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리사 젠슨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윌(윌리엄)! 이 누나가 (이모라고 해야 맞을 듯하지만, 인정하긴 싫다. ㅠㅠ) 너에게 홀딱 빠져서 콜린 퍼스 아저씨를 버릴 지경이야. (아주 잠깐 그랬어) 그래도, 혹시나, 아직은, 다아시는, 영국 남자 이미지는 콜린 퍼스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를 보니 이게 언제 또 바뀔지 모를, 갈대 같은 마음인지 모르겠다. 퍼시벌 가의 후손인 네가, 어쩌면 니콜라스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을까 싶지만, 뭐, 아무렴 어때. 명백한 결론은 이거 하나잖아. 너와 내가, 슬프지만, 아무리 봐도 너는 나랑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니, 캣에게 (쿨하지 못하게) 양보할게. 영국 항공을 타고 곧 도착할 캣을, 잘, 아주 잘 (근데 막 울어...) 마중해줘. 흑.

 

아무래도 말이지, 이런 감정은 분명, 콜린 퍼스 때문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산을 휘둘러도 멋져 보이니 어쩜 좋아) 제인 오스틴의 원작 『오만과 편견』보다, 다양한 버전으로, 드라마나 영화로 접했던 <오만과 편견>이 더 뇌리에 남는다. 시각효과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자꾸 언급되는 '영국 남자'라는 것도 한몫을 한다. 그 안에 콜린 퍼스가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고 내가 뒤통수를 맞았던 건, 휴 그랜트보다 콜린 퍼스가 더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 특유의 이미지 때문이다. 아, 어느 순간 '영국 남자'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거야. (요즘엔 데이비드 컴버배치도 자꾸 눈에 들어와서 걱정이야) 특히 로맨틱한 분위기로 말이지. 그중에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이미지는 누가 뭐래도 로맨틱의 대표주자 아닐 텐가. 괜히 퉁퉁거리다가, 무시하는 듯하다가, 아닌 척하다가, 알고 보니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반전(뻔한 반전인 거, 알지?)에 심장이 쫄깃~ 콩닥거림을 폭발하게 한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 아마 앞으로도, 또 다른 버전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나와도 마찬가지일 걸? (아니라고? 아니 아니, 아마 맞을걸!) 그래서 윌과 니콜라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이 소설의 원제목이 ‘영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Falling in Love with English Boys)’일 정도니까, 알만하지.

 

"중요한 건 그대가 그대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거라오. 다른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그대 자신에게서 진정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해요, 캐서린. 그러면 그대는 정말 화려하게 빛나게 될 거요. 그때까지 지저귀는 건 잠시 멈추시오. 정말 매력 없으니까." (203페이지)

(아... 이 하오체를 어쩌면 좋아...)

 

멜리사 젠슨의 소설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은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 같은 작품이면서도, 전혀 다른 구성으로 독자를 웃음 짓게 한다. 21세기를 사는 열여섯 살의 캐서린(이하 캣)은 연구 때문에 영국에 머무는 엄마에게 간다. 엄마의 연구 대상은 19세기에 살았던 인물 열여덟 살의 캐서린 퍼시빌(이하 캐서린)인데, 엄마는 캣에게 캐서린의 일기를 읽게 한다. 뭐, 딸이 연구에 심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할 테고, 19세기를 접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고, 영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기억에 남게 해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과 감정을 적었을 캐서린의 일기를 읽으며, 캣은 19세기 영국의 모습과 여자의 삶, 그리고 사랑을 본다. 그에 동행한 인물이 있으니, 캐서린의 후손 윌(윌리엄)이다. 물론 본의 아니게 그 사랑의 작대기를 뻗어놓은 건 엄마지만, 윌에게 빠지지 않고서는 영국을 벗어난다는 건 어마무시하게 슬픈 일일 것임! 퍼시벌가의 후손인 윌과 캣은, 캐서린이 살았던 시대의 장소들을 함께 방문하면서 시간을 쌓는다. 캐서린의 일기장에서 뽑아낸 방문지 10곳과 윌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만들어줄 게 뭘지 궁금하지? (에이~ 알면서~) 콩닥콩닥, 두근두근. (아우~ 심장 떨려)

 

영국에서 지내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윌과 같이 있을 시간 역시(!) 정해져 있는 것이니, 어떻게 해?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하지? 망설이다가 놓치긴 싫은데, 대놓고 말할 용기는 없고, 상대의 마음을 모르겠으니 선뜻 던져놓고 민망해질까 봐 걱정되고, 그냥 물러나자니 서운하고. 아, 어떡해?!

 

이름이 같은 두 소녀 캐서린의 시대를 넘나드는 사랑 쟁취기와 성장기가 발랄하게 들린다. 캐서린의 일기, 캣의 블로그를 엿보는 재미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적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쓰는 게 일기라면, 캐서린의 일기는 그녀가 참석하는 파티, 시 나부랭이로 마음을 흔드는 토마스에게 빠진 마음, 짜증이 나게 간섭하고 나타나는 니콜라스를 향한 반감 같은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일기로 푸는 수다라고 해야 할까. 19세가 영국 사회의 분위기도 볼 수 있다. 가문의 네임벨류에 따른 계급 만들기 같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결혼, 전쟁으로 아픔을 간직했던 시간. 니콜라스가 왜 참전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지 얘기할 때는 정말, 진심이 묻어났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발발한 전쟁이, 그 이익과 관련이 없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있으니, 오늘날에도 보이는 이 전쟁의 의미를 살펴봐야 할 일이다. 캣의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 십 대 소녀의 유쾌하고 솔직한 수다로 친구들과 소통하는 장이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그 나이 또래의 미국 소녀의 삶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남자친구 이야기, 대학입시를 앞둔 준비들, 시시콜콜한 일상을 절친들과 공유하는 것들이 그 나이 또래의 생기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시대를 거슬러도 두 캐서린의 공통점은 이거지. 남자! 사랑! 연애! 바로, 심쿵~하게 만드는 감정들! (아이고 귀여워라~)

 

"제가 없는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두실 수 있겠죠, 친절한 퍼시벌 양? 그리고 제가 돌아오거든 조용한 곳에서 오랫동안 저와 그 이야기를 같이 나누실 수 있을까요?" (169페이지)

(19세기의 작업 멘트는 이랬다오. 나쁜 토마스. 오랫동안 이야기 나눈 후 뭐하려고? 흥~!)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캣의 블로그와 캐서린의 일기장이 교차로 등장하면서 엘리자베스 베넷이 될 수 없었던 십 대 소녀의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블로그와 일기를 통한 끊이지 않는 수다가 유쾌하면서도 각 시대, 나라에 따라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십 대 후반의 소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19세기의 캐서린은 열여덟의 나이에 파티와 남자, 결혼이 주된 관심이었다. 21세기의 열여섯 캣은 곧 대학생이 될 미래와 성인의 삶이 공존한다. 영국식 영어를 언급하면서 언어문화의 차이를 보여줬고, 타국에서 접하는 유럽의 역사를 통해 배움의 장을 열어가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열여섯, 열여덟 여학생의 삶은 어떠한가? 피곤이 덕지덕지, 새벽별 보고 등교하고, 매달 모의고사에,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수능시험 대비하느라 무 다리도 불사하고 스트레스 풀기 위해 먹어대기도 하잖아. 고전을 찾아 떠나는 탐방(윌과 캣이 함께한 것을 탐방이라고 봐도 좋다면)은 웬 말이며, 파티는 어느 나라 단어인고? 그런데도, 닮았다. 캣과 캐서린이 사랑을 앞에 둔 모양새가 너무 닮아서 '그렇지.' 하는 공감의 끄덕임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 이 연령대의 아이들도 할 건 다 하잖아. 안 그래?) 하긴, 사랑을 앞에 둔 이런 모습이 어디 캣과 캐서린뿐이겠냐 마는. 아마도 내가 부러운 건, 그 나이에 미처 다 누리지 못했던 발랄함인 것 같다. (나 돌아갈래~) 정말 잠시만 타임슬립하면 안 될까? 19세기 영국의 퍼시벌 가의 저택으로 나도 탐방 비스무리한 거 하러 떠나고 싶다고! (니콜라스, 기다려. 내가 간다! (그럼 윌은 어쩌지? ㅡ.ㅡ;;))

 

소설을 소설로 읽어야 하는데, 왜 자꾸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 가서 엿보고 싶고 참견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두 명의 캐서린이 삽질할 때마다 방향을 알려주고 싶고(삽의 끄트머리를 여기에 찍어!), 니콜라스와 윌리엄이 속으로 밀당(난 그게 밀당한 거라고 생각해!)하고 있을 때는 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고. (아, 이럼 안 되는데) 윌이 손으로 금발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세 개의 가르마가 생기는 그 자태를 멋들어지게 봐주고만 싶은데, 왜 자꾸 미적거리는 거야. 일단 던져, 던지라고! 점잖은 척하지 말란 말이야~ 19세기든 21세기든 너희는 청춘이거든? 당기기 말고 일단 밀기만 좀 열심히 해주지 않으련?

 

이미 짐작했겠지만, 뻔한 결말을 예상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풀어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아마도 그 나이에 가진 발랄함을 많이 발견해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때론 민망할지라도, 때론 무모할지라도 덤비고 보는 그 용기가 (슬쩍) 부러워서 질투하면서 읽게 된다. 그래서 괜히 심통 나기도 하는? 가서 방해도 하고 싶은? ㅎㅎ 어떤 식으로든 두 캐서린의 변화하는 마음이 보여서 좋았다. 누군가의 아픔을 읽고 공감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에 응원을 보내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예쁘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정석. 역시 남자의 진심은 좀 가려졌다가 발견해야 멋있는 것임? 니콜라스와 윌의 매력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폭발해주길~!

 

이른 더위도 잠깐 물러나게 할 만큼 유쾌상콤발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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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지음, 홍은주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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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이 남긴 건, 잿더미뿐... 『지푸라기 여자』

 

 

제목이 이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아무 힘도 없이 바람에 휙휙 날아가기 일쑤면서, 불이 붙어도 쉽게 타오를 수밖에 없으면서 또 금방 사르르 꺼져버리는, 겨우 잿더미 살짝 남기는 정도만 허락되는 물체. 상당히 나약하고 절망적인 여자가 바로 연상된다. 읽어보니 ‘딱’이다. 이 소설을 그대로 표현하는 제목이다. 반면에 질릴 정도의 교훈을 선사하며 몰입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아, 역시,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건 없어... ㅠㅠ

 

서른네 살의 힐데가르트. 전쟁의 폐허로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부모도, 돈도 없다. 간신히 번역일로 하루를 살아가는 그녀에게 현재도 미래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 나아질 것이 없어서 의미 없는 하루가 지나갈 뿐이다. 그녀가 기대하는 건 신문의 구혼 모집공고다. 돈 많은 남자가 구혼 공고를 내기만 기다린다. 주저할 것 없다. 바로 편지를 보낼 것이다. 아직은 얼굴도 예쁘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자신의 매력에 빠져들 거다. 이런 허무맹랑한 기대감이라니. 하지만 삶에 반전도 찾아온다. 정말 신문에 구인공고가 났다. 누군가 여자를 구하고 있다. 감이 왔다. 이거야. 힐데가르트는 바로 편지를 보내고 칸까지 날아가 면접에 응한다. 뭔가 잘 될 것 같다. 억만장자의 비서라는 60대로 보이는 남자 안톤 코르프가 그녀가 필요한 모든 것에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고용주인 억만장자 칼 리치먼드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욕심 많고 괴팍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안톤은 칼에게 힐데가르트가 접근할 수 있는 계획을 털어놓는다. 모든 게 잘되고 있다. 쉽지 않아 보였던 힐데가르트와 칼의 결혼이 성사된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절반쯤이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전개다. 식상하지만, 욕하면서 끝까지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처럼 저절로 읽게 된다. 가진 것 없는 여자가 살날이 많지 않은 억만장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 후에는?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거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게 아니기에 그 시도에 대한 어떤 반감 같은 게 그녀에게 다가와 남은 생을 훼방 놓을 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살면서 이런 행운(?) 한 번쯤 찾아와줄 수도 있는 게 인생 아니겠나 싶은 공감에 그녀의 성공을 기원해줄 수도 있겠지. 그럼 힐데가르트의 운명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그건 끝까지 읽어봐야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 때론 계획한 대로 쭉쭉 흘러가는 인생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 당연함 때문에 불시에 침범할 불행의 기미를 눈치 채지 못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눈을 가리게 하는 건 인간의 욕망이라는 건 불문율처럼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무엇이든 가능하게 필사적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도 인간의 욕망이다. 누군가 독백처럼 읊어대는 고백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는 경험 쉽게 할 수 없다. 이 소설에서 그 욕망의 실체는 보는 순간, 무릎을 쳤다. 아, 이 정도의 치밀함이라면, 그 정도의 준비성이라면, 당신 욕망이 행한 모든 것을 인정하겠어. You win!

 

여러 동화가 버무려진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지만 가독성 있다. 게다가 다 읽고 나니 정말 잔인한 교훈이 눈에 확 들어온다. 무슨 일을 하려거든 치밀한 계획과 준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끈기 있게 기다려야 이룰 수 있다는 것.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범죄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해피엔딩 인생일 테니까.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세상엔 나를 향해 덤벼드는 공짜도 없고, 그냥 얻어지는 행운 따위는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혹시라도 그런 행운이 찾아온다면 그거야말로 기적이 아니겠는가. 아, 역시, 현실은 이런 거야...

 

“그건 유치한 낭만주의요. 억만장자가 그런 신문 공고를 통해 여자를 구할 것 같소? 아무나 은막의 대스타가 되고, 아무나 자전거 대회에서 우승하고, 아무나 세상을 뒤흔드는 살인사건을 저지를 수 있을지 몰라도, 억만장자와 결혼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234페이지)

 

이런 교훈, 간만에 쫄깃하다. 기존 출간본의 디자인이 참 손이 안 가게 느껴져서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어보고 싶었는데, 엄청난 기대를 한 것에 비하면 재미는 좀 덜하다. (아무래도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이다.) 하지만 60여 년의 시간을 건너왔음에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음에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누구나 눈치챌만한 뻔한 전개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데, 결말까지 맘에 든다. 괜한 기대감이나 ‘그래도~’ 싶은 결말을 만드는, 드라마적인 냄새 폴폴 풍기게 하면서 마무리되었다면 난 실망했을 거야. (물론 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결말은 다르게 그려졌다고 하지만 말이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는데, 장르 구분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니 편하게 손에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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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여섯 달이 지나갔다는 말...

나름 성실하게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했는데, 마무리까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신간평가단 에세이 마지막 추천 도서.

 

 

 

소설가 손홍규의 칼럼을 묶은 글.

사실 그의 소설이 더 읽고 싶었지만 자꾸 미루게 되고 보니

이렇게 나온 에세이를 먼저 읽어도 좋을 듯하다.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이 한권에 다 담겨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생기고,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어떤 희망 같은 것도 기대해 본다.

직설적인 문장도 환영.

 

 

 

 

 

 

 

 

저자의 전작을 읽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취재 형식의 연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했는데,

이번 도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하고 싶은 말,

가슴이 품은 말,

삶의 변화들을 글과 사진으로 엮었다.

 

펼쳐보고 싶다.

 

 

 

 

 

시골 생활 만만하게 본 거 아녀?

 

왠지 웃음이 나게 하는 일상의 에피소드가 막 펼쳐질 것 같은 느낌.

사실 우리의 일상이 좀 이럴 것 같지 않아?

다 아는 것 같지만, 다 좋을 것 같지만,

아닌 것 투성이.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튀어나와 웃음짓게 하는 것.

(그게 항상 좋지는 않지만...)

공감해보고 싶은 글이다.

 

 

 

 

 

 

유인경과 문정희가 여자의 몸을 주제로 나눈 대화라는데...

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보다는 여자로 사는 삶에 대해 더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역사 속 여자에서부터 오늘의 여자까지...

유쾌한 수다가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 같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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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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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오베가 문단속하고 난 후 꼭 세 번씩 확인하는 장면과 관공서에 서류 들이밀며 싸우는 장면이다. 그 외 몇몇 장면들 역시, 계속 내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아저씨(할배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애매해 보여), 나랑 닮았다. 어떨 때 나는, 문이 잘 잠겼는지 몇 번씩 확인하다가 나가야 할 시간을 넘긴 적도 있다. 한 번만 확인하면 왠지 불안해서 두 번 세 번 잠금장치를 확인하곤 한다. 어딘가로(특히 관공서 같은 곳) 문의할 때 한 번의 전화로 끝낸 적도 거의 없다. 전화로 해결이 안 되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살면서 평생 이런 일 한 번도 겪지 않는 사람 많은 텐데, 나는 이상하게도 한 번 민원 접수할 때 깔끔하게 해결 안 되면 완료되었다는 답변 들을 때까지는 계속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다. , 상황에 따라서는 한 번 해서 안 되면 물러나는 경우도 많지만... 암튼 여러 가지 면에서 오베를 자꾸 눈여겨보게 되는 건, 내가 싫어하는 성격과 나와 닮은 모습이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격 못돼 보이고, 이웃들에게 사랑받지도 못하는 듯한, 사람 질리게 하는 이 남자를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 괜히 편들고 싶네.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란 때로 어렵다. 오베는 아마도 자기가 뭘 했어야 했는지 내내 알았을 것이다. 죽기 전에 누굴 도와야 했는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민원을 제기할 시간도. (387페이지)

 

이 까칠한 남자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그 귀찮은 일들을 손수 나서서 하는지, 그의 까칠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가 왜! 굳이! 죽으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죽겠다고 나오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나.
59세의 오베. 반년 전 그의 아내 소냐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을 색으로 표현해도 된다면, 오베는 흑백이고 소냐는 풍부한 색을 가진 여자였다. 그러니 소냐는 그가 가진 유일한 색인 것이다. 오베가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담아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의 대상. 아내와 평생을 함께하면서 싸우기도 했겠지만, 그런데도 그에게 아내는 믿을 수 있고 함께 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곁을 떠나니 더는 살 이유가 없어진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 아내를 만나러 가는 것.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그는 '오늘' 죽으리라 다짐하고 계획에 옮긴다. 아침마다 정해진 산책을 하고, 산책길에 매일 그의 관리 하에 감시되는 곳들을 점검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스스로 택한 죽음을 매번 다른 방법으로 실행에 옮기는데... 아니, 한 번 죽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들고, 왜 관심 없는 이웃들은 그를 귀찮게 하느냔 말이다. 죽으려고 천장에 매단 밧줄이 끊어지지 않나, 철길에 뛰어들려고 하는데 오히려 한 사람을 구해 영웅이 되지 않나,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먹고 죽으려는 순간에 귀찮게 찾아온 앞집 여자가 방해하고, 약을 먹고 한방에 가려는데 그것마저 고양이의 눈빛이 가로막고, 쉽지 않네 그려. 이거, 죽을 수는 있는 거야?

 

처음엔 그가 왜 자꾸 죽으려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까칠하고 괴팍한 노인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런데 매일 아침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의 아내에게 다녀오는 모습에서, ', 이 남자는 삶의 전부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을 지탱해준 오직 하나가 사라졌던 그 부재, 그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의 삶에 함부로 침범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관여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하나. 그의 사랑 소냐밖에 없었으니까. BMW를 운전하는 루네를 싫어하는 것도, 아이패드에 키패드가 없어서 흥분하는 것도, 물건을 살 때마다 사기 당하는 기분이 들게 해서 열 받게 하는 것도 유일하게 다독여주고 충고해주던 한 사람. , 이제 그가 죽고 싶은 이유를 다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죽음을 응원할까? 아니면 목숨 함부로 결정짓는다고 평소 그의 성격대로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부어줄까?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읽고 나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할 수 없었던 것을 그의 오래된, 새로운 이웃들이 하나씩 척척 해결해주고 있었다

 

반드시 상기해야 할 것은 오베의 성격이다. 한 가지 그가 세운 원칙이 있다면 끝까지 고수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 그는 사브 외에는 자동차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사브 외의 차를 선택한 사람을 경멸할 정도다. 그의 평생 동안 차는 오직 한 브랜드. 사브! 그의 영역 내로 들어오는 것들을 반기지도 않는다. 길고양이도, 마음대로 침범한 금발머리의 개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사 온 앞집 인간들도! 그의 앞집 사람들이 이사 오던 날부터 오베는 이 죽음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란 것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 멀대같은 남자 패트릭과 그의 이란인 아내인 임산부 파르바네, 시크한 첫째 딸과 아직은 발음이 부정확한 둘째 딸. 옆집의 뚱보 지미까지 합세한 좌충우돌 오베 갈망기가 시작된다. 공동 공간의 규칙만 지킨다면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오베와 부딪힐 일도 없는데, 앞집 사람들이 이사 오고 난 후부터 한가했던 오베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물론 본인의 의사는 아니다. 끌려가듯, 어쩔 수 없이, 더 피곤해지기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일들. 더 시끄럽게 될까봐 이웃의 집을 고쳐주고, 방치하던 길고양이의 동사를 책임지고, 뒤늦게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앞집 여자의 운전 강사가 된다. 아이가 없는 오베가 앞집 아이들 때문에 할아버지가 되고, 동네 양아치 같은 아이에게 자전거 수리를 가르쳐준다. 그의 선의는 아니었다. 그가 그 모든 일에 관여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더 소란스러워지는 게 싫고, 그들이 그를 귀찮게 하는 게 싫고, 동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다. 그리고 모든 게 빨리 마무리 되어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함이다. 그런데 삶은 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흐르는 법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듯하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119페이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봤던 그에게 행복이란 단어가 조용히 스며든다. 한때는 친했지만 별것 아닌 일로 오랫동안 틀어져있던 루네를 다시 보게 되고, 루네의 웃음을 확인하던 순간 오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자신도 웃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과 함께 했을 때 느꼈을 포만감이 다시 오베에게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를 죽지 못하게 하는, 다시 그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의 바빠진 일상을 보는 건 나도 행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젠 그만 쉬라면서 하루아침에 자신을 해고한 회사에 부당함을 호소해도 달라질 것 없었던 일상. 많은 것을 체념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대가 되어버린 자신을 보는 게 암흑이었을 시간. 부엌에 기대서서 천장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던 그가 새로운 이웃으로 인해 자존감과 행복을 되찾은 것 같아서 기뻤다. 이게 살아가는 거야, 이렇게 사는 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야, 당신만의 슬픔이 아니야, 우리도 공감하는 세상의 일부분이야. 그러니, 아직은 당신의 선택이 필요할 때는 아니지. 아직은, 아니야. 우리와 조금 더 행복해도 되잖아?

 

단순히 웃기기만 할 줄 알았다. 소개 글도 그랬지만, 이 괴팍하고 까칠한 노인네가 보여주는 행동에서 욕이 나올 뻔 하다가도, 그의 죽음을 방해하는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일들에 웃음이 났다. 이 영감탱이, 그렇게 까칠하게 살더니 맘대로 죽지도 못하게 되니 참으로 고소하구만! 그런데 말이다. '오베였던' 그의 과거 모습과 '오베인' 그의 현재가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점점 그를 이해하게 되는 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의 삶,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그의 성정, 그가 자라면서 배운 세상의 많은 모습,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달파 눈물짓게 한다. 그가 왜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그렇게 대하는지 부연설명처럼 따라오는 과거 에피소드가 그를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삶의 대부분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나이 들고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로 그의 존재감을 삭제하고, 삶 곳곳에서 발견되는 부조리함에 온갖 서류를 들고 싸워도 변하는 게 없는 공공기관의 대처가 피곤하고, 온갖 억울함을 호소해도 받아줄 곳이 없는 게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같이 싸우고 싶을 만큼 많이 공감하고 흥분했다. 내가 사는 작금의 현실도 다르지 않으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읽다가도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듯한 이웃들의 어이없는 오베를 향한 도전기가 웃음이 터지게 한다. 특히 기가 막힌 타이밍을 맞추는 앞집 여자 파르바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 재밌어. 그녀의 모습이 막 그려진다. 작은 키의 동양 여자, 임신해서 불룩한 배를 안고 종종거리며 다니는 모습, 작은 체구에도 오베에게 전혀 기죽지 않고 할 말 다하는 표정이 떠올라 유쾌해진다. 이 소설 물건일세 그려. 무슨, 사람을 조울증 환자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거. (뭐긴,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감동이었다는 얘기지.) 

 

재밌고 유쾌했다. 진지함과 감동이 함께 해서 더 눈길을 사로잡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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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상당히 현실적인 투명인간이군! 『안녕, 다비도프氏』

 

 

장난삼아, 혹은 남들 몰래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투명인간의 생활이 이 남자 같다면 정말, 못할 짓이군. 아, 나의 상상과 바람과 희망을 이렇게 꺾어놓다니. 슬프다. 슬프긴 슬픈데, 투명인간인듯 투명인간이 아닌 것 같은 투명인간의 모습이 웃기면서 슬픈 거다. 투명인간이나 불투명인간이나 왜 현실을 살아가는 건 똑같은 거야?! 아 쫌, 판타지 좀, 팍팍 심어주면서 '어이, 여기 이 망토 한 번 걸쳐봐. 네가 그토록 바라던 투명인간이 될 거야. 실컷 즐겨 보게~' 뭐 대충 이렇게 기분 좋은 꿈이라도 꿔야 하는 거 아녀? 아니면, 꿈 깨라고 일부러 그런 거야?

 

투명인간과 불투명인간이 존재하는 세상. 불투명인간의 세상에서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굳이 드러내서 아는 척하지 않는다. 세상 시끄러워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지. 주목받지 못한 인생을 살다가 드디어 연극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열연할 기회가 찾아온 주인공. 자신감도 있고 느낌도 좋다. 퐈이야~ 드디어, 주인공이야! 그런데 무슨 마가 낀 건지 처음 공연하는 날, 무대 위로 오른 그는 갑자기 투명인간이 된다. 왜? 나도 모르지. 모든 게 엉망이 된다. 여자 친구는 날아가고,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연극은 조연이 주인공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부모마저 자신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도착한 의문의 엽서 한 장. 불가리 익스트림 옴므가 다비도프 쿨워터맨에게 모임의 초청장을 보낸 것. 다비도프 쿨워터맨은 누구? 바로, 당신. 너라고! 신입 투명인간. 자기만 투명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만. 투명인간이 무더기로 있었어. 아니 그럼, 이 투명인간은 어떻게 상대를 알아본단 말이야? 아하, 향수. 그들의 이름은 향수로 표현된다. 오직 그 사람만이 그 향수를 뿌리고 나타나야 한다는 불문율. 그래야 상대방이 누구인지,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거 참, 별세상이군. 어쨌든 투명인간 집단에 입성한 것을 축하(?)합니다, 다비도프씨~

 

기존의 투명인간 얘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어차피 같은 설정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거라면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투명인간이 되면 제일 먼저 은행을 털어야지, 하는 식상한 생각 말고. 뭔가 기발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를 만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의외의 행동이나 발상으로 투명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선을 붙잡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안녕, 다비도프氏』는 그 기발함과 재치가 읽는 재미를 준다. 특히 앞집 여자 캐릭터 완전 죽여준다. 동등의 개념을 아주 확실하게 써준다. '동등'이란 내가 어디 있는지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네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기 위해 밀가루를 뿌리는 거다.(아, 이 부분은 책을 읽어보면 안다.) 하는 말마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게 하다가도 '틀린 말 하나도 없잖아?' 하며 인정하게 되는 마력을 가진 여자다. 반박의 여지를 품을 수조차 없게 한다. 이런 캐릭터의 이런 독설(?) 너무 좋아. 흐흐흐~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투명인간과 함께 사는 부모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아하' 하는 다른 입장을 살피게 한다. 투명인간 아들과 사는 부모가, 어디선가 계속 CCTV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앞집 여자의 '동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 반대로 나는 상대에게 보이는 사람. 일방적으로 나의 모든 것이 상대에게 비춰지고, 나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동선조차 보지 못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일 수 있는...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 나한테는 이게 없었던 게 아닐까? 총… 아니, 이 한 방의 총성…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게 하고 거기서 머물게 하는… 나의 진짜 목소리… 어쩌면 내 손에 언제나 총이 있었는데… 나는 두려워 한 방 쏴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던 거 아닐까….' (246페이지)

 

불투명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들이 씁쓸하고 웃프게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공감을 불러낸다. 곳곳에서 풀어내는 세태를 꼬집는 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서글픈 인생의 장면을 고발한다. 입사원서에 사진 따위가 뭐가 필요하다고(일만 잘하면 되지 외모로 뽑아?), 진실을 풀어놓겠다는데 왜 포털 게시판의 글을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거며(검색 순위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거 정말이야?), 세상에 진실이 너무도 많아서 저마다의 입장에서 다 끼워 맞출 수도 있는데 그중 살아남는 진실은 힘 있는 자의 진실이라는 거... 약자에게 행해지는 윽박지름, 어느 곳에서나 사람이 모이면 조직이 되고 사회 질서를 위해 규범이 생긴다는 진리. 무엇보다 인간이 나약해지는 틈을 타 들어오는 온갖 절망들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줄 때는 섬뜩했다. 어쩌면 투명인간이 된 것도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길을 가는 느낌? 샤넬No.5가 투명인간이 될 소지가 보이던 인물들을 관심 두고 봤던 것처럼 결국 정해진 운명이라는 건가? 그게 아니면 참 좋겠는데 어째 흘러가는 분위기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혹시 이러다가, 나도 투명인간이 되는 거 아닌가 몰러.

 

'누구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서 그런 줄 아냐?' 라고 울부짖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다시 불투명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인간으로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듯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방법이 쉬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소설에서 계속 이어지는 에피소드와 설정, 주인공의 방향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참 많은 시선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비도프씨와 그의 부모,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앞집 여자, 사건 해결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있는 최형사, 왠지 사기당한 기분이 들게 했던 조화백, 그리고 가장 마음 갔던 인물 샤넬No.5까지. 기발함과 상상력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재밌었지만 블랙코미디 같았다. 웃기지만 슬픈, '이건 그냥 판타지잖아.'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한편으로는 정말 내 주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투명인간이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의심도 들고. ^^ 투명인간으로의 삶이 무엇을 고민하고 관찰하며,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볼 수 있었던 작품. 이게 현실이든 판타지든,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게 진리인 듯하다.

 

그나저나, 앞집 여자 캐릭터 완전히 닮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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