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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3
로랑 고데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삶 뒤에 죽음이 얌전히(혹은 안전히) 놓인 게 아니라 죽음 뒤에 삶이 있다면 아니 무엇인가 있다면, 혹은 그 사이 무엇인가 있다면’의 가정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도 하고 염원이 되기도 하며 삶 속의 우리를 단순하게 놔두지 않는다. 삶이 더 지나친가 죽음이 더 지나친가에 대해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모두 죽어본 적이 없기에 그저 가정할 뿐이다. 그것이 어떤 가정이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어떤 믿음도 없이 늘 불안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그 가정의 불투명성,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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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죽음을 목도한 사람의 삶은 많은 삶을 목도한 사람의 죽음은 다를까? 이 기이한 이야기가 남긴 것은 대체 무엇인가. 더 슬퍼하고 더 기억하고 더 아파야한다는 말인가. 종종 초현실이라 이름붙은 것을 체험할 때가 있다. 망상이든 백일몽이든 착란이든 간에 들릴 리 없는 음성을 듣거나 실재하지 않는 무엇을 만지고 느낀다거나 기분이나 감정이 어떤 덩어리가 되어 움직인다거나 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고 나면 실존이 비정상적으로 다가온다. 어쩐지 육체와 감각과 영혼이 모두 분리되어 각기 다른 것을 체험하는 기분이랄까.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허구의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인지의 한계와 존재의 불확실성 사이. 명확한 근거를 들 수 없어서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으로 치부되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인지 넘어에 있을 뿐, 인지하지 못하기에 이해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역시 환상의 무엇이 아니라 실재의 무엇이고 그것을 확신하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할 리 없다는 생각은 너무 오만하지 않냐고 더러는 좀 더 잘 아는 이도 있을 거라고 혹은 내 세계가 점점 더 확장된다면 그 영역에도 도달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깨닫기 힘든 진리가 아니냐고. 오래전부터 속으로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