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주효숙 옮김 / 까치글방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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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번, 운동부족으로 여간해선 뛸 일이 없는 내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알라딘 알사탕 코너의 '틀린그림찾기'다. (이번에 갱신된 퀴즈는 너무 어려웠어요ㅠㅠ 난이도 좀 낮춰주세요ㅠㅠ) 이 코너의 최대 매력은 퀴즈를 클리어하면 알사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퀴즈를 풀면서 새롭게 출간된 책에 대해서 알게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서점에 갔을 때나 온라인서점에서 왠지 낯이 익은 책이 보여서 '어디서 봤더라'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틀린그림찾기'에 제시된 퀴즈 속의 책인 경우가 많다.

 

이 책 <고대 로마인의 24시간>도 '틀린그림찾기'를 통해 알게된 책이다. 제일 좋아하는 책으로 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꼽을 정도로 고대 로마와 이탈리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생각해보니 이탈리아의 역사나 정치에 대해서만 알았지, 민중들의 생활과 문화, 풍습 같은 '진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순간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길에서 산책을 할 때는 무엇을 느꼈을까?

길을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땠을까?

발코니에서는 무엇이 보였을까?

음식은 어떤 것이 있었고 맛은 어땠을까?... (p.12 서문 중에서)

 

이 책의 저자 알베르토 안젤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고고학적 유적지를 탐구하고 조사한 사람이다. 몇 년 간 고대 도시 로마의 유적을 주제로 한 텔레비전 방송 제작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로마 제국 당시의 사회상과 관습, 일상에 대한 책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나도 광화문 주변, 특히 조선 시대 6조 관청이 자리했던 광화문 앞 대로와 피맛길 같은 주변로를 걸을 때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상상해보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종종 생각해보는데(남한강으로 이어지는 나루가 있고, 누에고치를 키우는 방이 곳곳에 있었겠지?),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책으로 재현한 것이다.

 

저자는 동이 틀 무렵부터 이튿날로 이어지는 자정까지, 하루 24시간 동안 로마인의 삶을 관찰하는 식으로 고대 로마인의 의, 식, 주생활과 정치, 경제, 예술, 성(性)문화에 이르는 모든 것을 자세히 그려냈다. 로마의 예술은 곧 현대 예술의 기원이고, 로마의 철학은 현대 철학의 원형인 것처럼, 로마의 모든 것이 현대인들의 생활, 학문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그 분야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새롭게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옷에 대해 잘 몰라서 초반에 나오는 로마인들의 의생활에 대한 부분이 특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즐겨 입었을까? 바지는 언제부터 입었을까?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의문들이 이 책 한 권으로 풀렸다.

 

 

고대 로마의 모습은 현대의 뉴욕, 런던을 방불케 할 만큼 수많은 인구가 몰려 있고 첨단 기술이 밀집해있는 '메트로폴리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엄청나게 복잡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중심에 있는 도시로서 제 몫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에도 튼튼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로마 제국의 도로와 잘 갖추어진 상하수도, 최신 공법으로 지은 (당시로서는) 고층 건물 등 인프라가 받쳐주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로마에도, 당시 기술로서는 커버할 수 없는 문제점이 몇 가지 있었다. 아니,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이상하고 불편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예를 들면...  

 

로마에는 건물 밖으로 소변과 배설물을 내버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규가 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법규는 무척 엄중하게 적용된다. 형벌은 위에서 쏟아부은 이 폭격의 피해 상황에 달려 있다. 옷만 버린 상태인지 혹은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신체적 손상을 입혔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로마 제국 내에서 배설물이나 소변의 투하 위험이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pp.99-100)

  

소변과 배설물을 창 밖으로 버리지 말라는 법규가 제정되었을 정도라는 것은, 그만큼 그런 일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는 배변, 목욕 등 현대에는 집 안에서 해결되는 일들을 집 밖의 공중화장실, 공중목욕탕에서 해결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집 안에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고, 집 안에 있다가 급한(?) 일이 생기면 저렇게 집 밖으로 배설하거나 내버리는 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변기 시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은 평평한 벤치 위에, 자물쇠 구멍같이 생긴 뚫려 있는 구멍 위에 앉는다. 긴 벤치 아래에는 깊은 수로가 있다. 수로에 흐르는 물이 모든 것을 운반해간다. (p.242)

 

그렇다면 공중화장실의 모습은 어떤가? 나는 책에 제시된 그림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중국 화장실에는 칸막이가 없어서 일 보는 사람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는 얘기가 있는데, (얘기가 아니라, 나도 중국에서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요즘은 아주 깊은 시골에서나 그렇다고 한다)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길고 평평한 벤치가 있고 거기에 엉덩이 사이즈보다 조금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 앉아서 일을 보는 것이다. 모습만 보면 멀쩡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어쩌면 가장 멋스럽고 세련된 모습이었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우리의 어떤 모습을 이상하고 불편하게 여길까?

 

 

고대 로마인들의 모습 중에서 현대에까지 이어진 것들도 있다. 가령...

 

오늘날 공중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수많은 외설적인 낙서도 빠지지 않는다. 아무튼 이 많은 외설스런 낙서 가운데 "마르쿠스는 도미티암을 사랑한다"라는 순수한 사춘기의 사랑의 연시가 돋보인다. 바로 옆에는 균형을 맞추려는 듯이 "아주 세련된 몸가짐의 그리스 여인 에우티키스는 2아스에 몸을 내어준다"라고 외설스런 낙서가 적혀있다. (pp.86-7)

 

두 노인은 모라(제로 게임에 해당/역주)라는 게임을 하는 중이다. 이 게임의 원래 이름은 미카티오이다. 팔뚝을 들었다가 아래로 힘차게 뻗으며 숫자를 외치며 동시에 손가락 몇 개를 펼친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게임하는 두 사람이 펼칠 손가락의 합계를 미리 알아맞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p.135)

 

고대 로마인들도 요즘 사람들처럼 공중 화잘실에 '철수♡영희', '철수 바보' 같은 유치한, 또는 외설적인 낙서를 하며 즐겼다니! 게다가 어릴 때부터 즐겨하던 '제로' 게임의 유래가 고대 로마로까지 거슬러간다니!!! 생활 속의 아주 작은 것,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교훈이 있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다. 고대 로마의 할아버지들은 당신들께서 하고 있던 그 게임이 무려 2천년 후에도 꼬마들이 즐기는 놀이로 이어질 줄 상상이나 하셨을까?

 

 

고대 로마인들의 모습 중에는 현대인들과는 너무 다른 것도 있고, 참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고대 로마 하면 떠오르는 복잡한 정치사나 전쟁사에서 살짝 벗어나,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난 민중들의 생활로서 역사를 접하는 것도 참 의미있는 공부, 의미있는 책 읽기인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로마人 이야기가 아닐까?

 

 



 
 
아이리시스 2012-03-03 19:38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겠어요. 어느 분인가 했는데 이름이 또 바뀌었네요, 키치님. <로마인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매번 중간에서 포기하게 되는데 그래서 인문서도 어려울 것 같은데 리뷰 보니까 믿을만 하겠어요. 잘 읽었어요^^

키치 2012-03-05 15:54   URL
제 예전 닉네임을 기억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 이 책은 로마인의 의식주 같은 일상생활 위주로 쓰여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각 챕터를 하루 일과로 구성한 점도 신선했고요. 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