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이미화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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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취향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만나야 하고 대화는 해야 하기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찾아서 - 이를테면 음식이나 맛집,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 연예인 가십 등등 - 열심히 떠들지만, 인사하고 돌아서서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오늘도 쓸모없는 말,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만 하다 끝났구나 하는 허무감을 느낀다.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취향이 딱 맞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이미화의 여행 에세이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를 집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영화를 사랑해서 영화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저자는, 사랑하는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들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는 여행에 도전했다. "어떤 속도로 어느 시간을 살아가고 있든, 영화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은 나를 덜 외롭게 했다."라는 서문의 고백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내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저자가 고른 영화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 <노팅힐>, <어바웃 타임>, <클로저>, <원스>, <카모메 식당>이고(어쩜 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일까!), 저자가 가본 나라와 도시는 포르투갈 리스본,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아일랜드 더블린, 핀란드 헬싱키 등이다. 


하도 오래전에 봐서 영화의 줄거리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영화의 배경이 된 나라와 도시에 가본 적이 없어서 공감이 안 될 것 같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물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장면, 감동을 느꼈을 만한 문장이 저자의 글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에, 저자의 글을 읽으면 영화 내용이 저절로 떠오르고 영화 속 장면이 생각날 것이다. 글과 사진만으로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를 모두 알기는 어렵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라면 저자가 아침을 먹고 거리를 걷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리 위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그 모든 과정을 따라가면서 마치 내가 그 도시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도시를 찾는 여행을 즐기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스크린 너머로 본 풍경 속을 직접 걷고 느끼는 저자가 얼마가 부러웠는지 모른다. 저자가 엄청 유명한 맛집에서 진수성찬을 먹은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좋은 숙소에서 대단한 체험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비포 선셋>에 나온 서점에 가고 <원스>에 나온 거리를 걷고 <카모메 식당>에 나온 식당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은 것뿐인데 나에게는 최상의 여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영화 취향을 가진 친구, 이런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애인이라면 밤새도록 같이 있어도 질리지 않을 듯. 저자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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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4-3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책 제목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