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십 년간 피웠던 담배를 단칼에 무 자르듯이 끊어 버린 오기는 담뱃값 인상 때였다. 내 더러워서 안 피운다. 누굴 봉으로 아나. 그래 이젠 봉짓 그만할 때도 되었지. 건강때문에라도 끊어라던 잔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피웠던 나였는데 어떻게 담배값 인상 때문에 한방에 끊었냐고 와이프는 이상하게 쳐다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 내의 행동은 더러운 건 못참는 성격이고 어떠하든 일종의 소심한 나만의 저항 방식이 자연스러운 금연으로 이어졌다. 물론 지금도 담배 생각은 무지하게 난다만은 또 한번 내뱉는다. 내 더러워서...
2. 소주는 직장 다니며 점점 사진에 열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주말에는 출사 한번 갔다 와서 와서 사진 보면서 또 한 잔, 주 중에는 밥 대신에 소주가 먼저 생각나니 밥 대신에 술 마셨다. 그것도 거의 매일. 몸이 성할 리가 없다. 그렇게 일상다반사로 마셨으니 성인병 관련해서 고장 나고 안 좋은 건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구 모 소주 회사에서 결혼하면 여직원 강제 퇴사 시킨다는 소식이 들렸다. 게다가 그때쯤 다발성 음주로 인한 통풍 중상 발병. 과음하며 마신 것은 아니지만 어찌나 꾸준하게 마신 탓에 매일이었다. 저런 회사 소주 따위 내 더러워서 소주 안 마신다. 술 끊었다. 그놈의 회사에 여직원이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60년 전통이었다나 뭐라나. 이 더러운 회사, 과감히 불매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소심한 나만의 저항정신이다. 그래 더러워서...
3. 지난 휴가 때 병원에서 건강검진했었다. 저번 검진 때는 콜레스테롤이나 혈당 수치는 정상이었는데 최근 검진 결과에서 내당장애란다. 더 심해지면 당뇨올 수 있단다. 그동안 많이 처먹어서 몸이 맛탱이 갔다고 의사선생님이 경고한다. 과잉의 병입니다.!!! 적게 먹으라는 말이 심장에 콕 박혔다. 술 때문이었던 갑다. 아니 술을 마시면 고기를 안주 삼았으니 게다가 밥도 술과 먹으니 과잉이 될 수밖에 없고 조절이 안된 탓일 테다. 내 더러워서 밥 줄인다. 고기도 안 먹을란다. 육식의 문제를 논란한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 그동안 나도 죄 없는 소와 돼지를 많이 먹어 죗값이었던가 싶었다. 그래 밥도 끊고 술도 끊자. 고기도 끊자. 끊어라, 끊어. 아주 더러워서...
4. 어제는 모처럼 수요일날 휴무하는 와이프와 학교에서 시험 대비 공부에 후달리는 딸아이와 함께 고깃집에 갔다. 고기를 시켜 고기를 먹는데 나는 고기 단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와이프가 묻는다. 고기 안 먹나? 응 고기 끊을라고, 잉?? 진짜?? 그래 사는 게 더러워서 안 먹을란다. 내 혓바닥의 논리에 내가 참 더러워서 놀림당하지 않을란다. 고기에 따라 나오는 야채만 된장 찍어서 먹었다. 밥도 반으로 줄였다. 그동안 참 많이도 먹었다. 반성한다. 그런데 슬슬 오기가 생긴다. 여기서 더 빼면? 음,
5. 회사에서 먹는 밥조차 반으로 줄이고 적게 먹으려고 발악 중인데 문제는 보는 놈마다 한마디씩 건넨다. 와 어디 아프나? 밥맛없나?. 좀 마이 무라 등등 마이 처먹고 힘내서 조질 나게 열정과 노력으로 회사에 이바지 하라는 식으로 하나같이 입을 댄다. 이것도 먹어라, 왜 힘없어 보이노,,,,잰장맞을. 안 먹으면 당체 큰일 난 것처럼 호들갑이다. 아니겠지. 안 먹고 히바리 없이 축 쳐져 있으면 회사 일하는데 돈벌이 줄어들까바서 그러는 것일 테니까. 아놔 더러워서.
6. 사람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의 한계가 때로는 지겨울 때가 있다. 특히 요즘처럼 안 먹고 살 수가 없는가라고 이야기하면 "야 이 놈아. 먹는 낙이 얼마나 큰데 이걸 안하겠다는 말인고. 고마,안된다. 마이 묵어야 살고, 묵어야 낙이라잖니?" 저마다 한마디씩 절대적으로 쏟아 붙인다. 아 젠장. 그런데 난 먹는 낙은 빼란다. 먹는 걸로 낙을 삼고 싶지 않아서다. 그대들의 먹는 낙을 왜 나한테까지 억지하나. 제발 혼자만 그렇게 낙을 삼으면 안 되나? 우째 먹는 것도 내맘대로 못하냐? 내 더러워서, 진짜.자꾸 강요하듯 말하면 내 더러워서 진짜 밥도 끊는 수가 있어. 오기가 생길라 카네.
7. 먹지 않는 고통보다 더 큰 아픔으로 곡기마저 끊을 수밖에 없는, 그런 몸부림과 절규를 모른척하기 어렵기 때문이니까 먹는 게 죄스럽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먹어야 하는 가운데에서도, 누군가에게는 그나름대로의 낙이고 누군가에게는 슬픈 죄가 되는 삶으로 각자 풍요의 빈곤 시대에 서 있다. 오래전부터 단식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내놓고 저항의 행위였다. 본능에 반대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주관에 대하여 목을 내놓고 단판하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자발적인 단식이야 말로 그만큼 허기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해이다. 단식할 정도로 주장에 자신의 생명을 걸만한 일이라는 것은 그래서 많은 사람으로 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게 되는 원리가 숨어 있는 이유이다.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라면 굶어서라도 주장해야할 적극적인 당위성을 말하려 하는 것일 테다. 요즘 모 당 대표께서 단식 중이란다. 여기에 또 릴레이 동참한다고 하니 뭔가 모를 그 단식이 진정성이 심히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단식이 주는 행위에서 오는 뭔가 보여주기식 전시적 목적이 단식의 의미가 상당히 웃습기까지 한다. 그 어떤 것에서 조차도 절박성이 엿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소기의 이익이나 추구하는 놈들은 단식이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도 알턱도 없고 절박성도 없으니 느슨한 모양새가 주장을 훼손하기 딱 알맞다. 단식은 저항의 최후 수단이었다. 집권당의 권력의 중심에 있는 강자가 단식이라니 얼마나 웃끼는 일이 되어 버렸는가? 단식이 어찌나 어설퍼 보이던지 개그 치는 슬립스틱하는 것처럼 웃습기만 하다. 기본적으로 사고 구조가 다른 사람들 간에는 부딛히면 결코 하모니가 나올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진정 이 시대는 단식의 저항의식조차도 공감의 결빙시대인 것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