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범
권리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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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암보스 문도스> 이후로 두번째로 만나는 권리 작가의 책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 책에 대해 고심이 많았고, 할말이 많은 듯 보였다. 삼 년 만에 내놓은 그녀의 다섯 번째 책이자, 6년만의 장편 소설. 그러니까 약 10년만의 결과물이라서 그러한가 보다. <암보스 문도스>에서 나는 그녀에게 참 좋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그 책과는 달리 그녀는 또다른 모험을 시작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약2321년이다. 정말 까마득한 이야기. 그때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너무도 까마득한 이야기. 그래서 인지, 상상을 한다는 것조차 막는 사회가 조금 낯설게 다가왔지만, 점점 읽으면서 빠져들게 된것은 왜일까. 정말, 이런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하물며 요즘도 개인정보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인터넷의 댓글조차 처벌받는 시대인데, 그때.. 그때쯤 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환태평양 지진대 부근에서 일어난 지각 변동 때문에 생겨난 URAZIL. 그곳은 범죄자가 심각할 정도로 늘어나게 되자, 상상을 금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하게 될 지경까지 이른다. 과거의 기억들이나 이미 했던 경험을 상상하는 재생적 상상은 허용되나, 새로운 것, 나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창조적 상상은 금하는 법안이다. 누구라도 창조적 상상을 하게 되면, 끌려간다. 아, 이런... 요즘으로 생각하면 모두다 끌려가는건데, 나는 골백번도 끌려갔겠구만. 그런데 그런 상상을 자제하는 뭐, 약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무튼, 연극배우인 기요철은 공연을 끝내고 어딘가로 떠날려고 꾸린 가방에서 출석요구서 라고 적힌 종이 한장을 발견한다. 그것은 상상범죄팀으로 출서하여 달라는 종이였다. 하지만 기요철은 별 생각없이 그대로 꾸겨버린다. 하지만 결국은 잡혀가고, 재판이 이루어지게 되며, 수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창조적 상상을 금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를 발생하게 만들고, 끝내는 살인을 자행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상상을 하면서, 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은 알겠으나, 상상을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정말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상상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이냐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요철은 끝까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감생활을 하면서 상상을 할때마다 버튼을 눌러야 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첫 장부터 흡인력있게 시작하는 권리 작가의 장편소설. 정말 상상도 못한 미래의 일을 잘 버무려 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다음 책도 곧 만나보기를 기대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렸을 뿐입니다. 제가 누굴 죽였습니까? 강간을 했습니까? 거짓말을 했습니까? 저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어요! 죄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피해를 수반하는 것 아닙니까? 상상이 도대체 왜 거짓이고 죄란 말입니까? (p.47)


지금처럼 위험과 위선이 가득한 시대에 리얼리티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현실의 고달픔은 우리가 인생을 끊임없이 부정하게 만들어 지치게 한 다음, 끝내는 자기 스스로 인생이라는 연극 밖으로 나가떨어지게끔 만들고 있다. 이쯤에서 허구라는 것이 리얼리티를 압도하며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p.68)


당신은 벌금 150만 우라와 징역 6개월, 이 년간 집행유예 및 보호관찰, 그리고 상상금지교육 400시간을 받았소, 벌금낼 돈이 없어서 육 개월간 로텍에서 노역을 살기로 하는 데 동의했고요. 이제 로텍에 들어온 이상 당신은 '입주자'로 불릴 겁니다. 당신의 이름이나 과거의 직업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타인과 구별하기 위해 당신에게 '2322 고단 3604'라는 고유번호를 부여했습니다. 이곳은 로텍 안의 셀이고 당신은 상상범 304입니다.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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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뉴엘 1 - 육체에 눈뜨다 에디션 D(desire) 7
엠마뉴엘 아산 지음, 문영훈 옮김 / 그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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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말해두고 싶은 책은 엄청나게 색정적인 소설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그래서 각 인터넷서점에 리뷰를 올리거나 이책을 검색해서 정보를 보려 할때는 성인인증까지 해야 했었다. 나를 당혹하게 한 책으로 손꼽히지 않을까. 첫 도입부부터 상당히 강하게 시작한다. 주인공 엠마뉴엘은 일등석 비행기안에서 옆좌석의 남자와 성행위를 하게 되는데, 그 남자와의 행위를 하는 동안 건너편 아이들이 보는데도 당당하게 행위를 끝낸다. 그리고 또 이어서 비행기 안의 화장실에서 다른 남자와 또다시 섹스를 한다. 비행기안에서의 섹스라니. 그런데 더 황당한건 비행이 끝나고 공항에 도착하자, 그녀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의 품에 안긴다. 하하하.


이 책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또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그 영화가 얼마나 야할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하지만 영화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책이니, 나는 책이 더 심위가 높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렇게 야한 책을 어떤 여자가 썼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아직도 확실하게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1959년에 출간된 책이라고 하니, 그 당시에 이 책이 얼마나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까? 그리고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말해서 무엇하랴. 아무튼 저자는 이 책의 주인공 이름처럼 엠마뉴엘의 이름을 가진 엠마뉴엘 아산이라는 가명일지, 진짜 이름일지 모를 이름으로 이 책을 내었고, 그녀가 누구이지 않을까.. 라는 가설만 있다고 한다.


첫 도입부부터 상당히 강렬해서 나를 당혹케 한 이 소설은 전2권 내내 성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거의 책 내용의 97%정도 일듯. 그런데 자꾸 성적 이야기만 하니까, 책을 읽는 이야기의 진행이 영 시들해졌다고나 할까. 그런 부분은 있었다. 남자의 성적 욕망만 허용된다고 생각할수 있는 보수적인 편에 맞서서 여자또한 성적 욕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엠마뉴엘의 자유로움. 거기에는 그녀의 남편도 동조하고 나섰다. 그는 아내의 아름다운 몸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하는 남편이었다. 그리고 엠마뉴엘은 한술 더 떠 세상 모든 남자들과 섹스하고 싶어했다. 오직 성적으로만 생각하는 여자일것 같은.


마리오라는 한 남자에 의해서 연애술 비법을 받으면서 엠마뉴엘은 새로운 것에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 책이 신앙과 종료고부터 자유로운 해방된 여인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나에게는 너무 성적 수위가 높은 위험한 책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물론, 남자처럼 여자도성적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그쪽으로 몰입하는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동시에 아이가 있는 집안이라면 이 책을 책장에서 몰래 숨겨놔야 할것 같다.




엠마뉴엘의 흥분이 시들해졌다. 그녀는 가식이나 화장 같은 건 딱 질색이었고, 발레 공연을 보면서 하품을 하는 여자였다. 무용수들의 거짓 누드는 물론 백조의 오르가슴은 그녀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엠마뉴엘은 그들이 깃털로 몸을 장식하거나 정말로 발가벗지 않는 것을 속으로 비난하곤 했었다. 그녀는 실망해서 사기꾼 여자로부터 돌아서려다가, 맞은편 다른 무리의 중심으로 금발 여자가 보내는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쫒았다. 바로 거기서, 키가 크고 늘씬한 갈색머리의 한 여자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남녀 손님들의 관심은 무시한 채 시선을 마주 보내고 있었다. (p.215)


마치 우리가 삶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지요. 지금이야말로 파스칼에게서 그 방법을 빌려와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빛을 줄 수 있는 것은 성당의 성수가 아니라 삶의 규칙으로서 행하는 색정주의입니다. 그 빛은 단지 우리만 비춰주는 게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선뜻 현명하게 색정주의적 가치를 유일한 도덕적 가치로 받아들일 겁니다. 다른 동물들이야 계속 똥 냄새를 맡으며 다니든가 말든가 신경 쓰징 낳고 뒷발로 일어서서 걸어가게 될 네 발 짐승처럼 말이죠. 자친 우리 인류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두려움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충분한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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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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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손아람 씨의 이력중에서 재미난 것을 발견하였다. 아이큐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아 멘사 회원이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학창시절때 만점을 받는 아이들이 정말 신기했었다. 어떻게 만점을 받을 수 있는거지? 한 문제도 틀릴 수 없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다. 실수를 해도 한문제는 틀릴건데 말이다. 그 말인즉, 정확하게 시험지에 나온 모든 것들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그들의 천재성에 항상 감탄했으며, 부러웠다. 아무튼 그 사람들중의 한명이 이 책의 저자 손아람씨였다.


이 책은 그가 자신이 다녔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배경으로 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어디까지 실제적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미치도록 웃었으며, 어느 부분에서는 가슴 아프도록 청춘들의 아픔을 느꼈으며, 또 정치적 비참함에 가슴이 답답해 온 부분도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화자인 태의는 저자 본인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대학, 그리고 그 이후 10년동안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가 여기 이 책에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자 그 시대를 살아낸 청춘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20대의 그 시절, 청춘들은 자신이 살고자 하는 대로 나아간다. 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의도치 않은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다. 나는 절대 누구를 고발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상황 속에 놓여지면,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상대를 고발하고 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친 그들은 상처를 받고,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여기 실려 있는 총154편의 이야기는 그렇게 아픈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장 빛나는 청춘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아픈 추억을 안겨 될 시간들. 역설적으로 들릴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청춘이 더 빛나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내가 그 시대를 조금 빗겨나게 살았던 세대였던지라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들의 청춘 이야기가 가슴속 깊이 진하게 다가온 것은 우리의 지금의 세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만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가진 것을 내버리고 갖지 못한 것을 좇기도 한다. 나는 미쥬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미쥬도 나에게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의미의 빈틈을 말로 메우는 미장이와 같았다. 언어의 진공이 생기면 감정의 진공이 드러날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거짓이었을까? 모르겠다. 남김이 없는 것 말고는 다른 연애의 양식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p.33)


나는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는 소고기가 신경 쓰였다. 왜 그 얄미운 인간을 위해 한우를 세 근이나 준비했단 말인가. 그걸로 도지사를 사흘 동안 배 터지게 먹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지사를 언제 다시 본다고. 그게 바로 권력의 문제였다. 세상의 모든 지점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권력은 혼자 높지 않고 다른 곳을 낮게 패어낸다. (p.90)


기숙사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선배들의 전설을 온갖 고문을 당하고도 기밀을 발설하지 않았다는 굳센 의지의 영웅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우리의 입을 여는 데는 고문은 커녕 고문의 암시조차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나약해진 걸까? 세상이 너무 착해진 건 아닐까? 사실, 우리는 악을 악이라 믿지 않았던 게 아닐까? 우리는 악의 존재를 원했고, 우리 앞에 맞선 자들을 서슴지 않고 악이라 불렀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악을 신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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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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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40여 개국 출간과 2014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를 당당히 꿰찬 역시나 보무 당당한 기욤 뮈소의 장편소설. '센트럴 파크'이다. 표지마저 책의 내용을 알기도 전에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허리 잘록한 웨이브 진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그리고 왼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다. 표지를 보면 예감할 수 있듯이 스릴러 물이다. 기욤 뮈소가 쓴 스릴러 물은 처음 읽는지라 어떨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파리 경찰청 소속 강력계 팀장인 알리스는 눈을 떠보니, 숲 속에서 한 남자와 같은 수갑을 낀 채, 벤치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여기서 추측으로 알리스가 표지의 그녀인 줄 알겠다. 그녀는 전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고 난 다음날 집으로 가는 차를 탄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로는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는 자신을 가브리엘이라고 소개하고 미국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수갑을 함께 낀 채, 그것도 파리가 아닌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있는 것일까?


첫 장부터 강한 궁금증을 가진 채 읽어 내려간 책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었다. 스릴러물을 읽을 때 반전이 거듭되면, 이건, 너무 심하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도 있었는데, 기욤 뮈소의 스릴러물은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보여주어도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사랑과 감동이 포함되어 있어서일까라고 생각된다. 주인공 알리스는 많은 시련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부모는 이혼을 하였고, 형제들로부터는 왕따를 당한다. 그녀가 심각한 수술대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어도 형제들은 그녀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는 비리 경찰로 전략해 감옥을 갔다 왔고, 강력계 팀장인 그녀는 연쇄 살인마를 잡다가 남편과 아기를 잃고 거기에다 심각한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나쁜 일들이 닥쳐올 수 있을까? 삶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의 일들이 생기는 것이냐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 보이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누군가 한 사람은 당신 편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알리스에게도 그녀를 사랑해준 아버지와 직장동료 세이무르가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그들은 알리스의 곁을 지켜주었고, 모든 불운을 견뎌낸 알리스는 다시 삶을 시작해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기욤 뮈소의 스릴러물,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 장편소설로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부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고 하는데, 끝까지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알리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숨죽여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리의 생에는 하나의 문이 열리며 환한 빛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는 순간이 있다. 당신의 마음을 굳게 걸어 잠갔던 빗장이 풀리는 순간이 있다. 당신은 무중력 상태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존재로 거듭난다. 당신의 생은 한동안 장애물이 없는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선택은 분명해지고, 대답이 질문을 대체하고, 두려움은 사랑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우리의 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p.87)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이 존재한다. 나는 시련을 다 극복하지는 못 했지만 살아남는다.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나를 질식시키고 있었지만 나를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람들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폴과 아기가 죽고 나서 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건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그 대신 막연하긴 해도 아직 삶이 나에게 원하는 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한다. (p.251)


하루 온종일 힘겨운 치료를 견뎌야 하는 날도 있겠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언제나 당당하고 용감하게 싸움터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뼛속까지 두렵고 가슴이 조여오더라도 살아야겠다는 집념을 무기 삼아 용기 있게 맞서야 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운명과 싸워 얻어낸 이 모든 순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었다고 말입니다. 아무도 그 소중한 순간들을 당신에게서 빼앗아 갈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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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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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박경리 선생님의 책을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가웠다. 선생님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이렇게 또 소설 한편이 나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토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이 책 <은하>는 1960년 4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라 한다. 이렇게 박경리 선생님의 글을 만나게 해주셔서 마로니에북스에 감사드리고 싶다.


<은하>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 기간으로 거슬러 간다. 그 시대에 대학생들에게는 징집 보류라는 특혜가 있었다. 그러니까, 대학생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징집 기피자가 늘어남에 따라(그 당시 5만 명) 정부에서는 1956년에 징집 보류 제도를 폐지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한꺼번에 많은 대학생들이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소설은 그 시대상황 속에서 방황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인희의 대학교 단짝 친구 은옥의 남자친구 이정식이 이런 경우이다. 그는 징집 보류가 해제되고 난 후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나온다. 그는 군법을 어긴 자신의 행동은 정당하다며 여자친구의 집인 은옥에게 얹혀살다가 끝내는 헌병에게 잡혀가 폐병에 걸리고 나서야 군대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당히 보수적인 인희는 은옥의 상황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 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청춘 남녀가 같이 산다는 것에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친구에게 책임감을 안겨주는 이정식이 못나 보였다. 하지만 인희의 인생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그녀의 은옥에 대한 생각은 바뀌어간다. 인희를 좋아한다며 줄곧 따라다녔던 송건수가 미국으로 간 뒤 몇 개월 동안이나 소식이 없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자취집에 한 남자가 찾아와 송건수의 결혼 소식을 알리며,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인희는 상실감을 안고 아버지의 편지 한 장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왜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소극적이었나?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서 일했던 할멈이 새어머니에게 쫓겨나 살고 있는 사위의 집엘 찾아가 오십만 환을 할멈에게 건네면서 할멈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했던 그녀가 왜 정작 자신의 삶에는 희망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인지. 누가 나를 구하여 줄 수는 없을까? 나를 여기서 구해줄 사람은 없을까.라며 우물 속 달에게 아무리 말을 건네봐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힘을 갖지 않았다. 자신보다 은옥이 옳았다고. 그녀의 사랑은 진솔하다며 은희는 말한다. 시대상황이 그렇다 해도, 스스로 얼마든지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할멈과 은옥,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조언을 해도 은희는 그들의 말을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였다. 어쩌면,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경리 선생님의 책들 중 가장 선정적인 글이 많았던 책이었으나 은희의 삶에 대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송건수에게 배반당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애정에 배반을 당한 여자에게 진정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회의에 찼던 그녀가 서글퍼 보였다. 자, 얼마든지 우리는 운명에 거부할 수 있다고, 순응하지 말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박경리 선생님의 책. 너무 좋았다..




괴로웠던 어젯밤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어려운 일들 그러나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다 합쳐도 그 비중을 뛰어넘는 것은 사랑의 즐거움이다. 부자연스러운 이런 사랑의 행각에 부수될 무거운 부채를 염려함보다 순간의 환희를 더 값비싸게 생각하는 그들의 행동, 은옥은 그들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괴로움쯤은 마땅히 지불되어야 할 부채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볼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듯이 같은 불행자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고 자기가 처해 있는 불행과 비교해보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자기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견디어보자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p.24)


사람들이란 돈이 생김으로써 마음이 더 인색해지고 기득 이권을 위하여 무정한 수단과 책략을 쓸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것을 먹어보겠다고 그야말로 야차같이 날뛰는 세상에서 가난은 나라도 못 당한다는 조용한 체념 속에서 자기의 푼수를 지키며 사는 할멈. 인희는 보잘 것 없는 남의 집 하인살이를 한 할멈에게 뭔지도 모르게 인간의 귀중한 선의 본질을 본 듯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들을 착하다고 칭송하기보다 못나고 천하다는 말로 대하여주고 벌레처럼 인간의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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