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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이 '하버드' 정치경제학이라고 해서 하버드 교수나 하버드 출신의 대(大) 학자가 쓴 정통 경제학 서적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자 천진이 하버드에서 석사를 했고, 현재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인물이니 하버드와 인연이 없는 인물은 아니지만, 교수나 학자가 아닌, 순수한 학생의 입장에서 쓴 점은 여느 책과 다르다. 수업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느 교수가 어떤 말을 했는지 등등 학생만이 알 수 있는 시시콜콜한 얘기나 감상까지 적혀 있어서, 마치 선배나 친구의 잘 정리된 '강의 노트'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트 필기 수준의 책은 결코 아니다.) 찾아보니 책의 원제도 '하버드 경제 노트2 (Harvard Economic Note2)'. <하버드 경제학>의 속편이라는 점과 미국 정치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하버드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 같은데, 책의 성격이나 내용을 생각하면 '하버드 경제 노트'라는 제목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총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1장의 '개방경제학'과 3장의 '경제학의 탄생과 변화'는 경제학과의 정규 커리큘럼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일반론이 대부분이라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다는 하버드에서는 교수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점이 좋았다. 특히 하버드 교수들이 아담 스미스 같은 잘 알려진 인물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 개방경제학의 원론적인 이슈들을 현실 경제와 어떻게 접목시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며,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는 교수법이 대부분인 국내 강의실 풍경과 비교되어 부러웠다.

 

 

2장 '의료 체계와 관련한 정치와 경제'는 경제학을 미국 현실 경제 문제와 접목하여 설명한 부분이고, 4장 '문화경제학'과 5장 '미국 사회의 동향'은 현재 하버드 대학에서 새롭게 연구 중인 문화경제학, 그리고 다른 학문과 어떤 식으로 학제간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한 부분이다. 사실 처음에 이 책 제목이 '하버드 정치경제학'이라고 해서 하버드의 정치경제학 강의에 대한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런데 4장과 5장을 읽어보니 단순히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법학, 철학, 환경학 등 폭넓은 분야를 다루어서 놀랍고 신선했다. 하버드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고, 미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서 고루하고 보수적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새로운 연구, 다양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며 최근의 트렌드인 '융합', '통섭'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5장에서는 반가운 이름들이 자주 등장한다. 먼저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이 경제학과에서 강연한 내용이 나온다. 경제학 이슈를 철학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샌델 교수 특유의 '소크라테스 식' 질문으로 강의를 했다는 기록이 나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으로서 반갑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또 한국인 최초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로 유명한 석지영 교수도 나온다. 샌델 교수의 강연에서 패널 교수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데, 석지영 교수의 저작인 <법의 재발견>을 읽은지 얼마 안 된 참이라서 반가웠다. 석지영 교수도 법과 예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시도로 크게 주목받았다고 하는데, 역시나 이런 '융합', '통섭' 같은 시도를 학계에서 매우 반기는 모양이다. 이외에도 소로스, 듀카키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버드대에 다니면 이런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참 부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이런 내용을 책으로 엮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문화 그 자체였다. 사실 책 내용은, 말 그대로 '강의 노트'처럼 강의 내용을 기록하고 약간의 감상을 덧붙인 정도에 불과하다. 하버드 대학과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먼저 길을 만들어 놓으면, 그 길을 따라간 사람들이 늘어나서 큰 길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가 이런 기록을 남겨 놓으면 사람들이 살을 덧붙이고 고치고 다듬어서 학문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공부해서 미국 명문대 들어갔다'는 식의 책은 많지만, '미국 명문대에서는 이런 공부를 하더라' 하는 식의 책은 몇 권 없다. 그런 기록들이 우리나라 교육과 학계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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