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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살면서 변해가는 것들을 말하다가 ‘변해가는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다며 참거나 배려하거나,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괜찮아 하던 것이, 이제는 점점 더 싫고 좋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거였다. 거절하기 어려워 받아들였던 것도 스트레스가 되고 부담이 된다는 것을 너무 오래 무시해왔던 것 같다고, 내가 잘 지내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내가 시간이 안 되는데 ‘그래’라며 무리해서 맞춰가는 게 있었다면, 지금은 그 ‘무리’를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는 거다. 길게 내다보면 무리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태도가 옳다 그르다 하는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게 아니라, 이젠 그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으며, 지금은 그게 낫다는 생각에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어떤 태도라도 정답은 아닌 듯하다. 그저 그때, 살아가는 순간에 내가 선택하는 최상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임경선이 말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지금 내가 살아가는 생각과 비슷한 면을 많이 발견했다. 그녀가 말하는 지금의 그 태도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저자는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게 된 삶의 중요한 가치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라는 키워드가 무얼 말하고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느 정도는 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기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말하는 방식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녀의 자세에 좀 반했다. 내가 선호하는 방식의 모습들에서는 격하게 교감했다. 내가 다 표현할 수 없었던 태도를 말할 때면 비슷하면서도 조금 모자란 나의 방식을 생각했다. 나와 전혀 다른 사고를 하는 그녀의 말을 들을 때면 '이게 세상(사람)을 대하는 좋은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갔던 일이 찜찜하게 남아 있던 기억들이 떠올라 잠깐 그녀의 방식에 넣어보기도 했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더 깔끔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나 핑계 비슷한 변명도 하면서 말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말하는 삶의 태도, 자신을 드러내는 자세가 모두 똑같지는 않다. 똑같을 수도 없다. 그러니 보편화된 정답도 없는 거다. 다만, 내가 선택한 태도만 있을 뿐이다.

연애도 사랑도, 일도, 가족도. 무엇이든 항상 같은 태도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런 마음. '한번 해보니까 이게 아니더라' 싶은 거라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들. 그 방식이 처음부터 한결같이 고수하게 되는 것도 있고 시시때때 변하는 것도 있다.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상대가 누군지,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단념하게 되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예를 들면 이런 상황. 나는 2년 전에 십년 넘게 교류하던 친구와 절교했다. 그 친구와 나는 성격이 극과 극이었지만, 그래서 더 오랜 시간을 이어올 수 있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꼭 같은 결정은 아니어도 그녀의 사고를 존중하는, 관심과 간섭을 잘 판단하고 이해하기 위해 정한 선을 항상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일방적으로 이어져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몇 달을 더 유예기간으로 삼았다.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고 전처럼 교류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내가 그녀를 계속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싶어서였다. 안타깝게도 결론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절교였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고는 관계의 해결 방법이 없었다.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거다. 그건 포기와는 다른 문제인 듯하다. 관계를 위해 왜 더 노력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을 일도 아니다. 다시 보게 되더라도, 다시 못 보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의 태도로 타인을 대하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때 그렇게 놓았던 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인간관계를 견뎌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장은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만 한번 관계를 자연스럽게 놓아버린 다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피차 홀가분해할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 일부러 거론하지 않는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을 놓아보자.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없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102페이지)

 

성실하게 일하고, 관대하게 사랑하고, 정직하게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공정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얘기하는 저자의 말투가 단호하면서도 애틋하다. 지나간 것들을 슬며시 끄집어내 한 번씩 되새김하게 한다. 사실 이런 거, 자꾸 지나간 일 떠오르게 하고, '내가 틀린 건가?' 싶은 두통을 일으키는 고민을 좋아하진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건 듣기 좋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일 수 있지만 틀린 게 아니니까 듣고 생각하게 하는 맛이 있다는 거다. 나와 달라서 한 번 더 듣고 싶은 기대와 나와 같아서 맞장구 치고 싶은 든든함 같은 거 느끼고 싶었다. 매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동시에 쉽게 해결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삶을 이루는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에서 자주 대면하며 반복하게 된다. 어떻게 할까 늘 고민하지만 단호하게 구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쉽지 않은 일.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 살아가는 방법들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르치려 드는, 내가 딱 질색하는 그런 어감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것도 괜찮더라.'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다. 기꺼이 상처받아도 좋다고, 그런 상처는 자신이 살아가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저자의 식대로 보여준다. 그 상처와 태도가 오늘보다 내일의 삶을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계속 나아가게 한다. '완벽'하게 보다는, 인간미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우린 완벽한 인간이 아니니까. 상대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면서, 그렇게 사는 거, 난 좀 괜찮을 거 같은데?

 

어차피 우리는 정답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가지 않으니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내가 내린 답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슬픈 얘기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내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서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6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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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졸립다.

자야지 하다가, 낮에 본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생각나서 끄적끄적.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그동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었어도,

'어? 벌써 1년 지났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었군.' 하고 말았다.

신간이 나왔다는 거 말고는 별다른 감각이 없었는데,

 

소개글 쭈욱 읽다가, 이번 책은 읽고 싶어졌다.

이런 적 처음...

 

저렴한 가격에 무료배송 해줄 때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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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거라고 하더니 아침부터 흐리다.

여름인 것 같은 며칠동안의 날씨에 덥다고 노래 부르며 지냈는데,

하룻밤 사이에 서늘해졌다.

이런 서늘함과 분위기가 책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데... 마음이 따라주지 못해 아쉬울 뿐.

 

 

신간평가단 에세이 4번째 관심 도서.

 

 

 

제목에 확 와닿는다.

술을 많이 알지도 못하고, 많이 마시거나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술자리 특유의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좋아한다.

(물론 너무 과하면 화기애애는 물 건너 가겠지만)

 

술과 함께한 저자의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마도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 자연스러운 풍경과 삶의 한 자락을 공감하고 싶어진다.

 

술과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 만나고 싶다.

 

 

 

 

 

 

궁금했다. 소년, 남자가 된 이들이 거쳐온 책이 무엇일지...

누군가에게 접근하는 책이 다 다르겠기에 새삼 궁금한 건 아니지만,

약간 삐딱해 보일 법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책들.

제목부터 땡기잖아. ^^

 

책 속의 책이라는 큰 타이틀을 벗어날 것 같진 않지만,

그 뻔함 속에서 다가오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기대된다.

아, 궁금해... ^^

 

 


 

 

 

작가의 소설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었다. 

그런데 그가 쓴 에세이라니, 이것부터 만나도 되려나 싶어 살짝 갸우뚱.

 

역설의 귀재라 불렸단다.

온갖 분야의 주제에 독설을 퍼붓는단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매사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삶의 방식이 드러나 있다고 하니...

펼쳐보고 싶다.

특히 그가 하는 독설에 빠져들고 싶다.

 

 

 

 

 

 

 

전당포에 맡겨진 온갖 물건들의 사연인가보다.

전당포라는 곳도 가본 적 없고, 무얼 맡겨본 적은 더더욱 없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들은 기억한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생각했던 건,

저렇게 물건을 맡긴 사람들이 그 물건을 되찾아가긴 할까? 였다.

전당포에 아끼는 물건을 맡길 정도면, 그만큼 돈이 급했다는 건데,

그 정도의 여유를 찾지 못해 물건을 맡긴 거라면

그 물건을 찾아갈 여유가 생기기는 할까, 싶은 노파심과 안타까움, 염려...

 

열일곱 살에 전당포와 인연을 맺은 저자가 30년 동안 전당포를 운영하며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울고 웃으며 보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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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먹는 행위나 음식 자체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나지만, 그 음식이 면이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여전히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걸 선호하지만, 그 패스트푸드에 면을 포함하고 싶은 거다. 간단하게 사 먹거나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빠른 시간에 해결할 수 있고. ^^ 물론 간단하게 만든다는 것은 포장된 걸 단순히 끓여 먹는 수준을 말하는 거고, 먹는 속도도 남들보다 느리지 않다. 맛은 보장 못 한다. 제대로 만들어서 파는 전문가의 손길만 하랴. 그저 흉내만 내는 맛, 그렇게라도 한 끼 해결하고 비슷한 맛을 내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도 감지덕지. 반드시 끼니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면 음식은 더욱 나를 반긴다. 특히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자랐는데도 엄마와 난 식성이 다르다. 위에서 말했지만 나는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는 정도로만 먹는 걸 선호하는데, 엄마는 밥에 찌개 종류를 좋아한다. 외식할 때도 무슨 탕이나 구이 같은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고, 나는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서 주섬주섬 몇 번 먹고 마는 걸 좋아하니 마음을 통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엄마와 나의 마음이 통할 때가 있는데, 바로 국수를 좋아한다는 거다. 둘 다 위가 좋은 편이 아니어서 면 종류는 피해야 한다고 항상 지적받는데, 그런데도 자꾸자꾸 손이 가는 건 새우 과자가 아니라 국수다. 그러니 이런 책이 반가울 수밖에.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표지 때문에 책의 종이에 코를 킁킁대며 국물 냄새를 흡입했다.

 

 

 

『어이없게도 국수』 제목부터 눈에 저절로 들어온다. ^^ 저자의 나이 마흔에 닥쳐온 변화가 감당이 안 될 때 글쓰기를 떠올렸단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글쓰기.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정한다면 15년여의 커리어의 그녀에게 글쓰기가 처음부터 벽으로 다가오진 않았을 듯하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 그녀는 무엇을 쓰려고 했을까.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자신의 일상, 공부, 책, 아이들. 많은 것을 떠올렸으나 그녀의 40년 인생에서 꾸준히 옆에 있었던 것은 딱 하나였단다. 바로 국수. 어이없게도, 국수였단다. (일단 한번 웃어보고) 하고 많은 것 중에 국수를 떠올린 그녀가, 나도 잠깐 어이없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꾸준히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게 국수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고 기쁜 일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봤는데, 내 인생 통틀어 줄곧 내 곁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게, 나는 하나도 없더라. 그러니 저자의 국수 찬양과 견문이 경건해 보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 하나쯤 있을 거라 쉽게 생각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기껏해야 국수'가 아니라 '대단한 국수'였던 거다. 저자의 추억을 채우고, 성장에 함께 하며, 위로가 되었던 건 다름 아닌 국수였다. 인생의 중심이 흔들릴 때 지켜주었다던 국수 이야기다.

 

콩나물, 그날 들어온 생선, 기계로 뽑은 납작한 칼국수 면을 고춧가루 듬뿍 풀어 끓여낸 모리국수는 원래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을 위해 만들어주던 음식이었다. 국물이 시뻘게지도록 투하한 고춧가루도 그렇지만 마늘이 듬뿍 들어간 데다 생선과 국수의 전분으로 걸쭉해진 국물이 칼칼하고 든든했다. (20페이지)

 

유전적으로 뼛속까지 면식수행자인 저자의 입맛이다. 하루 한 끼는 국수를 먹으며 살아온 저자에게 국수는 남다르다. 저자의 삶에 국수가 강하게 각인되는 이유다. 특히 사람과 함께 한 국수의 기억은 대단했다. 단순히 뱃속을 채우며 먹는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수를 먹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상태를 경험했던 거다. 그러니 이런 국수 찬양이 가능해진 거 아닐까. ^^ 한 사람의 일생을 담아낸 기억으로 함께 하는 국수. 소소한 일상부터 크고 작은 일 옆에 항상 국수가 있었다. 삶의 형태와 배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가 그대로 담겨 국수의 의미를 새기기도 한다.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을 위해 만들어주었다는 얼큰한 모리국수는 삶의 고된 순간을 견디게 해주는 매운 맛이 되기도 했다. 처음 국수를 만나게 해준 고모와의 추억, 야근에 몸이 늘어지지 않게 힘을 주었던 두부국수와 비빔국수, 여럿이 함께 먹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닭한마리 국수, 소맥과 삼겹살의 강림 후에 열기를 식혀주는 열무냉국수, 손때 묻은 덩어리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는 수제비, 진한 팥국물에 담가 조금 퍼졌을 때 먹으면 맛있는 팥칼국수, 참새방앗간 같은 고속도로의 가락국수도 빼놓을 수 없는 국수 가족이다.

 

가락국수 하니까 생각나는데, 예전에 만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집 앞으로 찾아와 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집 근처에 국숫집이 없는 것 같아 근처의 포장마차를 머릿속에서 찾고 있는데,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손지갑 하나 들고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왔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가서 국수를 먹자는 건가 싶었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일단 탔으니 가보자 했는데, 도착한 곳은 내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가락국수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휴게소만한 맛이 없다나 뭐라나.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따라 들어가 먹었는데, 역시, 그랬다. 맛이 있네 없네 여러 말을 해도 가락국수 맛은 고속도로 휴게소를 따라올 수가 없었던 거다. 인정!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저자 못지않은 국수의 추억이 있었네그려.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중국집은 화교들이 주인이었고, 주인이 당연히 주방을 꿰차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 박정희 정권에서 혹독한 화교 탄압 정책을 펴면서 재산을 몰수당하다시피 한 수많은 화교들이 한국을 떠나게 되자 이를 계기로 중국집 주방에 한국인들이 들어서게 되었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짬뽕은 매운 음식이 아니었다는 것이 당시 중국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분들과 옛 맛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전언이다. 화교들의 대거 이탈로 '어쩔 수 없이' 주방에 한국인들이 입성하면서 매운 걸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네 식성에 맞게 고출가루가 듬뿍 든 얼큰한 빨간 짬뽕으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이는 1970 들어 급성장한 국내 외식산업의 두드러진 특성인 '매운맛의 보편화'라는 트렌드와도 일치한다. (100~101페이지)

 

국수에 누군가의 추억만 담긴 게 아니다. 국수는 한 시대를 기록하는 역사도 품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즐기는 짬뽕은 처음엔 빨간 국물도 아니고 매운 맛도 아니었다는 것. 오랜 시간 진주를 벗어나지 않고 그 맛을 이어온 진주냉면은 이제야 경남 지역 일부에서라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올챙이국수, 막국수, 옹심이 같은 가난한 자들의 식량이었다던 메밀은 배고픔과 동의어로 들린다. 한국의 거의 최초 패스트푸드였다던 구포국수의 명맥이 궁금하나 그 흔적을 찾지 못하게 되었고, 물자의 부족과 빈곤은 밀면과 비빔당면을 탄생시켰다. 그러고 보면 국수는 상당히 만만한 음식이었나 보다. 배고픔의 허덕일 때 금방 찾아내고 응용하여 허기를 달래주곤 했던 것이 국수의 다양한 버전과 발전을 이루어낸 건 아니었을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들려준 29개의 에피소드가 대부분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저자 자신의 기억이 보태어진 국수의 추억이 기록되는 거였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 하나쯤 심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이유다. 겨우 국수 한 가닥일 수 있지만 그 한 가닥이 모여 일생의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가 어느 순간 불쑥 튀어 나와 삶을 견디게 해주곤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물론 그 대상이 국수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저자의 이야기가 큰 거부감 없이, 낯설지도 않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마음 한 자락 열어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보니 그런 힘을 발휘하는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때로 위로가 되고,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주며 구제하고, 한 템포 쉬어가게 해줄 수 있음을...

 

'나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나?' 곰곰 생각하다가 떠오른 건 짬뽕이다. 미친 듯이 허기짐이 찾아올 때, 가슴 속이 답답할 때 매콤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때. 그럴 때면 집 근처의 작은 중국집까지 직접 가서 먹는다. 전화 한통이면 금방 배달 오는데 뭐 하러 굳이 가서 먹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짬뽕만큼은 만들어져 배달 오는 그 시간도 별로다. 그 몇 분 사이에 불어버린 면이 싫어질 것 같아서. 주로 배달 위주라 매장에는 겨우 테이블이 서너 개뿐인 그곳까지 가서 먹는 게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부끄러움이고 뭐고 없다. 일단 먹고 보는 거다. 다 먹고 난 후에 찾아올 개운함을 기대하면서 그 매운 국물을 들이켠다. 언제부터 짬뽕을 그렇게 먹었는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데, 그 시작 역시 엉뚱하다. 이십대 초반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예쁘게, 조금씩 먹어도 모자랄 판에 짬뽕 한 그릇을 다 비워낸 적이 있다. 그릇째 들고 짬뽕 국물을 들이켰다. 앞에 앉은 그가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야, 짬뽕을 너처럼 맛있게, 한 그릇 다 먹는 여자는 첨 봤다." 그러면서 쌍엄지까지 추켜올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민망한 기억인데, 그때 난 뭔가가 정말 답답했던 것 같다. 그 매스꺼운 속을 풀어내지 않고서는 못 살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떨리고 설레는데, 짬뽕을 그리 먹을 수는 없었을 거다. 분명! (아마도... ㅠㅠ)

 

비록 내가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먹는 일이 단순히 먹는 행위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풀어가는 과정임을 알고 있다. 음식이기 이전에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소통을 이루어내는 하나의 매개가 되는 거다. 같이 먹는 음식, 먹으며 얘기하는 자리, 포만감이 불러오는 마음의 여유, 날카롭게 곤두서있던 시선을 누그러트리기도 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으로 쌓여가는 정 마일리지까지. 음식이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세상 경험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기도 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창이 되기도 한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의미 있는 행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은 먹는다는 것 한 가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 동반한 국수를 통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국수가 지나온 삶을 추억하게 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그런 웃음을 다 날아가고 얼굴에 추억의 웃음꽃이 피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힘이 되는 그 어떤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 짓게 되는 것, 행복해지게 하는 것, 삶을 기운 나게 하는 것. 그게 저자에게는 국수였을 텐데, 이 책을 읽을 당신에게는 무엇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뜨거운 국물에 담긴 면발을 땡기고 싶다. 호로록~ 호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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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밤 (4쇄) The Collection 3
바주 샴 외 지음 / 보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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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숲 속, 그곳에서... 『나무들의 밤』

 

 

처음엔 책의 비싼(?) 가격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 그냥, 한 권의 그림책인 것 같은데 상당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니, 왜 이럴까 싶었다. 막상 책을 펼쳐 들고는 책 가격 따위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두툼한 종이의 재질에 무게감을 느꼈고,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보이는 나무 그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런 그림, 처음 봤다. 신기하면서도 낯설고, 낯설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첫 페이지에서 언급했던 그 나무의 정령이 정말 모든 나무 그림에, 그 나무뿌리에서부터 살아 숨 쉬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하게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가야 할지 모를 자연의 신비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아직 내가 모르는 자연, 지구 어느 곳에서 시작된 신성한 의미, 사람을 끌어당겨 품에 안고 있을 것 같은 차분한 안도감 같은 게 이 책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반딧불이 인도하여 따라간 길, 컴컴한 숲 속을 걸어 만난 신비한 광경, 어둠 속 셈바르 나무 한 그루가 반짝이며 서 있던 모습. 셈바르 나무에 착한 정령들이 살고 있다고 믿게 된 마음의 시작. 친구로 지내게 된 목동과 반딧불, 어려움에 빠진 생명을 보호해주는 셈바르 나무를 찾아가는 길. 숲 속에서 길을 잃게 되면 셈바르 나무를 찾으라는 메시지...

조물주 샨카르가 인간에게 허락한 나무 한 그루에서 꽃과 열매로 배를 채웠다. 인간이 곡식을 심어 먹기 전까지는 그러했다는 이야기. 조물주가 허락하고 나무가 내어준 양식. 그렇게 계속된 나무와의 시간과 역사, 자연의 신화가 시작된다. 두마르 나무, 뱀 여신의 나무, 누에, 다람쥐, 열매의 탄생, 노래하는 나무가 된 사자 나무, 여러 가지 동물로 바뀔 수 있는 취하는 나무, 집 짓는 데 썼다는 덩굴나무, 황소의 눈병을 낫게 했다는 뱀 머리 나무, 감싸고 보호해주는 울타리 나무... 아직 여기에 담기지 못한 나무들의 밤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이다음 이야기를 찾아야 할까.

 

 

인간사의 모습을 살짝 엿보는 것 같기도 했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 아낌없이 내놓는 나무. 언제든 필요한 것을 내어줄 듯한 자세로 모든 걸 감싸주겠다는 것처럼 그 자리에 존재하는 나무.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에 풀과 나무로 다시 태어났다는 연인의 사랑. 술을 과하게 마시면 다른 것으로 변해버리는 나무가 보내는 경고. 뱀이 감싸고 있는 세상을 풍자하는 듯한 뼈있는 말. 다른 것이 되고 싶은, 간절하게 바라는 꿈을 그리는 동물. 첫 번째 열매를 맺고 신성한 축하 등불을 밝히는 의식에서 탄생의 경이를 느낀다. 신비로운 이야기지만, 어쩌면 우리 내면의 위험한 사고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봤던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보는 모습들, 후회들, 경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인간사의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의미 있는, 아름다운, 나무들의 밤이겠지만 말이다.

 

 

인도 중부 곤드족의 예술과 민간전승을 바탕으로 했다는 그림책 『나무들의 밤』은 세 명의 곤드족 아티스트의 섬세함과 시각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들의 전통에서 유래된 표현이 소개 글에서처럼 생소하긴 하지만, 그걸 느낄 겨를도 없이 그 신비함에 빠져들게 한다. 어느 마법의 공간에 들어가 있는 느낌, 진짜 어느 숲에서 마주한 것 같은 광경, 하나하나 소개된 나무들의 사연 있는 이야기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을 손으로 작업했다는 이 그림책이, 책이 아닌 신비로움까지 가진 이유가 전설 같은 이들의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림과 이야기가 너무 잘 어우러져 그 나무들의 밤에 초대받고 싶어질 정도다.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이야기에 또 하나의 상상을 그리며 이 자연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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