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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서 2 (2017 플래너 세트) - 그리고 누군가가 미워진다, 177 true stories & innocent lies ㅣ 생각이 나서 2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11월
평점 :
황경신의《생각이 나서 2》가 출간되었다. 몇 년 전, 황경신의 한뼘노트인《생각이 나서》를 읽으며 눈길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던 시간을 기억한다. 오랫동안 구석에 쳐박혀 먼지 풀풀 날리고 있는 나의 옛 일기장을 우연히 꺼내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책이었다. 여행지의 사진도 어딘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작가의 글도 옛 추억에 잠기도록 하는 마법을 부리는 책이어서, 오랜만에 감성을 기름칠해보는 시간을 가졌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런데 2권이 출간되었으니 다시 한 번 옛날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황경신 작가의 책은 항상 기대 이상의 감성을 제공해주었다.『초콜릿 우체국』『한입 코끼리』『국경의 도서관』『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등 작가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았다. 작가는 일상에서 보게 되는 사소한 것들, 스쳐지나가는 무언가에 커다란 의미를 심어주어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상상력또한 뛰어나서 그녀의 책을 읽고 있자면 나의 상상력이 여전히 빈약하다는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생각이 나서 2》는 [그리고 누군가가 미워진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미운 누군가가 아니라, 미워지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제목만 보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또한 '177 true stories & innocent lies'를 보면서 상상의 세계에 빠질 준비를 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집중해본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진실, 거짓, 팩트 등으로 이야기를 갈래갈래 나눌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저 작가가 들려주는 독특한 이야기에 빠져들면 그뿐이다.
살아 날뛰는 생각들을 어르고 달래며 무슨 대책도 없이 사랑에 잠긴 나를 견디던 시간이 있었다. 맨살에 닿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억을 화분에 심고 일상의 먼지로 켜켜이 덮으며, 못생긴 상처나 울퉁불퉁한 슬픔이 꽃이나 나무가 되기를 기다렸다. 잠이 들지 않는 밤과 꿈이 많은 밤이 교대로 드나드는 사이, 너의 아름다움은 구체에서 추상으로, 직유에서 은유로 바뀌어갔다. 사랑은 무력해지고 길은 흐릿한 안개로 가려질 즈음, 기억의 화분에서 말 한마디가 돋았다. 언젠가 내가 네게 건넸던, 어리고 어리석고 불안한 그 말. 나에게는 무거웠고 너에게는 가벼웠던 그 말. 생각이 나서. (책날개 中)
사진과 함께 글이 짤막하게 펼쳐진다. 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에 적당한 방식으로 글과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켜서 마음에 글을 담아내도록 도와준다. 가슴 뭉클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하고, 딱딱하고 메마른 일상에 소녀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사진을 보면서 나만의 생각에 잠기며 옛 기억을 끄집어내는 시간도 좋다. 가끔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필요하니까.
이번에도 나의 옛날 일기장을 들춰보는 기분으로 눈길을 멈춘다. 어떤 사진 앞에서는 깜짝 놀랐다. '혹시 내가 갔던 그 장소가 아니었을까?' 이미 내 마음은 그 당시로 가 있다.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감정, 잊고 있었는데 생생하게 살아난다. 어떤 글 앞에서 멈칫하기도 했다. 내 생각을 멋진 글로 담아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티켓을 끊고 나면, 갈 날이 아무리 많이 남았어도, 어쩐지 '떠나기 전'의 기분이 되어, '떠나기 전의 날들'을 살게 된다. 이를테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책을 읽고 있는 듯, 혹은 2절이나 3절 중간쯤에서 멈춰야 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 하루하루가 맨살에 와 닿는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은 떠나기 전의 시간으로, 익숙한 공간은 떠나기 전 잠시 머무는 곳으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약속은 불현듯 환송회로 치환된다. 그래서인지 딱히 바쁜 일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는데 마음이 분주하다. (107쪽)
살아가면서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감정, 순간의 결심, 사소한 순간 순간이 모여 일생이 된다. 지금보다는 어렸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나저나 그때 적은 나의 일기장은 어디 두었더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곁에 두고 아무 데나 펼쳐들어 읽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끄적끄적 노트에 글을 적어나가듯, 아날로그 감성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 부록으로 '2017 플래너'를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펜을 꺼내들고 무언가 적고 싶어진다. 이왕이면 알록달록한 펜을 집어들고 한 글자씩 새기듯 적어나가고 싶다. 이 책을 보면 그런 마음이 절로 우러나게 될 것이다. 작가의 글을 읽고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싶고, 기억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