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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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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을 적어도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루키가 저서나 인터뷰 등에서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로 여러 번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키 팬 중에는 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챈들러의 작품을 찾아 읽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하루키의 팬이지만 하루키 작품 중에도 읽지 못한 것이 많은 터라 챈들러의 작품까지 찾아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북스피어에서 챈들러의 작품 세계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책이 나와 읽어보았다. 제목은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제목만 봐서는 작가가 각잡고 자신의 문학관이나 집필 스타일 등에 대해 설명하는 형식의 산문집일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가 생전에 편집자, 출판사 대표 등에게 쓴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었다. 챈들러의 '나는 어떻게 편지를 쓰는가'를 통해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유추하는 형식이라니, 오오 기발하다!

 

 

비록 편지글이고 번역문이기는 하지만 하루키가 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심플하고 정제된 문체하며, 대체로 까칠함이 묻어나지만 정곡을 찌르는 내용까지 하루키를 연상케하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스타일에 대한 챈들러의 생각. 챈들러는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p.35)'라고 말한 바 있는데, 하루키 역시 '하루키 스타일'이라는 말을 남길 만큼 자신만의 스타일을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하루키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문체와 세계관이 챈들러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니, 새삼 반갑다. 



챈들러는 하루키의 작업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챈들러는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p.56)"고 말한 바 있는데, 하루키는 새벽부터 오전까지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운동과 식단 조절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챈들러는 '아무리 상투적인 기교를 많이 익혔다 한들, 작가에게 지금 도움이 되는 것은 열정과 겸손함뿐(p.78)'이라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과 비교하며 고치고 또 고칠 것을 주문했는데, 하루키는 퇴고를 많이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작품 스타일뿐 아니라 그 외적인 것까지 본받은 하루키와 그런 그에게 영향을 준 챈들러. 두 사람 모두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작가란 법을 싫어하는 변호사나 의학을 싫어하는 의사만큼이나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플롯을 구상하는 일은 설사 그 일에 능하더라도 지루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건 진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지요. 하지만 글쓰기를 싫어하는 작가라니, 말로써 마법을 창조하는 일에서 어떤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 작가라니, 그런 사람은 나한테는 작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pp.123-4)

 


개인적으로 나는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되고싶은 사람은 많지만 글쓰기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적고, 그 고통스럽고 지루한 과정을 꿋꿋이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훨씬 적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작가를 동경하지만 글쓰는 행위 그 자체를 100%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하는 용기없는 내게, 작가란 단순히 되고싶다는 마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쓰는 행위 그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챈들러의 말이 어찌나 가슴에 와닿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작가가 되겠다는 것도,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재능이 없고 기회가 오지 않아도 글쓰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다보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리라고 믿어보라는 조언은 많은 용기를 주었다.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작가라니. 하루키가 왜 그를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작가로 손꼽았는지 알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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