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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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한 달에 2,30권씩 책을 읽어제끼던 때가 있긴 했던가 싶을 만큼 책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새벽잠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읽은 책이 있으니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다. 작품은커녕 작가 이름도 모르는 채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간판 코너 '책, 임자를 만나다'의 주제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입해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대단한 소설을 읽어버렸다'는 것. 이런 멋진 소설을 읽게 해준 빨간책방에 새삼 감사를 전한다.



1891년 미국 미주리 주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농사일을 거들며 지내다가 컬럼비아에 새로 생긴 대학에 농과대에서 신식 농사 기술을 배워오라는 아버지의 지시로 생애 처음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고, 대학에서 운명처럼 영문학과 사랑에 빠진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영문학도의 길을 택한 스토너는 은행가의 딸 이디스를 만나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그레이스라는 딸을 얻고 교수가 되고 친구를 사귀지만, 전쟁을 비롯한 시대의 환난과 개인적인 불행을 잇달아 겪으면서 사랑했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간다.



언뜻 보기에 스토너는 실패자다. 학자로서 이렇다 할 연구 실적을 남긴 것도 아니요, 교육자로서 대단한 존경을 받은 것도 아니요, 교수로서 높은 지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아내와는 불화했고, 아끼는 딸을 삶의 풍파로부터 지켜내지 못했으며,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 두고 보살피지도 못했다. 마음을 터놓고 사귄 친구도 동료도 없고, 공부 외에는 취미나 특기도 없었다. 그러나 삶이 어디 성과나 업적으로만 평가되는 것인가. 대단한 성과나 업적을 남기지 못해도, 삶을 살았다는 것, 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끝까지 해냈다는 것만으로 삶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사람은 누구나 위대하다. 그렇기에 스토너의 생애는 여느 위인이나 명사의 그것과 달라도 못지 않은 울림을 주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 아버지를 떠올렸다. 스토너와 마찬가지로 작은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을 거들다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상경한 아버지는 한 직장에 삼십 년 이상 다니며 아내를 얻고 두 딸을 키웠다. 자신의 아버지는 겪은 적이 없는 도시 생활과 회사 생활을 했지만 성실한 태도와 고된 노동이 몸에 배어 있어 딴눈을 팔거나 꾀를 부릴 줄 모르는 것도 비슷하다.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당신 삶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스토너처럼 견디고 버티기만 하는 삶이 힘에 부치지는 않았을까? 회사며 아내며 자식이며 다 내던져버리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고픈 욕망은 없었을까? 아마 결코 여쭤볼 일은 없겠지.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아버지께 여쭤볼 수 없는 건, 아버지와 평소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 탓도 있지만, 무언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날아오는 시련과 고통을 모두 받아치는 게 아니라 얼마는 놓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면서 끝까지 견디고 버티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목표요, 완성이라면, 스토너는 분명 실패자가 아니라 승리자다.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렇게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은 모두가 위대하구나. 별볼 일 없어도 이제껏 꿋꿋하게 살아온 내가, 나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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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7-19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 모두가 위대하다는 결론. 좋네요. 빨간책방 들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