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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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지가 신의 한 수다!

 

이 이야기 속엔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랑 없는 세계(식물연구)를 사랑하는 대학원생들과 요리를 사랑하는 엔푸쿠테이(양식당) 사람들.

 

내용의 절반이 식물 실험에 공을 들이고 있어 혹 작가가 식물학 전공인가 했다. 그만큼 실험 과정이 정교하고 디테일하다. 물론 나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내 두뇌는 회전력이 떨어져서인가 뭔 말인지 착착 들어오지 않는다. 애기장대라는 식물부터 찾아보니 식물연구의 모델로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찾아보니 정말 애기 같이 잎도 꽃도 작고 귀엽다.

 

애기장대 특징 :

발아 해서 다음 씨가 맺힐 때까지의 1세대 기간이 약 6주로 짧고, 화학물질을 쓰면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체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또 크기가 작아서 유리 용기 안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고 게놈 사이즈가 작다. 이러한 이유로 식물 연구를 위한 모델 식물로 많이 활용된다. 2000년 말에 전체 게놈의 염기 배열(약 1억 2500만개)이 거의 완전히 해독되고 2,400종의 유전자도 발견되었는데, 유전자 중에는 벼나 밀의 유전자와 공통된 것이 많다.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후지마루는 훌륭한 요리사가 꿈이다. 조리학원에서 갈고닦은 실력과 현장 알바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갈고닦아 줄 식당도 직접 선택하는 꼼꼼함도 있다. 두 번 만에 입사에 성공하여 나름 엔푸쿠테이의 모범직원으로 거듭난다. 식당은 소박하다. 돈까스와 햄버그와 오므라이스가 자꾸만 등장해서 밤샘 독서를 힘들게 했다는것만 빼면 찾아가고 싶을 만큼 정겹다. 참 찐 고구마도! ㅋ 식당주인장(쓰브라야)과 종업원(후지마루)의 케미도 일본 소설에서 자주 접했던 분위기라 익숙한 느낌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에 유독 검은 정장 때문에 살인 청부업자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의문의 손님이 있다. 후지마루는 유독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 식당은 젊은 후지마루덕에 심야 배달을 시작한다. 마침 정체불명의 이 남자 쪽에서 제일 먼저 배달 전화가 온다. 그것도 점심 식사를.

 

배달지는 대학교 자연과학부. 대학을 다니지 않은 후지마루에게 대학 캠퍼스는 낯설고 신기하다. 세월의 깊은 맛을 잔뜩 머금고 있는 건물 속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은 더욱 신비스럽다. 후지마루는 온통 초록 생물들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마음이 저절로 끌리고 식물학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몇 번의 배달을 오가며 그는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친숙해진다. 유독 독특한 그림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토무라와 대화를 트기 시작하고 자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의 식물에 대한 열정에 스르륵 매료된다. 모토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관심을 보이는 후지마루가 귀찮지 않은가 보다. 실험 현미경까지 들이밀며 식물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 그녀의 열정이 후지마루의 심장을 뛰게 했고 수줍게 고백도 하게 된다. 하지만 며칠 뒤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식물 때문에 인간과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니!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p.96

 

식물의 세계에 빠져있는 그녀의 틈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음을 육감적으로 느끼지만 후지마루는 그런 그녀의 삶도 이해하고 인정한다. 수수께끼 같은 그녀뿐 아니라 그녀를 홀딱 반하게 한 식물에 대해서도 더욱 알고 싶어진다. 참 쿨하고 멋진 남자가 아닌가. 게다가 가토에게 받은 선인장이 시들자 다시 봐달라고 가지고 와선 "제가 시들게 한 걸까요?"란다. 우째 이 착한 남자.ㅎㅎ

 

 

 

 

 

이야기는 식물에 뒤지지 않는 신기함을 지닌 마쓰다 교수를 둘러싼 대학원생들과의 에피소드를 주로 담고 있다. 물론 후지마루도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배달하면서 더욱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 덕에 학생으로 오인받아 고구마를 함께 캐며 노동의 가치도 나누게 되고 교내 행사를 잘 치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같은 옷만 고집하는 마쓰다 교수를 보고 원생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의식주의 의는 포기한 것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의 지도 아래 원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정의 에너지를 쏟는데 그가 왜 검은 정장만을 고집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밝혀졌을 땐 충분히 그의 그런 마음이 전해졌다. 선인장을 사랑하는 가토는 흔하지 않은 사랑에 주눅 들고 자신을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용기 있게 나서기로 마음먹자 그를 알아주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후지마루는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줌을 실감한다.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거듭 생각한다. -p.229

 

그들의 열정에 나도 식물을 향한 애정도가 상승함을 느낀다. 녹음이 주는 신선한 공기부터 당장 입안을 즐겁게 해주는 과실들.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변화로 우리의 눈과 감성을 행복하게 해주는 풍경들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온다. 사랑 없는 세계에 열정을 쏟아붓는 이들 덕에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맙기까지 하다.

 

나무나 풀에 잎사귀가 있는 건 당연하니까 새삼 잎사귀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말을 듣고 보니 신기하다. -p.43

 

왜 느티나무는 이런 모양으로 가지를 뻗는 거지? 왜 식물에 따라서 잎의 모양이 달라야 하는 거지? 왜 잎이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방식도 다 다른 거지? 알고 싶다. 알고 싶다. 식물은, 그리고 우리는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자신의 모양을 정하는 걸까. 어떤 방식으로 생명 활동을 하는 걸까? -p.110

 

역시 열정을 지닌 자는 열정을 지닌 자를 이해할 수 있나 보다. 신기한 순간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누리는 일도 벅찰 것이다. 모토무라는 애기 장대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달려가고 있다. 그런 모토무라의 열정도 매력적이지만 후지마루가 그런 다양한 이들의 삶의 방식을 대하는 모습도 착해서 예뻤다. 나쁜 사람이라곤 볼 수 없는 그런 착한 이야기라 사랑이 가득하고 충만한 느낌이다.

 

생명의 순환은 놀랍고 신기하다. 식물이 살아가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사랑은 어쩌면 그보다 더 정교한 감정을 지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 아는 것보다 모르기 때문에 늘 새로운 건지도.

후지마루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으나 모토무라를 보면서 식물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 이를 만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다.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인간이니까.

 

사람은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식물을 아는 것도, 연구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도, 스위트포테이토를 맛보는 것도 할 수 있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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