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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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해리 홀레 시리즈가 출간되면 밤을 새워가며 읽곤 했는데, 해리 홀레 시리즈 제9편인 이 책은 그렇게 읽고 싶지도 않고 읽을 수도 없었다. 총 11편으로 완결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해리 홀레의 끝, 시리즈의 정점'이라는 문구가 이 책 띠지에 콱 박혀 있는 걸 보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해리 홀레와 영영 이별할 일만 남은 것 같아서 서운하고 아쉬웠다. 


이야기는 형사를 그만두고 홍콩으로 떠난 해리 홀레가 오슬로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해리가 오슬로에 돌아온 이유는 헤어진 옛 애인 라켈의 외아들이자 '스노우 맨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친자식처럼 아꼈던 올레그가 마약을 소지한 것으로 모자라 친구인 구스토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 해리는 '스노우 맨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한때는 친아버지처럼 그를 돌봤던 책임감을 느끼며 올레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수사를 하면 할수록 해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만이 남아 해리를 괴롭힌다. 


소설에는 해리 말고도 또 하나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전직 신부이자 현재는 오슬로에서 제일 가는 마약 조직의 수장이며, 거리의 아이들을 제 수족처럼 부리다 쓸모가 없어지면 잔인하게 살해하는 '두바이'란 사내다. 두바이는 생판 남인 아이들은 물론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도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면 벼랑에서 밀어버리는 잔혹한 인간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해리는 두바이를 보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지만,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어쩌면 자신도 올레그에게 그런 아버지로 비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해리에게 올레그가 아픈 손가락이라면, 올레그에게 해리는 아픈 심장, 아픔을 느끼는 모든 이유이지 않았을까. 


"가정을 해보자는 거야. 내가 옳다고.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과거를 과거로 묻는 게 가능하다고." 

"당신을 따라다니는 유령들을 똑바로 노려봐서 굴복시키는 것도?" (519쪽) 


<스노우 맨>에서는 해리 홀레의 손가락을 뽑고, <레오파드>에서는 해리 홀레의 얼굴 절반을 찢은 작가는 <팬텀>에서 해리 홀레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것으로 모자라 최후로 이끈다. 앞으로 두 권이 남아있다는 걸 몰랐다면 이대로 해리 홀레 시리즈가 끝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그랬다면 해리 홀레 시리즈를 결말이 최악인 작품으로 기억했겠지). 


읽는 사람의 기분마저 축축 처지게 만드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고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대목은 해리와 라켈이 밀당을 하는 장면이다. 해리는 라켈에게 새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섣부른 기대를 접지만, 라켈이 여전히 해리를 그리워하며 해리가 떠난 자리는 그 누구로도 채울 수 없다는 확신을 주며 해리에게(그리고 라켈 자신에게도) 용기를 준다.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버릇처럼 말하던 해리가 마침내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말을 믿기로 했을 때, 하필이면 겨우 다시 붙은 둘 사이를 떨어뜨리는 '그 사건'이 벌어질 줄이야. 완결편이 가까워지는 건 서운하지만, 그래도 어서 다음 편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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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14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이유로 이 책은 고이 모셔두고 있어요. 그래서 님의 리뷰도 첫부분만 읽고 후일을 기약합니다. ^^;;;

키치 2018-02-14 18:15   좋아요 0 | URL
그 심정 백번 이해합니다. 저도 다음 권 기다리기 힘들 것 같으니 라로 님처럼 고이 모셔두었다 읽을 걸 그랬나봐요 ^^;;;

시온 2018-02-1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요 네스뵈 시리즈를 정말 좋아해서 다 읽고 있는데 아직 레오파드와 팬텀은 읽지 못하고 있었어요. ㅠㅠ 저 질문이요.... 우리 고난의 아이콘 해리 홀레 시리즈가 팬텀 이후에 더 나오는 거죠? 그쵸? ㅠㅠ 망가지는 그를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레오파드부터는 좀 쉬고 있거든요... 그런데 팬텀을 보니 느낌이 아주아주...... 쌔~해서리..... 그래서 팬텀 이후에 더 나오는지 봐서 읽으려구요...

그리고 나중에 정말. ㅡㅡ;;; 작가한테 글을 좀 써보려구요... 그만 좀 괴롭히라고. ㅠㅠ

시온 2018-02-1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 다행히.두 권이 더 있군요.헷. 어여 사야겠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