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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ㅣ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9월
평점 :

남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여인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바로 어우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 이 여인은 책 속의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인물이었으며, 우리 모두 이 여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어우동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의 스캔들이 많은 페이지에 걸쳐 상당히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임꺽정이나 장길산에 관한 기록은 단 몇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녀는 어떤 인물이었던 것이길래 그렇게 장황한 기록들을 남겨 놓았던 것일까?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다던 그녀에 대해서 좀 더 소상히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대부가의 딸로 태어났던 어우동은 왕실의 며느리로 들어가게 되고, 다른 여인들처럼 평범한 삶을 이어갔지만, 2살배기 딸과 함께 시댁집에서 쫒겨나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파란 만장한 섹스 스캔들을 남기게 된다. 수많은 남자들과 정사를 하고, 사내 수집벽이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되지만 정작 어우동 그녀는 그것이 모든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단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내들을 사랑하고 그 사내들에게 머무르는 것을 원치 않았던 여자. 죽음을 앞에 두면서까지 그녀는 후회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수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어우동 그녀는 외로워보였다.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음에도 그 자체로 외로워 보였던 것은 왜일까?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 보였지만 그 자유로움이 헛헛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도 그렇게 시려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은 중간 중간 책을 읽으면서 쉼없이 읽어 내려 갈 수 없었다는 것에 있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불툭불툭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멈추게 되는 책을 좋아한다. 알지 못한 새로운 단어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가? 수굿이, 쏘삭였다, 자분치, 쫄딱보, 짝짜그르하였다. 염오. 등등.. 낯선 단어들은 나로 하여금 사전을 펼쳐보게 만들었고,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조선왕조실록에 16명의 간부들과 함께 음녀이자 탕녀로 기록된 그녀 어우동의 이야기가 궁금하거들랑,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하지만 정말.. 조선시대의 어우동. 그녀는 어떤 여인이었겠을까?
"너는 이제까지의 어우동이 아니야."
그녀가 여인의 검은 시간을 향해 말했다. 검은 것은 어둠이다. 검은 것은 치묵이다. 검은 것은 죽음이다. 살아 왁자지껄 빛나는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휘장이다. 색이 사라진 세상, 오직 옅거나 짙을 뿐인 흑백의 절망에 복종할 수는 없다. (p.49)
인생은 문틈으로 지나가는 말을 훔쳐보는 일에 불과하다지만, 그녀는 그 말을 잡아타고 달리고 싶었다. 고작해야 눈을 부릅뜨고 스쳐간 말이 얼룩이냐 누렁이냐 따지기보다는 그것을 몰아 쌩쌩 바람과 함께 달리고자 하였다. 그녀의 몸은 싸늘히 식은 안방의 보료방석만 지키기엔 너무 뜨거웠다.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