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읽는다. 온기를 품기에는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는지 홀로 빛나지만 그 품엔 서늘함이 깃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무리들이 서로를 기댄 그림자 속에서 자연스럽게 베어나오는 그늘이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정성껏 생을 살아온 시간의 마지막이 이처럼 홀로 빛나지만 자신을 키우고 지켜온 무리가 안고 사는 아우라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햇볕보다는 그늘이 더 친근한 조릿대는 그늘이 가지는 서늘함이 생의 터전이다. 몸에 스민 냉기에서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벗어나 환하게 빛난다. 그 빛으로 자신을 키워온 터전이 밝아진다.

제법 길어진 오후의 햇볕이 헐거워진 옷깃 사이로 스며든다. 바람도 잠시 잠들었고 볕이 품어온 온기가 조리댓의 빛을 닮은 미소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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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밤 소리로 오는 비다. 짧은 연휴 긴 여정으로 고단한 몸과 마음에도 더이상 미루지 못하고 원고 교정 마치니 비가 소리로 부른다. 무거운 몸 일으켜 느긋하게 토방을 내려서 '벗'같이 골목길 끝자락을 지키는 가로등 불빛으로 비를 담는다. 이 밤에 비 내리는 까닭은 남은 눈 씻어내고 다시 올 눈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리라.

깊어가는 밤, 비로소 비는 소리에서 빛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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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요등'
작은 통모양으로 생긴 꽃이 보송보송 솜털을 달고 붉은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다. 덩굴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뻗어나온 꽃자루에는 손톱 크기 남짓한 작은 통모양의 꽃이 핀다. 담벼락을 타고 늘어진 줄기에 옹기종기 모여 많이도 피었다.


말라비틀어진 열매로 꽃을 떠올리기에는 아는 것이 부족했나보다. 콩알 굵기로 둥글고 황갈색으로 익으며 표면이 반질거리는 열매를 저물여가는 겨울숲에서 만났다.


'계요등鷄尿藤'이라는 이름은 한창 자랄 때 잎을 따서 손으로 비벼 보면 약간 구린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가 닭 오줌 냄새와 비슷하여 닭 오즘 냄새가 나는 덩굴이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혜'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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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향미'
-정연권, 행복에너지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ᆢ여기저기서 꽃소식 들린다. 이미 봄 꽃의 계절은 시작되었다. 야생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엔 봄 꽃향기로 가득하여 눈맞춤할 때를 설레임으로 기다린다. 꽃이 주는 이 행복과 위안은 누리는 자의 몫이다.


"꽃잎의 색도 빨강, 노랑, 분홍, 보라, 하얀색으로 다양하고, 꽃 모양도 각기 다르고, 꽃 피는 시간도 다르고, 꽃 크기도 다르고, 자태와 이미지가 다르지만 이를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을에 피는 꽃이 진짜 꽃이고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양성과 각기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여 주위의 다른 꽃들과 조화를 이뤄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저자뿐 아니라 사람들이 꽃을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30년 세월 야생화와 함께해 온 저자의 꽃 이야기가 담겼다. 색이 선한 눈으로 살피는 사랑이라면 향은 순한 코로 마음에 와 닿는 사랑이고 미는 참한 입안에 감도는 맛깔 나는 사랑의 '색향미'라고 한다.


보고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가치까지 이야기하는 저자의 꽃에 대한 관심은 이해가 간다. 혼자 즐기고 강의에 사용하는 것과 책으로 엮어 판매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내용은 전문가로 자처하는 저자의 감정과 의지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책에 실린 미흡한 사진은 글의 내용조차 미흡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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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같은 바다다. 구강포를 흘러온 땅의 기운이 대양으로 향한 긴 여행을 위해 마지막 숨을 고른다. 몰아쉬던 숨을 천천히 내뱉고 속도를 줄이고 품마져 넓혀 침잠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아침과 저녁의 노을이 다르지 않고, 달빛이 부서지는 밤바다의 울렁거림으로 각인되었던 바다는 그후로 내게 더이상 바다가 아니라 달을 품은 호수다. 어느때 무슨 마음으로 찾아오든 포근히 안아주는 벗이다.

초하루의 분주함을 내려 놓으니 깊어가는 밤의 적막을 깨우는 등대의 숨소리 조차 삼킨듯 고요가 깊다.

호수같은 바다 마량항, 그곳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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