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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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사건은 흑백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 선과 악의 경계가 애매하잖아. 그래서 문제 제기는 할 수 있지만 명확한 결론은 불가능해. 항상 커다란 무언가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런 점에서 소설은 완성된 구조를 지니고 있잖아. 소설은 하나의 구조물이지. 그리고 추리소설은 그 구조물 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분야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인 <11문자 살인사건>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가 데뷔 후 다섯 번째로 발표한 소설이었으니, 그야말로 초기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여성 추리소설가인’, 며칠 전에 애인이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한 뒤 살해 당한다. 도쿄 만에서 시체가 떠오른 걸 발견해 형사가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알렸는데, 나는 그의 장례식에서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귄 지 두 달 정도 밖에 안 된 대다, 애초에 결혼 생각 없이 만난 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교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의 방에서 가져온 스케줄표에 적힌 마지막 일정에 뭔가 의심스러웠다. 요즘은 다리를 다쳐서 운동을 쉬고 있었는데, 스포츠센터에서 만날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애인의 죽음에 의심스러운 부분을 파헤치기 위해 그의 마지막 일정을 따라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스포츠센터의 사장을 만났고, 예전에 그 스포츠센터가 기획했던 요트 여행에 참가했다가 사고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트를 타고 Y섬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중간에 날씨가 나빠져 요트가 전복되었고, 참여했던 열 명 중에 한 사람만 죽고, 나머지는 무인도로 쓸려가 구조되었다는 거였다. 애인은 그때 다리를 다쳤고, 취재로 참여했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기행문 연재도 끝이 났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는 애인이 남긴 자료를 도난 당하게 되고, 혹시 그 자료가 당시의 사고에 대해 쓴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작년에 일어난 보트 사고 당시에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살인 후에 도착하는 11개의 글자가 적힌 편지는 누가 보낸 것일까? 과연 추리소설가인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만큼, 현실에서도 범인을 제대로 추리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열었다. 당연히 그 방의 불도 꺼져 있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창가에 놓인 컴퓨터만이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역시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

내 몸 속에서 꿈틀대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심장박동이 다시 빨라졌다. 불안감에 휩싸인 채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워드프로세서에 적혀 있는 글자를 본 순간, 더 이상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초반에 애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추리소설의 매력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런 말을 한다. 현실의 사건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문제 제기는 할 수 있지만 명확한 결론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선과 악의 경계선에 대한 질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과연 우리가 '그 살인은 올바른 선택이었다.'라고 결론이 내려질 만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최선은 과연 모두에게도 선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완벽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관점과 입장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악인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과연 '죽어도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극중 상황처럼 최선의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선을 택했고, 따라서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 역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7년에 발표했던 작품이라 조금 세련된 맛은 덜하고, 정통 추리소설의 형식에 부합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추리소설에 이제 막 입문하는 독자들이 읽기에 쉽고 재미있을 것 같고, 엄청난 반전이나 트릭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요소는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색다른 느낌으로 그의 초기작을 만나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옳다고 믿는 가치는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가치관의 충돌에서 빚어진 비극을 두라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당신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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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 완벽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불안한 그녀의 인생 새로고침
숀다 라임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부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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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길을 잃지는 않는다. 하나씩 거절하다 보면 점점 길을 잃게 된다. 오늘 밤에 만나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오랜만에 대학교 때 룸메이트가 만나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어떤 파티에 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휴가를 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자고 해도 안 된다고 하고. 그러다 보면 한 번에 한 발짝씩 길을 잃는다.

국내에도 시즌 14까지 방영되며 미드 열풍을 일으켰던 [그레이 아나토미]를 비롯해 미국을 대표하는 TV 드라마 들인 [스캔들 ] [범죄의 재구성] 총괄PD이자, [프린세스 다이어리2] 각본가인 숀다 라임스. 그녀는 마흔 이전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흑인 여성이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두 번의 입양과 한 번의 대리모 출산을 통해 얻은 세 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아이비리그를 나온 성공한 여성의 전형처럼 보이는, 너무도 완벽할 것만 같은 그녀의 삶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 책은 그 동안 세상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숀다 라임스의 내밀한 삶에 대한 첫 고백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 그녀의 인생을 흔든 말의 시작은 바로 언니가 무심코 내뱉은 여섯 마디 때문이었다. "너는 뭐든 좋다고 하는 법이 없지." 언니의 말은 이렇다. 네가 싱글맘이기는 하지만 혼자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가족도 가까이 살고, 훙륭한 베이비시터에, 언제든 달려올 친구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네가 사장이라 마음대로 스케줄을 조정할 수도 있는데, 너는 왜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는 거다. 일생에 한 번뿐인 멋진 기회들이 수없이 밀려들고 있는데, 전부 그냥 날려 버리는 이유가 뭐냐고. 왜 인생을 재미있게 즐기지 않느냐고 말이다. 사실 그녀는 대부분의 초대나 섭외를 다 거절해 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좋다고 했을 대의 결과가 두렵기 때문에. 그녀는 조용하고 말이 없고 내성적이며, 새로운 환경보다 책이 더 편하고, 상상의 세계 안에서 사는 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레이 아나토미>가 엄청난 히트를 쳤을 때, 얼마나 겁이 나고 슬프고 불안해졌는지, 얼마나 부끄러워졌는지 모른다. 글을 쓰는 일 자체는 너무도 즐거웠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삶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가졌는데도 행복하지 않았다. 뭔가 달라져야만 했다.

 

 

미안해하거나 변명하거나 주눅 들 필요 없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에 미안해하거나 변명해야 할 것 같은 필요성이 느껴진다면 내면의 목소리가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석판을 깨끗하게 지우고 이야기를 다시 쓰기 바란다.

동화는 안 된다. 여러분이 화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가자.

언니가 우연히 내뱉은 한 마디로 인해, 숀다 라임스는 1년 동안 자신 앞에 놓인 모든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1년 동안 모든 일에 거절하지 않고 도전하기." 과연 그녀는 겁이 나는 모든 일에 도전할 수 있을까. 숨지 않고, 재고 말고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좋다고 하며, 안전지대 밖의 모든 일에 도전하는 일이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의 도전은  TV 쇼에 출연하여 불안증을 극복하고, 아이와 볼을 부비며 놀아 주는 행복을 경험하며 휴식하는 법을 배우고, 바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가지 않았던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고, 체중을 58킬로그램을 감량하기도 한다. 그녀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해야 하는 일보다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들이 우선시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녀를 이루고 있던 '숫기 없는 성격' '내성적인 성향', 그리고 '겹겹이 쌓인 살'들이 점점 멀어지게 된다.

 

물론 숀다 라임스의 해피엔딩이 우리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이루어낸 1년의 도전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면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살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들처럼 살려고 하지 말고, 대세를 따르려고 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도 그녀처럼 모험심 가득하고 스스럼없으며 용감하고 타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년만 두려운 일에 “yes!”하며 살아 보자. 1년 뒤 당신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냥 저지르세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다 이루어지는 숀다의 마법이 당신에게도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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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힘 - 평범한 순간을 결정적 기회로 바꾸는 경험 설계의 기술
칩 히스.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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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살면서 결정적 순간을 맞이한다. 결정적 순간이란 우리의 기억 속에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진 의미심장한 경험을 가리키는데, 보통은 그 중 상당수가 운에 좌우된다. 길에서 우연히 부딪힌 상대와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진다. 학교에 새로 온 교사가 당신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발굴한다. 갑작스러운 상실로 인해 하루아침에 삶이 흔들린다. 어느 날 불현듯, 이 회사에서는 단 하루도 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놀라운 순간들은 마치 숙명이나 행운, 또는 보다 위대한 권능이 개입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통제하거나 손을 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결정적 순간은 정말우연히발생하는 것일까?

누구의 삶에나 터닝 포인트가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에서도 몇몇 기억에 생생한 순간들이 있다. 아주 사소한 결정이 결국 지금의 내 모습에 이르게 한 것도 있었고,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선회를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야말로 나의 삶을 바꾸게 된 결정적 순간들이다.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게 만드는 놀라운 그 순간들이란, 사실 우연히 찾아 오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한 경우가 많다고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히스 형제는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낼 수 있고, 뜻대로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이 순간들을 통해 삶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밀리언 셀러인 <스틱>, <스위치>의 저자인 히스 형제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순간의 힘>은 바로 인생의 극적인 기회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순간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연구 조사를 통해 결정적 순간이 고양, 통찰, 긍지, 교감이라는 4가지 요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평범함과 일상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 뜻밖의 놀라움이 가져오는 고양의 순간, 몇 초 또는 몇 분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에 깨닫게 되는 무언가, 우리가 최선의 모습을 드러낼 때 발생하는 결정적 순간, 그리고 이러한 결정적 순간들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다른 이들과의 공유를 통해 교감하는 사회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라고 말이다. 최고의 조직행동론 전문가와 세계 500 CEO들의 리더십 멘토가 수많은 기업 성공 사례를 통해 발견한 키워드인 빅 모먼츠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 흥미로웠다.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차이다. 몇몇 결정적 순간이 유도되고 계획된다면, 우리가 만난 수많은 순간들은 적극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당신이 이 책에서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늘 특별한 순간을 찾아 두리번거려라. 어떤 순간들은 기획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우리는 이 책에서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들여 의도적으로 계획해야 하는 몇몇 순간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샤프의 전 직원 회합, 서명의 날 행사, 인간 본성 재판. 그렇다, 탁월한 결정적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극한 노력이 필요하다.

히스 형제가 알려주는 인상적인 순간을 우리의 삶에서도 기획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것들이 바뀔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매 순간 들었던 생각이다. 내가 삶을 계획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말이다. 사실 거대한 변화의 방아쇠가 되는 결정적 순간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종종 우연의 순간인 양 보이는 것들이 실은 의도적인 순간일 때가 있다는 사실부터 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갑작스런 통찰을 통해 경험한 것은 실제로 자신이 행동할 수 있음을 깨달은 채찍질이었고, 그들은 본인의 의지대로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순간을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붙잡았다.’ 라고 하는 바로 그 결정적인 차이가 굉장히 놀라웠다.

인생에 뭔가 변화가 필요한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당신이 왜 오늘도 결정적 순간을 놓쳐버렸는지 알려주며, 결정적 순간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고 나에게는 오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도 들려줄 테니 말이다. 우리는 고양과 통찰, 긍지와 교감을 전하는 순간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귀중한 매 초, 매 분, 시간과 나날들은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모든 순간은 같지 않고, 어떤 순간은 모든 것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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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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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와 나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심지어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고, 왜냐하면 함께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서로 마주보는 것보다 더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주보는 것은 누구하고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열여섯 에이자는 강박증과 불안 장애를 갖고 있다. 5년간 인지 행동 치료를 받고 약을 세 번이나 바꿨음에도 여전히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손가락에 상처라도 나면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 시작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사기 및 횡령죄 수사와 관련해 경찰로부터 도망친 억만장자에 대한 뉴스가 들려온다. 그는 바로 어린 시절 에이자의 친구였던 데이비스의 아버지였고, 그에겐 10만 달러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에이자의 단작 친구 데이지는 현상금을 받자며, 에이자를 설득한다.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 되었다는 에이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의 아들과 아는 사이니까 자신을 도와 달라는 부탁에 그들은 데이비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이야기는 실종된 억만 장자를 쫓는 미스터리처럼 시작하지만, 사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성장 소설로 진행된다.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지나치게 염려 많은 엄마와 매사에 불만 많은 단짝 친구가 등장하고, 오래 전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 설레이는 감정을 키워나가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평범한 성장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 에이자의 강박증과 불안 장애로 인해 그 모든 일들이 쉽지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아까 데이비스가 한 질문,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다는 참 이상한 표현이다. 마치 도랑에 빠지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다고 할 때처럼빠지다라는 표현을 쓴다. 사랑 외에 다른 것, 이를테면 우정이나 분노, 희망에는빠지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에만 빠질 수 있다.

학교 식당에 앉아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박테리아에 대해 고민하고, 작은 상처나 통증이라도 생기면 박테리아나 감염에 대한 걱정으로 곧 죽게 될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십대 소녀. 이런 그녀이기에 좋아하는 남자친구와의 스킨십도 쉽지가 않다. 데이비스와 키스를 하면서 그의 입 속 세균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서 뭔가에 감염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생제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러다 며칠 뒤에 그 세균 때문에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 순간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을까. 에이자의 그런 증상은 점점 심해지다가, 결국 손 살균제를 입 속에 넣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됐지만, 점차 마시게 되고 구토하는 지경이 된다. 게다가 자신이 소설 속 인물 같다고 느낀다.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어느 것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외부의 힘이 결정하니, 자신의 실존 그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과연 에이자는 어떻게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살아갈 것인가.

 

이 작품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사랑을 받았던 존 그린의 신작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에이자라는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강박장애나 불안장애를 겪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극중 보여지는 심리 묘사는 리얼하다. 불안 장애라는 것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강박과 불안이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무섭게 만드는 것인지 이 작품 속에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마냥 어둡거나, 무겁게만 풀어가고 있지 않아서 더 공감되고, 와 닿는 작품이기도 하다. 삶은 계속 된다. 그러니까 계속 살아야 한다.는 식의 희망적인 메시지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의 따뜻한 위로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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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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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죄가 부르는 또 하나의 가장 큰 해악.

바로 사법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다. 원죄가 발각되면 사람들은 사법 시스템에 의심을 품는다. 이 재판은 정당한가. 이 증거는 정직한 것인가. 수사는 적절히 이뤄졌나. 사법이 악의에 찬 자들의 무기가 된 것은 아닌가.

법치국가에서 법이 권위를 잃으면 사회의 체제 자체가 붕괴해 버린다.

와타세 경부가 우라와 경찰서에서 막 근무를 시작하던 쇼와 59(1984) , 부동산 주인 부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와타세 경부는 교육 담당 겸 파트너인 나루미 경부보와 함께 사건을 맡게 된다. 현경과 관할 경찰서 수사는 암초에 부딪힌 상태로 시간만 흘러 갔고, 사건 발생 후 20여일이 지나서야 와타세와 나루미는 용의자를 한 명으로 압축한다. 유일하게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은 인물인 구스노키 아키히로 피의자로 연행해 나루미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취조를 시작한다. 아키히로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지만, 범행 동기도, 현장에서의 증거도 확보가 된 상태라 그들은 폭력과 심리적인 압박으로 자백을 받아낸다. 결국 재판에서 아키히로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이후 감옥에 수감 중에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5년 후, 나루미 경부보는 퇴직하고, 와타세는 새로운 파트너인 도지마와 함께 여전히 강력계 소속으로 흉악 범죄를 쫓고 있다. 그런데 강도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 이 사건이 5년 전 부동산 살인 사건과 여러 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사건은 이미 종결됐지만, 그것이 더욱 그의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의학 교실 시리즈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는 와타세 경부 시리즈이다. 와타세 경부는 기존에 만났던 두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이다. 와타세는 이들 시리즈에서 주요 활동하는 고테가와의 상사인, 험악한 얼굴의 무뚝뚝한 반장으로 등장했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는 와타세 경부는 경찰 안에 있는 야쿠자 같은 존재라고 했었다. 틈만 나면 자기 멋대로 수사하는 데다 서장 지시도 태연하게 무시하지만, 검거율은 본부 안에서 톱이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속죄의 소나타>에서는 그를 경찰수첩을 입에 물고 태어난 듯한 남자라고 하기도 했었다. 현경 본부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고 상급직도 노릴 수 있는 입장이면서도 여전히 현장에 머무는 베테랑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완벽한 모습으로만 비춰 줬던 그의 과거 시절을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시리즈는 매력적이다. 와타세가 파출소에서 근무하다 연쇄 강도 사건 용의자와 수배 중이던 방화범을 체포한 공을 인정받아, 간절히 바라던 형사로 우라와 경찰서에 배속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불량소년 같은 면모가 얼굴에 남아 있는 이십대 초반의 와타세는, 당시에도 험악하고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형사로서는 미숙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는 풋풋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앞으로도 계속 형사 일을 이어 가시겠죠?”

“허용된다면.”

“느긋하게 하시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초조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억울한 누명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나락 끝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희망이 되는 형사님이 돼 주세요. 그리고 절대 진실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 아시겠어요? 저와 하는 약속이에요.”

와타세가 곤란해하는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여서 시즈카는 만족했다.

'원죄'를 다루고 있는 영화나 소설은 기존에도 많이 있어 왔다. '원죄'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뜻한다. 여타의 작품에서 원죄 사건을 다룰 때는 억울하게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거나, 혹은 피해자의 편에서 해당 사건을 파헤쳐 원죄임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바로 그 원죄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찰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고 그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와타세는 원죄를 감추려는 경찰 조직 전체에 맞서 외롭게 싸움을 시작한다. 와타세가 조직을 배신하고 내부고발을 하게 되기까지의 고민과 그 과정, 그리고 원죄가 발각되면서 사법 시스템 자체에 의심을 품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엄청난 파급들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사회파 미스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무게감과 인간적인 캐릭터에 대한 매력,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페이지터너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주는 굉장히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나카야마 시리치는 48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했음에도, 데뷔 후 약 7년 남진 동안 무려 스물여덟 편의 작품을 써냈다. 게다가 본격 미스터리, 서스펜스물, 법정 미스터리, 경찰 소설, 안락의자 탐정 소설에 이어 코미디물까지 그야말로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다. 경이적인 집필 속도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 자유자재의 작풍으로, 한때는 복수의 매체에 한 달에 동시에 열네 작품을 연재한 적도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국내에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굉장한 다작 작가로 익히 알려져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 또한 제 2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소설을 써내는 작가인 것 같다. 게다가 매 작품 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 주고 있어, 실망 시킨 적이 거의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벌써 10권이나 번역 출간이 되었고, 그 중 8권이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나온 것이라 요즘 극내에서 가장 핫한 일본 작가가 아닌가 싶다. 미소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은수의 레퀴엠>과 와타세 경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네메시스의 사자>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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