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같이 드실래요? 1
박시인 글.그림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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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너무 많고, 없는 시간도 만들어내어 먹으러 갈 수도 있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면, 도희와 해경을 보시라. 이렇게 함께 먹는 저녁도 괜찮다는, 민망할 것 없다는, 나아가 어떤 인연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설렘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뻘쭘. 그래도 땅기는 걸 어떡할지 몰라서 무작정 들어선 레스토랑. 대기 좌석에 앉아 있는데 직원이 메뉴 먼저 보고 있으라며 메뉴판을 건네면서 하는 말, “커플 메뉴 세트가 할인 중인데, 커플 세트 주문 시 샐러드를 서비스로 드리고 있어요. 어떠세요?” 누구? 나? 직원분~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요?

 

우연히, 각자 혼자 온 도희와 해경은 그 자리에서 레스토랑 직원에게 커플로 오해받는다. 그런데 직원에게 해명하기 전, ‘그냥 같이 먹는 건 어때?’ 하는 생각이 도희의 머릿속을 스친다. 레스토랑에서 혼자 하는 식사, 커플 할인도 해준다는데, 저녁 먹는 그 시간을 못 견딜 건 또 뭐람. 그렇게 모르는 사이가 같은 자리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저녁 친구가 된다. 혼자서 먹는 주말의 저녁 식사가 허전해서, 뭔가를 먹고 싶어도 혼자 먹으러 가기가 민망해서, 혼자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루어진 저녁 식사 협약. 주말 저녁을, 우리 같이 먹읍시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서로의 사사로운 일상과 지나간 연애의 추억들을 나누면서 저녁 식사 시간을 쌓는다.

 

연애를 열다섯 번이나 했지만 오래가는 사랑은 없었던 해경과 오랜 시간 하나의 사랑만을 해왔던 도희. 전혀 다른 사랑을 해온 두 사람이 비슷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데,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가자는-그게 비록 모르는 사이였을지라도- 건 비슷했다. 그래서 이어지는 시간. 뷔페, 스테이크, 케이크, 삼겹살, 크림 브륄레, 수제 햄버거, 돈가스, 우동, 치맥, 생선회, 그리고 앞으로 더 먹게 될 음식들까지. 별것 아닌 것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그때마다 피식 웃음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추억담이 펼쳐진다. 수제 햄버거를 먹다가 옛 애인의 딸을 생각하고,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마주친 옛사랑, 식으면 맛없는 삼겹살을 끝난 사랑에 비유하기도 하는 대화들이 낯설면서도 편안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

 

몰랐던 사람과 주말의 저녁 식사를 같이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또 다른 인연. 도희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말들이 부담 없이 술술 나올 수 있게 하는 마력을 가진 상황이 되어버린다. 밥을 같이 먹자는 말, 특히 혼자 먹는 밥이 싫어서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게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안함은 잠시 접어두고, 사람과 함께하게 되는 일상적인 저녁식사 시간을 생각하면, 여느 날의 저녁 식사 시간은 단순히 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시간만은 아니다. 배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들 외에 더 많은 것이 오갈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저녁식사 시간 아닐까. 불금의 홀가분한 저녁, 오늘의 스트레스 날리고 싶게 퍼붓고 싶은 회식 자리,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는 주말 저녁 시간... 곰곰 생각해보면 저녁식사가 이루어내는 게 다양하고 많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자리든, 뭔가 잔뜩 쌓이게 된다는 건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궁금해지기도 한다. 도희와 해경이 주말마다 먹는 그 저녁 식사 시간이 쌓이면 무엇이 만들어졌을지...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흔한 인사로 밥 한번 먹자고 하면서 실제로 그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게다가 오랜 시간 소원했던 관계라면 식사하자는 얘기는 더 꺼내기 어려워진다. 음식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과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밥 한번 먹자고 선뜻 말 꺼낼 수 있게 해줄 누군가를 떠올려보면서 연습도 해 본다. “같이, 밥 먹을래?”

 

식사, 그 이상의 것이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따뜻하고 설레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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