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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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괴물인데, 실제로는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괴물에겐 이름이 없다. 괴물이 생명을 얻자마자 그 존재를 혐오하는 프랑켄슈타인이 버리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미친듯이 매달려 창조해낸 생명체를 버리고 도망친 댓가는 컸다. 모든 것을 잃고서야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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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두번째 만남에서 괴물은 말한다. 나를 창조해낸 네겐 돌보고 교육하고 외롭지 않게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름없는 괴물은 탄생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길 원한 적도 없는데 닥친 세상은 혐오와 멸시로 가득하다. 알아서 배우고 익히고 살아가면서 만난 세상은 괴물 만큼이나 끔찍하다.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저 만들어진대로 탄생했을 뿐인데 모든 것들 감당해야 한다. 괴물의 억울함과 외로움이 사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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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가 인간을 교육하는 방식은 이상하다. 마치 우수한 기계를 창조하는 것처럼 합리와 효율과 능력과 그럴싸한 외양을 요구한다. 왜? 자의에 의해 태어나지 않아서 자의에 의해 살아갈 권리마저 빼앗는 걸까? 인권을 논하기에 앞서 최소 가정에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보다 먼저라는 사실을 깨끗이 지운다. 그것은 의무 이전에 인간의 권리임을 잊어선 안된다. 해설에서처럼 ‘가정에 심리적 닻을 내리지 않은’ 인간으로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 인간에겐 여러 자질과 욕구가 있는데, 그것이 사회화를 통해 교육된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 지 생각해야 한다. 단순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사회의 발전과 번영 이전에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체이다. 나는 대단히 훌륭하고 의지적이고 우러러 볼만한 이웃이나 친구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답고 서로 해를 끼치지 않고 기왕이면 다정하고 기왕이면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이웃을 원한다. 이런 평범하고 선한 이웃들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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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혹은 창조에는 책임이 따른다. 우리는 그 책임을 저버려선 안된다. 아이에겐 사랑과 행복을 가르치고 사회엔 안전과 평등을 요구해야 한다. 대단하고 아니고는 개인의 온전히 선택에 달려있다. 개인의 성취 욕구와 열정에 맡기자. 그 개인을 훌륭하고 대단하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역할도 아니고 사회의 역할도 아니다(물론 영향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지지해야 한다. 온전히 닻을 내리고 안전하게 해야한다. 그래서 행복한 인간이 되도록 그 행복한 인간들이 안전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살만한 세상이 되려면 사회도 바뀌어야 하지만 우리도 온전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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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에는 끝이 없다. 이상한 것은 양육법에도 유행이 있다는 것이다. 끝없이 본질을 찾으려는 나는 납득하기 어렵다.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 외에 무엇이 필요한가. 양육과 교육에 대해 흥분하며 말했더니 성장기 청소년이 말한다. ‘그 사람들도 모르니까 불안해서 그런거 아닐까’라고. 그렇다, 언젠가 내가 뱉은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집에서 학교로 가는 골목길에서의 대화.
우리집은 성적으로 혼내지 않는데, 다른 친구들은 한 두개 틀려도 혼난다고. 학원을 몇개씩 보내고 9시 넘어서 집에 가는 애도 있다고. 왜 부모들이 애들을 괴롭히는 지 모르겠다는 아들에게 말했었다. 그 부모들도 그렇게 배워서 그래. 나중에 힘든 것보다 지금 힘든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래. 부모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라 불안해서 그래.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거야. 내가 말해놓고 잊는다. 쉽게 흥분한다.
아이는 이만치 자라서 나와 키가 같아지고, 나는 왠지 심보만 고약해지는 것 같다. (옆으로만 자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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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가 닮는 것은 부모다. 좋은 것을 닮을 수 있게 노력하자. 결국 피조물이 닮는 것은 창조주다. 바람직하고 닮을만한 어른이되자. 그리고 세상 누가 뭐래도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작심삼일을 삼천만번 쯤 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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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8-13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들도 불안해서 그런 거 아닐까’라는 말에 폭풍 공감해요. 전 아직 부모가 아닌데도 막냇동생 보면 자꾸 성적으로 걱정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숫자보다는 자주 얘기하고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는 데에 초점을 둬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