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상당히 현실적인 투명인간이군! 『안녕, 다비도프氏』

 

 

장난삼아, 혹은 남들 몰래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투명인간의 생활이 이 남자 같다면 정말, 못할 짓이군. 아, 나의 상상과 바람과 희망을 이렇게 꺾어놓다니. 슬프다. 슬프긴 슬픈데, 투명인간인듯 투명인간이 아닌 것 같은 투명인간의 모습이 웃기면서 슬픈 거다. 투명인간이나 불투명인간이나 왜 현실을 살아가는 건 똑같은 거야?! 아 쫌, 판타지 좀, 팍팍 심어주면서 '어이, 여기 이 망토 한 번 걸쳐봐. 네가 그토록 바라던 투명인간이 될 거야. 실컷 즐겨 보게~' 뭐 대충 이렇게 기분 좋은 꿈이라도 꿔야 하는 거 아녀? 아니면, 꿈 깨라고 일부러 그런 거야?

 

투명인간과 불투명인간이 존재하는 세상. 불투명인간의 세상에서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굳이 드러내서 아는 척하지 않는다. 세상 시끄러워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지. 주목받지 못한 인생을 살다가 드디어 연극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열연할 기회가 찾아온 주인공. 자신감도 있고 느낌도 좋다. 퐈이야~ 드디어, 주인공이야! 그런데 무슨 마가 낀 건지 처음 공연하는 날, 무대 위로 오른 그는 갑자기 투명인간이 된다. 왜? 나도 모르지. 모든 게 엉망이 된다. 여자 친구는 날아가고,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연극은 조연이 주인공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부모마저 자신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도착한 의문의 엽서 한 장. 불가리 익스트림 옴므가 다비도프 쿨워터맨에게 모임의 초청장을 보낸 것. 다비도프 쿨워터맨은 누구? 바로, 당신. 너라고! 신입 투명인간. 자기만 투명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만. 투명인간이 무더기로 있었어. 아니 그럼, 이 투명인간은 어떻게 상대를 알아본단 말이야? 아하, 향수. 그들의 이름은 향수로 표현된다. 오직 그 사람만이 그 향수를 뿌리고 나타나야 한다는 불문율. 그래야 상대방이 누구인지,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거 참, 별세상이군. 어쨌든 투명인간 집단에 입성한 것을 축하(?)합니다, 다비도프씨~

 

기존의 투명인간 얘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어차피 같은 설정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거라면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투명인간이 되면 제일 먼저 은행을 털어야지, 하는 식상한 생각 말고. 뭔가 기발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를 만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의외의 행동이나 발상으로 투명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선을 붙잡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안녕, 다비도프氏』는 그 기발함과 재치가 읽는 재미를 준다. 특히 앞집 여자 캐릭터 완전 죽여준다. 동등의 개념을 아주 확실하게 써준다. '동등'이란 내가 어디 있는지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네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기 위해 밀가루를 뿌리는 거다.(아, 이 부분은 책을 읽어보면 안다.) 하는 말마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게 하다가도 '틀린 말 하나도 없잖아?' 하며 인정하게 되는 마력을 가진 여자다. 반박의 여지를 품을 수조차 없게 한다. 이런 캐릭터의 이런 독설(?) 너무 좋아. 흐흐흐~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투명인간과 함께 사는 부모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아하' 하는 다른 입장을 살피게 한다. 투명인간 아들과 사는 부모가, 어디선가 계속 CCTV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앞집 여자의 '동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 반대로 나는 상대에게 보이는 사람. 일방적으로 나의 모든 것이 상대에게 비춰지고, 나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동선조차 보지 못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일 수 있는...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 나한테는 이게 없었던 게 아닐까? 총… 아니, 이 한 방의 총성…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게 하고 거기서 머물게 하는… 나의 진짜 목소리… 어쩌면 내 손에 언제나 총이 있었는데… 나는 두려워 한 방 쏴보지도 못한 채 살아왔던 거 아닐까….' (246페이지)

 

불투명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들이 씁쓸하고 웃프게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공감을 불러낸다. 곳곳에서 풀어내는 세태를 꼬집는 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서글픈 인생의 장면을 고발한다. 입사원서에 사진 따위가 뭐가 필요하다고(일만 잘하면 되지 외모로 뽑아?), 진실을 풀어놓겠다는데 왜 포털 게시판의 글을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거며(검색 순위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거 정말이야?), 세상에 진실이 너무도 많아서 저마다의 입장에서 다 끼워 맞출 수도 있는데 그중 살아남는 진실은 힘 있는 자의 진실이라는 거... 약자에게 행해지는 윽박지름, 어느 곳에서나 사람이 모이면 조직이 되고 사회 질서를 위해 규범이 생긴다는 진리. 무엇보다 인간이 나약해지는 틈을 타 들어오는 온갖 절망들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줄 때는 섬뜩했다. 어쩌면 투명인간이 된 것도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길을 가는 느낌? 샤넬No.5가 투명인간이 될 소지가 보이던 인물들을 관심 두고 봤던 것처럼 결국 정해진 운명이라는 건가? 그게 아니면 참 좋겠는데 어째 흘러가는 분위기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혹시 이러다가, 나도 투명인간이 되는 거 아닌가 몰러.

 

'누구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서 그런 줄 아냐?' 라고 울부짖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다시 불투명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인간으로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듯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방법이 쉬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소설에서 계속 이어지는 에피소드와 설정, 주인공의 방향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참 많은 시선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비도프씨와 그의 부모,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앞집 여자, 사건 해결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있는 최형사, 왠지 사기당한 기분이 들게 했던 조화백, 그리고 가장 마음 갔던 인물 샤넬No.5까지. 기발함과 상상력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재밌었지만 블랙코미디 같았다. 웃기지만 슬픈, '이건 그냥 판타지잖아.'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한편으로는 정말 내 주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투명인간이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의심도 들고. ^^ 투명인간으로의 삶이 무엇을 고민하고 관찰하며,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볼 수 있었던 작품. 이게 현실이든 판타지든,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게 진리인 듯하다.

 

그나저나, 앞집 여자 캐릭터 완전히 닮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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