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라, 그런 경우 자주 당황한다. 위로가 서툰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어느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울지 말라고,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이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다는 독자(관객)들에게, 그 순간 꼭 손발이 오그라들지만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손발이 아니라 심장이 오그라들 수도 있다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한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의 애매함 같은 게 있다. 어설픈 위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다 안다고 ‘척’하기에는 거짓말이니까 싫고, 부정적인 답이 나왔는데 무한긍정으로 잘 될 거라고 헛된 희망을 주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그 마음이 어느 하나로 정확하게 꽂히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어려운 거다. 어깨를 다독이며 뭔가 기운을 실어주고 싶은데 너무 막연해서 할 말이 없고, 어느 순간부터 말을 아끼고 닫아버리는 습관이 쓸데없는 토닥임마저 멈추게 하는 순간들...

 

‘그렇더라.’는 한 마디에 기어코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고야 말았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괜한 말을 꺼내서 미안해지려고 한다고, 눈물도 아까우니 울지 말라고 말하면서, 지금 너에게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고 있는 나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 괜찮다고, 지금은 그게 어울린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나를 다독이는 너에게, 그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머릿속 말들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메일 주소록을 뒤졌다. 남아 있다. 아직. 몇 년 전에 저장해둔, 그 짧은 주소 하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힘든데,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면서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말보다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그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서. 그 밝음에 항상 내가 웃곤 했는데, 아닐 것 같은 사람이 어느 순간 전해져온 쓸쓸함이 몇 배로 몸을 불리고 있다. 왜 이런 것은 쓸데없이, 쉽게도 덩치를 부풀리는지 모르겠다. 허락도 없이 자기 맘대로... 아무리 바빠도 허무해지고 멍 때리는 시간은 생기더라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울음을 멈춘다. 그러게 말이야. 그러더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이런 순간이 참 잘도 찾아오더라고, 라면서...

 

복잡한 일이 좀 정리되면 만나러 갈 테니, 맛있는 걸 사달라고 했다. 내가 뭔가를 사달라고 하는 말, 특히 그게 음식이라면 더더욱 어렵게 꺼낸 말이라는 것을 아는 이에게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상대는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안다. 겨우, 뭔가를 같이 먹자는 말 한 마디에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는 게 우습지만, 그런 사람인 걸 어쩌나. 정말로 찾아가 맛있는 것을 같이 먹자고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귀찮아서, 게을러서, 마음이 어지러워서 주저하던 발걸음을 기어코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본다. 가야지. 가서 얼굴 보고. 몸에 해롭지만 혀끝에서 행복을 주는 맛이더라도. 나잇살까지 보태진다며 겁내하던 것들을. 위장 속에 잔뜩 집어넣어봐야지. 그게 이 순간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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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두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제목,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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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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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여름용 검정원피스를 한 벌 사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사지 못한 상태로 지금, 가을이 시작하고 있다. 곧 입을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하고자 했는데,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마음처럼 간단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옷 한 벌 사는 일이 무슨 힘든 일이라고 이렇게 몇 달을 미뤘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가족들과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의견들에 몸살을 앓았고, 나도 해야 할 일을 계산해보면서 머릿속이 바빴다.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는 일들에 마음을 내려놓으면 될 텐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마음대로, 일 처리하듯 간단하게 진행되는 건 없었다. 여름이 거의 다 가고 있는 지금, 여름용 검정원피스 대신, 나는 이제 가을용 검정원피스를 잊지 말고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렇게 그냥 시간이 흘러버리면, 나는 또 겨울용 검정원피스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한창 할 때 만나게 된 소설이다. 제임스 에이지의 자전적 소설인 『가족의 죽음』은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의 짧은 시간을 그렸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화두인 죽음을, 갑작스러운 상실의 감각을, 담담하면서도 경건하게 표현했다. 어쩌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면, 나와 내 가족도 이런 모습일 수 있을까.

 

제이는 고향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이른 새벽길을 나선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길이다. 깨울까 봐 잠든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아내 메리가 챙겨준 간단한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곧, 아버지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게 아니라면 저녁에 돌아와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아내와 헤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했던 분위기는 다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확신하여버린다. 제이가 집을 나서고 몇 시간 후,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남자 가족이 와서 제이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고. 메리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묻지 못했다. 경황이 없었다. 제이가 어떤 상태인지,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지 사망한 것인지 묻지 못했던 거다. 사촌 앤드루에게 도움을 청하고 고모 한나에게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시간.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이제 겨우 서른여섯의 남자 제이는 즉사한 상태로 돌아온다. 슬픈 소식에 하나둘씩 모여드는 가족들. 메리의 친정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이어지는, 제이와 그동안의 시간을 꺼내는 기억들이 죽음을 애도한다.

 

"아빠는 집에 오시지 않았어. 앞으로도 다시는 오시지 않을 거야. 아빠는-하늘나라에 가셔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아. 엄마 말 듣고 있니, 캐서린? 잠은 깼어? 캐서린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넌 알아듣니, 루퍼스?" (238페이지)

 

제임스 에이지가 아버지를 위해 쓴 소설이자 자전적 추도사라고 한다. 그의 시간과 기억이 바탕이 되었다는 건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한동안 멍하니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의 부재를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견뎌낼 수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나 고모의 말처럼, 죽음은 준비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고 그냥 겪어내야 할 일이었던 거다.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며, 장례를 치르고, 남겨진 사람의 몫을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게 비록 견디는 것이라 해도, 그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는 듯이, 잔인한 처사라고 신에게 부르짖으며 울분을 토해내더라도... 통곡하면서 남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어 맥을 놓는 메리, 하늘나라로 갔다는 아빠가 왜 돌아오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어린 캐서린, 뭐가 뭔지 잘 몰라도 이렇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년 루퍼스. 그렇게 저절로 배워가고 알아가고 있었다. 죽음이란 건, 아버지의 사라진 자리는 그렇게 익숙해져야 하는 거였다.

 

예상하지 않았던 비극을 마주한 기분은 어떨까. 준비한다고 해서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어느 정도 단단해질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만, 단 한 순간도 그때 그 시간에 누군가를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면 당황스러울 테지. 당황이라는 말로는 좀 부족하다. 뭔가 더 명확하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올랐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할 듯하다. 시쳇말로 멘붕인 상태니까. 현실로 부닥친 장례 절차부터, 아직은 어린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무엇보다 가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급작스러운 상황은 견디는 삶의 시작이 되어버린다. 이 불안한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가족을 둘러싼 모든 것은 혼란일 거다. 애도의 시간을 온전하게 채우지도 못하고 현실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남겨진 사람은 여기,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그들의 몫이므로.

 

그렇게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잘 살아가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한 번씩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슬픔은 어쩔 수가 없다. 강인한 존재로 보였던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어려움을 피하기보다는 맞서는 사람이었다. 변화되고 발전하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이루려 노력하며 살아오면서도 가슴 속의 따뜻함은 남아 인간애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는데, 가난한 이들에게 온정을 품었던 사람이었는데... 뭔가 큰 기둥 하나가 뽑혀 나간 것처럼 온통 그의 부재가 주변을 감싸고돈다. 그의 부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비극은 금방 희극이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하는지, 어떻게 잘 견디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겪어내야 하는 일인 것뿐이란 말인지.

 

너희 아빠는 선하게 사시길 원하고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라셨단다. 너희 아빠보다 더 용감한 분도 없고 더 친절하고 너그러운 분도 없어. 견줄 사람이 없지. 아저씨가 너희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너희 아빠는 이 세상을 살다 가신 훌륭한 분들 중 한 명이었다는 거야." (306페이지)

 

한 사람의 부재로 많은 기억과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가족과 죽음이란 주제 안에서 그들이 믿어왔고 의지하는 종교의 가르침을 말하는 장면도 종종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죽음이 화두가 된 한 가족의 슬픔과 변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자리에서 보는 시선을 그린다. 든든한 아빠의 존재를 더욱 떠올리는 소년, 아직 죽음이란 것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소녀, 이제 이 가정의 중심이 되어 더 단단해져야 할 한 여자의 삶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하게 한다. 지켜보고 싶게 한다. 이건 소설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삶 속에 늘 존재하는, 언제든지 같은 경험을 겪을 수 있는 우리의 문제이니까. 그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견디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므로. 소년 루퍼스가 그 시간을 건너 성장해가듯, 우리도 그 상실의 시간을 건너야만 온전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한집에서 복작대며 살아가는 가족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아직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불안을 생각하면, 그 죽음을 볼 '언젠가'가 멀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때가 닥치면 당황하지 않고 잘 지나갈 수 있을지,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잊힌 기억으로 온갖 감정이 다독여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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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같이 드실래요? 1
박시인 글.그림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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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너무 많고, 없는 시간도 만들어내어 먹으러 갈 수도 있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면, 도희와 해경을 보시라. 이렇게 함께 먹는 저녁도 괜찮다는, 민망할 것 없다는, 나아가 어떤 인연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설렘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뻘쭘. 그래도 땅기는 걸 어떡할지 몰라서 무작정 들어선 레스토랑. 대기 좌석에 앉아 있는데 직원이 메뉴 먼저 보고 있으라며 메뉴판을 건네면서 하는 말, “커플 메뉴 세트가 할인 중인데, 커플 세트 주문 시 샐러드를 서비스로 드리고 있어요. 어떠세요?” 누구? 나? 직원분~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요?

 

우연히, 각자 혼자 온 도희와 해경은 그 자리에서 레스토랑 직원에게 커플로 오해받는다. 그런데 직원에게 해명하기 전, ‘그냥 같이 먹는 건 어때?’ 하는 생각이 도희의 머릿속을 스친다. 레스토랑에서 혼자 하는 식사, 커플 할인도 해준다는데, 저녁 먹는 그 시간을 못 견딜 건 또 뭐람. 그렇게 모르는 사이가 같은 자리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저녁 친구가 된다. 혼자서 먹는 주말의 저녁 식사가 허전해서, 뭔가를 먹고 싶어도 혼자 먹으러 가기가 민망해서, 혼자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루어진 저녁 식사 협약. 주말 저녁을, 우리 같이 먹읍시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서로의 사사로운 일상과 지나간 연애의 추억들을 나누면서 저녁 식사 시간을 쌓는다.

 

연애를 열다섯 번이나 했지만 오래가는 사랑은 없었던 해경과 오랜 시간 하나의 사랑만을 해왔던 도희. 전혀 다른 사랑을 해온 두 사람이 비슷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데,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가자는-그게 비록 모르는 사이였을지라도- 건 비슷했다. 그래서 이어지는 시간. 뷔페, 스테이크, 케이크, 삼겹살, 크림 브륄레, 수제 햄버거, 돈가스, 우동, 치맥, 생선회, 그리고 앞으로 더 먹게 될 음식들까지. 별것 아닌 것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그때마다 피식 웃음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추억담이 펼쳐진다. 수제 햄버거를 먹다가 옛 애인의 딸을 생각하고,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마주친 옛사랑, 식으면 맛없는 삼겹살을 끝난 사랑에 비유하기도 하는 대화들이 낯설면서도 편안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

 

몰랐던 사람과 주말의 저녁 식사를 같이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또 다른 인연. 도희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말들이 부담 없이 술술 나올 수 있게 하는 마력을 가진 상황이 되어버린다. 밥을 같이 먹자는 말, 특히 혼자 먹는 밥이 싫어서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게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안함은 잠시 접어두고, 사람과 함께하게 되는 일상적인 저녁식사 시간을 생각하면, 여느 날의 저녁 식사 시간은 단순히 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시간만은 아니다. 배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들 외에 더 많은 것이 오갈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저녁식사 시간 아닐까. 불금의 홀가분한 저녁, 오늘의 스트레스 날리고 싶게 퍼붓고 싶은 회식 자리,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는 주말 저녁 시간... 곰곰 생각해보면 저녁식사가 이루어내는 게 다양하고 많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자리든, 뭔가 잔뜩 쌓이게 된다는 건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궁금해지기도 한다. 도희와 해경이 주말마다 먹는 그 저녁 식사 시간이 쌓이면 무엇이 만들어졌을지...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흔한 인사로 밥 한번 먹자고 하면서 실제로 그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게다가 오랜 시간 소원했던 관계라면 식사하자는 얘기는 더 꺼내기 어려워진다. 음식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과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밥 한번 먹자고 선뜻 말 꺼낼 수 있게 해줄 누군가를 떠올려보면서 연습도 해 본다. “같이, 밥 먹을래?”

 

식사, 그 이상의 것이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따뜻하고 설레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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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 - 여행 후에 오는 것들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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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여름이었다. (아직도 남은 여름은 진행 중이지만) 거의 한 달 동안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자려고 누우면 평균 1~2시간은 뒤척여야만 잠이 드는 나에게, 새벽 5시는 절대 눈 뜨고 있을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눈 뜨게 만드는 건 여름의 더위였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시간이 되고야 만 것. 그 시간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온 집안의 문을 열어놓곤 했다. 현관문, 창문 할 것 없이 모조리 다 연다. 그래도 끈적임과 잠 못 들게 했던 더위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름날 새벽 공기는 이렇게도 더울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을 뿐.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더 느끼게 된 건, 새벽바람의 흐름으로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냥 단순하게 '가을이 오고 있구나' 하는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불어오는 바람이 달라졌음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거였는데, 그걸 또 말로 표현하자니 어느 한마디로 다 할 수 없는 느낌들이었다. 기분이 묘해지는 어떤 것들. 한 달 전, 일주일 전, 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의 새벽바람은 모두 달랐다. 시계나 달력뿐만 아니라 바람으로 직접, 한 달의 시간을 꾸준히 맞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 건, 지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지금,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놓여있는 시간.

 

거의 8월 한달동안, 그렇게 눈뜬 새벽 시간에 잠깐씩 책을 읽었다. 많이 읽지는 못하고 길어야 삼십 분, 혹은 스무 페이지 정도. 변종모의 신간 『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은 그렇게 조각내어 읽기에 잘 어울린다. 어느 한 곳의 이야기를 잠깐씩 듣는 게 좋다. 그곳에 두고 온 이야기가 이곳의 일상에서 떠오르곤 하는 순간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공감이 이어진다. 읽으면서 가끔은 한숨이 쉬어지기도 하고, 알람이 울리기 전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문자 작성 페이지를 열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잠들어 있을 시간인 걸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도, 한 마디도 보낼 수는 없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참고 있던 할 말들을 툭툭 치고 나오게 하는 순간이 많았다. (저자처럼 엽서를 옆에 두고 있었다면 몇 자 적어서 가방에 넣어서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차마 부치지는 못하고...) 그렇게 엽서나 휴대폰 속의 전화번호부 같은 걸 옆에 두고 읽으면 위험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매번 알기에 순간적인 기분으로 사고 치지 않게 긴장하게도 한다. 시간이 그렇고, 그 누군가에게도 그렇다. 그걸 아니까 바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겠지만.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휴대전화 문자로 보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다. 그럴 때 엽서를 써 본다. 마치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에 젖어, 가까운 이를 멀리 놓고 애틋한 마음으로 엽서를 쓴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카드여도 좋고 생일 카드여도 상관없다. 엽서를 쓰다 보면 나는 멀리 있다. 내가 떠나지 않고서도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엽서를 쓰는 일이다. 그것은 비행기 표를 사듯, 가야 할 나라를 고르듯, 여행기를 쓰듯 마음속의 일들을 적는다. (154페이지)

 

여행에서 돌아온 이의 하루를 읊는다. 길 위에서 돌아온 여행자의 하루, 스물네 시간을 담았다. 이른 새벽부터 하루가 끝나는 자정까지. 잠에서 깨어 눈 뜨는 그때부터 이어지는 하루의 시간 속에서 뛰쳐나오는 여행지의 감정들이 오늘의 곳곳에 묻어 있던 거다. 일상에서 겹쳐지는 여행지의 장면과 그때의 감정들이 기억을 소환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힘들어서, 가슴에 비워진 뭔가가 아파서 떠났을지라도, 적어도 그 길을 걷던, 그곳의 시간 속에서만큼은 행복했을 테니까. 떠나고 싶어서 떠난 자의 마음을 가득 채운 무언가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 거니까. 그런데 그곳과 이곳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다르니까, 그 시간을 걷던 마음과 지금을 살아가는 마음이 다를 수 있는 거니까. 여행은 끝나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돌아왔고, 여기에서의 시간은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각각의 시간에 선이 있는 거로 생각하곤 했는데... 돌아온 일상에서 그곳의 기억들을 함께 가져와 생각하고 다짐한 것들로 살아가는, 밟아가는 땅을 다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시간을 이곳에 보태고 어떤 시간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그리는 것. 그러니까 여행을 떠났던 그때 그 마음과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잊지 않게 하는, 잊었더라도 잊을 수 없는 일상을 보여준 거였다. 잊겠다고 해서 잊히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우리니까, 떠올리자고 작정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도 잘 알게 되는 거겠지.

 

명동에서 시애틀 빌딩 숲 어느 건물 뒤편을 생각하고, 부산에서 이스탄불의 바람 부는 항구는 만나는 일. 마을버스 정류장의 할머니들에게서 이란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해바라기와 같은 분위기를 그려본다. 쌀국수와 치앙마이의 뒷골목을 떠올리다 라면 물이 끓어오르고, 길바닥에 떨어진 우표 한 장에 붙이지 못한 편지를 들고 서성이던 이집트의 낡은 우체국을 그리워한다. 자신의 발자국이 새겨진 그곳들이, 잘 있을지, 괜찮을지 생각하는 시간. 이렇게 자주 떠올려도 되는지,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이 그리움을 그대로 안고 있어도 괜찮은지 계속되는 물음에, 결국은 '괜찮겠지.'라는 답을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는 있는 거지. 여행 후에 찾아오는 수많은 단상과 일상의 어느 순간에 포개어지는 온갖 감정들. 슬픔이나 그리움, 불신, 불편함, 감사, 웃음, 행복, 친절함, 그리고 더 많은 것.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장담하지 못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연들의 진심. 허름한 숙소에서 주인이 건네는 걱정에 떠올리는 어머니의 모습마저 그리운... 오늘도 이곳에서 보는 그곳의 이야기들은 계속된다. 여행지에 다 두고 온 것 같은 일들이 이렇게 그의 하루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다짐들.

 

여행에서 받아들인 모든 감정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줄 알았다. 낯선 곳에서 긁히고 상처 나고 그러다 굳은살이 생겨나면서 튼튼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내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일로 남는 것 또한 알았다. 잠시 따뜻한 불빛을 쫓아 들어간다고 해도 내 집이 될 수 없는 곳이 허다한 것처럼. 외로움이란 길 위에서나 생활에서나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끝까지 동반해야 할 가장 나와 가까운 감정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외롭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아무도 거둬 줄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내가 다시 배낭을 메는 이유가 최소한 너 때문이라는 변명은 이제 없어야 할 것이다. 나도 나를 위해 살 뿐이다. 너처럼. (343페이지)

 

여행, 그 후에 따라오는 여운이 짙은 이야기다. 하루에 조금씩 천천히 읽어서 그런지 뭔가 계속 이어지는 기분에 이야기가 끝나는 게 서운했다. 들으면서 계속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다시 서랍으로 조용히 들어가 버렸다. 언젠가, 언젠가,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 '언젠가'의 시간이 오기를 바보처럼 기다리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의 연장선처럼, 그 감정을 그대로 이어가려면 누군가에게 엽서라도 한 장 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오늘을 사는 '이곳'에서 길 위를 걸었던 '그곳'의 시간을 꺼내게 하는 순간들이 그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돌아왔으면 끝일 것 같은데, 여행은 그곳에서 일상의 삶은 여기서 이어가면 그만일 것 같았는데, '이곳'을 살면서 '그곳'의 기억과 시간들이 문득 가슴을 치고 나올 때마다 생각도 짙어질 듯하다. 어떤 장소, 사람들, 시간들, 묻거나 버리려 했던 흔적들, 그런데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에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는 일. 지금 이곳으로 돌아와 있지만, 여전히 그곳의 시간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떠나고 싶어서 떠나고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왔는데 사라지지 않는 허무함이 어떤 상태인지도 알 듯하다. 시간이 잘리지 않고 이어지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여행이 끝났어도 여행의 기억들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여행은 끝도 시작도 없었던 거다.

 

짧게 계속된 이 책과의 새벽 여행은 8월과 같이 끝났다. 하지만 이 책이 끌어낸 어떤 감정들은 아직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듯하다.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언젠가는 잔뜩 쓴 엽서로 가방 안을 채우게 될 것만 같다. 그럼 그걸 또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것도, 언젠가... 그 '언젠가'가 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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