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뜻풀이 초등국어사전 2021
전광진 엮음 / 속뜻사전교육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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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어사전을 활용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휴대폰만 손에 있으면 손쉽게 빨리 찾아볼 수 있으니 사전의 활용도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전의 필요성은 독서량이 늘고 글을 쓰면서 간절해진다.

나도 큰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들고 다니기 좋은 작은 사전을 사준 적이 있었다.

자주 활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학년 때는 담임선생님들께서 따로 준비하라고 해서 좀 더 큰 사전도 샀었다.

분명 급작스러운 어휘력 상승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는 추천사에도 언급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기초교육이 다른 회원국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도 어휘력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모르는 단어를 보면 찾아보려 하지 않거나 설상 찾았다고 해도 대충 의미만 보고 지나친다.

그러다 보니 진정 단어의 속뜻을 파악 못하니 문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진열용 사전이 아닌 아이들의 손에서 닳고 닳는 학생용 사전을 만들고자 하였다.

 

 

 

옆면이 반짝반짝한다. 사전이 더 빛이나는듯하다.

해당 자음 부분에 홈을 만들어 놓아 찾는 시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겠다.

확실히 기존 사전과 비교해봐도 찾기가 수월하다.

 

 

 

 

편찬 목적과 사전의 기능을 살펴보니 속뜻 학습의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이 사전은 속뜻 풀이 국어사전으로 초등생들이 활용하기 좋게 구성이 되어 있다.

학습용 어휘 2만 8000개를 담고 있으며 한영, 한한, 한자 자전 기능도 겸하고 있다.

(아이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보고는 음복[飮福] 뜻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초등 사전에는 실려있지 않은 단어였다.)

영어뿐 아니라 한자어까지 풀이해 놓고 있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다기능 다 효과라는 말을 실감하겠다.

단어 옆에 한자풀이, 영어 단어가 기재되어 있고 한자 뜻을 이용하여 의미를 풀어놓으니 한자도 한 번 더 알게 된다.

비슷한 말과 반대말도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되고

특히 가꾸다/꾸미다, 심하다/더하다, 나다/생기다, 낮다/얕다처럼

비슷한 듯 다른 말을 눈에 띄게 정리를 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문장을 쓸 때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어떤 문장에 어떤 단어가 더 어울리는지 익힘으로써 좋은 문장 쓰기에 도움이 되겠다.

 

끝부분에는 부록편도 내용이 알차다.

속담 및 관용어, 고빈도 단음절어 한자풀이, 만화 고사 성어뿐 아니라

빨리 찾고 많이 아는 방법과 꽃잎달기놀이학습을 통해 사전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둘째 딸아이가 사전을 보더니 우와 단어가 이렇게 많았냐며 놀란다. 끝말잇기할 때 좋겠다며 딴소리다. ㅋㅋ

 

아이가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면 급한 마음에 검색한 뒤 뜻만 일러주었었는데

간혹 그 뜻조차도 말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전을 쥐여주고 나서는 모르는 단어를 직접 찾아보게 했는데

한자어를 보며 의미를 익히니 훨씬 이해가 잘 된다고 한다. 덕분에 나도 편해진듯하고.

 

 

 

 

직접 집에 있는 사전과 비교해보아도 훨씬 장점이 두드러진다.

아이가 책을 보다 총독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는데 한자어를 풀이가 되어 있어 좋고

영어 단어도 한 번 더 익힐 수 있었다.

앞으로 쭉 활용하면서 많은 꽃잎을 달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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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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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지가 신의 한 수다!

 

이 이야기 속엔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랑 없는 세계(식물연구)를 사랑하는 대학원생들과 요리를 사랑하는 엔푸쿠테이(양식당) 사람들.

 

내용의 절반이 식물 실험에 공을 들이고 있어 혹 작가가 식물학 전공인가 했다. 그만큼 실험 과정이 정교하고 디테일하다. 물론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내 두뇌는 회전력이 떨어져서인가 뭔 말인지 착착 들어오지 않는다. 애기장대라는 식물부터 찾아보니 식물연구의 모델로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찾아보니 정말 애기 같이 잎도 꽃도 작고 귀엽다.

 

애기장대 특징 :

발아 해서 다음 씨가 맺힐 때까지의 1세대 기간이 약 6주로 짧고, 화학물질을 쓰면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체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또 크기가 작아서 유리 용기 안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고 게놈 사이즈가 작다. 이러한 이유로 식물 연구를 위한 모델 식물로 많이 활용된다. 2000년 말에 전체 게놈의 염기 배열(약 1억 2500만개)이 거의 완전히 해독되고 2,400종의 유전자도 발견되었는데, 유전자 중에는 벼나 밀의 유전자와 공통된 것이 많다.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후지마루는 훌륭한 요리사가 꿈이다. 조리학원에서 갈고닦은 실력과 현장 알바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갈고닦아 줄 식당도 직접 선택하는 꼼꼼함도 있다. 두 번 만에 입사에 성공하여 나름 엔푸쿠테이의 모범직원으로 거듭난다. 식당은 소박하다. 돈까스와 햄버그와 오므라이스가 자꾸만 등장해서 밤샘 독서를 힘들게 했다는것만 빼면 찾아가고 싶을 만큼 정겹다. 참 찐 고구마도! ㅋ 식당주인장(쓰브라야)과 종업원(후지마루)의 케미도 일본 소설에서 자주 접했던 분위기라 익숙한 느낌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에 유독 검은 정장 때문에 살인 청부업자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의문의 손님이 있다. 후지마루는 유독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 식당은 젊은 후지마루덕에 심야 배달을 시작한다. 마침 정체불명의 이 남자 쪽에서 제일 먼저 배달 전화가 온다. 그것도 점심 식사를.

 

배달지는 대학교 자연과학부. 대학을 다니지 않은 후지마루에게 대학 캠퍼스는 낯설고 신기하다. 세월의 깊은 맛을 잔뜩 머금고 있는 건물 속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은 더욱 신비스럽다. 후지마루는 온통 초록 생물들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마음이 저절로 끌리고 식물학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몇 번의 배달을 오가며 그는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다. 유독 독특한 그림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토무라와 대화를 트기 시작하고 자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의 식물에 대한 열정에 스르륵 매료된다. 모토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관심을 보이는 후지마루가 귀찮지 않은가 보다. 실험 현미경까지 들이밀며 식물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 그녀의 열정이 후지마루의 심장을 뛰게 했고 수줍게 고백도 하게 된다. 하지만 며칠 뒤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식물 때문에 인간과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니!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p.96

 

식물의 세계에 빠져있는 그녀의 틈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음을 육감적으로 느끼지만 후지마루는 그런 그녀의 삶도 이해하고 인정한다. 수수께끼 같은 그녀뿐 아니라 그녀를 홀딱 반하게 한 식물에 대해서도 더욱 알고 싶어진다. 참 쿨하고 멋진 남자가 아닌가. 게다가 가토에게 받은 선인장이 시들자 다시 봐달라고 가지고 와선 "제가 시들게 한 걸까요?"란다. 우째 이 착한 남자.ㅎㅎ

 

 

 

 

 

이야기는 식물에 뒤지지 않는 신기함을 지닌 마쓰다 교수를 둘러싼 대학원생들과의 에피소드를 주로 담고 있다. 물론 후지마루도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배달하면서 더욱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 덕에 학생으로 오인받아 고구마를 함께 캐며 노동의 가치도 나누게 되고 교내 행사를 잘 치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같은 옷만 고집하는 마쓰다 교수를 보고 원생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의식주의 의는 포기한 것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의 지도 아래 원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정의 에너지를 쏟는데 그가 왜 검은 정장만을 고집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밝혀졌을 땐 충분히 그의 그런 마음이 전해졌다. 선인장을 사랑하는 가토는 흔하지 않은 사랑에 주눅 들고 자신을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용기 있게 나서기로 마음먹자 그를 알아주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후지마루는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줌을 실감한다.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거듭 생각한다. -p.229

 

그들의 열정에 나도 식물을 향한 애정도가 상승함을 느낀다. 녹음이 주는 신선한 공기부터 당장 입안을 즐겁게 해주는 과실들.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변화로 우리의 눈과 감성을 행복하게 해주는 풍경들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온다. 사랑 없는 세계에 열정을 쏟아붓는 이들 덕에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맙기까지 하다.

 

나무나 풀에 잎사귀가 있는 건 당연하니까 새삼 잎사귀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말을 듣고 보니 신기하다. -p.43

 

왜 느티나무는 이런 모양으로 가지를 뻗는 거지? 왜 식물에 따라서 잎의 모양이 달라야 하는 거지? 왜 잎이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방식도 다 다른 거지? 알고 싶다. 알고 싶다. 식물은, 그리고 우리는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자신의 모양을 정하는 걸까. 어떤 방식으로 생명 활동을 하는 걸까? -p.110

 

역시 열정을 지닌 자는 열정을 지닌 자를 이해할 수 있나 보다. 신기한 순간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누리는 일도 벅찰 것이다. 모토무라는 애기 장대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달려가고 있다. 그런 모토무라의 열정도 매력적이지만 후지마루가 그런 다양한 이들의 삶의 방식을 대하는 모습도 착해서 예뻤다. 나쁜 사람이라곤 볼 수 없는 그런 착한 이야기라 사랑이 가득하고 충만한 느낌이다.

 

생명의 순환은 놀랍고 신기하다. 식물이 살아가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사랑은 어쩌면 그보다 더 정교한 감정을 지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 아는 것보다 모르기 때문에 늘 새로운 건지도.

후지마루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으나 모토무라를 보면서 식물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 이를 만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다.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인간이니까.

 

사람은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식물을 아는 것도, 연구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도, 스위트포테이토를 맛보는 것도 할 수 있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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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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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새움 출판사 블로그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에 관한 글을 본 적 있었다. 오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번역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었던 내용들이라 내겐 참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물론 논쟁도 격렬하게 있었나보다.) 덕분에 고전을 선택할 때 좋은 번역가의 글을 선택하고자 하는 노력도 기울이게 되었다.

 

이방인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번역이 독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캐릭터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되는지, 혹은 소설의 전반적인 기류가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어쩌면 이방인처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는 더욱 그럴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을 단순하게 치부해버리면 자칫 무기력하게 살다 살인이나 저지른 놈으로 오인할 수도 있으니까.

 

그 시시비비는 첫 문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엄마가 죽었다 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벌써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주인공의 성격이나 모자 사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정서 번역가는 돌아가셨다로 번역을 했다. 또한 오늘이라는 시간적 의미가 문장의 어느 위치에 와야 글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지도 언급하고 있다. 최대한 의역을 피하고 원문에 충실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번역가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어 신뢰감이 갔다. 이전에 타 출판사 책을 읽었다면 새움 출판사 번역본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전보 한 통을 받는다. 엄마의 부고 소식이다.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말인즉 엄마의 죽은 날과 전보 일을 혼동한 뫼르소의 착각일 뿐이다.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양로원을 찾는다. 그는 아들이 아닌 마치 손님 같은 느낌이다. 죽음에 슬퍼하기보다는 낯선 분위기와 침묵이 더 힘들어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한다. 그는 일상의 흐름(일하고 주말에 쉬는)이 깨지는 것이 싫고 조금의 변화도 귀찮다.(엄마의 부고를 알리는 일 혹은 상사의 파리행 제안 거절) 죽은 엄마의 얼굴을 굳이 봐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고, 엄마의 나이도 모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의 지인이 살짝 짜증스럽지만 건네는 밀크커피는 달다. 장례가 끝난 다음 날은 해변에서 수영도 하고 여자친구를 만나 유쾌한 시간을 보낸 것도 모자라 코미디 영화도 보고 밤도 보낸다.

 

이쯤 되면 그의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든다. 그렇다고 그런 그가 어딘가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나는 그가 엄마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고 늙어서 귀찮아한 건 아닐까 했다. 양로원에 간 날 엄마가 내내 울었다고 했고 나중에 엄마는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진다는 말도 아들에게 했기에.

법정에서 엄마를 사랑했냐는 집요한 물음에 사랑했다고(모든 이들과 같이) 증언을 한걸 보면 엄마를 미워한 건 아니다. 단지 그는 추모의 방식이 남들과 달랐을 뿐이다. 평범하게 직장도 잘 다니고 있고 아파트 이웃들에게는 그럭저럭 친절하다. 굳이 해가 될 것 같지 않으면 평판이 나빠도 상대가 원하면 친구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그의 태도는 어딘가 모호하다. 사랑이나 애정의 깊이감은 싱겁고 밍밍하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건 맞다. 거짓을 싫어하고 계산적이지 않고 그냥 감정의 흐름대로 산다.

반면 무신경한 면도 있다. 레몽의 애인(무어인)과 애인의 오빠(아랍인) 사이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레몽의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고 그와 계속 어울린다. 결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휘말리며 인생이 끝장나고 말지만.

 

 

 

 

 

하지만 그의 이런 태도는 그가 살인을 저지른 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아무리 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배심원 제도 안에서 법보다 도덕적 관습과 신념이 우선시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인간적이고 도덕적인지를 판가름하게 된다. 한 인간의 됨됨이 이것은 보통 우리가 범죄자를 판단할 때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조건이다. 그랬기에 뫼르소도 엄마의 죽음 이후 행실이 발목을 잡는다. 내가 배심원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미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태도, 한방을 쏘고도 확인 사살을 한 듯한 태도는 소시오패스를 의심했다.

 

변호사는 자신만 믿으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감옥에도 대부분이 아랍인이었듯 아랍인 정도야 이겨먹을 수 있다는 논리다. 태양이 아닌 칼 때문이라고 증언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뫼르소는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증언한다. 그 바람에 변호사는 그의 진술을 배제하고 진행한다. 질문은 오로지 엄마의 매장이 포커스가 되고 증인들의 증언들은 그의 죄목에 살을 덧붙여 나간다. 뫼르소는 냉정하고 무심하고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적대감을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출구는 없어 보인다. 단지 햇볕 때문이었다는 진술(구체적 진술은 거부했지만)은 살인의 구체적 동기가 될 수 없다. 그는 매정한 살인마일 뿐이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논리에 불운은 해당하지 않는다. 감옥에서 읽은 체코슬로바키아 사건의 경우도 얼마나 황당한가.

 

그는 단순히 태양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전의 심리상태를 보면 그가 극단적으로 태양과 빛에 민감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갑작스레 쏟아지는 불빛으로 인해 눈앞이 캄캄해졌다. -p.22

흰 벽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불빛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p.23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p.32

그처럼 온갖 사람들과 빛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눈이 피로해졌다. -p.41

그것은 내가 엄마를 묻던 날의 것과 똑같은 햇볕이었고 -p.86

 

어찌 보면 그는 심리적 공허함이나 삶에 무기력해 보이지만 나름 삶의 안정감은 원했다. 단지 그의 행동들이 인류가 만들어 놓은 삶의 가치관에 어긋나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가 저지른 살인을 불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뫼르소는 법정에서만큼은 철저히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에게 내려진 사형은 그의 죄의 대가가 아닌 이방인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얼굴이 아닐까.

 

대부분 삶에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자신을 포장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기만하며 산다. 나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진언할 자신이 없다. 그랬기에 뫼르소는 부속 사제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대체 신이 무얼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점점 삶의 부조리를 확신한다. 자신에게 불어온 부조리의 바람이 자신의 행적을 지워버릴 것이라는 것을. 그 어떤 행위의 결과도 무의미함을 깨닫자 오히려 자신의 죽음 앞에서만은 당당해지고자 한다.

 

그의 삶의 태도를 보았을 때 뫼르소를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겠다. 장례식에서 보인 그의 행동을 보며 자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글을 마주하면서 머리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조금 서글픔이 밀려왔다. 무감각한 현대인의 감수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왜 우리는 죽음이 임박해서야 살아있다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되는 것일까. 누군가가 나를 이방인으로 밀어내기 전에 내 삶 안에서만이라도 온전한 나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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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의 비밀스러운 밤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2
김아로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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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반영하듯 캐릭터들의 생김새나 성격이 요즘 젊은 세대를 반영하고 있는듯하다.

복잡한 거 싫어하고 낑낑대며 열심히 살지 않고 스스로를 아끼며 재미있게 사는 것.

어쩌면 이 쉬운 것들이 말처럼 안 되니까 위안을 얻으려 하는 걸 수도.

이런 유의 책은 정말 연령대별로 흡수률이 다를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주로 샐리 자체를 보겠지만 난 주변 친구들이 더 보인다.

다들 사는 게 바빠서 인맥관리조차 제대로 안되다 보니

늘 나와 마음을 나눌 친구가 참 그리워서 샐리를 챙기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라인 프렌즈 오리지널 캐릭터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시리즈

 

 

 

 

샐리는 내가 그닥 즐겨 쓰던 아이콘은 아니었다. 난 주로 초코와 제임스를 애장했다.

이번에 만난 책을 통해 샐리를 잘 알게 된듯하다.

샐리는 참 좋겠다.

주변인들 신경 크게 쓰지 않고, 안간힘도 쓰지 않으려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도 하루하루가 즐겁다.

게다가 글도 잘 쓰나 보다. 이런 능력자 같으니라고.

 

나도 새해 계획이 지난해처럼만 살자다.

브라운처럼 어차피 무수히 늘어놓은 계획들로 좌절을 맛보느니

작년 페이스를 유지하며 한 가지 정도를 더 추가하는 게 속 편하다.

샐리처럼 오늘 하루만이라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낀다면 일 년이 보람차지 않을까.

 

 

 

샐리의 엉뚱한 매력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친구다.

뜬금없이 선물을 준비해서 친구들을 긴장시키거나,

어마어마한 음식을 준비해 놓고도 차린 게 없다며 계속해서 음식을 내오고,

출근이 없기 때문에 야행성인 샐리는 직장인의 노고를 이해 못 하는 엉뚱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 와중에 직장이 없는 샐리의 주머니 사정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의 모습도 재밌다.

 

 

 

 

샐리는 초긍정의 소유자다. 여름휴가 내내 비가 내려도 걱정은 미뤄두고 주어진 상황을 즐기려 한다.

순식간에 만든 계획에 모든 이가 만족할 순 없지만 긍정의 기운을 친구들은 믿고 따른다.

오죽하면 친구들은 샐리가 하는 걱정이라곤 자신이 너무 귀여운 것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정말 샐리도 걱정이 없을까. 그건 샐리만의 노하우를 만나보라.

 

 

 

 

 

 샐리는 제아무리 마감이 닥쳐도 라인 타운의 평화를 위해서 발 벗고 나서서 친구들을 돕는다.

오해가 될뻔한 상황도 깨끗이 종료시킨다. 그랬기에 친구들도 그런 샐리를 아끼는 것이겠지만.

 

샐리에겐 스트레스란 단어는 걸맞지 않는다. 제아무리 인기 작가가 되어도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욕심내지 않는다.

자꾸만 채우는 것이 아닌 비워내고 채움을 반복하는 삶이야말로 정답이 아닐까 한다.

 

샐리처럼 살면 맘 고생하며 살진 않을 것 같다.

천상천하 유일 무인으로 상처받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면 샐리처럼 살아는 것도 괜찮겠다.

 

그러고 보니 딸내미가 우째 샐리와 비슷한 것 같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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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여행, 바람이 부는 순간 - 퇴직금으로 세계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
이동호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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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책을 20대 때 읽었다면 나도 떠날 수 있었을까.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를 낯선 길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27살에 진짜 내 인생을 살고자 유서까지 써 놓고 떠난 저자는 십년지기 절친과 낯선 곳을 함께 한다. 아마도 이 십년지기 친구가 든든한 보험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청춘이라서, 남자라서 더욱 가능성을 열어 준 배낭여행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개정판이다. 그러니 현재 저자의 나이는 다섯 살 정도 더 플러스해야겠다.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떠났던 여행에서 그는 자신을 만났다고 한다. 여전히 촌스러운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을까.

 

 

 

 

 

러시아의 열차 창문 너머 보였던 세상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런 느낌을 반지의 제왕의 한 문장을 읽으며 찾아보려 했다. 풍경이 주는 아득함도 좋지만 세상은 열차 안을 채우고 있는 우리들임을 얘기하고 있는 문장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삼등 여행기>에서도 작가가 그런 비슷한 소감을 언급한 적이 있어 떠올랐다.

 

여행지라고 어디 다 좋을 수만은 없다. 저자는 그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책과 영상에 남겼다. 그렇다 보니 소매치기를 당하고, 강매도 당하고, 가는 길이 막히기도 하지만 그들이 만났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인간적이고 따뜻했다. 이란에서 만난 가족들의 환대(그들이 한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ㅎ), 개들과 함께한 산행길, 인도에서 그들을 도와준 친절한 버스기사, 인도 고아원에서 만난 꼬맹이들.

 

누군가와 시간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무한의 '것(thing)'에서 유한의 '존재(being)'가 되어간다. -p.77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은 나를 새로이 알아가게 한다. 크게는 세상을 보는 눈의 크기를 확장시켜준다.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와트를 지나며 보는 일몰은 인생에서 속도가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기도 하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느낀 두려움보다 눈앞에 펼쳐진 바닷속 풍경에 세상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활화산 위에서 느끼는 지구의 호흡은 또 어떻고. 이건 정말 느껴보고 싶다. 자연이 꿈틀대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까.

 

여행 또한 삶의 문을 여는 과정이 아닐까.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둠 속에 뛰어들어 어둠을 밝혀가는 과정 말이다. -p.82

 

본연의 결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깨닫지 않을까. -p.107

 

여행은 평소 하지 않던 것들도 하게 만들고 공부도 하게 만든다. 저자는 직접 요리를 하며 요리의 참맛도 살짝 느껴본다. 설사병이 나서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정보도 찾아보며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다. 문명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삶 본연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처럼 유목 체험 일주일은 몽골을 잊지 못할 여행지로 남기게 된다. 그리스 자전거 여행에서 느낀 깨달음은 존재의 이유를 되새기게 한다. 우리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사랑을 향하고 있다고.

 

그는 갈증을 느껴 떠났다. 그렇게 유서까지 쓰고 비우고 떠났으니 새로운 것들로 채우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여정을 보면 그런 공기가 느껴진다. 세상은 새롭지만 어찌 보면 새롭지 않다. 내가 있는 자리가 세상이니 결국 내가 지나온 자리에서 나를 만나고 온 것이다. 내 안에 몰랐던 나를 낯선 곳에서 마주할 때의 긴장감, 두려움, 설렘, 신선함, 놀라움 등의 다양한 감정들이 다시 나를 채워가는 것이다.

 

그저 나에게도 그런 것들을 마주할 용기만 있다면 참 좋겠다.

 

p.s) 배 안에서 먹은 6000원짜리 삼양 컵라면의 맛은 정말 환상이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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