하고 생각해온 작가의 삶과 죽음에 여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요즘 흔히들 맥락없이 이어지는 문장에 ‘의식의 흐름’이라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작가는 지금의 우리와 우리가 뱉어내는 말과 생각에 동의할까? 왜 아직이냐고 한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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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이 누구라고 말하기는 애매하고 주제를 명확히 꼬집기도 어렵다. 그저 인물의 내면이 있을 뿐이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을 주욱 읽으며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올 가을은 버지니아 울프를 다시 만날 생각에 어쩐지 긴장된다.

#등대로 #버지니아울프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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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존재하는 곳에, 우리의 현실에, 황무지와바이런에, 바다와 등대에, 노란 이빨이 있는 양의 턱뼈에, ‘나는나야, 그리고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바로 그거야.‘ 라며 고집스레견딜 수 없이 동의하지 않게 만드는 젊음의 억누를 수 없는 확신에 연장자들의 세계는 검은 윤곽을 둘러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음의 확신은 제이콥이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형체가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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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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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무서웠다. 근 3주는 걸린 것 같다. 역시 너새니얼은 어색하고 나다니엘이 익숙하다. 단편을 이렇게 어렵게 쓰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쉽게 쓱쓱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장편은 기운을 쏙 빼놓을 것만 같아 엄두가 안나지만 일곱박공의 집과 주홍글자를 읽어야겠다. 무시무시한 고전의 마력인지 꼭 읽어야겠다 다짐하는 목록이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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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게 비틀린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실제 같기도 또 환상 같기도 해서 감당하기 어려웠고 호손의 세계에 대해 뭐라고 해석을 붙일 수가 없다. 인간이란 아주 멀리서 보면 모두 엇비슷하고 조금 멀리서 보면 각양각색이고 좀 더 다가오면 종족 특성처럼 닮아있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고 더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서 거기다. 그 거리감 속에 각 인물들이 존재하고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는 기분이 들고만다. 역시 그렇다.

#너새니얼호손단편선 #너새니얼호손 #민음사세계문학전집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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