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리사 젠슨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윌(윌리엄)! 이 누나가 (이모라고 해야 맞을 듯하지만, 인정하긴 싫다. ㅠㅠ) 너에게 홀딱 빠져서 콜린 퍼스 아저씨를 버릴 지경이야. (아주 잠깐 그랬어) 그래도, 혹시나, 아직은, 다아시는, 영국 남자 이미지는 콜린 퍼스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를 보니 이게 언제 또 바뀔지 모를, 갈대 같은 마음인지 모르겠다. 퍼시벌 가의 후손인 네가, 어쩌면 니콜라스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을까 싶지만, 뭐, 아무렴 어때. 명백한 결론은 이거 하나잖아. 너와 내가, 슬프지만, 아무리 봐도 너는 나랑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니, 캣에게 (쿨하지 못하게) 양보할게. 영국 항공을 타고 곧 도착할 캣을, 잘, 아주 잘 (근데 막 울어...) 마중해줘. 흑.

 

아무래도 말이지, 이런 감정은 분명, 콜린 퍼스 때문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산을 휘둘러도 멋져 보이니 어쩜 좋아) 제인 오스틴의 원작 『오만과 편견』보다, 다양한 버전으로, 드라마나 영화로 접했던 <오만과 편견>이 더 뇌리에 남는다. 시각효과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자꾸 언급되는 '영국 남자'라는 것도 한몫을 한다. 그 안에 콜린 퍼스가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고 내가 뒤통수를 맞았던 건, 휴 그랜트보다 콜린 퍼스가 더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 특유의 이미지 때문이다. 아, 어느 순간 '영국 남자'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거야. (요즘엔 데이비드 컴버배치도 자꾸 눈에 들어와서 걱정이야) 특히 로맨틱한 분위기로 말이지. 그중에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이미지는 누가 뭐래도 로맨틱의 대표주자 아닐 텐가. 괜히 퉁퉁거리다가, 무시하는 듯하다가, 아닌 척하다가, 알고 보니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반전(뻔한 반전인 거, 알지?)에 심장이 쫄깃~ 콩닥거림을 폭발하게 한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 아마 앞으로도, 또 다른 버전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나와도 마찬가지일 걸? (아니라고? 아니 아니, 아마 맞을걸!) 그래서 윌과 니콜라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이 소설의 원제목이 ‘영국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Falling in Love with English Boys)’일 정도니까, 알만하지.

 

"중요한 건 그대가 그대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거라오. 다른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그대 자신에게서 진정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해요, 캐서린. 그러면 그대는 정말 화려하게 빛나게 될 거요. 그때까지 지저귀는 건 잠시 멈추시오. 정말 매력 없으니까." (203페이지)

(아... 이 하오체를 어쩌면 좋아...)

 

멜리사 젠슨의 소설 『제인 오스틴이 블로그를 한다면』은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 같은 작품이면서도, 전혀 다른 구성으로 독자를 웃음 짓게 한다. 21세기를 사는 열여섯 살의 캐서린(이하 캣)은 연구 때문에 영국에 머무는 엄마에게 간다. 엄마의 연구 대상은 19세기에 살았던 인물 열여덟 살의 캐서린 퍼시빌(이하 캐서린)인데, 엄마는 캣에게 캐서린의 일기를 읽게 한다. 뭐, 딸이 연구에 심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할 테고, 19세기를 접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고, 영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기억에 남게 해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과 감정을 적었을 캐서린의 일기를 읽으며, 캣은 19세기 영국의 모습과 여자의 삶, 그리고 사랑을 본다. 그에 동행한 인물이 있으니, 캐서린의 후손 윌(윌리엄)이다. 물론 본의 아니게 그 사랑의 작대기를 뻗어놓은 건 엄마지만, 윌에게 빠지지 않고서는 영국을 벗어난다는 건 어마무시하게 슬픈 일일 것임! 퍼시벌가의 후손인 윌과 캣은, 캐서린이 살았던 시대의 장소들을 함께 방문하면서 시간을 쌓는다. 캐서린의 일기장에서 뽑아낸 방문지 10곳과 윌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만들어줄 게 뭘지 궁금하지? (에이~ 알면서~) 콩닥콩닥, 두근두근. (아우~ 심장 떨려)

 

영국에서 지내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윌과 같이 있을 시간 역시(!) 정해져 있는 것이니, 어떻게 해?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하지? 망설이다가 놓치긴 싫은데, 대놓고 말할 용기는 없고, 상대의 마음을 모르겠으니 선뜻 던져놓고 민망해질까 봐 걱정되고, 그냥 물러나자니 서운하고. 아, 어떡해?!

 

이름이 같은 두 소녀 캐서린의 시대를 넘나드는 사랑 쟁취기와 성장기가 발랄하게 들린다. 캐서린의 일기, 캣의 블로그를 엿보는 재미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적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쓰는 게 일기라면, 캐서린의 일기는 그녀가 참석하는 파티, 시 나부랭이로 마음을 흔드는 토마스에게 빠진 마음, 짜증이 나게 간섭하고 나타나는 니콜라스를 향한 반감 같은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일기로 푸는 수다라고 해야 할까. 19세가 영국 사회의 분위기도 볼 수 있다. 가문의 네임벨류에 따른 계급 만들기 같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결혼, 전쟁으로 아픔을 간직했던 시간. 니콜라스가 왜 참전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지 얘기할 때는 정말, 진심이 묻어났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발발한 전쟁이, 그 이익과 관련이 없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있으니, 오늘날에도 보이는 이 전쟁의 의미를 살펴봐야 할 일이다. 캣의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 십 대 소녀의 유쾌하고 솔직한 수다로 친구들과 소통하는 장이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그 나이 또래의 미국 소녀의 삶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남자친구 이야기, 대학입시를 앞둔 준비들, 시시콜콜한 일상을 절친들과 공유하는 것들이 그 나이 또래의 생기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시대를 거슬러도 두 캐서린의 공통점은 이거지. 남자! 사랑! 연애! 바로, 심쿵~하게 만드는 감정들! (아이고 귀여워라~)

 

"제가 없는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두실 수 있겠죠, 친절한 퍼시벌 양? 그리고 제가 돌아오거든 조용한 곳에서 오랫동안 저와 그 이야기를 같이 나누실 수 있을까요?" (169페이지)

(19세기의 작업 멘트는 이랬다오. 나쁜 토마스. 오랫동안 이야기 나눈 후 뭐하려고? 흥~!)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캣의 블로그와 캐서린의 일기장이 교차로 등장하면서 엘리자베스 베넷이 될 수 없었던 십 대 소녀의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블로그와 일기를 통한 끊이지 않는 수다가 유쾌하면서도 각 시대, 나라에 따라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십 대 후반의 소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19세기의 캐서린은 열여덟의 나이에 파티와 남자, 결혼이 주된 관심이었다. 21세기의 열여섯 캣은 곧 대학생이 될 미래와 성인의 삶이 공존한다. 영국식 영어를 언급하면서 언어문화의 차이를 보여줬고, 타국에서 접하는 유럽의 역사를 통해 배움의 장을 열어가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열여섯, 열여덟 여학생의 삶은 어떠한가? 피곤이 덕지덕지, 새벽별 보고 등교하고, 매달 모의고사에,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수능시험 대비하느라 무 다리도 불사하고 스트레스 풀기 위해 먹어대기도 하잖아. 고전을 찾아 떠나는 탐방(윌과 캣이 함께한 것을 탐방이라고 봐도 좋다면)은 웬 말이며, 파티는 어느 나라 단어인고? 그런데도, 닮았다. 캣과 캐서린이 사랑을 앞에 둔 모양새가 너무 닮아서 '그렇지.' 하는 공감의 끄덕임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 이 연령대의 아이들도 할 건 다 하잖아. 안 그래?) 하긴, 사랑을 앞에 둔 이런 모습이 어디 캣과 캐서린뿐이겠냐 마는. 아마도 내가 부러운 건, 그 나이에 미처 다 누리지 못했던 발랄함인 것 같다. (나 돌아갈래~) 정말 잠시만 타임슬립하면 안 될까? 19세기 영국의 퍼시벌 가의 저택으로 나도 탐방 비스무리한 거 하러 떠나고 싶다고! (니콜라스, 기다려. 내가 간다! (그럼 윌은 어쩌지? ㅡ.ㅡ;;))

 

소설을 소설로 읽어야 하는데, 왜 자꾸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 가서 엿보고 싶고 참견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두 명의 캐서린이 삽질할 때마다 방향을 알려주고 싶고(삽의 끄트머리를 여기에 찍어!), 니콜라스와 윌리엄이 속으로 밀당(난 그게 밀당한 거라고 생각해!)하고 있을 때는 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고. (아, 이럼 안 되는데) 윌이 손으로 금발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세 개의 가르마가 생기는 그 자태를 멋들어지게 봐주고만 싶은데, 왜 자꾸 미적거리는 거야. 일단 던져, 던지라고! 점잖은 척하지 말란 말이야~ 19세기든 21세기든 너희는 청춘이거든? 당기기 말고 일단 밀기만 좀 열심히 해주지 않으련?

 

이미 짐작했겠지만, 뻔한 결말을 예상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풀어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아마도 그 나이에 가진 발랄함을 많이 발견해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때론 민망할지라도, 때론 무모할지라도 덤비고 보는 그 용기가 (슬쩍) 부러워서 질투하면서 읽게 된다. 그래서 괜히 심통 나기도 하는? 가서 방해도 하고 싶은? ㅎㅎ 어떤 식으로든 두 캐서린의 변화하는 마음이 보여서 좋았다. 누군가의 아픔을 읽고 공감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에 응원을 보내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예쁘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정석. 역시 남자의 진심은 좀 가려졌다가 발견해야 멋있는 것임? 니콜라스와 윌의 매력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폭발해주길~!

 

이른 더위도 잠깐 물러나게 할 만큼 유쾌상콤발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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