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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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여름용 검정원피스를 한 벌 사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사지 못한 상태로 지금, 가을이 시작하고 있다. 곧 입을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하고자 했는데,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마음처럼 간단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옷 한 벌 사는 일이 무슨 힘든 일이라고 이렇게 몇 달을 미뤘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가족들과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의견들에 몸살을 앓았고, 나도 해야 할 일을 계산해보면서 머릿속이 바빴다.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는 일들에 마음을 내려놓으면 될 텐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마음대로, 일 처리하듯 간단하게 진행되는 건 없었다. 여름이 거의 다 가고 있는 지금, 여름용 검정원피스 대신, 나는 이제 가을용 검정원피스를 잊지 말고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렇게 그냥 시간이 흘러버리면, 나는 또 겨울용 검정원피스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한창 할 때 만나게 된 소설이다. 제임스 에이지의 자전적 소설인 『가족의 죽음』은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의 짧은 시간을 그렸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화두인 죽음을, 갑작스러운 상실의 감각을, 담담하면서도 경건하게 표현했다. 어쩌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면, 나와 내 가족도 이런 모습일 수 있을까.

 

제이는 고향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이른 새벽길을 나선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길이다. 깨울까 봐 잠든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아내 메리가 챙겨준 간단한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곧, 아버지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게 아니라면 저녁에 돌아와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아내와 헤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했던 분위기는 다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확신하여버린다. 제이가 집을 나서고 몇 시간 후,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남자 가족이 와서 제이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고. 메리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묻지 못했다. 경황이 없었다. 제이가 어떤 상태인지,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지 사망한 것인지 묻지 못했던 거다. 사촌 앤드루에게 도움을 청하고 고모 한나에게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시간.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이제 겨우 서른여섯의 남자 제이는 즉사한 상태로 돌아온다. 슬픈 소식에 하나둘씩 모여드는 가족들. 메리의 친정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이어지는, 제이와 그동안의 시간을 꺼내는 기억들이 죽음을 애도한다.

 

"아빠는 집에 오시지 않았어. 앞으로도 다시는 오시지 않을 거야. 아빠는-하늘나라에 가셔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아. 엄마 말 듣고 있니, 캐서린? 잠은 깼어? 캐서린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넌 알아듣니, 루퍼스?" (238페이지)

 

제임스 에이지가 아버지를 위해 쓴 소설이자 자전적 추도사라고 한다. 그의 시간과 기억이 바탕이 되었다는 건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한동안 멍하니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의 부재를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견뎌낼 수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나 고모의 말처럼, 죽음은 준비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고 그냥 겪어내야 할 일이었던 거다.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며, 장례를 치르고, 남겨진 사람의 몫을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게 비록 견디는 것이라 해도, 그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는 듯이, 잔인한 처사라고 신에게 부르짖으며 울분을 토해내더라도... 통곡하면서 남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어 맥을 놓는 메리, 하늘나라로 갔다는 아빠가 왜 돌아오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어린 캐서린, 뭐가 뭔지 잘 몰라도 이렇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년 루퍼스. 그렇게 저절로 배워가고 알아가고 있었다. 죽음이란 건, 아버지의 사라진 자리는 그렇게 익숙해져야 하는 거였다.

 

예상하지 않았던 비극을 마주한 기분은 어떨까. 준비한다고 해서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어느 정도 단단해질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만, 단 한 순간도 그때 그 시간에 누군가를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면 당황스러울 테지. 당황이라는 말로는 좀 부족하다. 뭔가 더 명확하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올랐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할 듯하다. 시쳇말로 멘붕인 상태니까. 현실로 부닥친 장례 절차부터, 아직은 어린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무엇보다 가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급작스러운 상황은 견디는 삶의 시작이 되어버린다. 이 불안한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가족을 둘러싼 모든 것은 혼란일 거다. 애도의 시간을 온전하게 채우지도 못하고 현실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남겨진 사람은 여기,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그들의 몫이므로.

 

그렇게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잘 살아가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한 번씩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슬픔은 어쩔 수가 없다. 강인한 존재로 보였던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어려움을 피하기보다는 맞서는 사람이었다. 변화되고 발전하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이루려 노력하며 살아오면서도 가슴 속의 따뜻함은 남아 인간애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는데, 가난한 이들에게 온정을 품었던 사람이었는데... 뭔가 큰 기둥 하나가 뽑혀 나간 것처럼 온통 그의 부재가 주변을 감싸고돈다. 그의 부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비극은 금방 희극이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하는지, 어떻게 잘 견디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겪어내야 하는 일인 것뿐이란 말인지.

 

너희 아빠는 선하게 사시길 원하고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라셨단다. 너희 아빠보다 더 용감한 분도 없고 더 친절하고 너그러운 분도 없어. 견줄 사람이 없지. 아저씨가 너희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너희 아빠는 이 세상을 살다 가신 훌륭한 분들 중 한 명이었다는 거야." (306페이지)

 

한 사람의 부재로 많은 기억과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가족과 죽음이란 주제 안에서 그들이 믿어왔고 의지하는 종교의 가르침을 말하는 장면도 종종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죽음이 화두가 된 한 가족의 슬픔과 변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자리에서 보는 시선을 그린다. 든든한 아빠의 존재를 더욱 떠올리는 소년, 아직 죽음이란 것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소녀, 이제 이 가정의 중심이 되어 더 단단해져야 할 한 여자의 삶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하게 한다. 지켜보고 싶게 한다. 이건 소설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삶 속에 늘 존재하는, 언제든지 같은 경험을 겪을 수 있는 우리의 문제이니까. 그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견디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므로. 소년 루퍼스가 그 시간을 건너 성장해가듯, 우리도 그 상실의 시간을 건너야만 온전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한집에서 복작대며 살아가는 가족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아직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불안을 생각하면, 그 죽음을 볼 '언젠가'가 멀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때가 닥치면 당황하지 않고 잘 지나갈 수 있을지,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잊힌 기억으로 온갖 감정이 다독여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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