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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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탈리아. 항상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이탈리아.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이제 다시는 갈 일은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이탈리아. 그렇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면 잊지 어려운 추억이 되어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이탈리아. 이런 생각은 인간 그 자체를 향한 애증과도 어딘가 닮았다.(343)

서경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을 읽다보니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라는 책이었습니다. 왜 이 책이 떠오느냐구요? 제가 생각하기에,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과 <교수대 위의 까치>가 미술비평에 있어서 다른 면모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중권은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그림을 둘러싼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 철저하게 파고드는 자신만의 지적인 탐구심을 통해서 만들어낸 해석을 더해서 자신만의 미술 비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미술비평을 읽다보면 '미술작품을 이렇게 지적으로 파고들어서 해석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습니다.

위에 적은대로 서경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에 나오는 미술비평은 <교수대 위의 까치>와 느낌이 다릅니다. 미술작품을 바라보며 떠오른 '인상'을 적은 인상비평의 느낌인데, 그 인상비평이 사람의 마음에 잘 파고들어온다고 해야할까요. 물론 서경식의 미술비평이 지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서경식의 미술비평도 충분히 지적입니다. 하지만 지적인 탐구심과 해석력이 중심이 되는 진중권식의 미술비평에 비해 서경식의 미술비평은 훨씬 정서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요.
'피에로인 듯하지만 가슴에 십자가를 건 모습을 보니 성직자일지도 모른다. 작은 머리, 비스듬히 아래로 내리깐 시선, 가냘프고 긴 목선, 살짝 익살맞은 그 모습은 애달프기도 했고, 가슴 저미는 평화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경식의 미술비평이 제 마음에 더 와닿기는 합니다. 가슴에 저릿하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고 해야하나. 그렇다고 진중권의 미술비평을 제가 싫어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 마음에 스며드는 힘을 놓고보면 서경식의 미술비평이 더 힘이 크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서경식의 미술비평이 더 문학적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에 끌리는 인간형이라서요. 이걸 확장시켜서 얘기하면 제가 보기에 서경식의 미술비평이 진중권의 미술비평보다 더 예술적이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진중권의 미술비평은 서경식의 미술비평보다 더 철학적이라는 말이 되겠죠.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와 인상에 기반하여 얘기를 펼쳐나가지만,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시대의 아픔에 가닿고 어떤 특정한 정서를 상기시키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 정서적 울림을 주는 글. 그것이 서경식의 미술비평인 것 같습니다. 충분히 예술적이고, 충분히 문학적이며, 충분히 인문학적인. 그래서 제가 서경식의 책들을 계속 읽는 것 같습니다. 개인에서 시작해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단계로 나아가면서도 동시에 독자에게 정서적 무언가를 느끼게 하니까요. 그 무언가가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울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그 무언가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재일조선인 출신으로 일본에서 차별당했고, 한국으로 유학간 두 형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간첩으로 몰려서 옥고를 치렀고, 그 와중에 집안이 풍비박살난 서경식이 인고와 고뇌의 시간을 거치면서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얻은 '인식의 힘'이 그 무언가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세상이 언제라도 나빠질지 모르니 지나치게 긍정적인 기대를 품지 말고 세상과 인간을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말이 주는, 세상을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아나갈 수 있게 만드는 그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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