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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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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개념을 제시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경제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그가 쓴 글이나 책을 읽어보면 재미있고 매력적인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아마도 그가 학자로서는 드물게 정계와 재계, 심지어는 자신이 속한 학계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돌직구를 날리는' 사람이라는 점과, 경제학자로만 규정짓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다방면에 학식이 풍부하고, 글까지 잘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심지어는 운동도 많이 해서 몸도 좋다고!).



신작 <안티프래질>도 무척 재미있다. 잘못해서 떨어뜨렸다가는 발을 찧겠다 싶을 만큼 두꺼운 이 책은 알랭 드 보통, 빌 브라이슨 저리 가라 할 만큼 글이 좋고, 경제학 외에도 문학, 철학, 의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등장하여 경제경영서라기 보다는 '종합교양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네로는 뉴욕 시내의 세계무역센터 터 맞은편의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면서 서 있곤 했다. 

그 건물에는 은행과 중개업체들이 상주해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뉴저지와 일터를 오가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크림 치즈를 바른 베이글을 먹으면서 인슐린 저항으로 동맥 경화를 촉진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메일을 교환하고, 보고서를 쓰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생산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잡음이다. 

헛수고, 불협화음, 미학적이지 못한 행동, 불확실성의 증대, 

뉴욕 지구 친환경 구역의 기후 변화를 초래할 에너지 생산, 

언젠가는 증발하게 될 부에 대한 집단적인 망상을 의미한다. (pp.228-9)



안티프래질은 '취약한, 잘 부서지는' 이라는 뜻의 영단어 'fragile'의 반대 개념으로,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충격을 받아도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강해지는 특성을 뜻한다. 위험회피적이고 정형화되고 예측적인 것을 선호하는 프래질과 달리, 안티프래질은 위험을 선호하고, 무작위하거나 가변적인 것을 수용하며, 예측이 아닌 경험에 의존하는 특성이 있다. 



저자는 여러 장에 걸쳐 프래질과 안티프래질 개념의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관료주의, 제도주의, 계획주의, 예측에 대한 선호 같은 것은 프래질, 인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는 안티프래질이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잘릴 수 있는 샐러리맨은 프래질이고,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정년도 없는 택시기사 같은 자영업자는 안티프래질이다.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다 걸리는 의원성 질환은 프래질이며,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내버려둬서 면역력을 기르는 것은 안티프래질이다. 즉, 규칙이나 형태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 개입을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 낫고 더 강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프래질한 개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안티프래질한 개체만 적자생존하는 상태야말로 이상적이다. 그런데 과도한 정부개입과 금융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마땅한 기업이나 개인이 살아남아 안티프래질을 위협한다. 프래질과의 경쟁 끝에 안티프래질만 남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옳은 것이 아니라 틀린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이를 프래질과 강건함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부정적 지식(틀린 것, 유효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은 

긍정적 지식(옳은 것,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에 비해 오류에 더욱 강건하다.


따라서 지식은 추가가 아니라 제거에 의해 더욱 발전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지만, 

우리가 틀린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옳을 수 없거나 최소한 쉽게 옳을 수 없다면 말이다. (p.467)



인위적, 의도적, 예측적인 것을 거부하는 저자의 태도는 책 후반부로 갈수록 분명해진다. 저자는 부를 위한 학문, 경제성장을 위한 교육을 거부한다. 학문은 학문 그 자체를 위한 학문이지 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높은 교육수준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도 잘못되었다. 



이런 생각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학자가 되기 전 저자는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금융 회사에서 트레이더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 때 그는 회사에서 일하는 전문 트레이더 대부분이 자신처럼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니라 가방끈 짧은 길거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게다가 그들은 아이비리그 출신인 저자보다 일도 잘했다!). 동체역학을 안 배운 세 살 꼬마부터 칠십대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자전거를 탈 수 있듯이, 경제 역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의 전문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앎, 지식이라는 것에 회의적이다. 심지어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에게 반기를 든다. 나 자신에 대한 '앎'이 '삶'이라는 실전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경제학에도 적용된다. 경제학자, 경제전문가들은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알 수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 이는 착각이며 오만이다. 알 수 있는 것은 없거니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블랙스완처럼 인간의 예측 범위를 넘는 현상이 발생하면 예측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과거의 실패한 경험, 즉 블랙스완을 본 적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블랙스완이라는 이름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전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 바로 안티프래질이다. 책의 많은 부분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지만, 저자가 몇 년 전에 제시한 블랙스완과 이번에 발표한 안티프래질이 연결되는 이 대목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블랙스완이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듯이, 안티프래질 역시 앞으로 다가올 경제 현상을 제대로 예측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것은 위기를 극복하여 더욱 강해지는, 긍정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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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2-1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확인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