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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땅의 자식인 우리는 때로 신 못지않게 멀리 가 닿을 수 있다. 누군가는 예술로, 누군가는 종교로 날아오른다. 대개의 경우는 사랑으로 날아오른다. 그러나 날아오를 때, 우리는 추락할 수 있다. 푹신한 착륙지는 결코 많지 않다. 우리는 다리를 부러뜨리기에 충분한 힘에 의해 바닥에서 이리저리 튕기다가 외국의 어느 철로를 향해 질질 끌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아니었대도, 결국 그렇게 된다. 누군가는 예외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겐 어김없다. 때로는 둘 모두에게 해당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 진실과 마법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사진에서의 진실, 기구 비행에서의 마법처럼. (pp.60-1)


 

얼마전 예전 남자친구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인이 보기 싫다는 내게 기어코 들이민 그의 결혼 사진 속에는, 한때는 내가 좋다며 울고불고 매달렸던 남자와 그의 품 안에서 해사하게 웃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건 분명 당황스런 경험이었다. 그냥 눈을 돌렸으면 될 것을 결국 본 나는 또 뭔가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좋아했던 사람이 행복을 찾아가는 걸 보는 기분은 결코 불쾌한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그 끝은 아쉬웠으나 그래도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이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준 사람이니까. 심지어는 그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체념하는 것 또한 이별의 과정이겠지.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별은 낫다. 상대가 내가 닿을 수 없는 세계로 떠나는 사별의 고통은 나의 어설픈 이별처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2008년 아내 팻 캐바나를 뇌종양으로 먼저 떠나 보낸 소회를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라는 산문집에 담았다. 삼십 년 가까운 결혼 생활 동안 누구 못지 않은 금슬을 자랑했던 부부였기에 줄리언 반스의 상심은 더욱 컸다. 더군다나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 에이전트인 캐바나는 줄리언 반스의 에이전트이자 문학적 동지이기도 했다. 남편으로서, 소설가로서의 파트너를 동시에 잃은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양쪽 팔을 모두 잃은, 아니 두 다리마저 잃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levels of life', 해석하면 사랑의 층위 정도일 것이다. 제목에 맞추어 '비상의 죄', '평지에서', '깊이의 상실', 각각 하늘, 땅, 지하의 세 층위로 구성된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 연관성이 없어 보이고, 특히 앞의 두 이야기는 사별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아내와의 헤어짐을 다룬 마지막 '깊이의 상실' 편을 읽으니 앞의 두 이야기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앞의 두 이야기의 주인공은 19세기 영국 군인 프레드 버나비와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인데, 창공에서 보면 전혀 상관 없는 두 사람이 평지에서는 비행이라는 화제로 친구가 되는 모습은 마치 문학을 매개로 친구에서 연인, 부부가 된 줄리언 반스와 팻 캐바나를 보는 듯 했고, 그런 두 사람이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맞이하는 모습 또한 반스 부부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어판 제목은 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가 된 것일까? 처음엔 줄리언 반스가 갑작스런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에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고 절규하는 모습을 떠올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보다는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속성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의 끝,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고 믿지만, 실상 결혼은 연애의 끝이 아니라 무덤이며,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경유지이다. 흔히 결혼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들 - 완벽한 결혼식, 달콤한 신혼 생활, 토끼 같은 아이들, 안정된 일상 - 은 환상에 불과하고, 결국엔 같이 사는 것도 뭣도 아닌 어정쩡한 결혼 생활이나 이혼 또는 사별로 끝나는 것이 결혼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연인들, 결혼을 한 부부들은 그들의 사랑이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어리석음을, 한국어판 제목을 지은 이들은 우회적으로 비웃은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계속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꿈꾸는 건 왜일까? 우리의 사랑의 결말은 다를 것이라고 믿는, 그 어리석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결국 땅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고, 그 덕분에 비행기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기적을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사랑 또한 하늘을 나는 것처럼 운명이 정해져 있지만, 그걸 애써 망각하며 사랑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살고 인류가 영속하는 까닭이며 수단일 테니 말이다. 어쩌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의 뜻은 처음 해석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맞길 바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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