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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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씩 알게 되는 작가들 덕에 요즘 나의 눈은 즐겁다. 그라폴리오 하면 대체적으로 일러스트 작가들을 떠올렸는데 요즘은 사진, 글, 그림 등 다양한 재능을 선보이고 있다. 그림뿐 아니라 글을 통해 독자들과 교감하는 작가들을 보면 마냥 그 재능이 부럽다. 그림은 작가도 책을 통해 알게 된 작가인데 검색창에 그림은 이라는 세 글자를 두들기자 그녀의 네임카드가 간략하게 눈에 들어왔다.

'정제되지 않은 서툰 감정을 짓고 그립니다'라는 소개 글이 그녀의 책 분위기와 참 닮아 있어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잠깐만 훑어볼 생각으로 작가의 홈페이지를 띄웠는데 모든 작품을 다 열어보게 되었다. 어쩜 그림들이 내 스타일인지.~~ 완전 그림 테라피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림은 작가는 네이버 '설레는 신인상' 수상 경력도 있는데 그림을 보고 있으니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진다.

일러스트 작가의 책이기에 그림이 주를 이루겠다 싶었는데 글도 제법 많이 실려 있다. 그림의 함축된 의미를 글로 풀어내고 있는듯해서 감정들이 배가 된다.

 

" 눈물은 잘못이 없다."

 

 

 

어쩜 이리도 처연할까. 넋두리에 가슴이 먹먹하다.

사랑이라고 또는 우정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 내 맘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해서,

이 말을 하면 상처받을까 혼자서 애태우고, 이해받지 못한 마음은 또 긁히고.

그러한 마음에 어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글과 그림으로 잠시나마 맘을 닦아보는 건 어떨까.

분명 작가의 경험이 뒷받침된 글일 거라 생각하니 맘고생 많이 하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목 '한 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이도 있구나.

물론 세월은 그런 추억마저도 희미하게 흩어놓아 애틋한 감정도 사라졌지만 잠시 추억놀이에 빠져 보았다.

먹먹했던 순간과 조바심 내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애태우던 그때 내 모습이 떠올라 그럴 때가 있었지 하며 웃어넘겼다.

 

 

사랑은 끝난 후가 더 중요하다.

관계보다 마음을 정리하고 상대를 원망하기보다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먹는다면 상처치유가 훨씬 수월하다.

지 못하는 내가 싫더라도 그것마저도 끌어안고 더 비워내야 한다.

우리는 함께였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 안에서

서로를 사랑했던 것 같다.

- 서로의 시선

결국 그러한 마음을 털어내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도 내 몫이다.

슬픔은 실컷 쏟아내야 한다. 눈물이든 화를 내든지 한바탕 내 감정들에 진지해져야 한다. 그

렇게 넋두리를 실컷 쏟아내야 자신을 보인다. 그리고 나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요한 건 현재 내 마음의 길을 잘 쓸어내야 그 길 위에 새로이 설 수 있다.

모두가 미워지고

예민해진 나조차 미워질 때

눈물은 명약이다.

- 눈물 중에서

마음 셋부터는 긍정의 기운으로 점점 따스해진다.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론 잠시 쉬어가라고, 나 자신을 향한 잣대를 느슨하게 풀어 놓으라고,

지금 내 모습에 충실해야 하라는 말들이 스며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괜찮지 않은 날, 그런 날들의 어느 순간에 이러한 별것 아닌 듯한 문장들에 마음이 조금 괜찮아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나도 우울증과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때 평소 멀리하던 시한 구절에 눈물 대신 헛웃음을 터트리며 위안을 얻은 적이 있다.

정말 별것 아닌 문장 하나에 마음을 추슬렀던 경험으로 문장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으니 말이다.

마음 하나부터 둘, 셋, 넷을 헤아리며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나를 진정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평가의 잣대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과 나를 사랑하고 싶다.

- 우리는 결핍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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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
왕딩궈 지음, 허유영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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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슬픔의 덩어리들을 품고 산다. 그리고 문학은 그런 덩어리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내속의 아픔을 달래기도 한다. 소설 속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 없이 등장한다. 소설은 그런 '나'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진술보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을 요한다. 마치 미완성된 그림에 색을 입혀가고 있는 느낌이지만 색의 조화를 이뤄내기가 어려운 느낌이랄까.

 

'나'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 장애인 어머니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로 인해 인생의 깊은 절망과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온다. 인생의 아웃사이더 같던 그가 직장에서의 소속감도 느끼게 되고 게다가 비루하기 짝이 없다고 여긴 자신의 영혼에 영감을 불어넣어 줄 반쪽을 만나게 된 것이다.

 

추쯔가 바로 나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영감이었다. -p.99

 

그러나 그에게 다시 삶의 비극이 찾아온다. 과연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지진이었을까, 주전자였을까. 아니면 추쯔의 웃음소리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의 가슴 흉터였을까.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낳게 한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데 추쯔도 그중 하나였다. 지진의 충격을 떨치지 못하던 아내를 위해 쇼핑을 나서지만 그녀는 주전자 하나만 산다. 그러면서 함께 받은 이벤트 복권에서 카메라가 당첨되는 행운을 누린다. 다행히도 사진 찍는 일에 몰두하자 서서히 그녀는 생기를 찾아간다. 그때 만나게 된 뤄이밍 선생은 그가 아버지였으면 하는 바람이 잠깐 스칠 정도로 선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었지만 그의 가정을 파탄 나게 한 적이 되고 만다.

 

추쯔가 사라져 버리자 그는 인생을 더 끌고 갈 수가 없다. 모든 걸 포기한 채 바닷가 마을 귀퉁이에서 카페 문을 열어놓고 그녀를 기다리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뜻밖의 남자 뤄이밍과 카페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날 이후 자살을 시도한 뤄이밍으로 마을은 뒤숭숭해지고 갑자기 등장한 그의 딸 뤄바이슈로 인해 분위기가 묘해진다.

 

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연애가 허락된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 p.99

 

 

 

 

나와 추쯔. 뤄이밍과 뤄바이슈.

이들의 캐릭터조차 불분명해서일까. 그들의 관계보다는 각자가 지닌 슬픔의 근원에 더 치중하게 된다.

 

때때로 찾아오는 아버지의 기억은 '나'를 침하시킨다.

정지된 순간들과 못다 한 기억들조차도 추쯔와는 나눌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짐작뿐인 추쯔의 상처에 자신의 아픔을 더 얹고 싶진 않았으리라. 그만큼 그녀를 아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해서일까. 주는 법이 너무나 서툴러 보인다. 일을 통해 얻는 인생의 법칙보다 사랑을 이해하는 일은 영원한 숙제 같다. 그가 그의 모든 것을 그녀와 나누었더라면 어땠을까. 서로의 아픔을 물어봐 주고 헤아려주는 일이 먼저였다면 분명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뤄이밍은 선의를 실천하는 자로 동네에서 많은 이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남의 여자를 탐한 죄책감에 자살을 시도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찍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였던 그에게 추쯔의 미소는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딸 뤄바이슈는 그의 일기장 속에 잠깐 머물러 있던 존재였다. 갑자기 나타나 인질이 되어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무엇을 용서받겠다는 것이며, 또 그의 영혼을 불러낼 방법을 찾을 거라는 말은 또 무엇인지 의구심이 내내 들었지만 그의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데는 성공한 인물로 보인다.

 

아픈 기억을 눌러놓고 사는 이들은 그 기억에 묶인 채 떠밀리듯 살고 있지만 우리는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덮으며 적당히 아닌 척 살아간다. 슬픔은 크기와는 상관없이 슬프기에 슬픈 것이고 때때로 드러나는 슬픔을 위로받기 위해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간다. 한 번도 아니고 그는 두 번씩이나 인생을 강탈당한다. 생에서 자신의 일부분을 잃어본 사람들은 그 나머지 인생을 온전히 살수 없으며 더구나 일상이 없는 이들에게 미래가 그려질 리도 없다. 그녀가 돌아온다고 예전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의 남은 이야기보다 사라진 그녀가 더 걱정스러웠다. 대체 그녀는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처량하게 집을 나서던 그녀의 뒷모습만 내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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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인문학 - 3천 년 역사에서 찾은 사마천의 인간학 수업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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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끔찍한 고통과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사기를 써야만 했던 이유는 하나였으리라. 더 나은 인간 세상을 위해서.

 

인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뺏고 뺏기는 역사가 되풀이되어 왔다. 다만 동물적 본능에서 인간의 윤리의식이 더 자리 잡아갔을 뿐 근본적 약육강식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고전이 필독서로 추앙받으며 끊임없이 읽히는 이유도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온 최고의 인간학 교과서

p.10

 

이 책은 사마천의 사기를 교과서로 삼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 리더의 덕목, 권력의 본질 등 많은 핵심을 뽑아내고 있다. 자유경제시장에서 인간은 물질을 쫓아갈 수밖에 없고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정해도 돈과 권력의 유혹은 달콤해서 욕심이 끝이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과 지성이라는 무기로 얼마든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능력이 있고 얼마든지 인생의 안목을 길러낼 수 있다. 권력자에게는 덕망을, 리더에게는 폭넓은 안목이 중요시되는 만큼 고전은 그러한 인생 공부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능력을 과신하고 부를 계속 탐하는 자는 결국 화를 자초하기 마련이다. 물론 권력은 항상 위태롭기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자리이긴 하지만 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만 보아도 과욕이 결국 몰락의 길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리더는 무엇보다 겸손과 경계를 중요한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 노나라의 주공이 그러한 덕목을 갖춘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되고 있는데 역사 속 이러한 위인들의 사례는 꼭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반면 지나친 과욕이나 오만함으로 인해 자멸한 인물들의 사례는 더욱 지나치면 안 된다. 성공과 실패에 절대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명제에 귀를 쫑긋한다면 항우와 유방 두 사람이 어떻게 인생의 궤도가 달라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출신성분부터 달랐던 두 사람이지만 그 둘 사이에 결정적 요인은 자만과 오만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줄도 안다. 유방이 가진 장점이라면 바로 이러한 점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혼자서 독불장군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나라가 대국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최고의 리더에게 필요한 요건들이 보인다. 그리고 나라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경계해야 할 점도 살펴볼 수 있다. 대국이 되기까지 눈여겨볼 점은 외부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나라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반드시 직시해야 할 점이다. 이는 특히 학력, 지연, 혈연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집단일수록 더욱 깨 부셔야 할 자세다. 한 개인의 역량만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강단이 오너에게 필요하다.

 

진시황은 비록 폭군으로 역사에 남았지만 그가 이룬 천하통일이라는 업적에서 그의 성공 능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때를 기다렸다 단호하게 칼을 뽑아 들었기에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군대를 다루었으며 다른 대신들의 말을 경청하며 분별력을 키워나갔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통제하였기에 신하들로부터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통일 후 성공에 도취되어 불로장생을 꿈꾸다 허망하게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인생 굴곡을 보며 리더의 자질을 새겨볼 수 있다.

 

전쟁은 무조건 싸워서 이긴다고 이기는 것만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이 최고라고 볼 수 있듯이 고도의 심리전은 리더에게 특히 요구되는 점이다. 물론 이는 경험과 연륜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적을 알고 여러 상황을 고려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시대 최고의 전략가라고 불리는 한신과 항우의 심리전을 보며 그들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통찰력도 타고나는 재능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5장에서는 범려의 성공 비법을 소개하며 부를 거머쥘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소개하는데 시장의 흐름을 꿰뚫는 능력이야말로 누구나 아는 바지만 참 어려운 능력이기도 하다. 한발 먼저 예측하고 앞서가는 능력을 말하자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IMF를 등에 업고 부를 쌓은 이들도 떠올라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사마천은 서민 부자를 향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는데 즉 능력껏 부자가 된 이에게 어느 누가 험담을 하겠는가. 물론 부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지만 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기>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짧게 발췌한 부분만 보더라도 인간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엎치락뒤치락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그늘 아래 도덕적 선과 욕망의 경계에서 취해야 하는 올바른 행동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 전쟁, 권력, 부 아래 자행된 살생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마저도 교훈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끊임없이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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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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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질 좋은 양분을 찾아 산문들을 뒤적인다. 이미 몇 권의 책을 사두 고도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하건 '어린 시절 나는 한 마리 소를 사랑했다'라는 첫 문장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마리 소'와 '소 한 마리'는 분명 그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이야기는 시작 전부터 울컥함이 밀려온다. 그것은 소의 인생이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소가 도살직전 머뭇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영상을 본 뒤로는 그런 생각이 더 하다 )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다 보면 그때는 몰랐던 깨달음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당시는 절대 모를 진리들이 지금에 이르러 하나 둘 그럴듯한 의미를 찾아간다. 인생의 깨달음은 후회와 함께 뒤늦게 찾아온다는 점에서 나와 다르지 않음에 반갑고 말의 결함이 내가 살아온 삶의 결함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문장에 격하게 공감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처럼 모호한 단어들을 하나씩 하나씩 명백한 단어들로 뒤바뀌기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p.52

 

소와의 애틋한(?) 추억은 소설가라는 그의 꿈과 소의 목숨을 맞바꾼 것에 대한 헌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소는 그의 운명대로 간 것뿐이라고 여긴다면 결코 문학이 될 수 없다. 인간이라면 가련하고 측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시장에 소를 내어 놓고 술 없이는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들처럼 말이다. 그냥 소 한 마리를 키운 것이 아닌 한 마리 소로 인해 그는 인생의 슬픔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여느 산문집이 그렇듯 작가의 인생과 생각이 문장의 곳곳을 밝히고 있고 소설가로서의 지닌 마음가짐이나 가치관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들, 여러 여행지에서 새로이 만난 경험, 그가 읽은 책에서 얻은 깨달음 등을 읽으며 나의 모자란 부분을 메워갔다. 나는 글만 읽고서 작가가 꽤 연륜이 있는 분인 줄 알았으나 나와 별 차가 나지 않아 놀랐다) 누군가의 글이 내 인생의 굴곡을 다듬어주고 편견과 욕심을 내려놓게 해준다면 그만한 즐거움도 없을 테니까.

 

소 때문에 울컥하다 수박이 아니라 참외 때문에 우프기도 했고 버스를 향해 양팔을 휘저으나 속도를 못 내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라 빵 터지기도 했다. 어린 시절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의 모습도 지금 그 나이가 되고서야 이해하게 되듯 부모의 역할보다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 앞에서 아버지는 아마도 인생의 절망을 경험했으리라. 그러나 불행을 견디는 쪽을 택하신 아버지의 삶도 틀렸다고 볼 수 없듯이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는 법을 들여다볼 수 있다. 버스를 향해 달리던 노인으로 인해 사람과 세계에 대한 예의를 깨닫고, 공터에서 피어난 개망초를 바라보며 인간애를 다시 생각하며, 어린 시절 편견이 불러온 잘못에 뜨끔했던 순간을 꺼내보고, 품앗이를 통해 인간 노동력의 가치를 재고하는 일은 우리가 늘 고심하며 살아야 할 것들이다.

 

노인에 관한 명상에서 유독 속도를 늦춘 것은 요즘 부쩍 부모님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서이다. 자식의 손길이 절실한 노인들을 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이 요한다. 그래서 작가의 생각에 더 기대어 보았다. 아버지의 절망과 어머니의 두려움을 헤아려 보는 것,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던 작은 할머니의 진심, 자취방 노부부를 돕게 되면서 깨달은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한층 관계를 성숙하게 해준다. 그들의 언어에 나의 언어를 덧붙임에 있어 편견과 오만을 버려야 관계를 오래 지켜나갈 수 있음을 알지만 내가 덜 영글어서일까. 여전히 진심으로 체득하지 못한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년을 장담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금 노인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맞추며 살아야겠다.

 

삭막한 세상에서 인간혐오와 인간 상실에 지쳐가는 이들을 위한 한편의 글 '어느 무화과 씨의 꿈'이라는 우화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으니 이제 인간이 되어야 한다. p.159는 말이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올 줄이야.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해서 원작을 찾아보았는데 짧은 이야기지만 깨닫는 바가 많았다. 무화과 씨의 바람대로 인간들이 교훈을 깨닫고 나아갔다면 인류는 훨씬 인류애를 실천하며 살아갈것이다. 그러나 늘 우리는 인간이라는 고민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벽을 허물다 자신의 삶마저 포기한 무화과 나무를 보며 그것이 끝이 아님을, 살아남아 깨우친 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의 희망은 남았노라고 p. 90

 

그런 이유로 문학은 절망을 다루고 그 절망을 노래하며 꿈을 꾸게 해 준다. 더 나은 인간 세상을 위해. 깊은 절망은 깊은 사랑과 닮은 구석이 있다. p.78는 작가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인 이유도 절망과 슬픔이 이끄는 문학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토론하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문학 코드가 별로라는 글들을 보기도 하고 자기 계발서는 읽어도 문학 따위는 별로라는 이들의 의견도 본 적이 있다. 나도 어떤 소설은 적응이 안 되기도 하고 난해한 글에 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깊은 절망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는 것보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공감하는 게 더 필요하겠다. 사회는 더 각박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는 사회로 인해 아픔을 공유하는 법을 잊고 살아서는 안된다. 아픈 자식을 잃은 이들과 사라져간 젊은 노동자의 꿈을 보며 그들의 가슴을 후벼파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불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잠복해 있다가 드러날 뿐이라는 사실을, p. 95 요즘 부쩍 느껴서 이 문장에 크게 공감했다.

 

지독히도 모자라고 부족한 시절을 지난 문학에 대한 성찰이 그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그는 왜 쓸 수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오래전 소설가를 꿈꾸었고 여전히 글을 쓰면서도 소설가가 꿈이라는 작가. 헛것들과 불한당의 소설사라는 두 미니픽션을 읽고 나니 여태껏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문학의 진정성은 고독한 이들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워가는 이들의 몫임을 되새겼다.

 

무엇을 기억하든 실제로 기억 가는 건 사람과 사랑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p.241

이야기꽃은 남루한 삶 한가운데서 피어나 우리의 사연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꽃이다. p.318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사랑이 없이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어딘가에서 절망을 위로할 좋은 문장들과 씨름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문학이 우리에게 하는 역할이 무엇일지 고심해 보게 되어 좋았다. 함께 걷는 이의 옷깃을 여며주는 일, 미끄러질까 옆 사람을 꼭 잡아주는 다정함처럼 문학은 늘 우리 곁에서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내 슬픔의 근원을 찾다 나 또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그곳엔 가정에 무심한 아빠와 죽어라 일만 하던 엄마의 모습과 늘 혼자 집을 지키던 내가 보였다. 결국 아버지와는 꼬인 매듭을 풀지 못한 채 끝나버렸고 지금은 엄마와 살면서 엄마의 낯선 모습들에 적잖게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을 되새길 특별한 추억이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밀려오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나이가 되다 보니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에 안쓰러운 마음도 생겨 난다.

깨달음의 순간은 오한이 찾아오는 순간과 비슷하다. p.36

 

지금은 나 자신의 상처보다 내 아이의 상처가 더 걱정되고 그럴 때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생각이 많아지지만 결국은 자신의 몫일 것이다. 다만 나는 그 곁에서 문학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 하루 햇살이 가장 좋은 시간을 걷다 문득 내리쬐는 볕을 잡아 주머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볕이 더욱 소중한 계절이니 말이다. 아이의 주머니와 두 손에 따스한 온기를 담아주며 살아야겠다. 아이는 나의 어린 시절보다 더 따스한 기억을 갖고 살아가길 바라기에.

 

퇴근시간 무렵에 길거리에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피곤한 얼굴로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거나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오른손을 달래기 위에 왼손을 살포시 얹을 힘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 아이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다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점점 드물어질 테고 대신 마음을 다쳐 돌아오는 저녁이 많아지리라.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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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람이 불어도 네가 있다면, - 홀로, 그리고 함께 그려가는 특별한 하루
로사(김소은)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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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그림은 두고두고 보고 싶은 법이다. 언제든지 꺼내보며 심신을 달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도 찾아보게 된다. 요즘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그림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어 정말 반갑다. 따라 그려보는 재미와 함께 하나 둘 소장하는 재미도 있으니 말이다.

수채화의 맑고 산뜻한 느낌은 몽환적 분위기를 불러온다. 투명한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마저도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라폴리오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로사님의 그림은 일상을 편안하고 사랑스럽게 잡아낸다. 가족들의 일상과 사랑스러운 이미지에 빠질 수 없는 고양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사계절을 담뿍 담아낸 소박한 일상들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한 계절을 보여주는 순간들이 이처럼 다양했었나 하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이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도 생겨나고 내가 지난 계절 속의 내 모습은 어떠했나 떠올려보기도 했다.

 

 

겨울

 끝 그리고 시작,

 

 

 

/ 눈이 오면 /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 그리운 것들이 늘어갑니다.

겨울은 춥고 외로운 느낌이지만 그만큼 그리운 것들이 늘어나는 계절이다. 온기가 그립고, 보고 픈 이들이 부쩍 떠오르고, 하얀 세상에 추억마저도 그립게 한다. 겨울은 온몸을 얼어붙게 하지만 조그만 온기에 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끼게 된다. 담요, 난로, 따뜻한 방구석, 군고구마, 이불 속, 귤껍질, 뜨거운 커피 한 잔, 첫 만남, 아이의 미소, 포옹, 휴식, 크리스마스, 새해 덕담 등 겨울이어서 더욱 어울리는 소재들이 멋진 그림으로 태어나는 순간 지금의 한파 정도는 잊을 수 있지 않을까.

 

 너와 함께 다시,

 

 

 

/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

어느새 가벼워진 바람, 몸도 마음도 가볍게 날아갈 것 같은 기분! 오늘은 더 멀리까지 가볼 거예요.

봄의 기운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희망을 불러온다. 온통 연둣빛 잎사귀들과 밝은 컬러의 꽃들은 세상 공기를 한층 가볍게 만든다. 그래서 때론 정신도 몽롱해져 늘어지는 순간도 온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나 꽃구경이나 떠났으면 하는 나날들로 일상과 싸워야 하지만 봄의 생기가 젖어들 때쯤 한층 기분도 되살아난다. 벚꽃, 정원, 새 단장, 씽긋, 봄나들이, 낮잠,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것들 말이다.

적절한 온도는 괜스레 마음을 들뜨게 한다. 창을 뚫고 거실로 길게 내려앉은 햇살 위에 누우면 심장도 따뜻해진다. 새로운 계획으로 분주해지고 화초도 한두 개 장만하며 봄을 맞이하지만 봄은 책을 읽기가 힘든 계절이기도 하다. 봄바람 따라 자꾸만 나가고 싶어서~~^^

 

 여름

 더워도 함께,

 

 

 

/ 나뭇잎 아래 휴식 /

가만히 앉아 쉬다 보면 나뭇잎들이 건네는 말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 여름이 왔다는 소식.

여름이면 나무그늘만 떠오른다. 물론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나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그 아래 있으면 제일 행복할 것만 같다. 그래도 여름 하면 시원한 바다지 않겠는가. 파도가 모래와 만나는 아름다운 실루엣은 예전에 보았던 멋진 바다 사진도 떠오르고 지난여름바다의 추억도 스친다.

바다, 나무그늘, 습기, 물놀이, 휴가, 햇볕을 머금은 빨래, 장마, 여름방학, 수박, 열대야 여름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도 한가득이다. 열대야는 힘들었지만 오늘 따갑게 시린 찬바람 때문일까. 그마저도 그리운 날들이다.

가을

 외로워도 괜찮은,

 

 

 

/ 가을이 내린다 /

여름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어느덧 서늘해진 온도. 계절과 시간은 참, 거짓말을 못하지.

정말 이 더위가 언제나 끝나려나 하지만 입추가 지나면 희한하게도 피부에 닿는 바람에서 찬기가 전해진다. 그런 바람에 언뜻 느껴지는 촉감의 즐거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점점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매일 들여다보면서 계절의 소중함도 느끼고 가을의 따스함은 놓치기 싫어 주말마다 집을 나선다. 가을은 그만큼 짧기에 부산한 계절이다. 단풍, 낙엽, 가을 소풍, 독서, 따뜻한 차, 환절기, 바쁨, 할로윈, 여행, 가을바람, 과실 등의 수식어도 떠오르지만 사색이 깊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단풍의 색깔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을은 낙엽 위를 걷는 것

만으로도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상이나 여행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상상이상의 그림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그 계절을 지나는 바람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사는 건 무엇일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함께 하는 이들을 떠올려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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