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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 우리 시대 부모들을 위한 교양 강좌
심상정 엮음 / 양철북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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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의 <마을학교>에서 이런 사람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건 마을학교 교장 격인 심상정의 힘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지역구의 어떤 당 소속 의원은 임대아파트 건축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어쨌든 서울 서쪽 끝 동네에 사는 나는 책을 통해 이런 학교 소식을 접하면 일단 배가 아프다. 전에 없던 욕심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것을 부러워 할 만큼 사회화가 된 사람이 아니다. 도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동네가 그래서 나한테 딱 맞는 동네다.

그러던 사람인데 어쩌자고 요새는 괜한 트집을 잡고 입꼬리가 치어 올라가는 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언제부턴가 늘 뭔가에 화가 나있는 나를 발견한다.

겉보기에는 작은 키에 앳된 얼굴을 한 그녀가 있다.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굉장히 열을 받는 사람이다. 아픈 손가락 같은 아들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이 아픈 평범한 둘째와 그 친구들이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기운 없어 하다가 마치 박카스를 찾는 사람처럼 <나꼼수> 언제 업 되냐며 ‘졸라’ 씩씩댄다.

사십을 훌쩍 넘겨 살면서 그녀는 욕 한 번 써보지 못했다. ‘완벽하게 도덕적인 사람’인 그녀가 아이가 학교에서 하도 이것 저것 뺏기길래 부부가 욕을 한번 가르쳐보려다가 실패했던 일도 알고 있다. 그러던 그녀가 <나꼼수>를 들으면서 욕과 도덕의 경계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대단한 <나꼼수>다.

말이 길어졌다. 단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를 생각했고, 내가 열받아 하는 이유가 아마도 그녀에게 바짝 붙어 있기 때문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

 

박경철의 말을 읽은 날, 마침 아들과 피자에 꽂혔고 동네 59쌀피자를 꼭 먹어야 한다며 큰 거 두 판을 쏘았다. 아들 녀석 친구들도 마침 들이닥쳐서 예산이 더 들었지만 특별히 더 맛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지역경제, 서민 경제, 동네 경제 그런 것 잘 모른다고 이마트 피자 사먹는 짓 하지 않겠다고.

정태인의 죄수의 딜레마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컴퓨터를 싹 지우고 재부팅 하듯이 그렇게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부터 준비 땅해서 우리 모두 사교육 같은 거 동시에 손 딱 놓는 걸로!

이범의 얘기는 언제 들어도 목소리가 분명하고 커서 듣기 좋다. 딱 써먹기 좋은 구체적인 방법들이라서 더 잘 들린다. 너무 분명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거나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선택인데, 선택하지 말고 제도로 정해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학교에서는 어떤 경쟁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나임윤경이라는 여성학자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소득이다. 이러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겠나. 세상에는 이토록 멋지고 훌륭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없으니 책으로 만나는 것이다.

사교육을 외도와 연관지어 현 상황을 들여다 보니 정말 요즘 우리 부모들은 다 집단 최면에 걸린 게 맞구나 싶다. 증세는 좀 더 심한 것 같다. 부부가 부부의 삶을 못살고 부모로서만 사니, 부는 돈을 벌고 모는 자식을 가르치고 결국에는 부부는 없고 의무만 이행하더라는 말.

그래서 외도를 하는데 또 이혼으로 가정이 깨지면 외도 또한 깨진다는 말은 너무 슬퍼서 속상했다. 부부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을 남편에게 해주었더니 그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아이 교육 때문에 부부가 돈버는 기계, 돈쓰는 기계가 되지는 않아야겠다. 아이도 그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니 우리 부부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윤구병과 이이화 선생의 말은 죄송하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두 분 다 한평생 흙과 역사에 뜻한 바 대로 삶을 집중해오신 분들인데 왜 나는 이 두 분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을까.

대안학교의 귀족화에 상처를 받았다고 윤구병 선생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아마 아직도 내가 수양이 덜 되어 편협한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두 분이 하시는 얘기가 더 근본적이고 지당한 말씀이긴 한데 “저는 지금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며 일어나 가버리는 나쁜 청중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무릎 꿇고 두 분의 말씀을 들을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이 나는 늘 어렵고 무섭다. 부드러움과 단호함이 섞이면 그것은 양면이 아니라 더 큰 하나의 덩어리(힘)가 되는 것 같다는 것을 선생을 보면서 느낀다. 그래서 감히 우러르기는 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것 같아 부끄럽다.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을 말씀들이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말.

 

“인디언들은 초원을 달려 작은 언덕에 올라가면 말머리를 돌려서 자기가 달려온 초원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영혼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먼 길은 영혼과 함께 가야 됩니다”

 

이 먼 길은 “자신의 논리, 자신의 이유로 가야하는 길”이다. 그리고 ‘더불어’ 가야하는 길이다.

 

조국은 늘 그렇듯이 말보다 글이 쎈 사람 같다. 말로 한 것을 글로 옮겼을 때 조차 그렇게 느껴진다. 학자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일 년 열두 달 책상에 앉아서 연구만 하는 선생이 아니라서 좋다. <진보집권플랜>에서 동네 커피전문점에 가서 그곳에서 모은 쿠폰을 쓰더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듯 생활인으로서 법학자인 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사심이 아니라 뭐라 할 말이 없는 먼 그대(나는 잘생긴, 엄친아들, 강남좌파를 감당할 만한 자신이 없다, 뼛속깊은 이 촌스러움!)인 그가 열심히 자기 몫을 하되, 현실에 발딛고 있는 것이 좋다.

심상정은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이다. 부끄럽지만 그녀에 대해 알려고 해 본적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 책이 그녀의 손에서 나오게 된 책이라는 것으로 나는 그녀가 국회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끝내 그곳에서 굳건히 뿌리 내리기를 바란다.

 

이 책을 손에 들기 전부터, 다 읽고 몇 날이 지난 지금도 뉴스만 틀면 학교 폭력 기사가 뜬다. 이젠 거의 기겁의 수준으로 그 뉴스만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른 방송사 뉴스도 학교 폭력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집과 학교 밖에 모르고 사는 나같은 엄마는 좀 과장하면 패닉 상태다. 그래도 세상이 좀 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믿어야 하는가. 책에서 얻은 위안과 위로, 희망의 힘이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툭하고 맥이 빠져버린다.

신영복 선생의 “자신의 논리, 자신의 이유로 가라는 말”을 꼭 붙들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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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1 1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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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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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는 경계의 글이다. 타이르고 주의를 주는 글이라 우화는 두려운 글이다. 그 결과를 비극으로 맺기 때문에 독자는 그 서슬에 놀라 몸과 마음을 단속한다.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화가 현재성을 갖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섬뜩했다. 현실의 정곡을 파고드는 작가의 가슴이 그의 손끝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하나같이 새겨 볼 가치가 있는 글들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은 어리석고 나약하고 비굴한 삶을 사는 2011년 지금 여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내는 도끼질이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처럼 누구한테도 싫다는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늘 끌려다니기만 하던 나 아닌가. 입만 열면 자기 자랑에, 앞 뒷말이 다르고 제대로 속물의 모습을 보여준 이웃 언니한테 ‘난, 당신을 만나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하지 못해(사실 쉽게 이런 말 못하지) 찌질하게 전화를 받지 않는 것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나다.

싫다는 말을 처음 해 본 사람이 남편이 된 남자다. 그것도 남편이 되고 나서야 감히 ‘싫다’는 말을 했다. 그게 뭐든지 오케이, 그게 내 장점이고, 사람 좋다는 말은 관계 유지를 위해 내가 확보해야 했던 태도였다. 참고 용서하며 살라는 천사의 말에 속아 죽음 직전에야 그걸 깨달은 노인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개인의 문제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이 집단의 문제다. 당연히 개인은 집단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자주 그 집단의 논리 속에 개인을 희생당한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늘 희생양을 요구한다. <가위바위보>에서처럼 집단은 개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바위를 못내는 나약한 개인을 철저히 희생양으로 삼고 그 덕으로 집단은 유지된다. 집단이 공공성을 잃고 전체 권력이 되었을 때 손을 다친 개인은 즉 집단에 끼일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개인은 무력하게 희생된다. 더 우화적인 상황은 1%의 집단을 위해 99%의 개인이 희생당하는 시절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99%의 개인이 그들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결국 공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염소와 늑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검은 염소, 흰 염소 구분 없이 모두 함께 힘을 모았을 땐 늑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을 가르고 한 쪽만 공격했을 때 상황은 검은 염소들이 흰 염소를 돕지 않게 된다. 내가 지금 늑대의 공격을 받는 흰 염소와 동류(동무)라는 걸 잊은 채 늑대에게 희생당하는 흰 염소를 남의 일로 여기는 것. 심지어 흰 염소가 숨어있는 곳을 일러바치기까지 한다. 검은 염소들이 생각하기에 흰 염소가 잡아먹히는 것은 그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늑대는 결코 자애롭지 않다. 오로지 목적은 자기 배를 불리는 것이다. 흰 염소가 모두 잡아먹히고 힘의 절반이 빠진 검은 염소들도 흰 염소와 같은 운명이다. 검은 염소가 그 이유를 자기들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섬뜩한 경고다.

 

“이제 검은 염소들은 한 마리가 잡아먹힌다면 그놈이 왜 잡아 먹혔는지 알아내느라 대항할 생각도 못할 거야. 뿔이 굽어서 먹혔는지, 다리가 짧아서 먹혔는지, 암놈이라서, 아니면 수놈이라서 먹혔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겠지. 스스로 먹힐만한 이유가 있어서 잡아먹히는 거라고 여기는 놈들을 사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끔찍한 상황이다. 실체가 분명한 늑대를 못보고 제 동료가 먹히는 게 이유가 있어서라니, 이렇게 우매한 족속이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가난하고, 지방대를 나오고, 외국어를 못하고, 취업을 못하는 그들을 루저라고 조롱하고 비웃지 않았던가. 너만 잘해봐라, 그게 다 노력 부족이라고 개인의 문제로 지적질만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간교한 늑대였던 것이다. 그 늑대를 바로보고 함께 물리쳐버리리지 못하는 한, 흰쥐, 검은쥐 또한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그림과 글이 적절히 섞여있고 그림의 선이 좋아 책장이 잘 넘어가지만 읽는 내내 우울하였다. 열을 받아 확확 달아오르던 마음이 한 모금의 물로 달래지느니, 차기 추장을 노리는 두 아들에게 물을 길어오라 한 아비가 서로 제가 잘했다고 싸우는 두 아들에게 혀를 차며 이른다.

 

“ 첫째의 맑은 물은 병들거나 너무 많이 쇠약해진 사람들에게 먼저 먹이고, 둘째의 탁한 물은 아직 건강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단다. 한 그릇에 모았다면 모두가 탁한 물을 먹어야 했을 거야.”

 

우화가 전하는 경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혜다. 이 시대의 말로 하면 ‘깨어있는 시민’이 아닐까. 이것과 저것 중에 단 하나만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것의 쓰임이 있고, 저것은 저것의 쓰임이 있는 것이라는 지혜의 말씀은 위안이 된다.

작가의 바람처럼 그의 이야기가 열 번의 도끼질이 되어 너와 내가 ‘이드거니’ 어우러져 서로에게 스며들어 소외받는 개인이 없이 ‘대동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그러자면 우선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두루 읽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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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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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는 남편이 먼저 읽고 내게 선물로 준 책이다. 말로는 나를 위해 샀다고 하면서 읽기는 본인이 먼저 읽었다. 속도가 무진장 빠른 사람이라 금새 읽었지만 나는 설거지 하고 나서 잠깐, 빨래하고 나서 잠깐, 화장실 가서 잠깐(이런, 실례! 하지만 가끔은 망설이기도 했다는 변명)이러다 보니 며칠 걸렸다. 쉽게 잠못들면서 그때나 좀 읽지, 한번 불끄고 누우면 꼴딱 밤을 샐 지언정 일어나지 못하는 내가 싫다. 흐~억! 

동서양의 그림을 두 사람이 주제에 맞게 골라 매개로 삼되 주거니 받거니 편지처럼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말이지, 글들을 잘 쓴다. 손철주의 글은 한 세상을 알고난 사람들한테 느껴지는 앎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동양화를 담당하여 그림을 통해 인간사의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는데, 특히 이 책이 좋은 것은 편지 형식이 갖는 내밀함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감정을 곧잘 나타내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괜히 끼었나 싶다가도 그걸 훔쳐보는 것이 또한 재미나다.  

연배가 아래인 이주은은 서양의 그림을 담당했는데, 곧잘 영화이야기를 들여와 예술과 인간사의 넘나듦의 폭을 넓혀준다.  

나는 그림이 낯설다. 어쩌다 사람들한테 묻어서 미술관에 가면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그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몰라 늘 당혹스럽다. 뭘 느껴야 하는지, 뭘 보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낑낑대다 보면 허리만 아프고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들을 훔쳐보며 몰래 그 그림을 다시 보는 일을 반복한다. 그래도 여전히 그림은 내게 너무 먼 당신이다. 급이 달라 사랑할 수조차 없는 그런 사람 같은. 그래서 슬프다. 한때는 내 문화적 토양이 척박해서 그건 고급이야, 난 순대국에 소주체질이거든 위로도 해보았지만 그때 뿐이다.  

그래서 그림 이야기를 사실 나는 좀 좋아한다. 느끼는 것을 모른다면 누가 가르쳐주는 대로 받아들여보기라도 하리라. 그러다 보니 글쓰는 이가 일러주는 대로 어떨때는 그 그림이 내게 살짝 미소를 건네기도 한다. 물론 책을 덮으면 그걸로 싹 끝나는 인연이다.  

무엇보다 이 그림 이야기가 좋은 것은 그림에서 삶, 즉 그리움, 유혹, 성공과 좌절, 나이, 행복, 일탈, 취미와 취향, 노는 남자와 여자, 어머니, 엄마까지 다루고 있어서 특별한 감식안을 가져야하는 것에서 조금 자유롭다. 그럼에도 서양의 그림에는 기본적을 알고 있어야 하는 상징 혹은 관습 같은 것이 있어서 설명이 없다면 그저 보는 것으로 그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부러운 것보다, 혹은 이토록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러운 것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날 정도로 부러운 것은 두 사람의 관계였다.  후배의 눈웃음을 사랑하는 선배의 마음, 그 선배를 한없는 존경으로 따르는 후배의 모습이 또 한장의 그림이었다.  

내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책도, 그림도, 시도 아니었다. 나는 책같은 사람, 그림같은 사람, 시같은 사람을 기다렸던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을 알기에 늘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일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림을 눈여겨 보듯 사람을 눈여겨 보는 일, 나는 그게 어렵다. 나를 눈여겨 보는 일 조차 어렵다. 그래서 나는 늘 한자쯤 땅위에 떠다니듯 헛헛하고 휘청거렸다고 생각한다.  

그림처럼 좀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김장 이야기를 주고 받든, 아이들이 어제 끝낸 야생화 이름 맞추기를 두고 뒷담화를 하든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 내게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지 오래되었다.  

<다 그림이다>는 재밌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한 몇 안되는 책이다. 그림을 볼 줄 알아서 부럽고 그림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서 부럽다,  

내 인생은 언제까지 부러워하고 질투만 할 것인가. 멈춘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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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이야기
기태완 지음 / 고요아침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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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버리려다가 너무 아까워서 야금야금 읽어도 어느새 책장은 다 넘어가 버렸다.

내 나이 서른 다섯이기에 다행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지은이의 동무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 그래서 더욱 반갑고 지은이의 추억을 함께 더듬어 올라갈 수 있었다.

허나 그대가 스무살이든, 십대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책 속 동무들을 만나보면 될 일이다.

그 흥미진진하고 아기자기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와 한 소년과 그 친구들을 만나 손을 턱에 괴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읽으면 될 일이다.

하여 그대들이 어느날 개울가에 가면 돌맹이 하나 들춰 보면 되고, 참나무가 많은 산에 들면 그 참나무를 한번 걷어차 보면 되고, 혹시 그대 발밑에 뭔가 움직이는 게 있는가 가끔씩 내려다 보면 될일이다.

물이 재밌어지고, 산이 재밌어 질 것이다. 나무 한그루 그냥 지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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