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리를 잘한다, 고 생각했다. 여기서 ‘잘’의 의미는 눈앞에서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청소하는 걸 워낙 싫어해서 그런지 눈앞에 뭐 있는 꼴을 못 본다. 내가 정리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버리거나 쌓아두거나. 쌓아놓는 것도 위태로울 수 있으니(특히 책), 적당한 높이로 쌓아두다가, 한 번씩 꺼내 확인하고 버리거나 하는 정도. 청소도 너무 싫으니 최소한으로 하는데, 그것도 청소기 돌리기 귀찮아 아주 간략한 방법으로,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알라딘에서 책 구매하면 따라오는 스티커형 영수증을 떼어서 먼지 찍찍이로 쓴다. 이건 집에 넘쳐난다. 함부로 막 쓴다. 찍찍 소리 내면서 먼지나 머리카락을 다 떼어내고, 천 원에 100장짜리 물티슈를 사서 막 뽑아서 닦는다. 물론 여기서 정리를 안 하니 눈에 보이는 곳만 닦는다는 게 함정이다. 제대로 된 청소가 안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한번 뒤집어엎기 전에는 제대로 된 청소라는 게 불가능한 나이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괜찮아. 이 정도면 숨 쉬고 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

 

어질러 놓는 게 싫다고 말하면 혹자는 내가 엄청나게 깔끔하고 항상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던데(주변에서 그렇게 알고 있더라), 절대 그렇지 않다. 오백 권도 안 되는 책이 몇 년 동안 정리가 안 되어 책 있는 방에는 잘 안 들어간다. 가끔 필요한 책 꺼내러, 새로 사들인 책 던져놓으러, 뭔가 꽂히면 다 팔아버리려고 들어가는 게 전부다. 그 정도면 왜 청소하거나 정리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한소리 할 만한데, 적어도 책 있는 방에 한해서는 그리 뭐라 하지 않는다. 꾸준히 책을 사는데도 늘 책의 양은 그대로라 잔소리할 명분이 없어서인 듯하다(이건 내 생각). 분명 매일같이 택배 기사님이 책 던져주고 가시는데, 책이 새끼 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지난번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한번 읽고 다시 안 읽는 책은 팔거나 지인에게 나눔 하거나 기증하거나 하니까. 그리고 이 이상으로 책을 늘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얼추 지켜지는 것 같기도 하고. 늘 게으른 습관처럼 많이 읽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요즘엔 읽고 싶어졌다고 막 책 사기도 좀 그렇고... 암튼, 책 정리에 관해서도 청소 안 하는 나의 습관이 적용되니까, 아주 조심해야 함.

 

그에 반해 나는 엄마가 정리 안 하는 걸 가끔 뭐라고 하는데, 그건 엄마가 정리 안 한 게 눈에 그대로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안 쓰는 그릇은 안 보이는 곳에 넣어두든지 버리든지 하면 되는데,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면서 굳이 버리지 않는다는 것. 부피가 큰 냄비 같은 경우 더 눈에 띄는데, 내 살림 아니니까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겠고... 아예 주방에 안 들어가는 게 상책. 그러면 또 늙은 엄마 밥 시켜 먹는다고 또 한 소리. 아, 이걸 우째...

 

특히 엄마의 옷 얘기는 하다 보면 끝이 없는데, 매일 입을 옷이 없다면서(이건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말 아닌감? 옷을 사도 입을 옷이 없어. ㅎㅎ), 입을 거 하나 사야겠다면서, 서랍에 옷이 한 가득이다. 해가 바뀌었으니,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 하나 산다고 세상 무너지지 않을 터이니, 뭐가 어떻겠느냐마는, 문제는 서랍의 옷을 버리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놔둬, 입을 거야.’ 하면서 버리지 않은 옷이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나는, 새로 옷을 사는 양만큼 버리라고 했다. 어차피 좁은 집이기도 하지만, 한 번 안 입은 옷은 곧! 입을 일이 없다는 거다. 엄마한테 항상 부르짖는 게, 작년에 안 입고 올해 안 입은 옷은 내년에도 안 입는다는 것. 그러니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 버리라는 것!!!! 입지도 않은 옷에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아서 입을 거라고 끌어안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잔소리 끝판왕을 흉내 내는 나지만, 그래도 옷 주인이 안 버리는 것을 어쩌랴. 맘대로 하시라면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

 

 

주말 동안, 지난겨울부터 정리하려던 것을 이제야 마음먹고 정리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아름다운 가게 기증 접수 신청해놓고, 곧 수거하기 오신다기에 미리 다 정리해놓으려고. 사실 내 성격대로 했으면 다 끌어내 놓고 버리면 끝인 것을, 엄마는 또 그 물건들을 꺼내놓고 한참을 망설이신다. 이걸 써? 말어? 버려? 말어? 누구 줄 사람 없나? 이건 필요할 것 같은데? 이건 다시 입을 것 같은데? 아, 고민은 언제 끝나나... 엄마가 망설이는 사이 나는 다 끌어다가 내놓았다. 조카가 타던 킥보드, 롤러블레이드, 안 듣는 음반, 옷, 신발, 가방 등등. 특히 이번에 물건 꺼내다가 놀란 건, 아니 우리 집에 한복이 열 벌도 넘게 있더라. 그것도 엄마 한복은 비싼 것만 남아 있더라고. 그 와중에 엄마는 이 한복 비싸게 했는데, 언제 입을 일이 있을지 모른다며 도로 원래의 박스에 넣으려고 하기에 얼른 꺼내서 내보낼 박스에 넣었다. “엄마, 요즘엔 이것보다 예쁜 한복 더 많아. 앞으로 한복 입을 일이 몇 번이나 더 있다고? 그리고 엄마 살쪄서 이거 맞지도 않잖아?!” 와아, 나의 마지막 말에서 엄마의 입이 닫힌다. 정말 모든 이유를 들어서도 남겨둘 수 있겠지만, 엄마는 몇 년 사이에 살이 쪄서 예전 한복이 안 맞는다. 그 옷에 맞추기 위한 만큼 다시 살이 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걸 본인도 인정하는 순간 그 한복들은, 예전 옷들은 기증할 박스에 풍덩 담겼다. 아이고, 개운해라.

 

특히 어디서 숨은 그릇이며 냄비들이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지,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 쓰던 게 아니고 새것들. 커피잔 세트 여러 개, 그릇 세트 여러 개, 냄비 세트 여러 개... 나도 처음 보던 것들이 구석구석에서 막 쏟아져 나왔다. 엄마한테 이거 다 언제 샀던 거냐고 물었더니, 언제인지는 몰라도 본인이 산 게 맞댄다. 세상에... 그동안 짝짝이 그릇 사용할 게 아니라 이거 다 꺼내어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지금은 쓰지도 않을 그릇들이기에 그것도 미련 없이 나눔 박스에 넣었다. 아름다운 가게 직원 둘이 수거하러 왔는데, 우리가 꺼내놓은 물건들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 가지고 온 차량이 1톤 탑차였는데, 그 안에 3분의 2 정도 채워졌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원래 우리 다음으로 수거하러 갈 곳이 있었는데, 센터에 들어가서 이 물건들 내려놓고 다시 나와야겠다고, 정말 엄청나다고 하시더라고. 그러면서 기증 물품은 자기네가 정리하고 수량 및 금액 확인해서 연락 주겠다고 하더라. 원래 수거할 때 박스 기준으로 몇 개라고 서로 확인하고 가져가는데, 우리한테 수거한 물품의 양이 워낙 많아서 박스로 정리가 안 되기에 그렇다고 말하더라고. 내가 봐도 많긴 많더라. 그런데 며칠 지나면 또 정리하고 버릴 게 나올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은 뭐란 말이야...

 

엄마의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가 조금(아주 조금) 휑하다. 속이 다 후련하다면서 옆에서 자꾸 건드렸더니 엄마가 팩~! 소리를 지른다. 우리에게 쓸모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 재활용된다는 건 좋은 일인데, 엄마의 물건이 나간 자리가 마음까지 휑하게 하나보다. 괜한 심통에 나한테 뭐라 그러네. 그래도 나는 책 때문에 엄마한테 욕먹지는 않았지롱~(미리 땡스기브에 기증 신청해서 끝내버렸다는.)

 

 

문득, 이번에 며칠 동안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한꺼번에 버리고 말고 할 게 아니라, 평소에 정리만 잘해도 오늘 같은 중노동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거다. 한꺼번에 정리하고 치우고 버리고 하려니까 몸이 고생이다. (이번에 몽땅 버린 물건 중에 내 것은 거의 없다는 게 쫌 억울하다. 엄마 거니까 엄마 혼자 다 해야 하는 거 아녀?! 엄마가 등짝을 후려치는 소리가 막 들리긴 하는데...) 허리가 아파서 파스까지 붙였는데, 정말이지 정리 잘하는 달인이 되고 싶은 순간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dfair7 2021-03-23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릇 세트를 왜 버린 거에요 ? 쓰던 그릇을 처분하고 ㅡ 새 그릇 세트를 쓰면 되는데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베가 10년만 젊었어도 그를 사랑했을 것 같다. (아직 10년 이상의 나이 차이는 부담스러워서... ㅡ.ㅡ;;;) 이렇게 까칠하고 툴툴거리는 원칙주의자, 좋다.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힘들지만 이런 것도 참 좋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잠시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 살아가는 건가 보라며 종종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다. 하루 일정으로 어디 다녀올 수 있게 작은 캐리어도 하나 사자고 엄마에게 말하기도 했다. 미뤄두었던 기차 여행도 가보자고, 조금 서늘해지면 산이 있는 곳에도 가자고도 말했다. 돌아다니기를 싫어하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지만,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여전히 힘들고, 깔끔하지 않은 감정들이 남아있고, 풀리지 않는 일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지만, 괜찮을 것도 같아서 어떤 기대가 있었다.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 같은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란 경험도 했고, 이렇게 어울리는 소소함이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뭐 별것 있겠나 싶어 가지는 평범함이 감사했다. 그런데 늘 그렇듯 그게 오래가지 않더라. 잠시나마 느꼈던 행복이 불쾌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방해꾼이 나타나고, 정신을 못 차리게 뺑뺑이 돌리는 것처럼 힘들게 하더라. 여기저기 통화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 어차피 해결 안 될 거 손 놓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문제는 문제대로 늘어져 있고, 해결을 못 하니 머릿속은 폭발할 것 같고. 잠깐이나마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던 순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기차는 뭐고, 좋다고 말하는 건 또 뭐람. 내 몫이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였나. 저자의 책 제목을 보자마자 삐딱선을 탔다. 뭐가 그리 재밌느냐고, 시선을 가로막는 거 하나 없이 살고 있느냐고 딴죽 걸고 싶었다. 당신이 재밌게 사는 이유 따위 듣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몰랐던 사실 하나 때문에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저자의 글을 몇 번 만났음에도, 나는 저자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유명한 의사, 책을 몇 권 냈고 좋은 얘길 많이 해주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다. 저자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15년. 내가 느낀 이 병은 몸도 불편하겠지만, 정신적으로 더 큰 아픔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병이었다. 저자에게 이런 아픔이 있다고 해서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불편하게 살아가면서도 사는 게 재밌다고 말하는 여유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아서 놀랐던 거다. 그러니 읽어볼 수밖에, 15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볼 수밖에...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는 것도 달라진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저자가 말한다. 자신에게 찾아올 거라 짐작하지 못했던 병,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던 차에 이 절망과 억울함을 어떻게 할 줄 몰라 멍했던 한 달. 저자의 머릿속을 치고 나왔던 가능성과 긍정이 새로운 시간과 도전을 만들었다. 바쁘게 살아냈던 시간이 조금은 후회되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삶의 의욕을 놓지 않는다. 천천히 느리게 가지만 해내는 일들이 있어서 기쁘고, 자신의 역할을 아직 놓지 않으며 충실한 시간을 살아온 그녀. 아프기 전에는 몰랐던 인생의 지혜들이 육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재밌게 사는 법을 알게 한다. 소중하고 감사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보게 한 거다. 아직 못 다한 것들을 버킷 리스트에 적어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웃음이 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자녀에게 삶의 구석구석에 대해 말하며 조언한다. 더 멋지게,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하여. 오랜만에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들에게는 더 솔직하게 말하며 마음을 터놓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환자들에게는 완벽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아가게 한다. 한때 저자가 살아왔던 방식이 놓쳤던 것을 알기에 더 진중하고 솔직한 상담이 가능한 게 아닐까.

 

마음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 큰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것들 때문에 괴롭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치고 나올 때 당황스럽고, 여전히 제자리에서 풀 수 없는 것들이 힘들게 한다고 푸념하게 되면서 걱정은 산처럼 쌓아올리게 되는 일상. 저자의 메시지는 이런 모든 순간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하지만, 미처 마음을 다 열지 못한 나는 아직 저자의 말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다.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메시지에 쉽게 긍정의 마음으로 돌아설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행운을 감사하고, 내가 받은 상처의 정의를 새롭게 보게 하고, 완벽하지 않아서 불안한 것들을 경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많은 것들 조언하지만 그걸 몰라서 나아가지 못했던 게 아니지 않은가. 다만,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서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어보고 싶은 거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잖아. 잘 될 지도 모르잖아...

 

의무가 아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삶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잠시 빠져들었다. 민감한 시기에 상실을 경험한 그녀의 성장 과정도, 당연하게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직업의 세계에서도, 그리고 지금 반갑지 않은 병과 싸우고 있는 순간에도, 저자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단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조언으로, 가보지 않은 인생에 대해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가 보다. 정말 그리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말에 속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고 싶다.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못했으니 다른 방법에 눈을 돌려봐야 하지 않겠나. 내일 또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살게 되더라도, 그게 내일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지.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면, 해봐야지.

 

쉽게 충고하지 않아서 좋은 글이다. 함부로 단정하며 가르치려들지 않아서 미워할 수 없는 말투다. 말 그대로 누군가의 지혜를 엿본 기분이다. 지금 내 마음에 가득한 부정의 말들을 누가 좀 녹여줬으면 싶을 때 만난, 잔잔한 열기 같았다. 다행이다. 느려도, 언젠가는 다 녹겠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풍이 온대.

간접 영향권이라지만, 벌써 새벽부터 바람도 심하게 불고, 후텁지근 하고,

비가 내릴 기운으로 하늘은 잔뜩 흐리고...

 

 

유난히 구급차가 많이 들어오고 교통사고 환자는 왜이렇게 많은지...

10분 사이에 중태에 빠진 환자와 사망한 환자를 봤다.

연명호흡을 하는 사람...

지혈할 상황도 안 되게, 피는 뚝뚝, 숨이 멈춘 사람...

그 옆에서 오열하는 가족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교감하고 싶은데,

나에겐 아주 먼 일, 불가능한 일, 바라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일...

 

 

응급실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나오는데, 햇살은 왜 이리도 맑아?

괜히 짜증나고 답답해서 눈물이 저절로 나오더라.

사는 게 뭔데?

 

이제 조금, 숨 좀 쉬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마다

왜 자꾸 태클 걸어오는 것들이 이렇게 많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인생 2015-05-1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급실이 응급환자들에게는 위급 사항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힘듦의 장소일수도 있군요. 어쨋든 생명을 다루는 곳이니 힘내시고 잘 살펴 주십시오.

2015-05-12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태도에 관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살면서 변해가는 것들을 말하다가 ‘변해가는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다며 참거나 배려하거나,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괜찮아 하던 것이, 이제는 점점 더 싫고 좋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거였다. 거절하기 어려워 받아들였던 것도 스트레스가 되고 부담이 된다는 것을 너무 오래 무시해왔던 것 같다고, 내가 잘 지내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내가 시간이 안 되는데 ‘그래’라며 무리해서 맞춰가는 게 있었다면, 지금은 그 ‘무리’를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는 거다. 길게 내다보면 무리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태도가 옳다 그르다 하는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게 아니라, 이젠 그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으며, 지금은 그게 낫다는 생각에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어떤 태도라도 정답은 아닌 듯하다. 그저 그때, 살아가는 순간에 내가 선택하는 최상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임경선이 말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지금 내가 살아가는 생각과 비슷한 면을 많이 발견했다. 그녀가 말하는 지금의 그 태도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저자는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게 된 삶의 중요한 가치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라는 키워드가 무얼 말하고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느 정도는 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기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말하는 방식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녀의 자세에 좀 반했다. 내가 선호하는 방식의 모습들에서는 격하게 교감했다. 내가 다 표현할 수 없었던 태도를 말할 때면 비슷하면서도 조금 모자란 나의 방식을 생각했다. 나와 전혀 다른 사고를 하는 그녀의 말을 들을 때면 '이게 세상(사람)을 대하는 좋은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갔던 일이 찜찜하게 남아 있던 기억들이 떠올라 잠깐 그녀의 방식에 넣어보기도 했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더 깔끔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나 핑계 비슷한 변명도 하면서 말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말하는 삶의 태도, 자신을 드러내는 자세가 모두 똑같지는 않다. 똑같을 수도 없다. 그러니 보편화된 정답도 없는 거다. 다만, 내가 선택한 태도만 있을 뿐이다.

연애도 사랑도, 일도, 가족도. 무엇이든 항상 같은 태도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런 마음. '한번 해보니까 이게 아니더라' 싶은 거라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들. 그 방식이 처음부터 한결같이 고수하게 되는 것도 있고 시시때때 변하는 것도 있다.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상대가 누군지,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단념하게 되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예를 들면 이런 상황. 나는 2년 전에 십년 넘게 교류하던 친구와 절교했다. 그 친구와 나는 성격이 극과 극이었지만, 그래서 더 오랜 시간을 이어올 수 있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꼭 같은 결정은 아니어도 그녀의 사고를 존중하는, 관심과 간섭을 잘 판단하고 이해하기 위해 정한 선을 항상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일방적으로 이어져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몇 달을 더 유예기간으로 삼았다.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고 전처럼 교류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내가 그녀를 계속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싶어서였다. 안타깝게도 결론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절교였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고는 관계의 해결 방법이 없었다.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거다. 그건 포기와는 다른 문제인 듯하다. 관계를 위해 왜 더 노력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을 일도 아니다. 다시 보게 되더라도, 다시 못 보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의 태도로 타인을 대하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때 그렇게 놓았던 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인간관계를 견뎌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장은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만 한번 관계를 자연스럽게 놓아버린 다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피차 홀가분해할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 일부러 거론하지 않는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을 놓아보자.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없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102페이지)

 

성실하게 일하고, 관대하게 사랑하고, 정직하게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공정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얘기하는 저자의 말투가 단호하면서도 애틋하다. 지나간 것들을 슬며시 끄집어내 한 번씩 되새김하게 한다. 사실 이런 거, 자꾸 지나간 일 떠오르게 하고, '내가 틀린 건가?' 싶은 두통을 일으키는 고민을 좋아하진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건 듣기 좋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일 수 있지만 틀린 게 아니니까 듣고 생각하게 하는 맛이 있다는 거다. 나와 달라서 한 번 더 듣고 싶은 기대와 나와 같아서 맞장구 치고 싶은 든든함 같은 거 느끼고 싶었다. 매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동시에 쉽게 해결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삶을 이루는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에서 자주 대면하며 반복하게 된다. 어떻게 할까 늘 고민하지만 단호하게 구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쉽지 않은 일.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 살아가는 방법들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르치려 드는, 내가 딱 질색하는 그런 어감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것도 괜찮더라.'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다. 기꺼이 상처받아도 좋다고, 그런 상처는 자신이 살아가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저자의 식대로 보여준다. 그 상처와 태도가 오늘보다 내일의 삶을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계속 나아가게 한다. '완벽'하게 보다는, 인간미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우린 완벽한 인간이 아니니까. 상대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면서, 그렇게 사는 거, 난 좀 괜찮을 거 같은데?

 

어차피 우리는 정답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가지 않으니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내가 내린 답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슬픈 얘기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내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서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6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