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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저 사람은 슬픔 그 자체를 안고 사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말을 섞어보지 않아도 그의 얼굴과 분위기에서 풍겨나오는 그 어떤것으로부터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사람말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인 그들도 나의 바로 옆자리에 현실로 툭. 하고 튀어 나온다면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로부터 상처를 받았으며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 사람들..
항상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보는 나는 이 책도 예외가 아니듯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무심코 쓰여져 있는 전경린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본다. 작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그런식으로 진행된다면 책은 별다른 재미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런 소설은 어떤 소설인 것일까.. 라고 다시금 찬찬히 생각해 보면서 이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는 '나'를 포함해 총4명의 사람들은 바다에 해삼을 잡으로 간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해삼을 잡는 기억은 과거였으며,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다시 과거를 넘나든다. '나'인 유지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 작은 고모가 사는 해변빌라 509호로 이사를 오게 된다. 고모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자신의 친생모임을 알고 난 후의 일이었다. 그 일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유지는 그 상처를 안고 중학교 생활을 해변빌라에서 시작하였다.
아빠의 빈 자리를 찾지 못했던 유지는 중학교 생물 교사인 이사경을 만나면서 자신의 빈 곳을 찾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던지도 모르겠다. 유지는 성장하였으며, 사랑을 만났고, 다시 해변을 찾게 되지만, 예전의 상실감은 그대로였다. 사랑은 언제나처럼 반복되고, 생활도 그렇게 반복될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해변빌라와 해변의 카페, 폐해수욕장의 정경들은 흡사 외국의 그 어떤 곳으로 상상되어지곤 했다. 주인공들이 전해주는 가라앉는 분위기의 느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 소설을 잡고 있노라면, 귓가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 듯하고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것 또한 작가가 글로서 내 뿜는 글의 매력이자 능력이리라. 전경린 작가의 열한번째 소설 <해변빌라>는 그런 분위기를 풍겨냈다. 서점을 둘러보다, 인터넷을 끄적여보다 만나게 될 전경린 작가의 다음 열두번재 소설을 기다려 불 것이다.
밤에 긴 머리카락을 목에 감고 식물처럼 잠들 때, 아침 식탁에서 빵에 잼을 바르고 사과를 자르다 말고 가만히 정지해 있을 때, 발코니에 서서 오래 발아래에 출렁대는 바다를 내려다볼 때, 해변 방파제를 흰 치마를 입고 2센티미터쯤 부양한 사람처럼 걸어갈 때,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라고 사과 껍질 같은 시 한 구절을 중얼거릴 때. (p.47)
내가 그곳으로 간다 해도, 당신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령 내가 당신 곁에 묻힌다 해도, 당신의 유해로부터 내 유해 사이에는 아무런 통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당신이란 표현은 속임수, 수사학적 술책이다. 당신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p.71)
그러면서 왜 사랑을 하느냐고요? 말도 안 되는 사랑을 왜 하고 또 하느냐고요? 허영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외에 무엇이 있지요? 먹는 것, 입는 것, 꿈도 없는 수면, 걷기, 살랑이는 바람, 햇살, 온갖 향기, 미소, 하지만 타인의 살갗을 파고드는 사랑보다 더 강렬한 행복감은 없어요.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난 중독자이지요. 하지만 그 동작이야말로 삶에서 최고가 아닌가요? 그 외엔 아무리 미화해도 일과 온갖 관계와 생활이란, 그저 인생의 노동일 뿐이니까요.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