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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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 다큐멘터리 성격, 강력한 흡인력…. 이 책을 선택한 세 가지 이유다. 소설을 읽을 때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에 솔깃해지고, 이왕이면 잘 몰랐던 역사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어서 이 소설《HHhH》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실존 인물과 기록에 남은 대사로 집필된 파격적인 역사 소설이라는 점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고, 실화 기반, 날카로운 풍자, 스릴러 등 읽기도 전에 마음을 사로잡는 조합에 궁금증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건 속에 들어가본다.

 

 

이 책의 작가는 로랑 비네. 1972년 파리 출생, 대학에서 근대 문학을 전공하고 슬로바키아 군사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쳤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스탈린그라드 그룹의 보컬과 작곡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첫 장편소설《HHhH》로 언론의 호평을 받았으며 2010년에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세드릭 히메네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 즉,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 불린다.'라는 뜻이다. 이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나치 친위대 내부 정보기관의 책임자로서 나치스의 정치 공작과 비밀 작전을 모두 지휘하는 천재적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다. 유대인 말살 계획인 최종 해결책을 입안하고 추진하였다. 친위대 사령관은 히믈러였지만 사실상 모든 작전은 하이드리히가 지휘했기 때문에 당시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고 불린다'라는 말이 항간에 떠돌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히틀러의 후계자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그의 이름은 가브치크. 실존했던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독자와의 거리감, 시대의 간극을 좁혀주는 느낌이다. '나는 가브치크를 평범한 등장인물로, 가브치크의 활동을 소설 속 행위로 전락시키고 있다.(10쪽)'처럼 지금 시대의 사람이 예전의 사건을 들려주는 식의 전개가 궁금증을 더한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에 역사 소설을 써보겠다고 결심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청소년 시절에 아버지에게 띄엄띄엄 들었던 이야기를 한데 모은 책이라고 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역사소설에서 제일 억지스러운 것은 과거를 그린 죽은 페이지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직접 수집한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사다. 이것은 활사법과 비슷하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 마치 눈으로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대화를 재구성하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인위적인 기교가 너무나 뻔히 보이고 역사적 인물들의 목소리를 가로채어 되살리려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중략)...어쨌든 내가 책에 인용하는 대화도 출처가 명확하고 믿을 만한 자료를 참고한 것이라 꽤 정확하다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재구성한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활사법이 아니라 우화 같은 느낌을 주게 될 것이다. 아주 정확하거나 아주 교훈을 주거나, 실제 실화와 픽션을 구분하기 위해서 내가 지어낸 대화(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는 모두 연극 장면처럼 처리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실화라는 바다에 픽션 문체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32~33쪽)

역사적인 시점 자체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을 통해 한 번 걸러서 들여다본다. 어떤 이야기를 넣을지 뺄지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방식의 소설도 꽤나 독특하고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들려주려는 이야깃속으로 풍덩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작가가 서서히 거리감을 좁혀준다는 느낌이다. 보통 소설에서는 작가는 다 읽은 후에나 궁금해졌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도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 점이 다른 소설과는 달랐고,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완전히 픽션을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실화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되 끝없이 코멘트를 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덕분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소설이다. 새롭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의미이기에 한 편으로는 낯설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신선하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는 늘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준다.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인프라소설(실화, 가상의 내러티브, 작가의 생각이 결합된 소설-옮긴이)이다. (320쪽)

​소설을 쓴다는 것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상으로 작가 자신에게 방대하고 뒤죽박죽 머릿속에 어지럽게 자리잡고 있는 무언가를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작가도, 독자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이전과 이후로 갈리는 것, 글의 힘이다. 좀더 알고 싶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계기를 마련해주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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