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의 맛 꽈배기 시리즈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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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뭘 해도 재미가 없고 기운이 안 난다. 퇴근하면 전기장판 위에 누워 책을 읽거나 만화를 보는 게 일상인데, 책도 재미가 없고 만화도 푹 빠질 만한 작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녁에 <오리엔트 특급열차> GV 시사회 보러 가기로 했는데 영화 보고 나면 기운이 좀 나려나(나야 할 텐데)... 


기운이 없어서 어려운 책은 못 읽고 쉽고 가벼운 책 위주로 읽고 있다. 요 며칠 동안 읽은 책은 최민석 작가의 산문집 <꽈배기의 맛>이다. 최민석 작가가 최근 <꽈배기의 맛>과 <꽈배기의 멋> 두 권을 세트로 출간했는데, 이중 <꽈배기의 맛>은 신간이 아니라 2012년에 발간한 산문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이다.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판한 지 두 달만에 절판이 된 것이 아쉬워 5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고. 


올해 초 최민석 작가의 산문집 <베를린 일기>를 읽고 '한국에 이렇게 웃기는 작가가 있었다니!'라고 생각했는데, <꽈배기의 맛>을 읽으니 최민석 작가가 최근 들어 웃기는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원래 웃기는 작가임을 알겠다. 어째서 한국의 소설가나 시인은 옆모습으로만 사진을 찍을까 하는 나름 진지한 고찰도, 자신의 시집이 고모 집 냄비받침으로 쓰이는 걸 봤을 때 느낀 참담한 심정도, 작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든다. 


자신을 고급 제과점 케이크나 마카롱 같은 비싼 과자가 아니라 분식집 한편에서 파는 꽈배기에 빗대는 겸손함도 좋다. 하지만 꽈배기가 만만한 음식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위대한 파티셰들이 꽈배기를 튀기진 않는 건, 꽈배기를 튀기는 것도 나름 오랜 연구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뜨거운 기름 앞에서 꽈배기를 튀기는 분식집 아저씨처럼 정성 들여 성실하게 글을 쓰되, 읽는 사람은 별 부담 없이 만만하게 읽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도 인상적이다. 서문에서부터 '나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라고 밝히더니, 출판사나 여느 매체로부터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마감 기한을 정하고 개인 홈페이지에 매주 한 편씩 이 책에 실린 글을 써서 올렸다는 대목에선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프로 작가인데도 이른바 '돈 되는 글'에만 매달리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 글'에도 정성을 들이다니(그 결과 책을 내기는 했지만).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축 늘어져 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이토록 성실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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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2017-11-2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호 작가와 비슷한 느낌이려나요.
최민석 전 사실 처음 듣는 작가인데 저도 살짜기 의욕상실이 올 때 함 찾아봐야겠어요^^

키치 2017-11-25 09:44   좋아요 0 | URL
캔디캔디 님 말씀대로 이기호 작가님과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 덧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