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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평점 :
그가 말하기를, 이 예언자는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실은 어떤 굉장한 일의 전조라는 거야. 다시 말해서 우리 인류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근본적인 어떤 변화를 겪게 된다는 거지.(12)
영적인 영역에서는 모든 기도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덜 받는 것은, 덜 구하기 때문이다.(126)
이게 바로 내가 온 힘을 다해 생각하고 싶은 거였다. 진짜 환상은 프로이트가 믿는 것처럼 신앙이 아니라, 신비주의자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신앙을 의심케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132)
천박한 독자들에게는 기적이 교리를 증명한다. 우리는 어떤가 하면, 교리가 기적을 잊게 만든다.(456)
너희들은 내게 묻는다. 하지만 그 왕국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하고. 그것은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것은 너희들 가운데, 너희들 안에 있는 것이다. 왕국에 들어가려면 좁은 문을 통해야 한다.(464)
나는 신에게 복종하지 않소. 다만 그와 의견이 같을 뿐이오.(517)
신은 그대 안에 있다오. 신은 그대의 내부에서 그대가 행하는 선한 일들과 악한 일들을 지켜보고 계시다오. 그대가 이 신을 대우한 것처럼 이 신도 그대를 똑같이 다룰 것이라오.(519)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644)
정치적 전향의 이력을 가진(^^;;) 저는 종교적 전향의 경험도 했습니다. 개신교에서 무교로. 개신교에서 무교로 갔다면 개신교인들은 안타까워하겠지만, 무늬만 개신교인이었던 제게 종교는 그렇게 큰 무게감을 가지지 못했고, 지금의 무교 상황이 더 저다운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늬만 개신교인이었던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의 제가 기독교 관련 책을 더 읽는 것 같습니다. 무늬만 개신교인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기독교의 여러 모습을 지금 발견해간다고 해야 할까요.
힘겹던 시절에 종교에 의탁하고자 노력했으나 시간이 지나 종교에서 멀어지고 불가지론자가 된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초기 기독교 역사의 재구성과 저자 개인 삶의 여정을 섞어 특유의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소설로 써내려간 <왕국>에 나오는 화자 '나'의 모습은 저와 비슷합니다. 믿음에서 구원을 받기 원했으나 믿음과 복음으로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고 종교에서 떨어져 나온 '나'는 불가지론자로 살면서 오히려 기독교의 여러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독교에 빠져 있을 때는 몰랐던 모습을,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고 다방면으로 보면서 알게 되는 거죠. 그러나 이 모습은 종교적인 의미의 모습은 아닙니다. 이 모습은 과거에 에르네스트 르낭이 역사적인 의미의 예수를 재발견한 것처럼,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의 기독교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거기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계급 차별이 확고한 시대에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급진적인 예수의 가르침에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나중에 받아들이기도 하고,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의 분노와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종교적 믿음이 알려주지 않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기독교의 의미를 저자는 지금 남아 있는 그 시대의 텍스트들과 상상력을 가미한 자신만의 창조적 해석, 자기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찾아 나서는데 그 과정들이 흥미롭고 충분히 읽을만합니다.
마지막에 저자는 '자기 나름의 종교에 대한 생각을 이런 방식으로 적었는데 그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수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없었겠죠. 다만, 저는 저자가 마지막에 읊조리는 말들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내 앞에 딱 버티고 서더니, 미소를 짓고, 두 팔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리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뻔히 쳐다본다. 마음껏 즐기라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격려하는데, 그 시선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가득한지, 얼마나, 천진하고, 얼마나 신뢰에 차 있고, 얼마나 자연스러운 기쁨으로 가득한지.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춤추고, 예수님은 나의 친구라고 노랙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이제는 다른 파트너를 고른 엘로디를 쳐다보고 있는 내 눈에 눈물이 솟구쳤고, 나는 이날, 왕국이 무엇인지 잠깐이나마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p.692) 라는 구절을 읽는데 저도 기쁘고 벅찬 감동이 솟구쳤습니다. 아마도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를 떠난 이가 종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았을 때 느낀 감동을 저 자신도 충분히 공감한다고 해야할까요. 저자처럼, 저도 종교를 한 마디 말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앞에 나타난 모습, 사건으로서 종교를 만나고 그를 통해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죠.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그 느낌, 그 감동이 저자나 저 같은 이들에게 종교를 실재하게 만듭니다. 저자나 저 같은 이들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나 저 같은 이들은 종교를 믿음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만나고 들여다봅니다. 그때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들은 종교적 믿음이 아니어도 충분히 정서적 교감을 전해줄 수 있는 강력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있기에 저자나 저 같은 이들은 종교의 힘, 종교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것을 알기 위해서 생각보다 더 길고 긴 길을 돌아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냥 믿는 것과 그냥 비판하는 것과는 다른 알기 위한 노력 끝에서 만난 것이기에. 그 노력과 깨달음의 여정을 생생히 살아 있는 언어로서 저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