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흠흠 - 배우 안과 그녀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안 지음, 김혜숙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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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에세이집이 한국에 출간된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둘러 구입해 보니 일본에선 2012년에 출간된 책이라고. 부제는 '배우 안과 그녀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인데 추천사를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가 썼다. 하루키의 추천사는 이 책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안에 대한 평가가 제법 웃기다. "나는 지금까지 몇몇 여성 배우를 만난 적이 있는데, 대부분이 정도야 어떻든 몸에서 아우라 같은 것을 풍겼다. ... 하지만 안에게서는 그런 것을 별로랄까,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안을 모른다면 '너무 무례한 거 아냐?' 싶을 수 있지만, 안을 아는 사람이라면 '왠지 알 것 같아' 싶은 인물평이 아닌지 ㅋㅋㅋ 


책에 실린 글을 봐도 안은 세련되고 화려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소박하고 털털한 쪽에 가까운 사람 같다. 책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은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 같고 내 친구 같은 느낌의 배우랄까(실제로 나와 동갑이기도 하다). 책에는 그동안 안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데, 할아버지나 반려견처럼 가까운 존재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어쩌다 우연히 스쳐간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연예인으로는 한국에선 <토토의 창가>를 쓴 작가로 유명한 <테츠코의 방> 진행자 쿠로야나기 테츠코, 배우 사카이 마사토, 오오사와 타카오, 카메나시 카즈야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요괴인간 벰>을 비롯해 안이 출연한 드라마, 영화, 뮤지컬의 뒷이야기도 있다. 


이 책을 읽고 안도 더 좋아졌지만, 사카이 마사토가 엄청 좋아졌다(<사카이 교수는 대단해>편 참조).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연기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의 연기도 챙길 줄 알고 작품 전체의 호흡을 고려하면서 연기하는 배우라는 건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연기뿐 아니라 문학, 역사 등 여러 분야에 조예가 깊고, 일본 잡지에 칼럼도 연재하고 책도 여러 권 냈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사카이 마사토의 책도 한국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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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냥마스테 - 인생은 고양이처럼 매일매일 균형 있게
이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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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은 출퇴근의 압박이 없다는 것이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없다는 것이고, 일하는 날과 일하지 않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편안함과 불안함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가는 불균형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저자는 요가와 고양이가 있는 생활을 택했다. 매일 적어도 한 시간은 땀이 흠뻑 나도록 요가를 하고, 밤에는 고양이의 온기를 느끼며 잠이 드는 생활. 이 생활을 꾸준히 하다 보니 몸은 한결 건강해지고 마음은 훨씬 평화로워졌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 외에 미니멀리스트로서 물건을 버리고 집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깨닫거나 발견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스다 미리나 임진아 작가의 책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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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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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의 작가 가쿠타 미츠요가 쓴 에세이집이다. 마침 이 책을 읽은 어제는 세계 고양이의 날이었는데, 그래서라고 하기는 뭣 하지만 고양이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읽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양이의 매력에 홀린 걸까... 


이야기는 저자가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면서 시작된다. 그전까지 "개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늘 고민 없이 "개!"라고 답했던 저자이기에, 반려동물이 생긴다면 무조건 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 때문에 만화가 사에바라 리에코를 만났고, 그로부터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그 고양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토토다.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요약하면 '토토만큼 예쁘고 똑똑한 고양이는 없다!'일 자잘한 일상 스케치이다. 나는 그보다도 저자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겪은 변화가 흥미로웠다. 


저자는 토토를 만난 후 전 세계의 고양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이건 다른 고양이 집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자기 집 개(와 그 견종)만 좋아해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온 세상 고양이를 좋아하죠." 백 퍼센트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개 사진집보다 고양이 사진집이 월등히 잘 팔린다는 걸 보면 근거가 아주 빈약한 주장은 아닌 것 같다. 


토토와 함께 살기 시작한 후로는 고양이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을 때에도 고양이가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는 장면이 나올 때 문득 '하루키 씨, 당신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 않았나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상 심사를 할 때도 고양이가 나오는 작품에는 주의를 더욱 기울인다. 이는 페미니즘을 만난 후 작품 속 여성에 대한 묘사에 더 예민해진 내 모습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여성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쓰는 작가들은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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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뉴욕 New York New York 애장판 세트 - 전2권 (일러스트 카드 + 컬러 케이스 포함)
라가와 마리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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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를 읽고 라가와 마리모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마침 동생 책장에 이 책이 있는 걸 보고 냉큼 빌려 읽었다. 라가와 마리모가 BL을 그렸다니? 애초에 BL과 게이 만화의 차이는 뭘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뉴욕뉴욕>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경찰인 케인 워커가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 멜 프레드릭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케인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그 자신은 경찰이기도 해서 커밍아웃은 꿈도 못 꾸고 앞으로도 최대한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멜은 자신의 이상형에 너무나 부합하는 남자였고,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고 싶고 그 사람과만 자고 싶다는 지고지순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결국 케인은 멜과 함께 하기 위해 멜과 단둘이 살 집도 사고, 부모님과 직장에 커밍아웃도 하고, 종내는 아이를 입양해 그토록 꿈꿨던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 이 사이에 멜이 괴한에게 납치되어 FBI까지 출동해 그를 찾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명작으로 사랑받아온 작품답게 내용도 작화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다만 현재는 미국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된 상태라서, 동성혼이 합법화되기 이전의 상황을 그린 <뉴욕뉴욕>이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아직도 이성애 외의 다른 사랑의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BL 또는 게이 만화의 클래식에 해당하는 이 만화의 내용조차 파격적이고 위험하게 느껴지겠지만... 


<뉴욕뉴욕>을 보면서 <퀴어 애즈 포크>를 자주 떠올렸는데, 확인해 보니 <뉴욕뉴욕>의 연재가 시작된 해가 1995년이고 <퀴어 애즈 포크>가 처음 방영된 해가 1999년이다. 라가와 마리모 대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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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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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성, 여학교 기숙사, 흡혈귀의 조합이라니! 재미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꿀잼이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전주 출신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열네 살 소녀 희덕은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경성에 있는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랴 친구 사귀랴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희덕은 어느 날 기이한 장면 하나를 목격한다. 기숙사에 새로 들어온 사감 선생 계월이 깊은 밤 사감실에서 누군가의 목을 물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계월이 말로만 들었던 흡혈귀?? 


이후 희덕은 계월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 학교에 들어온 건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계월은 과거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인물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경성에 들어온 인물(?)로, 궁극적으로는 과거의 자신처럼 아버지에 의해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위기에 놓인 희덕을 구하며 자신의 미래도 바꾼다.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사회의 구속과 통제로부터 벗어난다는 점이 오늘날의 (여성) 독자들에게도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모험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건 나뿐일까. 부디 후속편이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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