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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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 책은 많지만 교토 여행 책은 많지 않다. 그나마도 오사카 여행 책에 부록처럼 딸려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교토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항상 아쉬웠다. 


임경선 작가가 교토 여행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둔 임경선 작가는 성장기 시절 6년을 요코하마와 오사카, 도쿄에서 보냈다. 일본 여행 경험도 많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고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런 임경선 작가가 교토의 겉모습만 가볍게 훑지 않고 속살까지 파고드는 책을 냈다고 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느낀 교토의 정서는 자부심이 높되 겸손하고,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만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기를 거부하고, 예민하고 섬세한 깍쟁이로 보이다가도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킬 줄 안다. 


저자는 이러한 교토의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명소들을 찬찬히 소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등을 작업한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시 아유미가 운영하는 '이오 플러스', 화제의 베스트셀러보다는 주인이 엄선한 신간, 절판본, 중고책 등을 주로 파는 동네 서점 '세이코샤', 간판이 없는데도 아는 사람은 다 와서 물건을 사는 200년 전통의 노포 '나이토 상점', 오니기리(삼각김밥) 하나로 승부하는 오니기리 전문점 '아오 오니기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대부분이라 반갑다. 


교토에서 '간단히 오차쓰케라도 먹고 가실래요?'라는 말은 '슬슬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네요'라는 신호다. (중략) 교토 시민들은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식사 대접하는 의무를 상호 간에 면제하는데 이는 교토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내전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전쟁의 시간들을 버텨내기 위해 주민들은 철저한 사전 계획으로 식생활을 조율해나갔고, 이 계획이 손님 방문으로 인해 한번 구멍이 나버리면 향후 가족들이 굶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164~5쪽)


교토의 전통과 문화에 관해서도 비교적 깊이 있게 설명한다. 교토 사람들이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오차쓰케라도 먹고 가실래요?'라고 물으면 이제 그만 돌아가라는 뜻이라는 이야기를 적잖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내전이 많았던 역사 때문인 줄은 몰랐다. 교토에 유난히 빵집과 카페가 많은 이유도 흥미롭다. 교토에서는 예부터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가내수공업을 하는 집이 대부분이라서 어머니가 여유 있게 아침밥을 차려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을 가볍게 오차쓰케로 때우다가, 빵이 보급된 후에는 아침 식사로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먹는 문화가 널리 퍼졌다. 


교토의 명물인 오반자이 요리는 애초에 교토식 별미가 아니라 아껴 쓰고 남은 식재료를 처리하기 위해 구상해낸 검소하고 하찮은 반찬 요리였다. 우리 조상들이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밥과 함께 비벼 먹다가 비빔밥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교토에는 이 밖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교토 말고 다른 도시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임경선 작가의 일본 여행 에세이 시리즈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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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17-10-1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토의 정서가 뭔지 여쭤봐도 됩니까?

키치 2017-10-14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됩니다 ^^ 이 책의 저자는 ˝ 자부심이 높되 겸손하고,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하는 양면성˝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제가 직접 교토에서 체험했거나 업무상 만나는 교토 사람들의 분위기나 생활 문화도 그러했습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배려심도 깊지만 일정 선은 넘지 않는달까요.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 다른 경우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